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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1

    -콰광!!

     

    검기가 실린 리브의 검격이 훑고 지나가자, 굉음과 함께 파괴되는 엘리베이터의 한쪽 벽면.

    연기는 그렇게 파괴된 벽에서 들어오는 공기와 함께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좋아, 잘 했다 리브.”

    “…….”

     

    마지막 검격을 내보낸 후, 리브는 눈에 띄게 지친 것처럼 보였다.

    그럴 만도 하지, 그동안 많은 일을 해 주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리브도 휴식을 취할 때다.

     

    루크는 검을 든 손이 떨리고 있는 리브를 향해 말했다.

     

    “리브, 아공간으로 들어가거라.”

     

    그리고 마력을 방해하는 안개가 옅어진 틈을 타, 루크는 목걸이에 수납해 두었던 열쇠를 꺼내 허공을 베어냈다.

    그러자, 작은 인형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포탈이 생성된다.

     

    마력이 다한 리브는 아린세이아의 신성력이 섞인 마력이 아니면 제대로 충전할 수가 없다.

    녀석의 코어에 가장 잘 맞는 마력패턴은 바로 리브가 5000년을 존재해온 아린세이아니까.

     

    그것은 리브도 알고 있었다.

     

    허나 이것은 아린세이아로 곧바로 향하는 포탈은 아니다.

    이는 혹시나 아린세이아가 유출되는 참사가 일어날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근처에 아린세이아와 인접한 아공간 좌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루크는 아직 5서클인지라, 직접적인 좌표 수정 권한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아린세이아에 조립해둔 고성능 슈퍼컴퓨터가 있는 한, 아공간끼리의 좌표 융합은 불가능하지 않으므로 이후에 회수하면 되리라.

     

    하지만 문제는, 이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동안 리브는 이제 여기서 다시는 불러낼 수 없다는 것.

    리브는 루크를 걱정스럽다는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그에 루크는 미소지은 채, 주먹으로 가슴께를 가볍게 두드리는 동작을 하며 말했다.

     

    “이제는 내가 알아서 행동할 터이니 걱정 말고 들어가거라. 어차피, 너는 이제 검을 휘두르기도 힘들지 않느냐.”

    “…….”

     

    그 말이 맞았다.

    엘리베이터의 강도가 예상보다 튼튼했던 탓에 꽤나 많은 마력이 소모되었고, 이대로는 잡졸 몇 마리를 베어넘기는 것 만으로 동력이 다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주인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골렘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끄덕, 끄덕.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린 리브는 고개를 끄덕인 뒤, 혹시모를 일에 사용하라는 뜻으로 루크에게 나이프를 건네고는 포탈을 향해 몸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리브의 나이프를 받은 루크는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미소지은 후에, “안에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하는 말과 함께 아공간을 닫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휘청-!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

     

    루크는 그 원인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혹시, 아까 전의 검격이 안전장치를 부순 것일까?

    명령을 내린 것은 자신이니 리브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만, 확실히 요란해 보이기는 했었지.

     

    “하아. 이런, 올라갈 때는 좀 편하게 가나 싶더니.”

     

    체념한 듯 한차례 투덜거린 루크는 일단은 앞으로의 충격에 대비하기로 했다.

     

    ——

     

    -카가가가각–!!

     

    -쿠궁–!!

     

    커다란 추락음과 함께 비산하는 수많은 파편과 휘날리는 다량의 돌가루.

    그야말로 추락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형태의 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전히 파괴된, 살아있는 생명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잔해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키는 인영이 하나 있었다.

     

    귀찮은 듯 옷을 털어내며 투덜거리는 것은 바로 루크 이루시.

    그는 당연하다는 듯,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모습으로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후우…….”

     

    그렇게 옷을 다 털어내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시 그 철창이 있던 지하로 되돌아온 모양이다.

    귀찮게 되었다.

    이래서는 꼼짝 없이 계단을 이용해야 할 판이다.

     

    “흠. 또 여긴가…….”

     

    루크가 중얼거린 바로 그 때.

     

    “이런, 이런. 이거, 아무래도 우리 꼬마 숙녀분께서 길을 잃은 것 같네. 이곳의 관리자로서, 이걸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

     

    연기를 뚫고 나타나는 또 하나의 인영이 능청스러운 대사를 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길을 잃은 아이를 안내하는 것도, 시설의 관리자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말이야.”

    “…….”

     

    루크는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대가 이곳의 관리자인가.”

    “응, 말했다시피.”

     

    그는 다른 흑마법사들처럼 얼굴을 감추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정체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풍기는 모든 것이 루크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행동, 몸짓, 목소리, 말투, 그리고…….

     

    ‘흠, 역시 그렇군.’

     

    그에게서 확신을 얻은 루크는 천천히 뒷짐을 풀며 묻는다.

     

    “그대여, 내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네만.”

    “흐음, 학구열이 높은 꼬마 아가씨구나. 뭔데?”

    “원본과 모든 것이 똑같은 복제품이 원본이 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상당히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한 방 먹었다는 듯이 옅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너, 그거…….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인걸. 흠. 원본이 사라지면 복제가 원본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려나?”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재미있네……. 그런데, 혹시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

    “글쎄, 엄밀히 따지면 만나긴 했지.”

     

    이 선문답을 시작한 것은 루크 자신이었으니, 끝내는 것도 자신의 역할이었다.

     

    “아니…….”

     

    루크는 내뱉은 말을 정정했다.

     

    “그대의 복제를, 세이어.”

     

    “크큭…….”

     

    루크의 말에 그는 얼굴을 가리며 웃다가, 로브를 슬쩍 들추며 말했다.

     

    “아아-, 역시. 우리는 만난 적이 있었나 봐, 인형사.”

     

    세이어, 아니.

    그의 도플갱어가 얼굴을 드러내었다.

     

    —–

     

    도플갱어.

     

    마계에서 발견된 생물로, 그것은 생물의 모습을 복제하여, 동일한 모습을 취하는 마수다.

    일반적인 상태는 부정형으로, 슬라임과 비슷한 형태이지만 선택한 존재를 복제하여 그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모습을 얻는다.

    그렇기에 도플갱어는 굉장히 두려운 마수였다.

    도플갱어는 말 그대로 선택한 모든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새, 늑대를 비롯한 동물부터, 심지어는 길가에 난 풀 한포기로까지.

     

    도플갱어가 상징하는 죄악은 ‘불신’.

     

    그들은 살아있는 한 생물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를 모방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외형으로는 절대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어떤 생물이 도플갱어일지는 알 수 없으며, 그것을 확인하는 방법은 오로지 의심되는 존재를 죽인 뒤에 시체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신의 손길이 닿을 수 없던 마계에서는 레니에를 제외하면 부활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는 인류의 마계 진입을 더욱 까다롭게 하는 마수였다.

     

    그 마수의 존재 하나로 인간들은 마계에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고, 이는 군대와 같은 대규모의 병력을 운용할 수 없게 만드는 족쇄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들의 복제에는 한가지 맹점이 있었는데, 바로 ‘복제품은 원본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플갱어를 상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도플갱어의 원본이 되는 존재가 상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원본이 사망할 때.

     

    원본이 사라지면, 복제는 원본이 된다.

     

    원본이 없는 복제는 더 이상 복제로 취급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원본이 된 복제는, 세계와 법칙으로부터 더 이상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새로운 원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령술사들은 바로 그 특성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이미 죽은 녀석을 복제하면 어떻게 되는데?”

     

    —–

     

    ‘하지만 본래 도플갱어는 마계에서 나올 수 없는 존재였을 터…….’

     

    허나, 실로 다행스럽게도 도플갱어는 환경의 변화에 굉장히 취약했다.

    그 중에서도 물질계의 마력에는 특히나 더 치명적이었는데, 그 덕에 던전에서 종종 출몰하던 도플갱어는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없었으며, 게이트를 넘는 것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마계가 아닌 물질계에서는 적어도 일상속에 침투한 도플갱어를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루크는 주변을 메우고 있는 안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마계와 동일한 환경을 만드는 반마력장.

    정확히 한 쌍으로 이뤄진 철창과 재료.

    결벽적일 정도로 마력의 차단에 집착한 설계.

    자신이 겪은 기억이 없는 인체실험, 그리고…….

     

    그래, 그 모든 것이 바로 도플갱어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설명이 된다.

     

    “이런, 이런. 정말 눈치가 빠른 꼬맹이라니까. 아, 혹시 내가 전에도 이런 말 했었나?”

     

    그는 즐겁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야. 여기서 우리는 도플갱어를 만들었지. 그리고, 개량했어. 꽤 오랫동안. 그것들이 물질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말이야. 슬라임이 그들의 구조체를 안정화시킬 소재로 꽤 제격이더라고. 그거 알아? 신기하게도 도플갱어와 슬라임은 서로 유사한 점이 굉장히 많더라.”

     

    가장 치명적인 마수를 세상에 풀어 둔 것을 마치 자랑하듯이 떠드는 세이어에게, 루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세이어.”

     

    루크는 그를 향해 마력을 끌어올리며 묻는다.

     

    “너희들은, 여기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한때 도플갱어를 이용해 영생의 방법을 연구한다며 멍청한 짓을 하는 흑마법사들이 많았다.

    스스로를 도플갱어로 삼고, 기억과 서클을 이전한 뒤 원본이 되는 자신을 죽인다.

    그리하면 도플갱어가 원본이 되며 자신과 원본인 동일한 존재가 되나, 신과 법칙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며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문제는, 도플갱어는 물질계의 마력에 취약한 마수이며, 그들에게는 원본이 된 자신이 ‘진짜 자신’이 맞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신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또한 흑마법사들은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니는 자신들의 목숨이 특히나 소중한 존재들이므로, 대부분은 스스로 그것을 알아낼 배짱이 없었으리라.

     

    “글쎄, 그것 까지는 내가 대답해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않으면? 어쩔거지?”

     

    하지만, 세이어.

    이 자는 달랐다.

     

    이전에도 죽음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행동했지.

    그 때는 단순히 리치이기에, 추가 목숨이 있기에 그러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하하하, 잠시만 진정해봐. 이제는 네 보디가드인 인형도 사라졌잖아? 여기선 네 생각처럼 마력도 운용하기 어려울 거고.”

     

    그의 말대로였다.

    리브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고, 추락한 이곳에는 이미 자신을 맞을 준비를 한 것인지 일전의 그 불쾌한 안개가 자욱했다.

    게다가 이 안개는 마취성분 보다는 마력을 봉인하는 것을 좀 더 중점적으로 강화시킨 기체였다.

    아마 마취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마 도플갱어로 인간의 육신을 가진 상태인 자신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겠지.

     

    루크를 먼저 기다리는 입장에서 마취제의 약효가 먼저 돌아버리게 되면, 정말 바보같이 패배하고 말 테니까.

    따라서 그는 자신의 마력량을 경계하고 마력을 봉하는 조치만을 취한 것일 터이다.

     

    “그렇다 해도, 자네를 상대할 힘은 충분해.”

     

    루크는 자세를 잡았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대도 마찬가지일 테니.”

     

    기본적으로 이 안개는 마력의 방출을 방해하는 원리.

    따라서 신체 내부로 마력을 돌리는 마법들에는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물론 그것도 안개로 인한 감각교란이 있기는 하지만, 마력을 체외에서 다뤄야하는 방출계통의 교란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슬쩍 시선을 내리니 바닥에 충격에 떨어트린 것인지 리브가 사용하던 나이프가 보였지만, 예르나가 말한 ‘누군가를 죽이지 말아줘’라는 약속에 따라 죽일 생각은 없으므로 금방 그것에서 시선을 치웠다.

     

    ‘아, 그리고 예르나는 손을 더럽히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발을 사용하면 될까?

    물론, 이것은 농담이지만.

     

    “하하하하!”

     

    그 때, 돌연 세이어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잠깐만, 너 지금 사령술사에게 수많은 시체를 제공해줬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거 아니야?”

    “……?”

     

    시체? 글쎄, 루크의 눈에는 시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그 병력의 공백이 아직 시체들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그 시체들이 통하기 위한 유일한 입구는 현재 그 좁아터진 원형 계단 뿐.

     

    따라서 그들은 절대 세이어를 구할 시간을 맞출 수 없을 터다.

     

    하지만 그 순간.

    루크는 자신의 뒤, 엘리베이터의 잔해에서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의 정체는…….

     

    ‘어보미네이션!’

     

    —-!!!!

     

    온갖 시체가 뒤섞인 끔찍한 흉물이 울부짖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흑마법사 세이어 재등장!
    과연, 이 놈은 뭐하는 놈인가!

    삽화가 많아서 원래 2회로 나눌까 했지만… 귀찮아졌어요.

    그나저나, 댓글에 복제연구라는 걸 맞추신 분이 좀 있더라구요!
    휴! 떡밥이 티가 좀 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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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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