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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0

       “시작은 가볍게 하지.”

       

       바루가 지팡이를 휘젓자 그녀의 뒤편에 물로 이루어진 채찍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은 날카롭지 않다. 단단하지도 않다.

       

       허나 묵직하고 재빠를 수는 있다.

       

       그렇기에 물을 이용하여 창이나 검을 만드는 것보다는 채찍이나 수구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다.

       

       채찍이 형성된 걸 확인한 바루가 다시금 세상에 그림을 그리니 채찍이 자신의 의지를 지니고서 앞을 향해 휘둘러진다.

       

       상대는 그를 보고서 다급히 움직이지 않는다. 채찍의 움직임을 끝까지 바라본 후에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경로를 택하여 발을 옮길 뿐.

       

       파앙! 상대가 한 걸음 물러나기 무섭게 그 위에 채찍이 내리쳐진다.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호수의 물이 비산하고, 그 너머로 보이는 상대의 눈동자엔 당혹이 서려 있다.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이다. 충분한 질량과 속도를 지닌 물은 그 자체로 흉기. 저기에 얻어맞는다면 그 어떤 생물도 멀쩡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게 가벼운 겁니까?!”

       “그럼 가볍지. 그대도 손쉽게 피해보이지 않았나.”

       “아니.”

       

       당혹이 서린 상대가 무어라 중얼거리건 말건 바루는 또 다시 세상에 그림을 그렸다.

       

       아라에게서 배움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가 크게 틀리진 않은 모양이야. 자신의 보법을 활용하여 저 채찍을 손쉽게 피해 보이다니.

       

       여태까지 상대했던 녀석들과는 다르군. 가볍게 사용한 도술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박살나는 녀석들뿐이었는데 이 녀석은 제대로 대응을 해보였지 않나.

       

       그러니 조금 진심을 담아 보자꾸나. 바루의 그림이 세상에 새겨지기 무섭게 그녀의 주변에 방금 전과 같은 채찍 몇 개가 생겨났다.

       

       그들은 저 마다의 의지를 가진 듯 넘실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계속해보자꾸나.”

       

       *

       

       오른쪽이 먼저. 그 다음이 왼쪽.

       

       그러니까 한 걸음 물러나는 척 페이크를 주고 보법으로 거리를 좁히면…

       

       젠장! 저기 발목을 붙잡으려는 녀석이 먼저였어!

       

       뛰어오르는 것으로 채찍을 피해낸 데케이는 허공에서 다시금 뛰어 올라 연이어지는 공격을 피한 후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크게 거리가 벌려진 탓일까. 채찍은 그 이상 데케이를 추적하지 않고 바루 컨셉 유저의 근처를 지키며 경계를 유지했다.

       

       끝까지 니가와 플레이를 하는 거야!?

       

       더럽다! 더러워!

       

       데케이가 속으로 극찬을 내뱉고 있으려니 바루 컨셉 유저가 보란 듯 하품을 내쉬고는 물음을 던졌다.

       

       “언제까지 도망만 칠 생각이지?”

       “…그러는 당신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계시잖아요!”

       

       순간 머리가 열이 올라 목에 힘을 준 데케이였지만 그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대가 내 앞까지 다가와야 움직이건 말건 하지. 오지를 못 하는 데 뭐 하러 움직이는가.”

       

       실력으로 처 발리고 있는 이상 무슨 말을 하더라도 데케이만 열 받을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데케이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승리를 향한 방정식을 점검했다.

       

       그의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공격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내기를 너무 낭비했다.

       

       어찌저찌 다가가서 권을 펼친다 한들 제대로 된 공격 두 세 번을 펼치면 모든 내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그렇다 하여 회피가 완벽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데케이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각자 지성을 지닌 것처럼 연계를 하는 여덟 개의 채찍을 피하긴 어려웠던 것이다.

       

       어찌저찌 치명적인 피해만큼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여지까지 쌓이고 쌓인 피해는 이미 치명상에 가까웠다.

       

       “아니다. 잘못 생각했군.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보이는구나.”

       “그걸 아시면서…”

       “일단 한 번 끝내도록 할까.”

       “…예?”

       

       데케이는 상대의 이야기에 눈을 끔뻑였지만 그 당황이 당혹으로 변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물과 관련된 도술만을 펼쳤던 상대가 처음으로 다른 술을 펼친 것이다.

       

       그는 불꽃이었다. 대기 중의 온도를 드높이고, 호수의 물을 순식간에 끓어오르게 만들어 수증기로 바구고, 주변에 안개를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질량을 품은 불꽃 말이다.

       

       그를 마주한 데케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할 방법을 떠올리는 대신 얌전히 통각을 꺼버리고 자신의 운명을 마주했다.

       

       [패배]

       

       잠깐의 적막이 지나가고 다시금 정신을 차린 데케이가 마주한 것은 이미 예견된 문장이었다.

       

       패배.

       

       자신의 패배를 생각하지 않은 채 아피스에 접속한 데케이는 끝까지 농락을 당하다가 패배를 마주하게 되었다.

       

       보통 이 정도로 농락을 당했으면 짜증이 난다거나 열이 받는다거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정상이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바루 컨셉을 잡은 유저와 데케이 사이에 존재하는 너무나도 압도적인 격차는 분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진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를 않는다니까.”

       

       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처음으로 화령이라는 유저를 만났을 때의 일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상대에게 덤볐다가 그대로 박살났던 그 순간.

       

       발악을 하고 또 하다가 뉴비를 상대로 외신을 불러가면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던 그 날의 일말이다.

       

       나는 왜 자꾸 이런 유저랑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걸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쌍한 누군가가 처발리는 걸 보면서 웃으면 안 되는 거냐고?!

       

       “민가의 지인아.”

       “예.”

       “어찌할 것이냐. 이대로 패배한 채로 도망칠 것이야?”

       

       리벤지의 요청.

       

       보통이라면 이건 거절하는 것이 맞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대의 몸을 건드리는 것조차 버거운 격차가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제 아무리 데케이가 발악을 한들 상대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할 게 분명한데 왜 악질 컨셉 저격러와 게임을 해주겠는가.

       

       아피스라는 게임을 오랫동안 해오며 양학을 해보기도 하고 양학을 당해보기도 한 그는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몇 판이나 더 하실 겁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케이는 리벤지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만든 것은 과거의 기억이었다.

       

       아직 VR의 세상에 서툴러서 그나마 틈이 존재했던 아라에게 일격을 먹이는 데 성공했던 그 날의 기억.

       

       당시의 데케이는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가 해냈던 일은 끝도 없이 재평가가 되었다.

       

       뉴비에게 한 방 먹이는 게 한계인 퇴물에서부터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싶은 신적인 유저에게 유일하게 상처를 낸 영웅까지.

       

       저점매수의 달콤한 경험을 여전히 기억하는 데케이는 이번에도 저점매수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바루 컨셉의 유저는 조회수가 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아피스에 바루가 나타났다! 라는 영상으로 시작해서.

       

       쓰레기인 도사를 제대로 쓰는법! 이라는 영상으로 이어가서 나중에는 화령님과 저 바루 컨셉 유저의 합방까지!

       

       완벽해! 조회수가 복사되는 게 보인다 보여!

       

       “몇 판 더 할 것이냐고? 흐음.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정해진 건 없단 거군요.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영상 최대한 뽑아 먹어 보자. 저 분께서는 질리면 떠나버릴 생각이신 듯 하니 상대방께서 질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시작하죠.”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저기 뉴메타 강의 방송은 안 하시나요?]

       

       “오늘은 폐강입니다! 수업 들으러 오신 학생 분들은 다음에 다시 찾아와 주세요!”

       

       그 후로 데케이는 바루에게 상처 하나라도 입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불리한 맵에 불리한 상성이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바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허나 그것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허나 최선은 최선일 뿐 최고가 되지는 못했다.

       

       처음의 만남 이후로 일곱 번의 게임이 이어졌으나 데케이는 항시 농락을 당할 뿐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진 못했던 것이다.

       

       “흐음. 이 정도인가.”

       

       덕분에 바루 컨셉의 유저는 슬슬 그만하고 싶다는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안 돼. 아직 충분히 마이 튜브 각을 뽑지 못했는데!

       

       친구추가 하자는 말도 못 했는데!

       

       한 방도 제대로 먹이지 못했는데!

       

       이대로 끝낼 순 없어!

       

       “한 번. 한 번 더 하시죠!”

       

       다음번에는 진짜 다를 것이라는 이야기에 바루 컨셉의 유저가 눈을 좁혔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데케이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한 판 더 해주는 것이야 어렵잖다만 말이다. 제대로 전략을 짜서 오거라. 이래서야 도움이 안 되지 않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데케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지만 정작 그 속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문제는 단순했다.

       

       도저히 이길 방법. 아니 상대에게 위협을 가할 방법이 떠오르진 않는 것이다.

       

       무언가 회심의 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맵은 변수가 없고, 다루는 캐릭터는 평소에 거의 쓰지 않던 녀석이고.

       

       하아.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네 진짜.

       

       – 화령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냥 피해 감수하고 돌진하세요. 왜 천마신공을 다루면서 얻어맞고만 있으시는 건지 모르겠네.]

       

       “방금 들어오신 분입니까? 매니저! 설명 고정 좀 해놔! 이미 다 해 봤다고!”

       

       – 해놨는데.

       – 일부러 긁으려는 거지 뭐 ㅋㅋ

       – 그래서 웨 돌진 안함?

       – 상대는 돌격하는 거 가만 보고 있냐?

       – 어? 지금 후원한 사람 이름이.

       

       데케이도 멍청이가 아니다.

       

       한 때 프로로써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모든 공격의 회피가 불가능하다면 피해를 감수하고 이 쪽에서 공격을 시도하는 게 옳음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몇 번인가 시도도 해보았지.

       

       허나 그 모든 돌격은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문제는 단순했다.

       

       상대는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도술사다. 즉 이 발치에 있는 물은 모두 다 그녀의 무기란 소리다.

       

       발을 내딛은 곳의 물이 폭탄이 터진 것마냥 치솟아 올라 데케이는 날려버린다거나.

       

       이 고요한 호수에 소용돌이가 만들어져 데케이의 발을 붙잡는 다거나.

       

       물로 엮은 그물이 데케이를 호수 바닥으로 처박아 버리려 한다던가.

       

       데케이가 무리하게 접근을 할 때면 항시 이런 방해가 들어와 그를 내쫓아 버렸으니.

       

       몇 번의 실패를 걸친 데케이가 접근을 포기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 화령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물이 문제가 되면 물을 전부 다 날려버리면 되잖아요? 물의 채찍도 마찬가지에요. 날려버리면 된다고요.]

       

       “몇 번 말씀드립니까. 다 해봤…”

       

       한숨을 내쉬며 훈수를 쳐내던 데케이는 문득 후원자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화령님?”

       

       – 화령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네. 화령입니다.]

       

       지금 훈수를 하는 사람은 한국 최강의 프로게이머 한서우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천마의 권위자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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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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