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

        

       『 오오오오오오오오옴(ॐ)—————– 』

         

       헤드폰에서 들리는 소리는 목소리라기에는 한없이 늘어지고, 소리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뚜렷한 음과 진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한 호흡에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길고 일정하게 퍼져나가며 헤드폰을 끊임없이 진동을 시켰으며, 오직 소리만으로 싸구려 헤드폰을 덜덜 떨리도록 진동시키며 리세의 귀를 움직였다.

         

       귀에서 비롯된 진동은 그대로 뇌를 향해 꽂혔고, 뇌에 다다른 진동은 향의 성분에 의해 취해버린 그녀의 뇌를 자극하며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 * *

         

         

         

       『 ॐ————- 』

         

       리세는 자신이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몸에 느껴지는 부유감은 우주복을 하나도 입지 않고 알몸으로 우주 한복판에 떨어져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고, 태어나기 직전 양수에 휘감겨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 같다고도 느꼈으며, 죽어서 영혼이 빠져나간 채 구름 위를 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육체는 한없이 가벼웠다.

       깃털처럼 몸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고, 중력의 영향에서 한없이 벗어나고 벗어나 공기의 속박에서 벗어나 허공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무감(無感)의 물속을 휘젓는 느낌이 들었고, 등을 움직이자니 몸에 보이지 않는 날개가 몸을 받쳐주며 하늘을 비행하는 듯 한없이 자유롭고 해방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들리는 진동은 그녀의 부유감을 더더욱 가속했다.

         

       길고 긴 진동의 소리.

       심해로 가라앉은 채 밖에서 들리는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면 이런 느낌일까?

       양수 속에서 가라앉은 채 태교로 틀어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그녀는 한없이 편안한, 동시에 무언가 그리운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길고 긴 진동이 끝나고, 다시 진동이 시작되기 전의 짧디짧은 휴지(休止)가 찾아왔을 때 그녀는 살그머니 눈을 떴다.

         

       “히익!”

         

       눈을 뜬 그녀는 눈을 보았다.

         

       눈.

       거대한, 인간으로서는 ‘거대하다’라고 인지하는 정도에서 그칠 정도로 터무니없이 거대한 무언가의 눈이었다. 그것은 빙글빙글 돌면서 구(球) 형태의 몸체 곳곳을 누비고 다녔고, 구체에 새겨진 거대한 줄무늬들은 살아있기라도 한 듯 제각기 곡선이 직선이 되고, 직선이 곡선이 되어가며 계속해서 모습을 바꿨다.

       

       한없이 거대한 것.

         

       동시에 그녀와 똑같은 부유감을 품고 있고, 그녀의 몸보다도 가벼울 것 같은 그것.

       검디검은 공간에 서 있는 그것은 공기도 없이 오직 그 상태에서 홀로 부유하며 거대한 눈으로 세상을 굽어보았고, 입이 없어 오직 진동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참으로 신비로웠다.

         

       그것은 구름이 흩어졌다가 사라지듯 표홀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리세에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검은 공간에 위치한 보이지 않는 것을 타고 또 타고 와 진동의 형태로 리세의 몸에 다가갔다.

         

       『 ॐ————- 』

         

       진동이다.

       거대한 진동.

       리세의 뇌를 울리고, 영혼을 자극하는 진동이다.

         

       리세는 목성의 눈을 마주한 채 계속해서 진동에 끊임없이 몸을, 영혼을 떨었다. 그리고 정신이 눈에 빨려 들어가고 한 점으로 응축되어 그 본질을 꿰뚫었다고 느낄 때.

         

       『 ————-! 』

         

       리세는 진동의 의미를 이해했다.

       육신이 아닌 정신으로, 영혼이 아닌 마음으로.

         

       그렇다.

       오직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그리고 그 뜻을 이해한 그 순간 폭죽처럼 그녀의 눈앞이 터져나갔다.

         

       “아….”

         

       그것은 색채의 폭력이었다.

         

       그녀가 어릴 적에 보았던 기모노 전시장에서 보았던 것보다도 더 곱고 아름다운, 선명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색채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질서정연하게 퍼져나가며 오직 검은 공간뿐이었던 우주를 아름답게 물들였고, 그 색채가 퍼지고 퍼지며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이 되었다.

         

       이것을 무어라 해야 할까?

       우주의 색채라고 해야 할까?

         

       목성 역시 실이 풀리듯 제 몸에 흐르던 줄무늬를 색채에 녹여내었고, 연기가 한숨에 흘러나가듯 뿔뿔이 흩어지며 세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오직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눈.

       빙글빙글 돌고 흐르며 움직이던 눈은 끝까지 리세를 마주 보며 그 고고함을 드러내었고, 이윽고 사방에 퍼진 우주의 색채를 자신의 몸에 빨아들이며 수축, 한없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작아진다.

         

       거대한 별의 눈은 태풍이 되었다.

       태풍은 휘몰아치듯 움직이며 검은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빨아들이는 색채로 사방에 나선형의 빛을 발한다. 빛이 반짝이며 그 최후의 단말마를 외친들 점과 함께 수축하고 한 점으로 응축되는 미래를 피하지 못한다.

         

       작아진다.

       점점, 작아진다.

       태풍은 회오리가 되었다.

       회오리는 공이 되었다.

       공은 구슬이 되었다.

         

       이윽고, 그것은 점이 되었고.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오직 여백으로 표현할 수 있을 세상이 되었다.

         

       『 ——————-! 』

         

       하지만 여백은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점은 오직 지금을 위해서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는 듯 영혼조차 물들일 환한 빛으로 세상을 밝혔다. 폭탄처럼 터져나간 빛은 세상을 빛으로 가득 메웠고, 그것을 뒤따라서 형상을 그려내기 시작하였다.

         

       “뱀?”

         

       뱀이었다.

       무지개로 만들어진 뱀은 소용돌이를 그리며 그녀의 주변을 헤엄쳤고, 점차 속도를 빠르게 해서 이윽고 무지개의 잔상밖에 남지 않는 모습이 되었다. 잔상밖에 남지 않은 무지개는 빛으로 이루어진 무지개처럼 만진다 한들 그 형상을 집을 수 없으며, 손으로 휘젓는다 한들 그 본질을 해치울 수 없으니.

       그 모습이 참으로 신기루와 닮은 모습이었다.

       

       무지개는 세상을 물들이며 곳곳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물감이 하얀 종이에 떨어지며 번져나가며 꽃의 형상을 그리듯, 무지개에서 피어난 제각각의 총천연색의 색채는 꽃을 피우며 시야를 물들였고, 그 형상은 물감을 묻히고 종이를 접어 만든 작품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원을 그리며 눈앞부터 시야를 벗어나는 온 세상을 물들였다.

         

       그리고 피어나는 꽃이 그녀의 귓가에 진동으로 속삭였다.

         

       『 신이란 무엇인가? 』

       『 신앙이란 무엇인가? 』

       『 올바른 믿음이란 무엇인가? 』

       『 맹목적인 것은 항상 옳은 것인가? 』

       『 기존에 모시던 것이 거짓임을 깨닫는다면? 』

       『 의심이란 믿음의 반대에 있는 것인가? 』

       『 의심 끝에 도달한 진실의 가치는? 』

         

       터져 나오는 진동은 질문했다.

         

       그녀의 마음 깊숙이, 떠오르는 무의식에 물었다.

       우주의 색채 속에서 비행하며 존재하는 무의식은 오직 진동에 그 질문에 답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오직 그녀가 배우고 습득했던 것으로만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오직 배우고 습득한 것만을 답할 수 있는 것은 정신으로서 한계를 넘지 못한 자에게 비롯된 너무나 당연한 한계였으니, 어쩔 수 없는 학습의 벽이었다.

         

       그녀는 뒤죽박죽 떠오르는 것을 순서도 없이, 두서도 없이 외쳤다.

         

       그것은 차마 언어가 되지 못한 것이며, 문장도 되지 못하였고, 오직 단어만이 부유한 채 그 뜻으로 꽃을 물들이려 할 뿐이었다. 하지만 꽃은 세상에 부유하는 리세의 의식에 그대로 묻고 또 물으며 전달할 뿐이었다.

       향기가 바라지 않더라도 코에 다가와 그 향긋함을 풍기듯, 꽃의 자극적인 색채가 굳이 보려 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그저 당연하게도 그녀의 귓가에 속삭일 뿐이다.

         

       색채는 흐르고 흐르며 목성의 눈과 같은 형태를 이루었다.

       다만 피어난 꽃은 사라지지 않았고, 세상에 퍼져나간 무지개의 빛깔 역시 사그라지지 않았으니 흐르는 꽃은 리세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제각각의 질문을 던질 뿐이었다.

         

       그것은 수행자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바라마지 않던 문답이 될 것이요, 마음을 수련하는데 중요한 양식이 되는 기연임이 분명했지만, 나이 어린 무녀인 리세에겐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녀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질문에 오직 대답만을 하였다.

       문장이 되지 않으며, 짧게 끊어지며,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

       그 단어들은 쉴 새 없이 그녀의 몸과 함께 부유하며 그 의미가 빛이 되어 섞여들었고, 단어와 단어가 연결되며 문장을 이루는 기적이 종종 일어날 뿐 계속해서 이어지는 속삭임은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빛이 꽃에 다다른 순간.

         

       꽃은 만다라가 되었다.

         

       만다라는 색색으로 피어나며 반복되는 색채로 그녀의 답을 긍정해주었고, 영혼과 정신과 육신을 한데 잇는 거대한 진동으로 그 씨앗을 심어 그녀가 꽃이 되게 해주었다. 그리고 꽃이 되어가는 와중에 번개같이 다가온 하얀 실이 묶이고 묶이며 그녀의 눈앞에 색채를 찢어발기며 무언가를 만들어냈으니.

         

       그 형상은 참으로 기기묘묘한, 하지만 분명하게 거대하고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 깨어나라. 』

         

       그리고, 그녀는 색채의 배웅을 받으며 눈꺼풀을 닫고 어둠에 몸을 던졌다.

         

         

         

        * * *

         

         

       “우, 우우웨엑!”

         

       리세는 깨어났다.

         

       그리고 깨어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울부짖는 것도, 멍하니 여운을 감상하는 것도 아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내는 작업이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는 위장을 쥐어짜서 위액까지 밖으로 내뱉을 기세로 연신 토악질을 해댔고, 그것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진성은 그녀가 토악질을 끝마치자 천천히 다가가 물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리세는 진성을 올려다보며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 별을 보았어요….”

         

       그 대답에 진성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리세와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그것이 바로 네가 모실 신이니라.”

         

       그 말을 들은 리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눈동자는 계속해서 흔들리고, 또 흔들렸으며 그녀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깨어나기 직전 보았던 장엄한 풍경이 계속해서 떠오르는지 중간중간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 부유감 가득한 표정은 점차 혼란 속에서 그 비중을 늘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진성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내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덩그러니 놓여있는 개 모양의 돌덩이에 다가가 그것을 한참이나. 아주 오랫동안 그것을 보고, 또 보았다.

         

       그렇게 신체(神體)가 특이한 돌이 되고, 특이한 돌이 돌덩어리가 되며, 돌덩어리가 무가치한 것으로 변할 때까지 그녀는 물끄러미 그것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윽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진성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공손하게 절을 하며 말했다.

         

       “저에게, 신사에 새로운 신을 내려주십시오.”

         

       그 모습이란 참된 신앙을 가진 이의 모습과 같아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리하겠노라.”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