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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

       백우진이 자신이 아닌 제갈연지의 비무를 보러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신예화는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친 감정을 끌어안은 채 기숙사로 돌아가 베개를 눈물로 적셨다.

         

       평생을 한 몸처럼 살아온 소꿉친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우선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무엇 때문에 그리 서러워 눈물이 났던 건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펑펑 울고 난 이후로 속은 조금 후련해졌지만 여전히 가슴 속에 들어찬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더 복잡해졌을 뿐.

         

       백우진과 백무혁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기가 무척이나 껄끄러워 다음날 맞이한 두 사람을 보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고 말았다.

         

       허나, 목적 없는 도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비무를 끝내고 황급히 돌아가려던 그녀를 백무혁이 잡아챈 것이다.

         

       “오, 오라버니.”

         

       여느 때와 같이 옅은 미소를 띤 채 이쪽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백무혁과 눈을 마주치자 무언가 죄를 지은 듯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백무혁은 그런 그녀를 이끌고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길을 거닐며, 그는 신예화에게 물었다.

         

       “오늘 비무도 잘했다.”

         

       64강 비무에서 보인 그녀의 실력은 출중했다. 어릴 때 울보처럼 굴던 아이가 언제 그렇게 컸는지 세월의 흐름에 새삼 놀랄 정도였다.

         

       “고, 고마워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는 신예화.

         

       백무혁은 혹여 그녀가 도망갈까 꼭 붙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었다.

         

       “옛날 생각이 나더구나.”

       “무슨… 생각이요?”

         

       궁금해진 그녀가 고개를 살포시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내게 찾아와 무공을 알려달라고 조르던 때를 기억하느냐?”

       “네에…? 제, 제가요?”

         

       그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허나, 백무혁은 그때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다짜고짜 연무장에 들이닥쳐서는 무공을 알려달라고 떼를 쓰던 어린아이의 모습을.

         

       “제, 제가 정말 그랬어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백무혁이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왜 무공을 배우고 싶냐 물었더니, 그때 네 대답이 퍽 심금을 울렸기에 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단다.”

       “…제가 뭐라고 했어요?”

         

       백무혁은 아련한 기억을 회상하고 있기라도 한 듯, 하늘에 걸린 달을 올려다보았다.

         

       “우진이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지.”

         

       당시의 백우진은 가문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제멋대로 기대했다가 지쳐 떨어져 나간 이들이 적으로 돌아서서 그 어린아이를 은연중에 핍박하고, 무시하던 때. 백무혁 또한 너무나도 어려 소가주로서의 위엄을 제대로 세우지 못할 때였다.

         

       언제나 백우진과 한 몸처럼 함께였던 신예화는 그 여린 아이가 상처 입는 모습을 무던히도 보았을 터다.

         

       “우진이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혼내주고 싶다고도 했고.”

       “아앗…!”

         

       신예화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렴풋하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의 백우진은 깨지기 쉬운 도자기 같았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 상처 입고, 그 상흔을 지우지 못하고 흉터로 남겼다.

         

       도자기 위로 금이 가듯, 하나둘씩 마음에 그어지는 빗금에 백우진이 나날이 힘을 잃어갈 무렵, 그녀는 결심했다.

         

       자신이 백우진을 지키겠노라고.

         

       ‘맞아, 그랬었지.’

         

       기억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찾아가 매달렸더랬다. 우진이를 지키기 위해 무공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여자의 몸으론 집안의 무공은 무리라며 거절당했다.

         

       그다음으로 찾아간 게 백무혁이었다. 무공을 알려달라고 울고불고 떼를 쓰자 난감해하던 그는 결국 그날부터 조금씩 무공 대신 기초 무예를 알려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먹을 내지르고 발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백무혁은 결심했다.

         

       “나는 그때부터 예화 너 또한 우진이처럼 동생으로 여기기로 했단다.”

       “오라버니….”

         

       동생을 위하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라 생각했을 때 나타난 또 한 명의 우군이었다. 그때부터 백무혁은 신예화를 백우진과 마찬가지로 친동생처럼 여기리라 생각했다.

         

       “혼란스러우냐.”

         

       제 마음을 모조리 꿰뚫고 있기라도 한 듯, 넌지시 건넨 따스한 물음에 신예화는 그때처럼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이 있더구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망각한다.

         

       어머니가 직접 차려주셨던 맛있는 집밥, 오래된 친구와 연인, 매일 같이 사용하는 물건 등.

         

       언제나 곁에 있을 거라 생각하기에 소중한 대상에 미처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다가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고 만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이었음을.

         

       “내가 보기에 꼭 너와 우진이가 그런 사이 같구나.”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 그 사이가 어떠한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조차 않게 되어버린, 알고 지낸 시간이 도리어 독이 되어버린 관계.

         

       “헷갈리지 말거라. 예화 네가 내게 품은 감정은 그리 애틋한 것이 아니다.”

         

       백무혁의 단호한 음성에 신예화가 눈물을 터뜨렸다.

         

       자신의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니다, 라고 반박하기엔 그가 건넨 말을 들을수록 뒤엉켜 있던 감정이 하나둘씩 풀려가고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몹쓸 짓을 저지른 것만 같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백무혁은 그런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눈물을 지워낸 그녀가 아직 가시지 않은 눈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저…, 흐끅! 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유화연, 그 아이 때문에 그러느냐.”

       “네….”

         

       신예화는 비로소 인정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백우진이라는 것을.

         

       그러나, 좋아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그에게는 이미 유화연이라는 약혼녀가 있었다.

         

       과연 그들의 자리에 자신이 끼어들 공간이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백무혁은 그런 신예화의 걱정을 어루만지듯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게다.”

       “네…? 그게 무슨….”

         

       백무혁의 말에 신예화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두 사람이 파혼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더구나.”

         

       신예화는 갑자기 왜, 라고 물으려다 입을 닫았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아침에 기숙사를 나서는 순간부터 들어가는 순간까지 붙어있던 두 사람이 최근 언제 같은 자리에 있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만큼은 확실하지 않느냐.”

         

       네게도 기회가 생겼다는 것 말이다.

         

       백무혁이 웃으며 말하자 조금 진정되었던 신예화의 얼굴이 달아오른 쇠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늦었으니 최대한 빨리 결행에 옮겨야 한다.”

       “그, 그치만 마음의 준비가….”

         

       신예화가 망설이자 백무혁이 그녀의 위기감을 끌어올렸다.

         

       “잊었느냐, 최근 우진이가 누구와 가깝게 지내는지.”

         

       그 말 한마디에 곧장 떠올랐다.

         

       소꿉친구인 자신보다 백우진과 더 가까이 지내는 제갈연지의 존재가.

         

       ‘가식적인 계집애.’

         

       백우진과 함께 있을 땐 세상 순진한 것처럼 굴다가도 제 앞에선 돌변하는 가식적인 여자.

         

       그녀는 분명 백우진을 노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그럴 수는 없어.’

         

       더 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다. 뒤처지고 싶지도 않다.

         

       백무혁의 조언을 새겨들으며 기숙사로 돌아온 신예화는 새벽 내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심했다.

         

       자신도, 백우진도 도망치거나 물러설 수 없는 비무대 위에서 제 마음을 고백하리라고.

         

         

       * * *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무대 위에 백우진과 신예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백 공자! 힘내세요!”

       “이기세요!”

       “신예화! 신예화! 신예화!”

       “소저 나 죽어!”

         

       남녀로 갈라져 펼치는 응원 속 첨예한 대립.

         

       허나, 그러한 구도를 만든 장본인 두 사람은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오로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또 술을 마셨는지 볼과 콧잔등이 불그스름하게 변한 백우진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불퉁한 시선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지난 이틀 동안 멀찍이 서서 째려보다가 금세 시선을 피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벗어나기를 반복했으니.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었다.

         

       “우진아.”

         

       나지막한 음성이 백우진의 귓가에 닿았다.

         

       “왜.”

         

       불만 섞인 음성이 돌아왔다.

         

       “처음 내가 무공을 배우게 된 계기, 기억해?”

         

       눈살을 찌푸린 채 잠시 고민하던 백우진이 이내 답을 내놓았다.

         

       “나 때문이었지.”

         

       정확히는 자신이 아닌 ‘백우진’이지만.

         

       “기억하는구나….”

         

       자신조차 백무혁에게 듣기 전까지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를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기뻐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하지만 부끄러워서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말을 못 하겠어.

         

       그러니까.

         

       “서로 전력을 다해 부딪치면서 대화를 나누지 않을래?”

         

       아무런 생각도 거치지 않고 진심만을 내뱉을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하며, 신예화는 서슬퍼렇게 날이 선 월도를 백우진의 앞에다 겨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정 전에 한 편 더 올라갑니다…!

    연참 가주아아아아아앗!!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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