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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1

       “제겐 고민 한 가지가 있습니다.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종업원은 그리 말하며 손을 깍지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다. 거의 초면인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니?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남에게 말해도 되는 고민인가요?”

       

       내가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하고나 논의할 일은 아니죠.”

       “그런데 왜 손님인 저에게?”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지혜가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자가 넌지시 말한다.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전형적인 작업 멘트 아닌가?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고민상담을 해 달라고 하면 거부감부터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도 일단 무전취식한 게 있었기 때문에 종업원의 말을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꽤 어려운 고민인데, 털어놓을 사람이 딱히 없었어요. 괜찮다면 들어주기만 하셔도 돼요. 이걸로 치킨 값을 대신 내드릴 테니까….”

       

       듣고 조언만 한다고 딱히 돈이 나가는 건 아니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가 화색이 되어 말을 꺼냈다.

       

       “저에게는 존경하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학식도 높고 식견도 뛰어납니다. 저는 그 사람과 예전에 잠깐 만난 경험이 있었죠. 하지만 얼마 전 다시 그 사람과 만났을 때, 그가 저를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종업원이 말을 잇는다.

       

       “그 사람이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상관하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야 다시 만들면 되는 거니까요.”

       “그렇죠.”

       “그런데 약간의 미련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그 사람과 만나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이고 싶은데….”

       

       뭔가 미묘하면서도 간단한 고민이다.

       

       자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재회해서 회포를 풀고 싶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요?”

       “사회적으로 신분 차이가 너무 나요.”

       

       남자가 푸욱 한숨을 쉰다.

       

       “그 사람은 조금 있으면 대학 교수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분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저와 비슷할 겁니다.”

       

       종업원의 나이는… 못해도 20대 중반이다. 얼굴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사람과 비슷한 나이에 교수라고? 대충 서른 살에 교수직에 오르는 건가?

       

       미쳤군.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어렵다. 그것도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특히 지금 시대는 더더욱 그렇다.

       

       출산율 0.3대를 바라보고 있는 대한민국. 벛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히 문을 닫는다고 하지 않던가.

       

       당연히 임용되는 대학교수의 숫자도 옛날에 비하면 현저히 적어졌다.

       

       빽이 있거나 천재라도 되지 않는 한, 임용은 군필 미소녀를 보는 것보다 힘들 것이다.

       

       “그 사람이 곧 교수가 된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찾아보니까 그쪽에서는 꽤 이름이 있으신 분이더라고요. 그 나이에 허시 인덱스도 두 자릿수이시고.”

       “오….”

       

       허시 지표(h-index)라면 그거잖아, 그거. 연구자의 전투력.

       

       두 자릿수라면… 최소한 논문 열 편에 각 논문 인용 횟수도 10회를 넘겼다는 소리군.

       

       나이에 비해선 어마어마한 전투력이다.

       

       “평균적인 정교수의 허시 지표가 30 정도라고 하죠. 정확한 값은 분야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네. 대단한 사람이죠. 그에 비해선 저는 이 나이까지 변변찮은 직업 없이 식당 알바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왜 만나기 힘들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접점이 아예 없다.

       

       “꼭 만나야만 하는 사람인가요?”

       “가능하면 다시 만나 보고 싶습니다.”

       

       청년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결의라면 이유는 몰라도 도와주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심리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데.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니 어떻게 만나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때였다.

       

       “그 사람, 곧 교수가 된다고 하잖아. 그러면 그 아카데미에 학생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로즈마리가 고개를 까딱이며 그리 말했다.

       

       “그렇긴 하지.”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교수를 만나려면 대학에 가야지.

       

       “이 아이 말대로네요. 혹시 그 사람이 어느 대학에 임용되는지 알고 있어요?”

       “아, 예.”

       “어딘데요?”

       “서울대요.”

       “쓰읍.”

       

       빡세군.

       

       “지금 어느 대학 다니시는지 여쭈어 봐도 되나요?”

       “대학은 따로 안 나왔고, 군대 제대하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월세 내고… 그러고 사는 중입니다.”

       

       이 종업원도 나이가 있다. 지금 수능을 준비하는 데 심적 부담이 있을 것이다. 물론 수능 본다고 해서 바로 서울대에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편입학을 하기에도 뭣하다. 일단 학사학위가 있어야 한단 말이지.

       

       애초에 서울대는 편입으로 많이 뽑지도 않을 텐데. 그걸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수능 쳐서 들어가는 게 낫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막혔다.

       

       문득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그 사람 성함이 어떻게 돼요? 유명해요?”

       “아, 그건.”

       

       종업원이 말끝을 흐린다.

       

       때마침 그의 명찰이 내 눈에 들어왔다.

       

       김성현.

       

       처음 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다. 꿈에서 본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데자뷰가 느껴지는 듯한 이름이었다.

       

       “이태연.”

       

       종업원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이름이 이태연입니다. 나름 유명한 사람인데….”

       “…….”

       “물리학과에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푸흣, 하고 로즈마리가 마시던 물을 뿜는다.

       

       “이태연? 남자인가요?”

       “네, 남자입니다.”

       “이름이 왜 그래? 계집애 같아.”

       

       로즈마리의 말에 내 몸이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태연은, 지구에서의 내 이름이니까.

       

       로즈마리가 어떻게 한국식 이름을 두고 남녀 뉘앙스를 파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이 남자와 인연이 있었다.

       

       “물리학을 전공했다고요?”

       “네.”

       “서울대 출신이고?”

       “그렇습니다.”

       

       이러면 무조건인데.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나는 종업원이 끼고 있는 반지를 흘겨봤다.

       

       에메랄드를 세공하여 박아 넣은 것처첨 영롱하게 빛나는 판타지풍의 액세서리.

       

       뭔가, 저 반지를 보니 기억이 말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산길에 내려앉은 안개처럼 탁하고 흐릿하다.

       

       “저기요. 우리 어디서 만난 것 같지 않아요?”

       “네? 네. 저번에 한 번 만났죠.”

       “아뇨. 그 이전에….”

       

       따지고 보면 이상하다.

       

       이 종업원은 나나 로즈마리의 눈동자 색을 봤는데도 전혀 신기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렌스 대륙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반응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으나, 남자의 입에선 오묘한 말이 흘러나왔다.

       

       “손님과 그전에는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요?”

       “네. 만났으면 진작 기억했겠죠.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신데.”

       

       나는 남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러자 도리어 남자가 눈을 피하며 목을 큼큼 가다듬었다. 작업 거는 게 아니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설마 진짜 고민 상담만 하려던 건가?

       

       아무튼 기억에 공백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그게 맞다면 여신이 뭔가를 바꾸어 놓은 거겠지.

       

       그런데 그 조작 당했을지도 모를 추억이라는 게, 당최 무엇인지 떠오르질 않았다.

       

       날카롭게 재단된 비단처럼 기억에 아무런 혼선이 없다.

       

       이걸 알아내려면 방법이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사람과 친해지는 것.

       

       기나긴 침묵 끝에 내가 입을 열었다.

       

       “합격한다는 가정 하에 말씀드릴게요. 수능을 다시 보실 생각 있으신가요?”

       “네, 돈은 어느 정도 모아둬서요. 하지만 제가 잘할 수 있을지…….”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이런 말씀 하긴 부끄러운데, 이래 봬도 저 공부 좀 잘하거든요.”

       

       내 말에 종업원은 물론이고, 로즈마리까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어, 언니? 갑자기 무얼 멋대로 정하는 건가요?”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로즈마리는 눈치가 빠르니 알아차렸을 것이다. 수상할 정도로 내가 이 세상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이 더 크게 번지기 전에 선수를 쳐 두어야 한다.

       

       나는 로즈마리를 붙잡고 귓속말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흐음.”

       

       내 해명을 들은 로즈마리는 미묘하게 입매를 씰룩였다.

       

       그리 대단한 걸 얘기한 것은 아니다.

       

       장기 바캉스를 즐겨야 하는데, 돈도 없고 거주할 곳도 없어서 일단 눈앞의 남자에게 붙박이 생활을 하자는 제안을 했을 뿐이다.

       

       너무 양심이 없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였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야기를 들은 로즈마리도 어느 정도 납득하는 얼굴이고.

       

       로즈마리가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일어났다.

       

       “인간… 이 아니라, 현지인? 우리 큰언니는 명문 학교를 졸업하신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외지인처럼 보여도 당신이 그 학교에 입학하게 하는 건 쇼트 케이크 먹는 것만큼 쉬울 테죠. 그러니 아쉽지 않으려면 언니의 제안을 빨리 수락하라고요. 아시겠어요?”

       “잠깐만요. 수락이라뇨? 설마 저희 집에 와서 과외를 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러면 공부를 어디서 어떻게 가르쳐 주는데요? 집 말고 달리 없잖아요.”

       

       청년이 당황한 티가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처음 만난 여자 둘을 자기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나와 로즈마리는 지금 기계니까.

       

       만에 하나 영 좋지 못한 일이 터지더라도 거꾸로 제압할 수 있다.

       

       “자, 선택하세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리 언니의 속성 과외를 받을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서로 갈 길 가고 끝낼 것이냐.”

       

       로즈마리의 언변에는 탁월한 점이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정말 우리와 남남이라면 우리 제안을 거절하려 하겠지. 아무래도 그건 너무 나갔다고 하면서 말이다.

       

       반대로 나와 접점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로즈마리는 모르겠지만, 이 점을 정확히 파고 들어갔다.

       

       “하아….”

       

       남자가 한숨을 흘리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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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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