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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0

        

         

       천황은 크게 소리쳐서 사람을 불렀다.

         

       벨을 눌러도 되고, 조곤조곤 말해도 대기하고 있던 이가 알아먹을 터였지만 천황은 굳이 소리를 크게 내질렀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음속 깊은 곳부터 끓어오르는 심화를 도저히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심화(心火).

       마음의 불꽃.

         

       그는 지금 분노하고 있었다.

         

       그의 분노 섞인 외침에 사람이 곧바로 그의 앞에 나타났고, 천황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본 천지가 참으로 복잡하고 괴기하다. 얼마 전 기괴한 일이 있어 짐에게 이리 자비를 구걸하는 글이 왔으니, 내 옥음으로 칙명을 내리건대 마땅히 너는 충성스러운 황국신민들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이니라.”

         

       즉, 짧게 말하자면 ‘내가 일하려고 하는데 쓸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다.’라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천황이라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통보나 다름이 없었고, 그의 말을 듣는 궁내청 직원은 저 황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원론적으로는 말이다.

         

       “일본 천하에 뛰어난 무인이 있으니, 그들에게 연락해보도록 하라.”

         

       황제의 말은 그 무엇보다 무겁고 우선시되는 것.

       천황은 일본의 적법한 황제이자 만세일계의 핏줄에서 나오는 위엄으로 그리 말하였다.

         

       무인을 데리고 오라.

       일본 제일 무사든, 제이무사든.

       일본 천지에 명성을 떨치는 무인을 자신의 앞으로 데리고 와라.

         

       궁내청 직원은 이러한 황제의 분부에 알겠다고 답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의 얼굴엔 귀찮음과 짜증이 묻어 있었다.

         

         

         

        * * *

       

         

         

       무인이란 무엇인가?

         

       이 짧은 질문은 수많은 무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의문이며, 그들이 죽음을 앞두고서도 답을 내기 힘든 난제였다.

         

       이러한 난제에 어떤 무인은 이렇게 말했다.

         

       무인이라는 존재는 무(武)에 세월을 기꺼이 바치는 이들이다.

       쇠를 두들기는 것처럼 몸을 혹사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고, 사람을 죽이고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한 행위를 계속해서 궁리하고 또 궁리하며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몸과 성취로 사람을 베는 것에 주저함이 없으며, 피 냄새에 익숙해지며 살인귀로 완성되어간다.

         

       그들의 삶은 칼과 같다.

         

       한낱 쇳덩어리를 두들겨서 형태를 만들고, 날을 세우고, 사람을 베고.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베고 또 베다 보면 칼에 요기(妖氣)가 감돌게 되는 법.

         

       그렇게 요기를 품은 칼이 바로 경지를 넘은 이들이다.

         

       요기를 품은 칼.

       요도(妖刀).

         

       인간이라기에는 날붙이에 가깝고, 한낱 날붙이라기에는 요괴에 가까운 것.

       그것이 바로 무인이며, 무인의 인생이다.

         

       그리고 그 무인은 자신의 대답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왔다.

       검에 홀려버린 검귀(劍鬼)처럼 오직 칼에만 집착하며 살아왔고, 결코 사리사욕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무공을 수련하는 데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가족조차도 만들지 않았고, 오직 검을 휘두르고 사람을 죽이는 것만을 반복하며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그의 이름은 와쿠시마 소타로(涌嶋蒼太朗).

         

       다른 이들이 그의 앞에 붙이는 호칭은 바로 ‘일본제일무사’였다.

         

       일본제일무사 와쿠시마 소타로.

         

       그는 일본인의 자긍심이자 자부심이며, 일본의 수호신이라 여겨지는 존재였다.

         

       “흐음. 편지라? 내가 한창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 텐데…?”

         

       그는 맹수 같은 눈을 번뜩이며 자신에게 온 편지를 집어 들었다.

       두 눈동자에서는 맹수가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도깨비불이 타오르며 어두컴컴한 도장 안을 밝혀주고 있었고, 나이를 꽤 먹었음에도 4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에서는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소타로는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는데, 그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살기가 넘실거리며 편지를 가지고 온 전령에게 살을 하나하나 얇게 포를 뜨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 시퍼렇게 불타는 눈에, 바위로 조각한 게 아닐까 싶은 굳은살 가득한 손이라니!

         

       “펴, 펴, 편지를 읽어보십시오! 천황폐하의 교지입니다!”

         

       소타로는 입을 다물고 전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말이다.

         

       하지만 전령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편지를 보낸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을.

         

       소타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전령을 한 번 쏘아보고 편지를 꺼냈다.

         

       그가 편지를 열어보자 보인 것은 붓으로 써 내린 글자들.

       옛날에 두루마리에 편지를 쓰는 것처럼 세로로 적혀 있었고, 어려운 한자들이 서체로 적혀있어 제대로 읽어내리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중세에나 썼을 법한 궁중 언어에, 고급어휘가 어찌나 많은지 이것은 편지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해독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질 정도였다.

         

       편지를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타로는 무인이었으며 배움에 취미가 없다는 사실은 일본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이 편지는 그런 소타로에 대한 배려는커녕 ‘내가 이렇게 어려운 말들을 쓸 줄 안다.’라면서 자랑하듯 어려운 표현들이 한가득 존재했다.

         

       단순히 어렵기만 한 표현?

       차라리 그것만 있으면 다행이다.

       알아먹지도 못할 비유에, 자기들끼리 사용하는 것인지 모르는 이상한 단어들까지.

       잠깐 훑어보기만 해도 짜증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참 쓸데없이 길게도 써놨군.”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대부분이 그냥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편지에는 그냥 가볍게 한두 줄이면 될법한 내용이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고 비비 꼬여서 여러 장으로 늘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대충 훑어보면 편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알아내는 것은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일본제일무사이자 수호검인 소타로에게 시킬 일이 있으니 황궁으로 오라…. 이렇게 짧은 내용을 길게 늘이는 것도 참 대단하군.”

         

       소타로는 편지를 그대로 바닥에 휙 던져버렸다.

         

       참으로 불경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전령은 감히 천황의 편지를 막 다루는 소타로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타로가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저것을 보고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천황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궁내청에서 일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공무원이었으니까.

         

       “지금 수련이 바빠 못 간다고 전하게.”

         

       소타로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다.

         

       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것을 직접 찾아가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전령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하지만 소타로는 이러한 자기 행동이 불경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자신을 방해한 천황이 무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武)를 갈고닦는 것만 해도 바쁘다.’

         

       지금 그는 수련하고 있었다.

       다음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수련을 말이다.

         

       그런데 그 수련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시킬 일이 있다면서 사람을 보낸다고?

         

       무례하다.

       아주, 무례하다.

         

       만약 편지를 보낸 것이 천황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당장 찾아가서 머리통을 붙잡고 살기를 불어넣어서 정신을 놓아버리게 했을지도 몰랐으리라.

         

       이건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경이며, 자비였다.

         

       소타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소타로는 아주 자비롭게 자신에게 온 전령을 물렸다. 그리고 잠시나마 끓어오른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눈을 감고 명상했고, 마음이 잔잔한 물결이 이는 호수처럼 평화로워지자 다시 칼을 잡았다.

         

       그리고 칼을 잡은 채로 그대로 자세를 유지한 채,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온 왼발은 정면을 바라보도록, 뒤로 빠진 발은 언제든 탄력 있게 튀어 오르며 그를 어느 방향이든 나아가게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의 몸은 살짝 비틀려서 급소를 가리는 형태가 되었고, 허리에는 적당한 힘이 주어져 언제든 곡선을 그리며 검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칼이 단단하게 쥐어졌으며, 검은 누군가를 토막을 내려는 듯 머리 위에서 시퍼렇게 날을 빛내고 있었다. 칼날은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시퍼런 귀화를 받으면서 타올랐고,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스멀스멀 요기가 피어오르며 무언가를 베기 위한 섬찟한 기운을 뿜어내었다.

         

       소타로는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천천히 말이다.

       마치 석상이 세월에 기울어가는 것처럼 그의 검 역시 엄청나게 느릿한 속도로, 메두사의 눈과 마주쳐서 돌로 변해가는 무인이 검을 휘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적으로.

         

       소타로는 그렇게 둔검(鈍劍)의 묘리를 알아내기 위한 수련을 계속했다.

         

       강함을 위해서.

       무를 탐닉하기 위해서.

       저 너머에 위치하는 경지를 위해서.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말이다.

         

       그는 무인(武人)이며, 요도(妖刀)였다.

         

         

         

        * * *

         

         

       일본제일무사는 단호하게 천황의 부탁을 거절했다.

       거절한 이유는 아주 단순한 것.

       수련에 방해가 되니까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참으로 다행히도, 천황은 소타로 한 사람에게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일본제이무사.

       랭킹 2위의 무인, 참마거룡(斬魔巨龍)의 카즈오(計夫)에게도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금은 힘들다고 전해주게.”

         

       카즈오 역시 단호하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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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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