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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다들 조용! 불안한 건 알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사건이 많이 터졌으니까.”

       

       

       클레어 선생님이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교실 밖의 경비원들을 바라보았다.

       

       최근 며칠 사이에 갑자기 늘어난 경비원들. 아마 이런저런 사건들이 터져서 높으신 분들이 배치한 거겠지.

       

       그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학생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이 기분 나빴던 걸까?

       

       학생들을 진정시키고는 있었지만, 제일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건 선생님이다. 아마 학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참고 있는 거겠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최근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급증했다. 물론 너희들은 초인이고, 강하다. 하지만 빌런들도 마찬가지로 초인이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으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일반적으로는 클레어 선생님의 말씀이 맞지만, 위버멘쉬의 떨거지들은 총이나 쏘고 다니는 일반인들이다.

       

       아마 환약의 적합도가 낮은 사람들이겠지. 그런 놈들에게 초인들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초인들의 수가 다른 빌런 조직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 가만히 있을까.

       

       

       “그러니 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수업에나 신경 쓰도록 해라. 너희들이 그런 놈들에게 얕보이니까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

       

       “···확실히.”

       

       “범죄자가 될 정도면 별 볼 일 없는 놈들 아닌가? 그런 놈들이 우리를 노려?”

       

       

       학생들의 불만이 순식간에 빌런들에게로 쏠렸다.

       

       이야, 휘어잡는 솜씨가 장난 아니네.

       

       순식간에 학생들의 불안함을 빌런들의 오만함에 대한 분노로 바꿔버리다니. 역시 선생님이다, 이건가.

       

       은근슬쩍 빌런들은 약한데, 너희들이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고 학생들에게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한 달 뒤면 기말고사 시즌이라는 것도 기억해두도록.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지?”

       

       “으엑. 잊고 있었는데.”

       

       “선생님, 떠올리게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학생들의 의욕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솜씨도 장난이 아니었다.

       

       아까의 의욕 넘치던 학생들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다들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거든.

       

       

       “기말고사···. 내용은 뭘까요.”

       

       [으음, 글쎄요? 뭐가 좋을까···.]

       

       

       작가님이 이것저것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작가님을 어르고 달랠 생각이 없었다.

       

       나 몰래 사건 현장에 그림 그려놓기, 갑자기 생겨난 열두 명의 위버멘쉬 간부들. 라이라 퍼리 사건과 아카데미 입학식 날의 마수 습격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여곡절이 엄청나게 많았다.

       

       작가님이 천천히 성장하도록 위험한 일 이외에는 방관해왔지만, 여기서는 조금 선을 넘어보기로 했다.

       

       위험한가? ···아니,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이대로 가다가는 주인공이 잡아야 할 최종 보스가 세계를 멸망시키는 우주 괴물 같은 엄청난 스케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내가 작가님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알아내야 했다.

       

       지금껏 나는 작가님에게 의견을 제시했을 뿐. 내 마음대로 이야기를 주무른 적은 없었지.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언젠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건이 터진다면?

       

       그러다가 약간의 실수로 정말 주인공이 죽어버린다면? 그래서 작가님이 이 세계를 포기해버린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지금, 시도를 해봐야 했다.

       

       작가님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마음을 굳게 먹고 스리슬쩍 자리를 옮겨 아멜리아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아멜리아 양은 알고 계시나요?”

       

       “으, 응···? 아니, 모르는데. 선배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작가님이 설정을 짜두지 않았기에 기말고사 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정해지지 않은 건 적당히 메워지는 세계의 특성상, 아마 매년 바뀐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있겠지.

       

       

       “나도 몰랐는데, 시험 내용은 유출 방지를 위해 매년 바뀐대. 가끔 작년이랑 같은 시험도 나와서 완전 랜덤이라던데.”

       

       

       거봐. 예상했던 그대로, 시험 내용은 완전히 랜덤이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아하하. 제가 소문으로 들은 내용이 있어서요.”

       

       “진짜?!”

       

       “네. 정확하다고 봐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럴 듯 해서. 기말고사는 토너먼트래요.”

       

       “토너먼트?”

       

       “네. 신입생 전원이 하는 토너먼트.”

       

       [?! 도, 독자님! 뭐 하시는 거에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은 작가님이 기겁했다.

       

       그야 그렇지. 이야기의 줄기를 정하는 건 작가님이니까.

       

       하지만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그녀는 이 세상의 이야기를 옮겨적는 사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야기를 바꿔댈 수 있지만, 한계는 있는 법.

       

       인형을 조종하는 인형사도 수억의 인형을 한꺼번에 조종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작가님은 인형극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야만 하니까. 그곳에 틈이 있다.

       

       아마 나도 작가님의 소설 속 주요 인물이겠지. 이렇게까지 주인공 주변에 머물러 있는데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 내가, 메인 히로인으로 추정되는 아멜리아에게 아무런 정보도 없는 이야기를 할 리가 없다. 소설 전개 측면에서 보면 말이야.

       

       아멜리아는 당연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주인공에게 말할 거고.

       

       하지만 내가 말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시험 방식이라면?

       

       이런 건 현실에서는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카더라 소문일 뿐이니까.

       

       하지만 소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시답잖은 이야기도 아니고, 기말고사에 대한 이야기. 전개의 떡밥이다.

       

       아무런 떡밥도 없는 상황에서, 과연 내가 말하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떡밥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아니, 없다. 틀림없어. 독자들은 그 하나뿐인 정보를 믿는다.

       

       기말고사는 토너먼트라는 내용의 떡밥을 받아들인다.

       

       물론 작가님이 소설에 적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내가 아멜리아에게 말해버렸는걸.

       

       주인공과 히로인도 내 말을 어느 정도 믿기 시작할 게 분명했다.

       

       그야, 진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말할 거라고는 보통 생각하지 않잖아? 어디서 정보를 주워 왔겠거니 생각하겠지.

       

       게다가 나는 여태껏 그들과 이런저런 사건을 함께 해결했다. 어느 정도 신뢰성도 있어.

       

       이제 그들은 그 정보를 토대로 움직일 거다.

       

       그들은 정말 토너먼트라고 생각하고 기말고사를 준비할 테지.

       

       만약 작가님이 다른 시험을 들고 온다?

       

       전개가 어그러지겠지. 유시우와 아멜리아는 시험을 토너먼트라고 알고 있을 테니까.

       

       시험의 준비 같은 것도 1대1 위주로 준비할 게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수 토벌 같은 전개? 중요한 히로인과 주인공이 혼란에 빠져버린다.

       

       결국 내가 내뱉은 말 그대로, 작가님은 토너먼트를 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나는 그걸 노리는 거고.

       

       작가님이 이미 일어난 사건은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참고해주세요. ···그럼, 이만.”

       

       “으, 응···. 고마워.”

       

       

       아멜리아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연스럽게 교실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과연 어떻게 될까.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뭐, 토너먼트도 나쁘지 않네요!]

       

       “···그런가요?”

       

       [네에. ···하지만 앞으로 그러시면 안 돼요? 저 화낼 테니까요! 저보고 말하고 행동하라고 하시더니, 독자님이 그러시면 어떡해요!]

       

       “하, 하하···. 그렇죠? 죄송해요.”

       

       

       살았다.

       

       안도감과 실망감에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지금까지 작가님을 어르고 달랜 것과는 달랐다.

       

       작가님에게 잔소리하고, 작가님에게 화를 내고. 그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무례한 행동이었으니까.

       

       이건, 그야말로 작품을 쥐고 흔드는 행동.

       

       작가님이 써 내리는 작품의 전개를 내 입맛대로 흔들어버린 행동이니까.

       

       ···이걸 용서해주다니. 작가님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작가님이 나를 바꿀 수 없는 걸까?

       

       물론 작가님이 화내지 않은 건 좋은 일이지만, 두 번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쉬웠다.

       

       그게 뭐냐고?

       

       ···과연 나는 인간일까, 인형일까. 그 진실을 알고 싶었다.

       

       나는 인간이라고 믿고 있는 인형일까? 아니면 정말 인간일까?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가님이 화내줬으면 했다.

       

       그녀가 내 설정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면, 나도 그저 인형일 뿐일 테니까.

       

       내 기억 속에 나도 모르는 가족과의 추억이 생긴다면. 그랬다면 나도 인형이었을까?

       

       ···이 몸은 만들어진 인형이다. 작가님의 손길로 빚어진 인형이야.

       

       그녀도 말했지 않았던가. 자신이 만든 가슴이라고. 내 가슴을 쳐다보면서 말했었지.

       

       무색무취의 인형이 무대 위로 올라간다면, 당연히 조정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는 설정을 집어넣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변하는 게 아니니까.

       

       그저 비어있는 공간에 무언가를 집어넣었을 뿐. 추억과 기억이 변질되지는 않았다.

       

       인간과 똑 닮은 인형 속에 인간이 들어가 있다면, 그것은 인형일까? 인간일까?

       

       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 인형들처럼 인생이, 인격이 뒤바뀌지 않았다.

       

       라이라처럼 갑자기 열등감을 품지도 않았고, 2,400명에 가까운 빌런들처럼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지도 않았어.

       

       그저 사소한 배경이 채워졌을 뿐.

       

       

       “작가님. 작가님은 인간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 뜬금없는 질문을 하시네요.]

       

       “빨리요.”

       

       [으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그게 인간인지 아닌지 판가름한다고 봐요.”

       

       [자유의지?]

       

       “네.”

       

       

       만약 세상이 전지전능한 신의 손에 움직인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신이 원하는 대로 죽는다면.

       

       ···과연 그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 아니지.

       

       그건 인형이랑 다를 바가 없어. 운명이라는 실에 묶인, 불쌍한 인형.

       

       자신이 진정 원하는 행동이라고 믿지만, 결국 운명이라는 실에 조종당한다는 사실마저 눈치채지 못하는 불쌍한 인형.

       

       나와는 달라.

       

       그녀의 의견을 반대하고, 그녀와 교류하며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넣은 글귀 하나에 인생이 변한다.

       

       운명이 변한다. 생각이 바뀐다.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은, 인형과 다를 바 없죠.”

       

       [···그런가요?]

       

       “그렇답니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 작가님에게 보이도록 싱긋 웃었다.

       

       이 세상에 인간은 나와 작가님밖에 없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작가님에게 나를 바꿀 수 있냐고 물어봤다가, 가능하다는 대답을 듣는다면.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음, 오늘따라 독백이 좀 많네요.

    제가 봐도 조금 헷갈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세상을 개변할 수 있는 신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여러분들은 그 세계가 가짜라고 생각하시나요? 진짜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들의 생각에 따라, 아르테가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정해지겠네요!

    ···과연 아르테의 정신은 작가님의 설정 추가에 영향을 받을지, 받지 않을지.

    그녀는 인간일지, 아니면 인간이라고 믿는 인형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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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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