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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1

        

       본래 평소라면 고민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상징이고 힘이 없다지만 그래도 아예 얻을 게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곤란했다.

       산사태에다가, 야태도아랑류(野太刀餓狼流) 문제에다가….

         

       지금 그가 수습해야 하는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게다가 악재가 겹친 덕분에 일고 있는 내부의 소음도 어떻게든 줄여야 했고.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면 수련에 지장이 가는 법.

       그는 최대한 빨리 지금 상황을 수습하고 그들을 일상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렇기에 카즈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된다고.

       지금은 갈 수 없다고.

       이해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천황의 부탁이 적힌 편지는 그대로 거절당해버리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이 둘을 시작으로 줄줄이 거절당하기 시작했다.

         

       랭킹 3위.

       랭킹 4위.

       랭킹 5위.

       …

       …

       …

         

       이름 좀 날리는 무인들은 앞서 거절했던 소타로와 카즈오처럼 천황의 부탁을 거절했다. 어떤 이는 송구스럽다는 듯 미안함을 팍팍 풍기면서 거절했고, 어떤 이는 아주 차갑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떤 이는 편지를 아예 받지 못했다는 것처럼 편지가 오기 전에 외국으로 나가버렸으며, 어떤 이는 폐관 수련을 핑계로 아예 편지를 받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결과는 하나였다.

         

       이름 있는 무인들 그 누구도 천황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

         

       천황이 아무리 심화 때문에 가슴에 분노가 잔뜩 쌓여서 얹힌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음에도, 내각(內閣)에서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정치적 공세를 펼치기 전에 일을 수습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고 있음에도 일은 쉽사리 풀리려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간은 점차 흘러갔다.

         

       수습하지 못한 채 말이다.

         

         

         

         

        * * *

         

         

         

       단체에 소속된 사람은 한낱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들 제각각의 의지보다는 부품으로서의 쓰임새가 더더욱 존중받는 것이 사회의 법칙이다.

         

       그리고 이는, 연예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후우….”

         

       좁아터진 승합차 안, 한숨을 쉬는 여성이 있었다.

       여성은 행사를 뛰고 온 것인지 얼굴에 화장이 되어 있었고,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은 단정한 듯 보여도 은근하게 노출이 많았는데, 차이나 드레스를 연상케 하는 의상은 다리 한쪽을 드러낼 수 있도록 옆쪽이 트여 있었다. 거기다가 곳곳에 구멍이 뚫려서 살색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여기를 주목하라는 듯 반짝이는 장식들이 가득가득 붙어있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의상을 입은 채 승합차의 뒤편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옷이 구겨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몸을 기댔고, 승합차 뒤편에 세탁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리고 쌓여있는 옷가지를 쿠션 삼아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작게.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가 듣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게 말이다.

         

       ‘힘들어….’

         

       그녀의 얼굴은 화장으로 덮여있음에도 그 피로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얗게 칠해진 눈가 아래에는 눈그늘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표정은 그녀가 혹사당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초점이 흐릿한 눈동자와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려고 시도하는 눈꺼풀은 그녀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는 것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고 말이다.

         

       ‘졸려….’

         

       그녀는 좁아터진 뒷자리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힘들다.

       피곤하다.

       졸리다.

       쉬고 싶다.

         

       제발. 쉬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중얼거려도 그녀는 쉴 수 없었다.

         

       왜냐고?

         

       일정이 잡혀있었으니까.

         

       ‘하아….’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알람 시계도 망치로 때려 부수고, 그냥 죽은 듯이 24시간 자버리고 싶었다. 아니, 가능하다면 사흘 내내 잠만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정이 있었으니까.

       회사의 일정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계약이 끝나간다지만….’

         

       그녀가 속해있는 기획사는 그녀를 미친 듯이 굴리고 있었다.

       인간미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데다가, 딱히 갱신할 생각도 없어 보이니 계약이 끝나기 전에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이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죽지 않을 정도로 빡빡하게 일정을 잡아서 그녀를 미친 듯이 돌렸고,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까지 따져가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기계적으로 그녀를 행사로 돌렸다.

         

       휴식?

       인간미?

       정?

         

       그런 건 없었다.

         

       기획사에서는 그녀를 망가져도 되는 부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험하게 굴렸으며, 계약 기간이 남아있을 때만 쓰러지지 않으면 된다는 마인드로 그녀에게 제대로 된 휴식조차 주지 않았다.

         

       강행군(强行軍).

         

       끔찍한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거부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이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일정을 어떻게든 소화해야만 했다.

         

       왜냐고?

         

       이렇게라도 회사에 이득을 안겨주지 않으면 반드시 보복이 따를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것은 일종의 거래였다.

         

       다른 기획사로 가도 여론몰이로 이미지를 훼손하거나 인맥을 사용해서 방해하지 않는 대신에,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회사에 최대한의 이득을 주라는 거래.

         

       불공정한 거래였지만….

         

       어쩌겠는가.

       불공정하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어 달만 더 고생하면 끝이 난다는 것.

         

       그때를 위해서 그녀는 힘을 내고 있었다.

         

       희망이 있다면 버틸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자고 먹고 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강행군도.

       너무 피곤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날카롭게 대해지는 덕분에 평판이 안 좋아지는 것도.

       몇 년 동안 같이 지냈던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그녀를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냉랭하게 대하는 것도.

         

       모두 다 견딜 수 있었다.

         

       그래.

       모두 다….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하아….”

         

       하지만…힘들다.

       견딜 수는 있지만, 힘들기는 했다.

         

       그녀가 다른 연예인들처럼 정말 뼈밖에 남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작에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그나마 건강미니 꿀벅지니 하는 섹시 컨셉 때문에 살을 붙이고 근육을 붙인 덕분에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처지와 힘겨운 인생을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니, 어쩌면 한숨이 먼저 나오고 생각이 뒤에 따라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녀의 한숨을 듣기라도 한 듯 소리가 들렸다.

         

       똑똑.

         

       누군가가 차창을 두들기는 소리.

       노크 소리였다.

         

       움찔.

         

       그녀는 한숨을 하자마자 바로 옆쪽에서 들린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마치 누군가 귀를 대고 차 안의 소리를 듣고 있다가 노크 소리를 한 것처럼 타이밍이 너무나도 절묘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속으로 기획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계속해서 토해내고 있었지 않은가.

         

       그녀는 괜스레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눈치를 보며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똑똑.

         

       짙게 선팅이 되어있는 데다가, 어두컴컴한 주차장 안에 있기 때문일까.

       차창 밖은 잘 보이지 않았다.

         

       새벽 인적 드문 시골 도로를 달릴 때처럼 새까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고, 차창 앞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윤곽만 어렴풋이 보일 뿐이었다.

         

       ‘누구지? 취객? 팬? 기자?’

         

       사람은 맞다.

         

       하지만 저 사람이 과연 누구고, 어떤 목적으로 차를 두드린 것인가?

         

       술에 취해서 그냥 차를 두들기고 다니는 취객?

       아니면 음산한 분위기의 주차장에서 사람이 들어있는 차를 발견하고 짓궂은 장난을 치려고 하는 이상한 사람?

       공연을 보고 따라온 팬?

       아니면 기자?

         

       ‘가만히 있자.’

         

       그녀는 차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차 안에 아무도 없다는 듯 숨을 죽인 것이다.

         

       밖에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걸거나 접촉하면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이런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똑똑.

         

       밖에 있는 의문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차이네 씨.”

         

       남자는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차 안에 있는 사람이 연예인 차이네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남자는 공허한 곳에서 힘을 내서 발하는 듯한 어조로 차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차이네에게 말했다.

         

       “기자입니다. 잠시 인터뷰하고 싶습니다만. 잠시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기자.

       인터뷰.

         

       차이네는 그 두 단어를 듣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기자라는 족속과 얽혀서 좋은 일이 별로 없었고, 인터뷰해서 왜곡되지 않은 적이 없다.

         

       기획사가 잡아준 것조차도 그 지경인데, 이런 인적 드문 곳에서 개인적으로 접촉해온 기자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저 부름에 답해서 좋을 일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어떻게 믿겠는가.

       저 사람이 기자인지, 기자를 사칭한 사생팬인지 어떻게 아냔 말이다.

         

       차이네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차 밖에 이상한 사람이 들러붙어 있으니 빨리 오라고.

         

       혹시나 나갈 사람이라고 무시를 할까 봐 그녀는 뒤에 ‘빨리 오지 않으면 경찰에 연락하겠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괜히 경찰에 연락해서 기삿거리 만들어서 잡음 일어나게 하기 전에 알아서 튀어오라는 협박이었다.

         

       뒤에 협박을 붙인 덕분일까?

       매니저는 순식간에 문자를 확인하고는 ‘지금 가겠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그 문자를 보고 차이네는 안심하고 그대로 몸을 뉘었다.

         

       그리곤 기다렸다.

       어서 매니저가 오기를.

       어서 와서 저 사람을 내쫓기를 말이다.

         

       다다닥.

         

       시간이 약간 흐르자 발소리가 들렸다.

       차 밖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고, 곧 차 키가 짤그랑거리면서 내는 금속음이 들렸다.

         

       철컥.

       덜컹.

         

       그리고 곧 차 문이 열렸고, 운전석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하, 차이네 씨. 잠깐만 이야기하면 된다니까요.”

         

       왜소한 몸을 가진 남자.

         

       언제나 봤던 익숙한 매니저가 아닌, 낯선 얼굴을 한 남자였다.

         

       그 남자는 퀭한 눈으로 차이네를 바라보며 웃었다.

         

       “반갑습니다, 차이네 씨. 저는 사회부 기자, 이제순이라고 합니다. 잠시만 이야기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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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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