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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원소 마법의 특징은 직관과 파괴력, 두 가지로 정의된다.

        대성(大成)은 어려워도 입문 자체는 쉽고, 원소의 종류별로 가짓수가 많기에 자신의 재능을 찾기도 한결 수월하다.

        따라서 마탑 내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학문이지만 동시에 단점도 존재한다.

        바로 직관적인 만큼 술식의 구성이 단순하고 물리적인 타격 외에 이렇다 할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는 것.

       

        마법을 걸음마부터 배워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들 대부분이 고마운 연습 상대였다.

       

        “하앗!”

       

        땅을 짚은 마법사의 손을 타고 불길이 흘렀다.

        ‘기는 화염’. 대상자를 추적해 다리부터 태워 버리는 미티어 학파의 불 마법이었다.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술식의 머리 부분을 파고든 나는 곧장 그 성질을 변화시켰다.

       

        간섭기 — 개찬(改撰)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불길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더니, 종전에는 푸른 비늘을 가진 뱀이 되어 다리 사이를 지나갔다.

        처음으로 저주명을 사용하지 않고 3위계에 해당하는 마법의 간섭에 성공한 순간.

        뒤에서 작은 감탄사가 들려와 고래를 돌려보니 글레시아의 문하생 대표인 세라였다.

        미티어의 시설에 들렸다가 내가 대련실을 이용하고 있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젠장, 저주술사 새끼들은 하나 같이……!”

       

        대련 중 한눈을 파는 것에 화가 난 마법사가 기습적으로 불덩이를 날렸으나 가볍게 피해 주었다.

        내 기감은 상대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으니 사실 마법을 떼어놓고 보면 상대도 안 되었다.

        모험가 시절 상대해왔던 놈들은 기본적으로 치사하거나 살상력이 높은 마법만을 사용했었다.

        독을 뿌리거나 바닥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등, 학파의 구분 따위는 거의 무의미했다.

       

        “제대로 된 공격마법 하나 없는 주제에 남의 것으로 장난질이나 해대고…… 어차피 그래서는 너도 못 이겨!”

        “제가 왜 못 이겨요?”

        “뭐?”

        “이렇게 하면 되는데.”

       

        자신의 한계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마법사에게 순식간에 다가가 창대로 머리를 콩! 찍어 주었다.

        그가 쓸 수 있는 마법은 전부 한 번씩 파훼해 봤으니 더 이상 간섭기를 연습하는 의미가 없었다.

       

        가볍게 승리를 챙긴 뒤 밖으로 나오자 세라가 커피를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와 아르투르는 내가 말을 높이는 것을 견디지 못해 대미궁에서 나온 이후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대단한데요? 상대방의 마법을 완전히 봉쇄해 버리다니. 뛰어난 해주술사를 만나면 마법사한테는 지옥이겠어요.”

        “그런가? 아직 실패할 때가 더 많아서 잘 모르겠어.”

        “이래 봬도 여긴 미티어 학파의 문하생들만 모인 곳이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실력을 올리신 거에요?”

        “음…… 갤질?”

       

        세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진심이었다.

        나는 평소 갤질을 하는 느낌을 간섭기의 세 가지 기술에 접목시키고 있었다.

        상대방의 마법을 없애는 소마(消魔)는 글삭, 반사하는 역화는(逆化) 고로시, 그리고 개찬(改撰)은 게시글 주작과 비슷한 원리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요령일 뿐, 실력이 오른 진짜 원인은 내게 마법을 내어주기로 약속한 세 사람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도움을 받기 때문이겠지.

        그녀들로부터 술식과 마법을 구성하는 요체들을 쪽쪽 빨아먹을 때마다 머리의 한 구석이 새롭게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수련의 층의 시련에 도전하려면 연습은 게을리 하면 안 되기에 지금도 마리엘을 괴롭히러 갈 참이었다.

        강의가 있는 비나나 정보부 일로 바쁜 시엔과 다르게 제일 한가한 게 그녀였으니까.

       

        “아, 맞다. 갤질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요즘 아르투르가 위치노트 중독인 것 같아요.”

        “그래?”

        “네, 저랑 둘이 카페에 갈 때도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있는데 열이 뻗힌다니까요? 딱 지금 클락님 처럼요.”

        “니들이 왜 카페에 같이 가는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학파의 대표끼리 의논할 일이 그리 잦던가?

        미티어 관의 라운지까지 굳이 찾아온 것도 그렇고 자세히 보니 세라가 아르투르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갤러리에 쓴 글을 확인해보니 역시 최근 비밀 게시판에 연애 상담 관련 글을 몇 차례 올린 전적이 있었다.

       

        “혹시 여자친구라도 생긴 건 아니겠죠? 클락 님께는 가끔 연락하는 거 같던데 혹시 알고 계시나요?”

       

        내면의 고닉 ‘프리나나’가 순수한 주딱의 영혼을 밀어내고 ‘역시 저주술사로 전향할까?’라고 속삭였다.

        아까 해주학파를 무시하던 마법사 놈도 그렇고 가문끼리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하려는 년놈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저주 받아 마땅한 인간군상이었다.

       

        허나 누구보다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지닌 나는 심마의 끝에서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았다.

        때마침 신고가 들어온 글 하나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

        [주딱!! 퍼리짤 도배하는 새끼들 좀 어떻게 해봐!]

       

        (링크)

       

        씨이팔 짐승에 꿀벌에 여기가 갤러리지 동물원이냐!?

        심지어 ‘복실이애호가?’ 이거 닉도 낯이 익은데 미티어 학파 그 새끼 아님?

       

        — 어허, 아르투르 님은 ‘강아지사랑꾼’이니 음해하지 말아주세요~

         ㄴ 그리고 아르투르 님께 새끼라는 욕도 하지 말아주세요~

        — 그는 소환학파입니다

         ㄴ 아닙니다, 그는 연금학파입니다

        — 즐기는 모습을 보니 일류 맞네 ㅋㅋㅋ

         ㄴ 아 내 취향이 마탑 전체에 까발려 졌다고 ㅋㅋㅋㅋㅋ

        — 부이이잉…… 우리는 요즘 얌전히 있는 거에요…….

         ㄴ 이이이잉…… 털박이 새끼들은 정도를 모르는 거에요

        ====

       

        “마법으로 고양이 귀라도 만들어서 달아 보든가.”

        “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 정도뿐이었다.

       

       

       

        *

       

        세라와 헤어진 나는 1층으로 내려왔다.

        기숙사 사감 직은 아직도 맡고 있었기에 할 일은 해야 했다.

        다행히 시작의 층을 벗어난 수습생들이 대부분 빠져나가 기숙사는 몇 달 전에 비해 훨씬 한적했다.

        청소와 몇 가지 일을 끝낸 뒤 마리엘에게 가려던 나를 생활부장이 불렀다.

       

        “클락 잠시 이리 와 보거라.”

       

        그가 내게 용건이 있는 경우는 먹을 것을 나누어 주거나 일을 시킬 때 뿐이었다.

        이번에는 후자였는지 스크롤을 찢자 커다란 궤짝을 하늘에서 떨어졌다.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메릴랜드 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안에 든 내용물은 검은 도료로 코팅된 쇠창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하는 인식 저해와 방어 마법이 내장된 물건이라며 그는 이것들을 기숙사 1층에 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정전 이후 생활부에서 기숙사 유지보수를 맡기로 했다. 헌데 그렇다고 노후화된 건물 전체를 다시 세울 순 없잖니? 나름 역사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방범창이라도 달아놓자는 건가요?”

        “다 안전을 위해서지…… 최근 무법자들이 설치고 다닌다는 모양이야. 다른 학파에서도 보안에 좀 더 신경을 쓸 거다.”

       

        ‘무법자’란 수습생을 받지 않는 기간에 탑에 들어와 허가없이 등반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등반 자체는 전지의 비석에 이름만 적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거의 매년 벌어지는 일이었다.

       

        대부분 마탑의 자원이나 학파들이 가진 재산을 탐내는 용병, 또는 질 나쁜 모험가 들이었다.

        머릿수도 많고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실력도 못 되기에 방치해두면 하층에서 끊임없이 사건사고를 일으키곤 했다.

       

        “사흘이면 전부 달 수 있을 것 같네요.”

        “부탁한다. 그럼 나는 다른 기숙사 애들에게도 전해주고 오마.”

       

        우선 사감실 앞으로 궤짝을 옮긴 뒤 검은 쇠창살 하나를 꺼내었다.

        그리고 곧장 마리엘의 방으로 향했다.

       

        어차피 그녀의 방도 1층이니 가는 김에 달면 될 터였다.

        문을 열자 여느 때처럼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금발의 여인이 있었다.

        내게 정체를 들킨 그녀는 이제 갑자기 찾아와도 위치노트를 숨기지 않았다.

        얇은 이불 아래로 드러난 치맛자락이 황금빛 머리카락 만큼이나 돌돌 말려 있다.

        그것마저 잊고 글삭과 민원처리를 하는 걸 보니 숙녀로서는 아니다 싶었지만 파딱으로서는 합격점이었다.

       

        “어서오는 것이에요.”

        “문에 뭣좀 달려고 왔습니다. 겸사겸사 간섭기 연습도 좀 하고요.”

        “멋대로 하는 것이에요. 어차피 싫어도 할 거잖아요?”

        “그럼 실례합니다.”

       

        나는 침대를 밟고 올라가 창문 밖으로 나갔다.

        기존에 있던 방범창을 떼어내고 새로운 녀석으로 교체한 뒤 나사를 조였다.

        불투명해진 창문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자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반발감이 느껴졌다.

        다시 방 안으로 돌아왔을때도 마리엘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엎으려 있었다.

       

        “수련은 잘 하고 계십니까?”

        “마법 세 개 만들어서 쉬는 중인 것이에요.”

        “공부는요? 곧 시험 기간인 거 아시죠?” 

        “저는 천재여서 책상에 앉지 않아도 시험 따윈 문제가 없는 것이에요.”

        “학점 나쁘면 시련에 도전 못 합니다. 나중에 질질 짜면서 도와달라고 하지 말고…….”

        “아 쫌! 관리인이 제 엄마인가요!?”

       

        마리엘의 고개가 홱 돌았다 다시 원위치했다.

        그 와중에도 신고 게시판에 ‘띵동!’이라는 글을 써 알림을 보낸 뒤 곧바로 삭제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벨튀범을 잡아냈다.

        나는 58번째 분탕용 계정을 고이 보내준 뒤, 침대에 걸터앉아 간섭을 시도했다.

        지금 파훼하려고 하는 것은 그녀가 내게 내어준 마법 중 하나인 ‘중첩시전’이었다.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하는 ‘다중영창’과는 달랐다.

        하나의 마법을 ‘스택’으로 저장한 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 다음 마법과 동시에 발사하는 기술.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상대를 당황시킬 뿐만 아니라 동일한 좌표에 마법을 겹쳐 새로운 효과를 유도할 수도 있다.

        이런 걸 단시간에 세 개나 만들다니.

        시간 계열 마법의 사기성과는 별개로, 과연 공부가 필요 없다 말할 정도의 실력은 되는 모양이었다.

       

        “…….”

       

        원소술사인 비나와 달리 마리엘의 마법은 대상이 되는 객체가 없다.

        현상이 이끄는 것은 마법을 시전한 주체인 그녀 자신일 뿐.

        그래서 간섭도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신체가 접촉한 건 아니지만, 침대에 흩어진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귀찮게 걸릴 정도는 되었다.

       

        나는 술식의 가장 중요한 요체를 파헤치고 있었다.

        그녀가 이용하는 신비의 특성상 반드시 해당 마법을 발현하기 위한 ‘원칙’이 필요했다.

        본인 입으로 들으면 간섭하는 의미가 없어지기에 직접 노력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심상 속에서 얽혀있는 금색 실을 쭉 잡아당기거나 닳아버릴 것 같은 자물쇠의 이음새 부분을 반복해서 문질러 봐도 좀처럼 실마리가 안 보였다.

       

        “……읏!”

       

        뒤에서 새어나온 작은 신음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하늘로 솟은 채 휘적거리던 다리 대신 한계까지 오므라든 앙증맞은 발가락이 보였다.

        눈은 여전히 위치노트를 보고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게시글을 삭제하던 손도 어느새 멈추어 있었다.

        그마저도 시간이 더 지나자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허리를 움찔움찔 떨었다.

       

        “괜찮아요?”

        “히꺄악!?”

       

        아무래도 컨디션이 나쁜가 싶어 이불 위를 톡 두드리자 그녀의 몸이 고양이처럼 펄쩍 뛰어 올랐다.

        거친 숨을 내쉬며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은 평소 스스럼없던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래서 해주학파들은 친구가 없는 거구나.

        뒤늦게 거울에 비친 제 표정을 눈치챈 마리엘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최악, 진짜 최악이어요…….”

        “어땠는데요?”

        “읏, 하아…… 집요하게 빨리는, 기분.”

        “네?”

        “됐고! 대 홀크로프트의 적녀인 제가 약점이 잡혀서 노리개가 되다니! 이건 일생 일대의 굴욕이어요!”

       

        일생 일대의 굴욕은 나보다 나이 어린 여자애의 방 청소에 빨래, 가끔 속옷 정리까지 맡는 내가 겪는 중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거나 기운을 차린 마리엘이 또 다시 시끄럽게 입을 놀리기 전에 나는 떠날 준비를 했다.

        이대로면 자기 가문의 위신과 선조의 자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들을 게 뻔했다.

       

        “일곱 살 무렵 프루소냐 대평원의 회전(會戰)에서 망자들의 군대와 맞붙었던 저희 홀크로프트의 은익(銀翼) 기사단이 아직 멀쩡했다면 지금쯤 이런 설욕은 커녕……!”

        “또 이러신다. 좀 있으면 저녁 시간이니 밥 먹을 준비나 하세요.”

       

        쯧쯧, 나도 왕년엔 창좀 쓰는 모험가였다.

        지금 와선 남의 집 방범창이나 달고 있지 않은가.

        본래 세상 일이란 어찌될 지 모르는 법.

       

        그런데 홀크로프트 가문의 찬란했던 과거에 빠져 익사하기 전에 그녀를 구해내려 할 때.

        위치노트를 통해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

        — 마린이141 : 마리엘 님, 혹시 마리엘 레반시아 님 되십니까?

        — 마린이141 : 접니다 더글러스, 은익 기사단의 부단장.

        — 마린이141 : 가신들과 함께 백작가를 재건하느라 마탑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습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

       

        “아아! 더글러스 경만 있었더라면……!”

       

        마리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본 나는 혹시 내가 그녀의 위치노트를 잘못 가져갔나 싶어 다시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유동 아이디인 마린이141이 보낸 메시지는 내 계정으로 온 게 맞았다.

       

        정확히는 그녀를 놀려주기 위해 만들어 최근까지 활발히 활동했던 ‘초전도체은발미소녀’계정.

       연기에 심취해 있던 나를 진짜라고 생각해 접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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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 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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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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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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