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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안녕하세요, 사제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힌드라스타를 어깨에 얹고 의무소에 찾아가지 마야 사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특기생 선발 지원자인데요. 배가 아프다고 해서요.”

       “이쪽으로 눕히십시오.”

       

       힌드라스타를 침상에 눕히니 마야 사제가 신성치료를 시작했다.

       

       황금빛 신성력이 복부를 감싸자 힌드라스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으윽….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분명 혼자였는데….”

       “애초에 그때 둘이서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꼈냐? 그런 인간이 혼자 있으면 뭐 다를 것 같아?”

       “젠장할….”

       

       질끈 감은 힌드라스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날 그렇게 만든 복수를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당했어….”

       “그러니까 내가 분명히 경고했잖아.”

       “지랄 진짜….”

       

       마야 사제가 책상으로 돌아가자 나는 힌드라스타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제 너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뭔데….”

       “첫 번째는 이번에도 말썽을 부렸으니 노랑대가리랑 나랑 같이 삼자대면하기.”

       “히익!? 싫어! 그건 죽어도 싫어!!”

       

       힌드라스타가 난리를 치자 침상 다리가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삐걱거렸다.

       

       “진정해. 선택지가 두 가지라고 했잖아.”

       “두 번째는 뭔데, 그럼.”

       “두 번째는 여기 아카데미생이 되는 거다.”

       “뭐?”

       

       힌드라스타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더러 뭘 어쩌라고?”

       “너, 선발에 지원한 제노비 상단의 딸을 밀착경호하려고 지원자 행세를 하며 여기까지 들어온 거 아니냐?”

       “맞아.”

       “지금 너는 지원자들 중에 성적이 가장 좋아. 이대로만 하면 너는 특기생으로 선발되어 아카데미에 다닐 수 있어. 그렇게 하라는 거다. 지난 과거는 모두 지우고.”

       “뭐? 지우라고?”

       

       힌드라스타가 꽥 소리쳤다.

       

       “절대 못 지워! 그 치욕을 나더러 잊으라는 거냐! 아야야….”

       

       상체를 벌떡 일으키던 힌드라스타가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았는지 배를 움켜 잡고 신음했다.

       

       “그럼 역시 첫 번째 선택지를….”

       “크아아악! 나쁜 새끼! 으윽, 배아파….”

       “이미 상황파악은 다 했잖아. 너는 절대 우리한테 복수 못해. 그리고.”

       

       힌드라스타가 반박하려는 것을 막으며 계속 말했다.

       

       “그때 우리는 너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어. 네가 인간연합에 준 피해를 생각하면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 누가 들으면 우리 둘이서 멀쩡한 둥지에 침입한 줄 알겠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나더러 아카데미생이 되라고?”

       “그래.”

       “그게 도대체 너한테 어떤 이득이 되는 건데.”

       

       엄청난 이득이지.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보통 인간의 능력을 상회한다.

       

       이런 훌륭한 인재가 우리 아카데미를 졸업한다면 분명 2황녀님께서도 흡족해 하시며 키르린을 계속 교장으로 쓸 것이고.

       

       “선택해. 삼자대면이냐, 아카데미 졸업이냐. 제3의 선택지는 없어. 선택의 거부는 거부한다.”

       “할게! 하면 되잖아! 그까짓 거 해줄게…!”

       

       분노와 수치심 때문인지 비명의 말미에 흐느낌이 섞여 들었다.

       

       “씨발씨발씨발…. 분탕 좀 친 게 뭐가 죄라고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져야 해….”

       

       한없이 즐거워진 나와 달리 힌드라스타는 눈물을 후두둑 흘리며 엉엉 흐느꼈다.

       

       “대체 내 용생은 왜 이렇게 꼬인 거냐고….”

       

       

       # # # # #

       

       

       아주 먼 옛날.

       

       어느 깊은 산골짜기에 막 독립한 어린 드래곤 힌드라스타가 살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삐죽삐죽한 바위봉우리에 멍청한 트롤이나 오거 따위라 힌드라스타는 굉장히 심심했다.

       

       이런 삶을 수만 년 살아야 한다니, 뭔가 좀 재미난 일이 없을까.

       

       그렇게 고민하며 빈둥거리고 때 누군가 힌드라스타의 둥지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인간인 줄 알았으나 인간과 다르게 그들의 머리에는 산양의 것과 비슷한 뿔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들을 마족이라 소개하며 불세출의 영웅 마왕님을 중심으로 떨치고 일어나 인간들이 부당점거한 대륙을 탈환하는 성스러운 전쟁을 수행중이라고 했다.

       

       [전쟁이 뭔데?]

       “수많은 사람들이 편을 나눠 싸우는 것입니다.”

       [호오, 그래…?]

       

       그 말에 호기심이 동한 힌드라스타가 꼬리 끝으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위대한 화이트드래곤 힌드라스타 님!”

       

       마족들이 납작 엎드렸다.

       

       “마왕님께서는 힌드라스타 님께서 협조하실 경우 여러 가지 보상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러며 마족들은 금화며 보물이며 가장 커다란 궁전이며를 줄줄 읊어댔다.

       

       하지만 그건 단명하는 필멸자들이나 관심을 가질 천박한 것. 힌드라스타는 오직 그 ‘전쟁’이라는 것에 꽂힌 상태였다.

       

       그러니까 마족하고 나머지 종족하고 편을 갈라서 싸우는데 거기에 나도 끼라는 거 아냐?

       

       정말 재미있겠는데?

       

       [하겠다.]

       

       그렇게 하여 힌드라스타는 차후 4년전쟁이라 불리게 되는 대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힌드라스타의 합류에 마왕은 뛸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전멸을 안 시키고 돌아오신 것입니까!!”

       

       분명 어느 전장에 가서 인간연합의 군대를 모조리 쓸어버리라고 했건만 빈손으로 돌아온 힌드라스타에게 마왕이 화를 냈다.

       

       [다 죽여 버리면 전쟁이 너무 빨리 끝나잖아. 그건 싫어.]

       “애초에 힌드라스타 님을 모신 것은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빨리 승리하고 대륙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인데!”

       [그럼 그냥 간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후에도 힌드라스타는 마왕군 수뇌부의 명령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큰 전장만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등장에 놀라 자빠지는 군대의 모습에 낄낄댔다.

       

       마족들도 처음에는 힌드라스타가 나타나면 환호하다가 피아식별이 안 되는 ‘드래곤 로어’를 들으면 덩달아 무지성 퇴각.

       

       날개를 촥 펼치고 브레스를 빵 뿜어주면 네 편 내 편 할 것 없이 뒤도 보지 않고 앞다투어 도망가는 꼴이 너무 재미있어.

       

       산골짜기 둥지에서의 지루한 나날과 비교하자면 전쟁은 힌드라스타에게 너무도 강렬한 도파민 자극제였다.

       

       결국 힌드라스타가 ‘분탕’을 위해 전쟁에 참전했을 거라는 제국 첩보부의 분석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

       

       2년이 조금 안 되는 짧은 기간은 힌드라스타 용생 최고의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제국이 어느 특임대에게 힌드라스타 퇴치 명령을 내리는 순간 끝이 나고 말았다.

       

       노랑대가리 라이너스와 더벅머리 디안이라는 최악의 2인특임대.

       

       드래곤은 상당히 고집이 강하고 자신이 꽂히는 분야에서는 강박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인다.

       

       그런데 저 미친 특임대는 그보다 더했다.

       

       분명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오고 설마 여기까지라고 생각한 곳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고.

       

       그러기를 수개월째에 결국 힌드라스타는 무의미한 술래잡기를 관두고 잠시 은신하기로 결정했다.

       

       라이너스와 디안이 야생와이번을 현장에서 강제로 길들여 탑승해 시야 사각으로 파고들어 힌드라스타의 등에 올라 타려고 시도한 직후였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것을 발견한 힌드라스타가 드래곤로어를 지르자 겁을 집어 먹은 와이번이 방향을 틀어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디안이라는 미친놈이 와이번에서 뛰어내려 거꾸로 뒤집어진 채 힌드라스타의 등으로 자유낙하하는 게 아닌가?!

       

       다행히 갑작스러운 돌풍 때문에 그는 힌드라스타의 몸을 빗겨갔고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그러자 라이너스가 와이번을 길들일 때 사용했던 몽둥이로 도망치는 와이번을 마구 때려 억지로 선회시켜 지면 출동 직전에 디안을 받아낸 것.

       

       그것을 본 힌드라스타는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것을 느끼고 마왕에게 말도 없이 상당기간 칩거에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을 은거한 힌드라스타는 또다시 분탕본능이 발동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인간들은 드래곤과 달리 수명이 짧아 망각도 빨리 한다고 하지. 이쯤 됐으니 아마 포기했을 거다.

       

       “야이개씨발 금쪽 같은 도마뱀 새끼야!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디서 슬그머니 나타나서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목숨 던져놓고 폭언을 쏟아붓는 마왕의 입을 틀어 막으며 수뇌부 참모들이 힌드라스타에게 새로운 임무를 하달했다.

       

       최근 대패하고 후퇴하는 인간연합의 귀족군 후미를 막아 달라는 것.

       

       그거 재미있겠네.

       

       [하겠다.]

       

       그리고 거기서 힌드라스타는 결국 라이너스와 디안의 매복에 걸려 들어 죽기 직전까지 얻어터지다 필사의 탈출로 구사일생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아직 힌드라스타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미물들의 분쟁에 경거망동 개입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역으로 털리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챈 드래곤 장로들이 그녀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그 벌이란 인간으로 폴리모프시킨 후 절대 본체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제약.

       

       [너는 드래곤의 모습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다! 앞으로 천 년간은 그 모습으로 살며 반성해라!]

       

       그렇게 하여 힌드라스타는 강제로 인간세상으로 추방당했고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무력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그리고 그 바닥에서도 가장 돈을 많이 준다는 레블랑 용병대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용병으로 살면서 힌드라스타는 복수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너스는 이미 대륙의 영웅이 되어 함부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디안이라는 새끼는 죽었는지 어쨌는지 행방이 묘연.

       

       그러다 최근 어느 돈 많은 인간의 딸이 어디 시험을 보러 가는데 지원자 자격으로 따라가서 경호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온 아카데미에서 디안을 마주친 것이다.

       

       인간은 드래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노쇠한다고 하지.

       

       이미 10년이나 지났고 힘 쓸 일 없는 교수나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저놈도 분명 신체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렷다.

       

       게다가 그 노랑대가리 놈도 없는 것이 확실한 판국이라 힌드라스타는 드디어 10년 전의 복수를 하려던 것.

       

       그러나 힌드라스타는 아무리 인간이 드래곤보다 빨리 죽는다고는 하지만 10년만에 급격히 쇠약해 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었다.

       

       디안에게 멱살이 집혀 배에 무릎이 꽂히고 눈앞이 까매지면서 힌드라스타는 자신이 완벽하게 잘못 짚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게 아닌데…. 왜 자꾸 이 새끼랑 엮이면 일이 꼬이는 거야?!

       

       그리고 지금 디안은 그녀에게 아카데미생이 되라고 하고 있다.

       

       이러다, 이러다 영원히 드래곤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말로 인간이 되어버리겠어!

       

       

       # # # # #

       

       

       한편 마야 사제의 환자일지에는.

       

       [디안 교수가 한밤중 배가 아파 실신했다는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여성을 데리고 의무소를 방문함].

       

       [목에는 졸린 흔적이 선명하고 하복부의 멍이 상당히 큼. 격한 충격이 있었으리라 의심됨].

       

       [디안 교수가 환자에게 ‘그때도 둘이서 그렇게 만들었는데 혼자라고 못할 것 뭐있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환자가 ‘이번에도 당했다’고 답변함.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음].

       

       [환자는 ‘절대 못지운다’라고 소리치며 계속 배를 어루만졌으며 디안 교수가 어떤 말을 계속 하자 환자는 울면서 ‘할게. 하면 되잖아’라고 답변. 이후 누워서 한동안 흐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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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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