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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2

       비록 지금 은퇴하고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데케이는 프로로써 활동하던 사람이다.

       

       한 게임을 할 때마다 피드백을 받고 전략을 바꿔가면서 이리저리 움직였던 그는 화령이 해주었던 조언을 대충 머리에 쑤셔 넣어 둔 상태였다.

       

       “준비는 끝났느냐?”

       

       앞으로 나서는 데케이의 모습에 바루 컨셉의 플레이어가 나지막히 물었다.

       

       “부디 이번에는 본인을 즐겁게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력을 다하겠다는 데케이의 말에 가감은 없었다.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면 화령과의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던지라.

       

       프로에 복귀할 것도 아닌데 죽을 각오를 하며 구르고 싶진 않았던 데케이는 최소한 화령이 만족할 만큼의 결과물을 내고 싶었다.

       

       사실 이외에도 이유가 몇 가지 존재하긴 했다.

       

       일방적으로 처발리는 것보다는 한 번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마이튜브 조회수가 잘 뽑힌다거나.

       

       [한 대만 때려 보자!]

       [성공시 100,000원.]

       

       지금 그의 눈 앞에 아른거리는 미션금을 반드시 받고 싶다거나 하는 이유가 말이다.

       

       [30초 뒤 게임이 시작됩니다!]

       

       리벤지가 시작되고서 떠오른 문구를 확인한 데케이는 심호흡을 하며 방금 전 화령이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우선 해야 할 것은 무의 이치를 잊는 것.

       

       ‘알겠느냐? 작금의 그대는 무의 이치를 실전에 적용시키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 그대의 육신에는 과거 잘못된 버릇의 흔적이 너무도 많이 남았으니. 당장의 승리를 추구하기 위해선 그를 버리는 편이 낫다.’

       

       이치를 추구하는 것은 중요한 일 순 만. 그 전에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하는 편이 나을 거라 하셨으니.

       

       머리에 새겨두었던 무의 이치를 잊고 평소 하던 대로 자세를 취한 순간 데케이는 몸이 가벼워 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억지로 올바른 자세를 취하다 다시 불량한 자세를 취했을 때의 편안함. 이것이 옳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당장의 승리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흠? 자세가 달라졌구나.”

       “진심을 다하기로 했거든요.”

       “여태까지는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런 것치고는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만.”

       “보면 아실 겁니다.”

       

       데케이는 바루의 도발에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방금 전 화령이 해 준 조언은 훈수임과 동시에 일종의 계획서였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한 다음 이렇게 하면 한 방을 먹일 수 있을 거라는 그녀의 말은 꼭 스피드런을 하는 고인물이 내뱉는 말과 비슷했지.

       

       보통 사람이 그런 식으로 이야길 했다면 데케이는 웃어 넘겼을 것이다.

       

       이건 평범한 RPG게임이 아니라 실시간 대전게임이니까.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모든 상황을 어찌 예측하겠는가.

       

       허나 이번에 그에게 조언을 한 사람은 화령이었다.

       

       기캐릭터의 메타 자체를 바꾼 사람이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현 가상현실 최강의 존재.

       

       그녀의 계획은 계획이 아닌 예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데케이가 하는 것은 그녀의 예언을 정확하게 실행을 시키는 것.

       

       예언의 난이도가 워낙에 드높았던지라 데케이는 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화령은 그에게 단언했다.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기에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의심하지 마라. 생각하지도 마라. 그냥 움직여라. 그럼 그대의 앞에 승리가 배달될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무어. 본인의 탓을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리 이야기를 하는 화령은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저런 사람이 프로팀의 코치나 감독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데케이가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새 카운트 다운은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3]

       

       자. 준비하고.

       

       [2]

       

       심호흡하고.

       

       [1]

       

       좋아.

       

       [게임 시작]

       

       가자.

       

       시작 문구가 떠오르자마자 데케이가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누구라도 궤적을 예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돌진. 그 모습에 바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술을 펼친다.

       

       “통하지 않는단 걸 알지 않으냐?”

       

       그녀의 옆에 몇 개의 채찍이 떠오름과 동시에 데케이의 발 밑에 있는 물이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데케이가 공격을 시도하며 몇 번이나 겪었던 일. 여태까지 데케이는 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화령이 알려준 것이 있으니까.

       

       발 밑에 도술이 펼쳐지는 걸 감지한 데케이가 주먹을 위로 치켜든다. 무의 이치를 생각하고 움직일 때에는 이 주먹 한 번 쓰는 것에도 긴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겉멋으로 유명한 천마 캐릭터를 내가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데! 일권을 만들어 내는 것 정도야 별 일 아니지! 콰앙! 그의 주먹이 수면에 닿은 순간 모여들던 물이 비산했다.

       

       그에 따라 데케이의 주변에 대지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의 움직임을 방해할 물은 존재치 아니했다.

       

       “그럼 무얼 하느냐. 여전히 그대를 노리는 것들이 가득하거늘.”

       

       허나 이는 마냥 이득을 본 것은 아니었다. 주먹을 내리친다는 동작을 취하는 동안 이미 그의 앞에 물로 이루어진 채찍이 도달해 있었으니까.

       

       총 합 여덟 개에 달하는 채찍의 연계. 피하려고 발악하더라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공격.

       

       이전의 데케이는 저를 보고서 뒤로 물러섰다.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였기에. 그러지 않으면 저 채찍에 농락당하다 패배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허나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내기를 가득 실은 발걸음이 땅을 뒤흔든다.

       

       진각.

       

       화령의 걸음과 비교하면 어설프기 그지 없고,

       

       한서우를 비롯한 여러 프로에 비해서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 걸음은 분명한 진각이었다.

       

       “가자!”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중요한 때.

       

       무의 이치를 시현하는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채찍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던 데케이는 자신의 일권이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콰아앙! 그리고 그 확신은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어냈다.

       

       채찍을 이루던 물이 흩어짐에 따라 상대로 향하는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 바닥을 내리친 것은 탈출을 위함이 아니라 공격을 위한 준비였던게로군.”

       

       보법을 밟아가며 내달리는 데케이를 보며 바루 컨셉의 유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거리에서 상대를 괴롭혀야 할 도술사가 거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에게 휘말려 패배할지도 모르는 위기이거늘 정작 그녀는 너무도 여유로웠다.

       

       뭐지?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데케이는 다음 일격을 준비하면서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의 발은 이미 상대의 앞에 닿아 있었으니까.

       

       생각하지 마.

       

       어차피 내가 할 행동은 정해져 있어.

       

       상대가 무얼 하더라도 그걸 부수면 그만이야!

       

       “좋아. 진즉에 이랬어야지.”

       

       그가 어깨를 뒤로 빼는 그 순간 바루 컨셉의 유저가 키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지팡이를 움직였다.

       

       데케이는 도술에 대해서 모른다.

       

       당연히 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그를 감지하는 법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케이는 느꼈다.

       

       주변의 공기가 뒤바뀌는 것을 말이다.

       

       “다시 한 번 돌파해보게. 이번엔 제대로 막아 보일테니.”

       

       바람이 불어온다.

       

       처음에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자그마한 바람이.

       

       그 뒤를 잇듯 호수의 수면 위에 파도를 만들어 내는 거대한 바람이.

       

       마지막으로 대지를 뒤엎으며 해일을 만들어 내는 거대한 폭풍이.

       

       데케이는 그를 보면서 주먹을 내지르려다 말고 헛웃음을 흘렸다.

       

       예전에 했던 말 취소.

       

       설마 화령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리 없다 그랬는데.

       

       있네.

       

       있어.

       

       검은 화면을 마주했다가 다시금을 눈을 뜬 데케이는 패배라는 글자를 보고서도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피곤했다.

       

       마이튜브 각이고 미션이고 나발이고 정신적으로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살펴 보는 것도. 상대를 향한 감탄과 데케이의 처참한 실패를 향한 웃음이 담긴 후원에 답해주는 것도.

       

       아아. 젠장. 화령님! 이런 건 예정에 없었잖아요!

       

       한 방 먹일 수 있을 거라면서요!

       

       앙대잖아!

       

       …설마 마지막에 살짝 망설여서 그런가? 그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가?!

       

       “민가의 지인아.”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갤 돌린 데케이는 자신의 옆으로 와서 똘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바루 컨셉의 유저를 마주했다.

       

       “자. 바로 시작하자꾸나! 이번에는 내 다른 방식으로 해보도록 하겠다!”

       “…또요?”

       

       저 힘든데요? 마이튜브 영상은 충분히 찍었으니까 슬슬 도망치고 싶은데요?

       

       탈주하고 싶단 생각이 스멀스멀 차오르던 데케이였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도망은 허락되지 않았다.

       

       – 넌 못 지나간다!

       – 방송 끄기만 해 봐.

       – <화형당하는 엔리콘> 확 불지르는 수가 있어.

       

       방송을 보는 이들이 채팅으로 협박을 했고.

       

       – 바루기여어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어허. 어디 가려고. 바루랑 더 놀아 줘야지.]

       

       그 중에서 적극적인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서 데케이를 때렸으며.

       

       “쯧. 내 이기는 방법을 다 알려 줬거늘. 다시 한 번 해보자꾸나.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화령이 데케이를 그를 보챘으니까.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데케이는 이내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는 얌전히 리벤지를 수락했다.

       

       *

       

       “그게 진짜 바루님이셨군요.”

       “그래!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 데케이라는 녀석이 덤빌 때마다 전략을 바꿔오는 게 얼마나 즐겁던지! 여러 도술을 펼쳐볼 수 있어 재밌었다!”

       

       활짝 웃는 바루는 아피스라는 게임이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제한된 기운을 활용하며 싸우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다면서.

       

       다음엔 데케이 녀석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보고 싶단 그녀의 말에 나중에 한서우라도 데려와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바루가 호들갑을 떠는 걸 지켜보고 있으려니 얼마 안가 시켜두었던 것들이 나왔다.

       

       나와 엔리가 시킨 것은 항상 비슷한 것이었지만 바루의 것은 달랐다.

       

       탁자에서 자신의 코 앞까지 오는 거대한 파르페를 마주한 그녀는 즐거운 웃음과 함께 숟가락을 치켜 들었지.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뭐 남으면 나와 엔리가 처리하면 될 일이니.

       

       “아라님. 브이로그 찍으셔야 한다고 하셨죠?”

       

       바루가 파르페에 몰두하느라 입을 다물었기에 엔리가 자연스레 일 이야기를 꺼냈다.

       

       “네. 일상 채널에 올릴 게 없다 그러셔서요.”

       “저 안 그래도 생각해둔 게 하나 있긴 해요.”

       “뭔데요?”

       “요리 배우셔야죠! 화령냥이 하셔야 하는데!”

       

       …젠장. 제발 좀 잊어주면 안되느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령냥이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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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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