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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0

       포탈이 일렁이더니 다른 세상을 토해놓고 사라졌다.

       

       로즈마리의 집무실이 있던 곳에는 높게 뻗은 마천루가, 골렘이 있어야 할 도로에는 자동차가 돌아다닌다.

       

       아렌스 대륙의 풍경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구였다.

       

       “오, 우, 와.”

       

       로즈마리가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어딘가요?”

       

       한글 간판이… 있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로즈마리가 고개를 꺄웃했다.

       

       “나라 이름인가요?”

       “그렇대.”

       “경제력과 군사력이 어떻게 되는데요?”

       “뭐?”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경제력이랑 군사력은 왜 물어보는 건데?”

       “유사시 저희 둘이 이 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지 알아야… 꺄악! 왜 때려요?”

       

       문득 이상함이 느껴졌다. 경제력 군사력에 집착하는 건 마왕군 시절 로즈마리의 특기인데.

       

       혹시.

       

       “잠깐 손목 좀 줘봐.”

       

       나는 로즈마리의 맥을 짚었다. 쿵, 쾅, 쿵, 하고 이상하게 뛴다. 인간의 맥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보다 묵직하고 단단한 팔뚝. 야경 속에서 어슴푸레 빛나는 노란 눈동자.

       

       영락없는 마수의 특징이었다.

       

       “어라, 다시 이렇게 됐네.”

       

       로즈마리도 제 몸에 나타난 이변을 알아차리고는 소매를 걷었다. 겉으로 보기에 사지는… 멀쩡하다. 내골격만 철화한 것 같았다.

       

       “언니도 예전으로 돌아왔어요?”

       “그런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언니, 다시 원래대로 커졌네요.”

       

       로즈마리가 나를 올려다보며 씩 웃는다.

       

       내가 한동안은 얘보다 키가 작았는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또 오랜만이라서 오묘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여신이 바캉스용 육체를 만들어준 건 맞다.

       

       그런데.

       

       설마.

       

       “얘까지 안드로이드로 만들었을 줄은….”

       

       등골이 오싹하다.

       

       나야 마수인 상태라도 기존의 자아를 유지할 수 있으니 괜찮다. 감정이 무뎌지겠지만, 그뿐이다.

       

       로즈마리는 다르다.

       

       로즈마리의 경우, 철화의 저주를 받은 것과 받지 않은 것 사이의 폭력성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혹시 몰라서 내가 경고했다.

       

       “로즈마리, 이것 하나만 알아 둬. 우린 지금 여기 놀러 온 거야. 뭐 부수거나 함부로 하면 안 돼. 알겠어?”

       “넹.”

       “좋아. 먼저 옷차림부터 점검하자.”

       

       로즈마리의 옷차림은… 무난했다. 원래 입고 다니는 드레스이긴 한데, 기능성을 살린 디자인이라 크게 튀지는 않았다. 코스프레라는 느낌은 살짝 있는데, 이건 얘 머리가 푸르딩딩해서 그런 것 같고.

       

       이번에는 나를 확인했다. 나는 평범한 슬랙스 바지에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여기에 중성적인 코트 하나. 확실히 로즈마리보다는 현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언니.”

       “왜?”

       

       로즈마리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질문을 던졌다.

       

       “여긴 전부 지계마도를 쓰는 사람밖에 없네요.”

       

       어, 이걸 뭐라고 말해 줘야 하나.

       

       “여기 사람들은 마법 못 써.”

       “네?”

       “마나, 정령, 그런 개념이 없는 세계거든.”

       

       로즈마리가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여신님이 알려줬어.”

       

       내 영혼 중 일부가 여기 출신이라는 건 얘기 안 해도 되겠지. 괜히 말해줬다가 로즈마리가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일단 걷자.”

       

       나는 로즈마리를 데리고 서울 중심지를 가볍게 돌았다. 그러면서 교통법규와 같은 기본적인 문화를 알려줬다.

       

       로즈마리는 모든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물건 자체를 신기하게 보는 건 아니었다.

       

       “마법도 없으면서 이 정도의 문명을 이루다니, 보통 나라가 아니군요.”

       

       마법이 익숙한 아이다. 마법 없는 세상이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그만큼 흥미진진해할 것이다.

       

       왜냐, 이 세상 사람은 모두가 금안족이라고 했으니까.

       

       로즈마리는 발전된 대한민국 수도의 풍경에서 아렌스 대륙의 미래를 엿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눈을 또랑또랑하게 빛내며 질문을 이었다.

       

       “혹시 이 나라 말고 다른 나라가 얼마나 있나요?”

       “200개 정도 있을걸.”

       “그중에서 이 나라는 얼마나 강하죠?”

       “경제력으로 치면 10위 정도고… 군사력도 그거랑 비슷한 정도일 거야.”

       

       로즈마리의 물음은 계속됐다.

       

       “이 나라도 흑주 같은 게 있어요?”

       “없어.”

       “그러면 우리 둘이서 이 나라를 제압할 수 있겠군요!”

       “제압을 왜 해?”

       “혹시 모르잖아요.”

       

       얘가 기계로 돌아오더니 맛이 간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 보는 세상인지라 알게 모르게 불안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후자가 맞을 것 같다.

       

       나도 아렌스 대륙에 처음 떨어졌을 땐 불안감에 사무쳐서 한숨도 못 잤으니까.

       

       지금 로즈마리가 익숙하다고 느낄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손을 더 꼭 잡아줬다.

       

       기계여도… 아니, 기계라서 더욱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로즈마리가 은근히 떨고 있었다는 사실을.

       

       맞잡은 손에서 미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기계인데도 말이다.

       

       “언니, 혹시 느껴져요? 지나가는 인간마다 모두 우리를 쳐다봐요.”

       “눈동자가 금색이니까 그렇겠지.”

       “이 세상도 금안족 차별이 심한가요?”

       “없어.”

       “에….”

       

       로즈마리의 얼굴이 멍청하게 변했다. 문화충격을 잔뜩 받은 표정이었다.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나는 다시 한번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이쪽 세상에는 금안족이라는 게 없어. 눈이 검정이 아닌 사람을 색목인이라고는 하는데, 그것뿐이야. 눈동자 색에 따른 차별 같은 거 없으니까 안심하고 걸어.”

       “어쩐지. 시비를 거는 인간이 없더라니.”

       

       로즈마리는 짐짓 아쉬운 얼굴을 했다.

       

       “왜. 시비 걸었으면 싸우게?”

       “이쪽 세상 인간들이 얼마나 강한지, 언니는 알고 싶지 않아요?”

       “딱히.”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얘가 왜 이렇게 폭력적으로 변했니.

       

       이게 다 여신 때문이다. 로즈마리는 인간인 상태로 보내 주든가 했어야 했는데.

       

       이거 나 엿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건가?

       

       그런 거면 진짜 쪼잔한 건데.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냥 여신이 허당인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야 그렇다. 허당이 아니었으면 금안족이 박해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마왕군이 탄생할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지금의 로즈마리는 아슬아슬한 폭탄이다.

       

       내가 잘 돌봐줘야겠군.

       

       나는 슬며시 주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배 안 고프니?”

       “고프긴 하네요. 오랜만에 석유가 마시고 싶기도 하고….”

       

       로즈마리는 그리 말하면서 고개를 힐끔 돌렸다.

       

       주유소가 있는 방향이었다.

       

       “저기서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휘발유 냄새야.”

       “야외 레스토랑이군요.”

       

       아, 젠장.

       

       “가서 마셔도 돼요?”

       “이것만 말하자.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휘발유 마시고 멀쩡한 사람 없어.”

       “마시면 우리 정체가 탄로 날 수 있겠군요. 아쉽지만 안 되겠어요.”

       

       그래, 얘가 머리는 좋아. 가끔 어수룩한 데가 있어서 그렇지.

       

       어차피 오늘의 목표는 다른 데 있었다.

       

       “내가 여신님께 전해 들었는데, 여기 치킨이라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대.”

       “치킨? 그게 뭔가요?”

       “닭튀김 같은 거야.”

       “그동안 먹은 닭튀김은 죄다 별로였는데. 그게 이 세상 사람들 별미라는 건가요?”

       

       로즈마리가 우쭐해하며 말했다.

       

       “이 나라 국민들 식성을 알 법하네요. 고급스러운 요리도 아니고, 겨우 닭 튀긴 게 맛있다니. 다른 건 몰라도 식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것만큼은 확실하…….”

       

       

       **

       

       

       “…치킨은 신이야! 치느님! 치느니임─!!”

       

       좋아. 완전히 떨어졌군.

       

       가볍게 프라이드 하나로 입맛을 돋우고, 여기에 양념 반 마리를 추가해서 로즈마리의 혼을 쏙 빼놓았다.

       

       좋아하는 로즈마리를 보니 뭔가 내가 우쭐해진다. 정작 나는 치킨 레시피도 모르는데 말이다.

       

       “동생분이신가 봐요.”

       

       남자 종업원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네. 저번에 혼자 먹으러 왔을 때 기억에 남아서요. 얘한테도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서 다시 왔어요.”

       

       내 대답에 종업원은 멋쩍게 웃었다.

       

       그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두 번 다시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척 봐도 외국인이시잖아요. 세상에 치킨 가게가 그렇게나 많은데, 같은 곳을 또 오실 줄은 몰랐죠.”

       

       남자의 얼굴은 미묘했다. 뭔가 읽기 쉬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뻐하는 건지. 당황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슬퍼하는 것인지.

       

       도대체 무슨 표정일까.

       

       유추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야 2년 전에 한 번 보고, 지금 두 번째로 보는 사람이니까.

       

       물론 여신이 시간축을 뒤틀었다고 하긴 했다. 이 종업원 입장에선 내가 일주일 만에 또 온 것으로 보이겠지.

       

       아무튼 충분히 즐겼겠다.

       

       이젠 일어날 때였다.

       

       “야, 로즈마리. 정신 차려봐.”

       “배불러서 못 일어나게써요…….”

       

       일단 계산부터 해야겠군.

       

       어디 보자, 지갑이.

       

       지갑이….

       

       “아.”

       

       없다.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코트는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설마 여신이 이 정도로 눈치가 없었나?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왜 그러세요?”

       “아, 아니요. 그게….”

       

       저번에도 이 사람한테 추가분만큼 얻어먹었는데.

       

       이렇게 되면 호의를 원수로 갚는 꼴이 되잖아.

       

       어떡하지?

       

       먹은 만큼 설거지라도 해 줘야 하나?

       

       내가 허둥지둥해하고 있자, 낌새를 알아차린 종업원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지갑 안 가지고 오셨나요?”

       “예, 아…. 그게…….”

       

       조졌네.

       

       이거 완전 무전취식이잖아.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괜찮아요. 오늘 드신 건 전부 서비스로 내드릴 테니까.”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고 말았다.

       

       “네? 지금 뭐라고….”

       “오늘 드신 건 제가 대신 내드릴게요.”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요?”

       “네.”

       “그건 민폐인데….”

       

       심지어 그때는 이 종업원이 먼저 제안한 것이지, 지금은 주문해서 다 먹고 난 뒤다. 밥값을 대신 지불해 준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천지차이였다.

       

       “진짜 괜찮아요. 제가 대신 내드려도.”

       “아뇨, 제가 양심에 찔려서 그래요. 설거지라도 대신 해드릴게요.”

       “손님께서 그럴 필요는….”

       “무전취식한 건 저흰데 당연히 그럴 필요 있죠. 안 그러면 제가 불편해요.”

       

       기브 엔 테이크는 이런 사소한 상황에서도 중요하단 말이지. 처음 한 번은 몰라도 이번에는 결코 넘어갈 수 없다.

       

       내 고집을 이해한 듯 남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처럼 턱을 괴었다.

       

       조만간 그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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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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