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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1

       일단 인원수만 보면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이 더 좋겠지만, 당장 이 방을 빼더라도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은 여의찮다.

        

       애초에 원룸 전세가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는가.

        

       심지어 이곳은 지어진 지 오래된 곳이라는 특징과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는 점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곳이었다.

        

       지하철역까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곳이니까. 그나마 내가 출퇴근할 때는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더 자주 이용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을 뿐, ‘출퇴근만을 위해 구한 곳’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더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 사는 아이들과 친하다는 것, 그리고 얘네들이 걷는 것을 조금 좋아해서 지하철까지 수십 분씩 걸어가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는다는 것 덕분에 아직 말이 나오지 않았을 뿐.

        

       “……맛있네요.”

        

       “그렇지?”

        

       샤를로트의 평가에 클레어가 활짝 웃었다.

        

       “……이벨리아 풍 음식이긴 하지만요.”

        

       아제르나 제국 사람한테 요리 실력 칭찬을 하는 것이 영 꺼림직했는지, 샤를로트는 그 말을 덧붙였다.

        

       “뭐, 애초에 우리가 요리한 거라고 하기도 조금 그렇지만 말이야.”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밀키트를 감싸고 있던 종이 포장을 샤를로트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뭐죠?”

        

       종이 포장지를 받아든 샤를로트의 눈이 활짝 커졌다.

        

       “이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모아 키트로 만들고, 거기에 조리 방법까지 적어 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여기 그려진 이 요리는, 설마 사진인가요?”

        

       “…….”

        

       괜히 어깨가 으쓱해서 설명하던 앨리스의 기가 살짝 죽었다.

        

       “맞아, 사진이야! 신기하지?”

        

       클레어는 신나서는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켜서 보여주었다.

        

       샤를로트는 식사 중이던 포크도 놓은 채 홀린 듯 그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이건…… 굉장하네요. 이게 마법이 아니라는 말이죠?”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살피던 샤를로트가 고개를 들고, 새삼스럽게 내 방을 한 번 더 훑어보았다.

        

       ‘원래의 세상과 완전히 다른 것’을 직접 보고 나니 이 방 안에 있는 다른 기계들이 모두 새롭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중에서도 스마트폰과 ‘비슷하다’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인 모니터에 한동안 시선이 고정되었다.

        

       샤를로트는 앨리스처럼 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이미 보유한 제국의 황녀인 앨리스도 새로운 기술을 보며 자신의 나라에 접목해볼까 생각하긴 했지만, 기술력이 제국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왕국의 왕녀인 샤를로트는 그런 감정을 더 격하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런 기술을 곧장 가져다가 왕국에 적용할 수 있다면 물론 제국보다 대단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겠지.

        

       “제게 물어본다고 대답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야 그렇겠죠. 이런 기술을 실현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 기술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독점하고 싶을 테니까.”

        

       어…… 어떤 의미로는 핵심을 아주 잘 짚긴 했다만.

        

       “그렇다기보다는, 기술 자체가 너무 복잡해서 장인 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샤를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옆에서 열심히 크림 파스타를 흡입하던 미아는 스마트폰에 대한 흥미를 새로 가져야 할지, 아니면 자기 입 안에 들어온 음식에 대한 흥미를 유지해야 할지 심히 고민하는 모양이었지만, 이내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마법 비슷하게 생겼지만, 마법이 아니라면, 미아에게는 크게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아 입장에서는 앞으로 경쟁해야 할 상대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뭐, 파스타는 그냥 두면 식지만, 스마트폰은 시간이 지나 봐야 배터리 조금 나가는 것 외에는 달라질 것도 없으니.

        

       아, 이건 미아도 모르려나.

        

       “……아무튼, 식사 뒤에는 푹 쉬도록 하시죠. 두 사람은 바로 얼마 전까지 격렬한 전투를 겪고 오셨으니까요.”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 집 안에서 꼭 알아야 할 설비들은 최대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몸을 씻고 푹 자고 일어나, 내일 다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알았어요. 클레어, 고마웠어요.”

        

       샤를로트는 클레어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아주 귀중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뭐 가격으로 따지면 꽤 비싼 물건이 맞긴 한데…….

        

       …….

        

       그러고 보니, 굳이 이 집의 크기 문제뿐만이 아니더라도 생각해야 할 게 꽤 많았구나.

        

       이 두 사람에게도 스마트폰을 사줘야 할 거 아냐. 요금도 내야 할 거고.

        

       식비에 들어가는 금액도 새로 조정해야 할거고…….

        

       음.

        

       내일 나가서 복권이라도 살까.

        

       *

        

       다음 날 아침.

        

       “딱딱한 바닥에서 잤는데, 괜찮으신가요?”

        

       한평생 침대 위에서 잠을 청했을 두 사람이었다. 혹시나 해서 내가 그렇게 물어봤더니,

        

       “이 집에서 잘 수 있는 것으로 감사해야죠. 다른 세계에 떨어졌는데 노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다행 아니겠어요?”

        

       “바닥이 따뜻해서 좋았어요. 이불도 꽤 푹신했고요.”

        

       슬슬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었기에 보일러를 살짝 틀었는데 그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레어, 앨리스, 샤를로트, 미아……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서 다섯 명.

        

       세 명까지는 그래도 꽤 여유 있다고 느껴졌던 방이, 고작 두 명 추가된 것으로 꽉 차 보였다.

        

       게다가 나, 클레어, 앨리스는 그나마 혈연적으로, 혹은 인연으로 이어진 자매 사이였지만, 이 두 사람은 따지자면 다른 집 자식이었다.

        

       친한 친구였고, 필요하다면 목숨을 걸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이렇게 개인 공간도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이 두 사람과 지내며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샤를로트와 미아가 평소에 어떤 식으로 지내는지 알 수가 없네.”

        

       성실한 성격의 샤를로트는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있었지만, 미아는 여전히 조금 졸린다는 듯 눈을 비비고 있었다.

        

       “클레어와 앨리스 두 사람이 왔을 때는 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이 저 혼자뿐이었기에 조금 조심했습니다만, 그래도 지금은 다섯 명 중에서 세 사람이 이 세상에 꽤 익숙해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오늘 두 사람과 함께 바깥을 돌아봐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나는 좋아!”

        

       클레어는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한테 이것저것 가르쳐줄 수 있다는 것이 즐거운 것일까? 클레어라면 그럴 것 같았다.

        

       “나도 찬성해. 가르쳐줄 사람이 많다면 바로 적응하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앨리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진지하게 회의까지 해야 할 일인가요?”

        

       샤를로트는 미간을 살짝 모으고 물었다. 자존심이 꽤 센 성격인지라, 그게 자길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은 우리가 살던 세상과 완전히 다르거든. 당장 창밖으로 보이는 것만 해도 그렇잖아?”

        

       “제대로 내려다본 적은 없지만…… 아직은 건물이 특이하게 생긴 것과 검은 선들이 보기 흉하게 연결된 것밖에는 보이지 않는데요.”

        

       과연 미의 나라 벨부르에서 온 왕녀다운 평가였다.

        

       “그…… 위험하기라도 한 건가요?”

        

       미아가 소심하게 물었다.

        

       그래도 최근 들어 꽤 당당해진 상태였는데, 다른 나라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갑자기 내동댕이쳐져 버린지라 조금 불안한 모양이었다.

        

       “위험……하다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그 위험하다는 것이 치안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치안만 따지자면 아제르나 대륙의 모든 국가 중 이 나라보다 뛰어난 치안을 가진 국가는 없다고 봐도 되니까요.”

        

       단순히 한국 치안이 좋다는 국뽕이 아니라, 그 산업혁명기의 나라가 이쪽 세상의 선진국 치안 평균보다 좋을 리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그보다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

        

       샤를로트와 미아는 서로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뒤, 우리 세 사람을 다시 보았다.

        

       “좋아요.”

        

       샤를로트는 여전히 조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준비가 끝나면 말씀해주세요. 저희는 식객이니 집주인 말에 따르도록 하겠어요.”

        

       “네, 저도 그렇게 할게요.”

        

       샤를로트와 미아의 반응에 클레어와 앨리스가 조금 뜨끔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뭐, 샤를로트나 미아도 확실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적어도 갑자기 돈이 확 들어와 이사 갈 수 있게 될 때까진 말이다.

        

       *

        

       처음 밖으로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샤를로트와 미아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확실하게 느끼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사방에 신기한 것이 있고 궁금한 것이 많긴 했지만, 솔직히 대놓고 위험해 보이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뭐, 전봇대야 사람이 직접 타고 올라가지 않으면 별로 위험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아직 평일의 늦은 아침이었기에 동네에서 나갈 차는 거의 다 나가서 대부분 주차되어있는 것뿐이었고.

        

       “…….”

        

       하지만, 큰길로 나오자마자 두 사람은 왜 우리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저기 치이면 멀쩡하지는 못할 것 같군요. 자동차인가요?”

        

       “그렇습니다.”

        

       샤를로트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으려니, 이번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미아가 물었다.

        

       “증기기관인가요?”

        

       “내연기관입니다.”

        

       “내연기관이요? 그게 뭔가요?”

        

       순수하게 궁금해서 질문하는 미아와는 다르게, 샤를로트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내 말에서 기술적인 힌트라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

        

       음.

        

       어째 이 두 사람을 가르치는 건 클레어와 앨리스 때와는 또 다를 것 같다.

        

       뭐,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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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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