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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0

     그렇게 리브의 안내를 받으며 나아간 철창 반대편에는, 루크가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 커다란 문이 있었다.

     

    문을 넘어서 비밀문을 찾고, 계단을 내려와서 또 문이라니.

    이제는 질릴 법도 한 상황이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엔 그 문의 정체가 꽤나 명료했다.

     

    ‘엘리베이터’

     

    이전과는 달리 이 문에 얽힌 기술은 현대 마법적인 회로로 이루어진 구조였기 때문에, 마력시가 아주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었다.

     

    만약 마력시로 읽히는 정보가 틀리지 않았다면, 이것은 아마 외부와 연결 된 엘리베이터일 것이다.

     

    그 사실에, 루크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허무하군.”

     

    하긴, 이토록 넓은 시설인데 출입구가 비밀통로를 통한 길 하나밖에 없을리가 없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넓은 시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고,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뜻은 즉, 많은 인원이 출입하는 것이 용이해야 한다는 뜻이 되므로.

     

    “지금껏 내가 보아온 엘리베이터 중에서는 가장 크구나. 화물용이려나? 마력도 끊어져 있구나. 이대로는 작동 하지 않겠어.”

     

    루크는 지나쳐온 빈 철창들을 떠올렸다.

    이미 그 철창 내부에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으니,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겠지.

     

    “혹시, 이것이 그대가 말한 특이한 점의 전부인가?”

    “…….”

     

    리브는 루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리브의 끄덕임에 루크는 다시 한번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별다른 단서는 찾지 못 한거 같군. 이들은 단 하루만에 많은 걸 정리한 모양이다.’

     

    너무 늦었다.

    고든을 치료하고 난 뒤에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던 탓에 시간을 끈 것이 원인.

    무리를 해서라도 사정을 먼저 청취했어야 했다.

     

    “…….”

     

    뭐, 과연 ‘그 상태’였던 자신이 예르나가 하는 말에 바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는 의문이긴 하다만.

     

    “뭐, 어쩔 수 없지. 돌아가자꾸나. 그나마 돌아가는 길은 다시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어서 좋군.”

     

    루크는 이번에는 체념하기로 하고, 엘리베이터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루크가 그렇게 마력을 불어넣음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여는 버튼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역시 마력만 끊어 놓은 것인지 이후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엘리베이터였다.

    이후 그것을 향해 루크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 커다란 문이 ‘띵’ 하는 특유의 알림음과 함께 천천히 열린다.

     

    “타자꾸나, 리브.”

    “…….”

     

    리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

     

    -우웅–.

     

    그렇게 루크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느낌을 받으며 기다렸다.

    아무래도 대형 화물의 운송용으로 튼튼함과 안정성을 중시하여 특별하게 만들어진 탓인지, 일반적인 엘리베이터의 속도보다 훨씬 느린 것 같았다.

     

    루크는 엘리베이터의 벽면을 손으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정말로 튼튼하고 넓은 엘리베이터다. 이 정도로 넓다면, 아직 어린 드래곤도 들어갈 수 있겠어.”

     

    마력이 끊어진 상태일 때는 작동하지 않던 각종 현대식 보호마법진들, 아까 보았던 철장 정도로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여전히 강력한 방호력이다.

    때문에 이 엘베이터가 마치 이동식 쉘터처럼 느껴지기도 할 정도.

     

    이내 루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토록 넓고 튼튼하게 지어진 이동식 플랫폼이 있다는 건, 적어도 그 철창 안에 있던 존재를 옮기기 위해서는 이만한 준비가 필요했다는 것이리라.

     

    ‘정말로 이들은 지하에서 뭘 키우고 있었던 걸까? 오우거? 사이클롭스? 그도 아니면…….’

     

    정말로 드래곤이라도 키우고 있었던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꽤 두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의 멸종사실을 몰랐다면 고려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럴 일은 없다.

    세계수의 문에는 확실히 드래곤의 문양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드래곤은 확실히 멸종했다.

    적어도, ‘일반적인 생물’ 로서의 드래곤은 말이다.

     

    ‘뭐, 흑마법사와 관련된 곳이니까 본 드래곤일 가능성도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정말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본 드래곤이 흘리는 사령술의 냄새를 자신이 맡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럼 대체 무엇이 이 시설의 ‘주요 화물’이었길래 이토록 튼튼한 방벽들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루크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음?”

     

    그것은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구석에 대충 버려진 작은 쓰레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단순한 쓰레기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특이하다.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와 두께는 될까 싶은 크기의 작은 원통형 물체.

    어떤 물건에서 빠져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확실한 단서가 될 터.

     

    루크는 곧 그것을 집어들어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주물거리며 그 구조를 조심스레 확인해보자면, 테두리에 정밀한 홈이 파여진 것과, 무언가가 맞물려서 작동되는 것으로 보이는 설계로 미루어보면, 아무래도 어떤 물건에 장착하거나 하여 사용되는 듯하다.

     

    ‘들어있던 것은 일종의 약품인가? 하지만 성분표시는 내가 알아볼 수 없고…….’

     

    “……읏!”

     

    이리저리 그 물체를 살피던 루크는 돌연 느껴지는 불쾌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 물체의 뒷편에, 무언가 검고 물컹거리는 느낌의 점액질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으, 더러운 것이 손에 묻었군.”

     

    루크는 불쾌한 느낌을 숨기지 않고 손을 눈에서 멀리 떼었다.

    예르나에게 손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래서야 맹세를 어긴 셈이다.

    물론 ‘그런 의미로 한 약속’이 아니라는 것 쯤은 서로 이해하고 있었으니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냥 손에 더러운 것이 묻어 불쾌할 뿐.

     

    하지만, 어딘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다시 손가락을 눈가에 가져온다.

     

    “이건, 어떤 생물의 피나 침 같은 건 아니로군……. 슬라임인가?”

     

    아니,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건 슬라임은 아니었다.

    슬라임의 신체에 얽힌 마력패턴은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때문에 루크는 마력시에 읽히는 정보로 그것은 슬라임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감촉 말고도 무언가 확실히 불쾌한 느낌이 든다.

    이는 마치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는 듯 한…….

     

    그 순간, 루크의 머릿속에서 그 느낌과 정확히 매칭되는 기억이 퍼뜩 떠오른다.

     

    흑마법사, 리치.

     

    그 녀석의 시체가 녹아내리던 것이, 정확히 이것과 동일한 느낌이었지 않은가?

     

    이미 리치의 시체를 얻어 그것의 연구를 한창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그의 몸 대부분을 이루던 물질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것은 결국 밝혀낼 수 없었다.

    그 전에 이미 신성력에 닿아 상당부분 부패하기도 했고, 그 소재를 감싼 흑마법이 너무 짙어서 알아낼 수 없었다고 할까.

    하지만, 이 물질은 조금 다르다.

    흑마법보다는 조금 더 생물적인 조합.

    따라서, 루크는 이것의 정체를 마침내 특정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 루크는 그 즉시 여태껏 보았던 단서들이 머릿속에서 재조립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던 리치, 이 몸과 닮은 뿔 달린 고양이, 숨겨진 창고, 쌍둥이처럼 한 쌍을 이루던 재료들, 집착적인 밀폐시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철창 내부의 흔적과 규모……. 과연, 그런 거였어!’

     

    기존에 떠올릴 수 없던 단 하나의 전제만으로, 개별적인 사건들이 모조리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고 하면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어쩌면 이들이 가진 목적까지도!

     

     

    루크가 그것을 깨달은 순간…….

     

    -철컹.

     

    돌연,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췄다.

     

    또 마력이 차단된 것인가?

    아니, 마력은 아직 공급되고 있으므로 그건 아니다.

     

    다만 이 엘리베이터 자체가 어떤 물체에 가로막힌 것 같다.

     

    그리고 잠시 후.

     

    -푸쉬익-!

     

    천장을 통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체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한다.

     

    “음?”

     

    순식간에 자신을 둘러싼 그 짙은 안개에, 루크는 순간적으로 의문을 표했다.

    이건, 설마 함정인가?

     

    ‘이건, 강력한 마취성분이 포함된 기체로군.’

     

    미약한 향으로 그것의 성분을 알아챈 루크는 그 즉시 숨을 멈추었다.

     

    ‘칫, 처음부터 이런 설계였나.’

     

    마력시만으로는 전혀 이상한 낌새를 읽을 수 없었는데, 아마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넓다고 하여 무심코 안심했던 건가?

    설마, 아까 그 약품 카트리지에 담긴 것이 이 가스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있지.’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웬만한 독은 불사자인 자신에게 살상효과로의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그 독이 신체에 일으키는 영향을 받는 것은 루크도 동일하다.

    ‘죽지 않음’이라는 것은, 모든 약품의 작용기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는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다만, 내장이 전부 녹아버리는 치명적인 극독을 먹더라도, 심장이 꿰뚫려 멎어버리더라도, 목이 잘려 나가더라도 절대로 죽지 않을 뿐이다.

    불사자도 일단은 현실의 법칙을 따르는 물질로 이뤄진 생물인 이상, 무력화는 가능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독을 마시면 고통을 느낄 것이며, 수면제를 마시면 잠에 빠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몸에 이로운 포션이나 영약의 효과도 일절 받지 않는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인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각종 작용의 영향도 받지 않으니 신체의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이런 곳에서 마취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앞으로의 상황에서 굉장히 치명적일 거라는 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루크에게는 그런 곤경에 처할 생각이 단 하나도 없었다.

     

    ‘마력은, 이 가스가 차단하는 것 같군, 방해야.’

     

    루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이 시대에는 이런 물건도 있었는가? 정말로 귀찮다.

    안개 속이, 마치 마계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오랜만이군, 이런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은 루크에게 더 깊은 심증을 갖게 했다.

    뭐, 사실 그 마계에서 마법을 사용하던 기억도 있는 루크는 이런 것의 영향을 받아도 마법을 쓰려면 못 쓸 것도 없지마는, 아무래도 그 때와는 달리 화력 조절에 자신이 없다.

    마계를 모험하던 그 때의 상황과, 지금 자신의 상황은 그 능력과 서클에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으므로.

     

    그리고, 루크에겐 이미 가스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는 수단이 있지 않은가.

     

    “리브.”

    “……?”

     

    루크는 정면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이 연기를 걷어낼 마지막 검격을 부탁하지.”

    “…….”

    리브는 루크의 명령에 따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가 알아챈 것은 과연?
    빠밤 빠밤, 다음편에 밝혀집니다!

    …라고는 하지만, 이거 너무 길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제 생각으로는 일단 이 에피소드는 길어도 다다음편 안에 끝날 것 같은데요.
    맘 같아서는 저도 솔직히 빨리 끝내고 싶은데, 이런 떡밥들이 없으면 안될 거 같아서요… ㅠㅠ 어쩔 수 없어…

    내용이 설명으로 가득한 대신 그만큼 루크를 굉장히 열심히 그렸으니까 봐주시기 바랍니다.

    ps. 그리고 마지막 삽화에서 리브가 취한 자세의 의미를 아시는 분은… 네, 아재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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