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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0

       그래, 갑자기 이야기가 너무 빨리 진행된다 했어.

        

       아니, 뭐, 빠르게 진행되는 것까지는 좋다. 이런저런 것을 재면서 시간만 끌 바에는 차라리 조금 빠르게 진행되는 쪽이 속이 편하긴 해.

        

       문제는, 이야기가 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다.

        

       사실 생각해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클레어는 저쪽에서 넘어올 때도 이 장치를 썼으니까. 저쪽 사람을 불러오는 기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기능이 있을 법하긴 했다.

        

       아무튼 여신의 힘을 강탈하려고 만든 장치가 아닌가.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했었고.

        

       “그러니까, 여기는…….”

        

       샤를로트는 방을 한 바퀴 천천히 돌면서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말했다.

        

       “당신이 아제르나에 오기 전에 살던 곳이라는 거군요. 확실히, 여기 있는 물건들을 보니 다른 세상이라는 것이 보이긴 하네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물건들이니까요.”

        

       샤를로트의 시선이 한순간 머물렀던 곳은 클레어의 스마트폰이었다.

        

       참고로 우리는 등에 메고 있던 가방만 내려놓은 상태다. 클레어나 앨리스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은 적응이 되었지만, 샤를로트나 미아 앞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만 보면, 옷을 갈아입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샤를로트와 미아 같았다.

        

       두 사람 다 큰 상처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옷은 우리가 이쪽으로 넘어왔을 때와 비슷하게 거의 걸레짝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나는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혹시 저희가 사라지고 그곳에선 시간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글쎄요.”

        

       샤를로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우리를 보았다.

        

       우리는 당연히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옆구리에 구멍이 난 옷을 입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옷 자체는 혹시 몰라 버리지 않았지만, 솔직히 상태만 보면 앞으로도 입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한 오 분 정도 흘렀을까요. 여러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파악하고 수색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샤를로트의 말에 나, 앨리스, 클레어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네요. 이쪽으로 오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죠?”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

        

       내 말을 들은 샤를로트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눈을 뜨고 미아를 보았다.

        

       참고로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라 나, 클레어,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도 모르겠어요! 저희는 그냥 남아있는 유적을 조사하고 있었을 뿐이니까요!”

        

       자기한테 쏠리는 시선에 미아는 작은 동물이 놀라는 것처럼 기겁해서 외쳤다.

        

       “확실히, 미아와 제가 근처에 있긴 했죠.”

        

       샤를로트가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여신의 힘을 빼앗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를 함께 조사하는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졌네요.”

        

       “…….”

        

       무슨 디●몬이냐고.

        

       “……아무튼, 그래서.”

        

       샤를로트는 손으로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난 몇 주 동안 여기서 계속 지내왔다는 뜻이겠네요.”

        

       “…….”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그 이상의 시간을 저희도 함께 이곳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르고요.”

        

       어…….

        

       그건, 그렇지, 응.

        

       우리가 차마 대답하지 못하자, 샤를로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

        

       그래도 일단 잠은 자야 하지 않겠는가.

        

       급하게 떠날 준비를 하느라 아직 이불을 개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자기 위한 준비를 한 번 더 해야 했을 테니까.

        

       물론 그거랑은 별개로 쌌던 짐을 다시 풀어놓고, 옷도 잠자기 좋은 것으로 갈아입어야 했지만.

        

       샤를로트와 미아도 우리가 입던 옷을 주어서 겨우 갈아입을 수 있었다.

        

       샤를로트의 옷 사이즈는 앨리스와 비슷했고…… 미아는 그나마 비슷한 클레어의 옷을 입었지만, 마치 이제 막 입학하는 아이가 자랄 것을 생각해 몇 치수나 큰 교복을 사준 학부모의 아이처럼 옷이 헐렁하게 축 처졌다.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옷 사러 가야겠네.

        

       아무튼, 매우 어색한 분위기에서 옷을 갈아입고, 우리 다섯 명은 서로를 마주 보고 모여앉았다.

        

       다행히 아직 집의 사이즈는 아슬아슬했다. 솔직히 다섯 명이 함께 지내기에는 아주 비좁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잠은 잘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잠꼬대라도 하면서 몸을 뒤척이면 다섯 명이 한꺼번에 깨게 될지도 모르지만.

        

       사실 덮을 이불도 부족했고.

        

       샤를로트와 미아는 당연히 자려고 준비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쪽으로 넘어왔고, 우리 세 사람은 세 사람대로 잠이 확 날아가 버린 상황이라, 우선은 짧게라도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선 마법이 사용되지 않는다고요?”

        

       마법에 재능이 출중한 미아였기에 그 말을 들으면 낙담하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미아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눈을 빛냈다.

        

       “하지만 저 지보는 여전히 빛이 나는데요?”

        

       그러게.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세상은 마법을 토대로 발전해온 곳은 아닙니다.”

        

       “오…….”

        

       “……그에 대한 것은 내일부터 차근차근 알려드리기로 하죠.”

        

       “왕정국가도 아니란 말이죠.”

        

       “그래.”

        

       샤를로트의 말에는 앨리스가 답했다.

        

       “왕정국가가 없는 건 아니고, 왕가가 없는 세계도 아니지만, 적어도 이 나라는 왕정국가가 아니야. 완전한 공화국인데…… 이것도 내일부터 차근차근 알려줄게.”

        

       본인도 나중에 와서 배운 입장이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모양이었다.

        

       “…….”

        

       그리고 다시 어색한 침묵.

        

       음, 뭐랄까.

        

       다시 만나게 되면 엄청나게 반가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말이 이상하게 되긴 했는데. 반갑긴 반가웠다. 진짜 엄청나게 반갑긴 했다.

        

       반갑긴 한데,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서로 너무 바빠서 카톡만으로 간간이 연락하다가, 최근에는 그 연락조차 닿지 않던 친구가 갑자기 우리 동네에 찾아온다고 해서 신나게 나가 맞이해주었는데, 그 이후에 하는 말이 ‘너희 집에서 잠깐 지내자’라면 매우 당혹스러울 것이다.

        

       내가 아직 어렸던 시절, 그러니까 대학생이나 10대 시절이었다고 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몸이 되어서도 내 영혼은 여전히 나 자신을 30대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 그렇지. 물론 이 둘이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다.

        

       …….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지.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곳에서 시간을 조금 보낸다고 하더라도 저쪽으로 갔을 때 모든 일을 해결하지 못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그건 그렇긴 한데요.”

        

       샤를로트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한 손을 들어 끊었다.

        

       “기왕 오셨으니 편하게 지내다가 가도록 하시죠.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되돌릴 수 없고, 지보의 상황을 보니 한동안은 돌아갈 방법도 없어 보이니까요.”

        

       “미안, 언니…….”

        

       “괜찮습니다. 클레어 탓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여신 탓이지.

        

       애초에 정말로 클레어 탓에 지보가 샤를로트와 미아를 이쪽으로 끌고 오게 된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여신이 나를 엿먹이겠다고 몸부림치다가 반대로 이 둘을 보내게 되었을지 모른다.

        

       여신과 대화할 수단이 없으니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집은 조금 좁습니다만, 여기서 지내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보이긴 하네요.”

        

       샤를로트가 한숨을 꾹 참는 표정으로 앨리스를 보았다.

        

       실제로 앨리스는 이쪽에 오고 나서 사람이 확 밝아졌다. 단순히 성격이 밝아진 것뿐만이 아니라, 피부라든가 머릿결이라든가, 안 그래도 좋았던 부분이 한층 더 건강해졌다.

        

       이쪽 세상의 세안제나 샴푸 같은 것들이 아제르나의 것보다 훨씬 발전한 것도 있지만, 클레어의 상태는 아주 미묘하게 바뀐 것에 비해 앨리스의 상태가 너무 확실하게 바뀐 것을 보면 아마 그런 상태 변화에 가장 많이 관여된 사안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특히 샤를로트의 눈으로는 고작 5분 전에 봤던 앨리스와 지금의 앨리스의 상태가 더 확실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샤를로트의 시선을 받은 앨리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래, 맞아! 이쪽에서도 즐길만한 것은 많으니까!”

        

       “아뇨, 지금 즐기고 있을 상황이—”

        

       클레어의 말에 샤를로트가 딴지를 거는데,

        

       꼬르륵.

        

       “…….”

        

       다른 사람의 말도 아닌, 누군가의 뱃속에서 난 소리가 그 딴지를 중간에 끊어버렸다.

        

       “……으으.”

        

       그 소리를 따라 방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미아에게 몰리자, 미아의 얼굴이 천천히 달아올랐다.

        

       음.

        

       최종전 직후라면 배가 고플지도 모르지.

        

       미아는 몸집에 비해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먹는 편이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엌 찬장에 아직 먹을 것이 꽤 남아있을 거다. 내가 자주 먹는 매운 인스턴트 식품을 제외하면…… 크림 파스타 밀키트가 있었을 텐데.

        

       “뭔가 먹을 걸 내오도록 하죠.”

        

       “아, 아뇨……!”

        

       “좋아, 나도 도울게.”

        

       “언니, 나는 도울 거 없어?”

        

       아니, 그냥 밀키트 뜯어다 만들면 되는데 도울 게 뭐 있어.

        

       ……얘네들도 지금 저 둘이랑 있으면 어색할 거라는 걸 확실하게 아는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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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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