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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2

    <382 – 구두소리>

     

    포인트는 학년이 오를수록 중요하다.

    도로시의 기지는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테트라포스가 진급에 필요한 포인트가 부족해서 허덕이는 보통의 3학년이었다면 말이다.

     

    스스슥.

     

    “어라?”

    “아쉽게 됐구나. 네 기발한 작전이 통하지 않아서.”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아카데미 학생들은 포인트의 노예여야 하는데.

     

    투두둑.

     

    도로시의 몸에 두른 푯말들이 뚝 떨어졌다.

    푯말과 함께 실에 베인 몸에 난 상처보다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은 상대의 대응이 더욱 쓰라렸다.

     

    “이 아카데미는 말이지, 실력이 있는 놈들에게는 선악에 관계없이 언제나 포인트를 퍼준다고. 네가 보아온 포인트거지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말이다.”

    “으으, 이건 반칙이야. 그렇게 강하면서 약점도 없다니, 그럼 저희가 못 이기잖아요!”

    “하하. 강함이 비겁함이라면 약함은 정당하다는 거냐? 그거 참 형편 좋은 변명이구나. 자신의 약함을 언제나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란!”

     

    소리 내어 크게 웃던 테트라포스 선배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우는 소리를 하는데도 도로시의 눈에서는 결코 겁에 질린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호오. 너, 지금 시간벌이를 하는 거냐?”

    “설마요. 저는 숲지기일 뿐인 걸요!”

    “하면 네 몸에 다시 달라붙는 그 푯말은 뭐냐.”

     

    도로시가 살살 눈치를 보던 표정을 그만두고 헤헤 웃었다.

     

    “모처럼 좋은 방패를 얻었는데 한 번만 쓰고 버리기는 그렇잖아요? 그래서 부위지정 복원주문을 걸었죠. 이 푯말은 앞으로 몇 번이든 복구될 거예요!”

     

    즉석에서 스스로 수복되는 푯말의 성질을 이용하여 방어구를 엮어냈단 말인가?

    테트라포스는 후배의 손재주가 대단함을 인정했다.

     

    “네 재주가 평범한 1학년으로 끝나지는 않겠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견습숲지기 도로시!”

    “그래, 숲지기 도로시야. 오늘 널 쓰러뜨리더라도 그 이름은 기억해주마. 언젠가 내게 이름을 알린 보람이 있음을 깨닫게 될 거다.”

    “선배는 뭐하는 사람인데요?”

    “976기, 생산학부 3학년 테트라포스. 만일 네가 2학년이 되어 생산학부로 들어오거든 필시 내 이름을 들을 날이 생길 거다.”

     

    자신감이 굉장한 선배님이구나.

    하긴 3학년이면 누구든 자신이 넘칠 만도 했다.

    이런 아카데미에서 3학년이 되었다면 충분히 놀라운 일이지.

     

    “흥. 그래도 선배님은 여길 못 떠나요. 저는 다른 애들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을 거고, 계속 선배를 방해할 거니까.”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잔악혈조술>

    <혈계철선>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를 일격에 날려버렸던 혈계철선이 이번에는 도로시를 노렸다.

    모두가 힘을 합쳐 마나실드를 세우고 몸으로 헥토르의 뒤를 받쳐주었던 직전과 달리, 도로시는 함께 버텨주고 피해를 경감해줄 동료도 없는 상황!

    푯말 따위 한 순간에 다 쓸려나가고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구르게 될 것이 틀림없다.

    서있는 것이 고작인 자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무리다. 도망쳐.”

    “늦었다. 만용의 대가를 치러라, 후배.”

     

    중첩된 실들이 굵은 핏빛선이 되어 도로시를 덮쳤다.

    일격에 떨어져나간 푯말과 바닥을 구르는 도로시.

    자쿠의 막막함과 달리, 테트라포스 선배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목각인형? 사람의 형상으로 꾸민 분신인가!”

    “<꾸미기> 기능을 200까지 올리면 개방되는 <분신제작>기능이에요.”

     

    쓰러진 도로시의 옆으로 푯말을 두른 도로시가 걸어나오며 말했다.

     

    “숲에서 마주치면 살해당하는 적을 만날 때마다 인형 만들면서 쓴 기술인데 감쪽같죠?”

     

    그런 도로시의 뒤로 또 다른 도로시가, 연이어 또 다시 도로시가 나왔다.

    푯말을 갑옷처럼 입은 우스꽝스러운 차림새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지만 저 기괴한 차림새는 몸의 관절부위를 모두 가리고 있었다.

    덕분에 보행이 어색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처음부터 분신을 써먹을 목적으로도 만든 푯말갑옷에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분신제작][꾸미기][마나부여][원격조작]

     

    분신에 붙은 푯말이 떨어져나간 부위를 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살 대신 자리한 목판 위에는 여러 개의 술식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대체 1학년이 어디서 이런 테크닉을?”

    “오크노디의 종이비행기를 보고 배웠죠! 덤으로 필기노트를 베끼면서 숙달했고요.”

    “거기구나!”

     

    소리를 따라 날아간 실이 그늘 뒤에 숨었던 목각인형을 박살냈다.

     

    “이것도 오크노디를 보고 배웠고요. 발성마법을 걸어두고 다른 곳에서 소리를 내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잖아요?”

    “하. 재주가 많은 건 인정하마. 그래도 이까짓 것 무시하면 그만이지.”

    “그렇게 둘 수는 없죠!”

     

    어색한 걸음으로 테트라포스 선배를 향해 다가가던 분신 하나가 반짝 하고 빛났다.

     

    “?”

     

    반짝. 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반짝반짝.

    반━짝━!

     

    갈수록 빠르게 반짝이던 분신이 환한 섬광에 휩싸이더니 테트라포스 선배의 지척에서 그대로 에너지를 터뜨리며 폭발했다.

    실을 원형의 막으로 펼쳐 폭발을 막아낸 테트라포스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분신을 쳐다봤다.

     

    “힘을 소진시키지 않으면 목표에게 접근해서 폭발하는 술식까지 새긴 건가?”

     

    이래서는 가볍게 무시할 수도 없다.

    작정하고 따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적당히 위험도가 낮은 길로 피해가야지.’

     

    그래봤자 분신.

    걸음걸이도 어색하다.

    자폭도 따라잡지 못하면 소용없다.

    이런 추적술식은 보통 유효사거리도 한계가 있으니 필시 몇 개의 퀴즈푯말을 거치면 알아서 어디선가 폭발하거나 작동을 정지할 것이다.

     

    “이런, 선배가 달아난다!”

    ‘멍청한 녀석들. 달아나는 게 아니라 죽일 수 없어서 살려주는 거다.’

     

    아카데미 밖에서라면 목에 구멍이 뚫렸을 헛소리에 열불이 났지만 테트라포스는 불같이 끌어오르는 감정을 빠르게 가라앉혔다.

    이런 가벼운 도발에 발이 느려져서야 학생회를 피해 도망 다니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물며 바깥세상에서라면 죽음을 면치 못하겠지.

     

    ‘안녕이다, 애송이들. 내년에 다시 보자고.’

     

    유유히 자리를 떠나려던 테트라포스의 귓가에 귀를 사로잡는 명쾌한 발소리가 울렸다.

     

    ━또각.

    구두소리.

    마치 머리 위에서 뇌에 대고 소리를 전달하는 것만 같은 또렷한 소리가 어떠한 징후도 없이 지척에서 들렸다.

    테트라포스의 몸에 오싹한 공포심이 스쳤다.

    전혀 잡아내지 못했다.

    시종일관 기감을 널리 퍼뜨려 소리에 귀 기울였거늘 단 한 번도 접근을 눈치 채지 못했다.

    학생회 임원 벨벳의 경지가 그의 인지보다 훨씬 상회하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였다.

     

    이탈해야 한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지금 당장!

     

    “3학년? 왜 저렇게 다급하게 도망쳐 오는 거지?”

    “저 사람, 엄청나게 피냄새가 나.”

     

    하필이면 그가 진입한 길에는 마법사로브를 두른 1학년들이 잔뜩 있었다.

    테트라포스는 자신의 출신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마탑쟁이들의 표식에서 그들의 소속을 파악했다.

    대지술사. 화염술사.

    공식으로 소속을 인정받지는 못해도 색을 지닌 마탑의 마법을 배운 견습 미만의 자유마법사들까지.

    그러나 가장 그의 눈길을 끄는 이는 누구보다 눈부신 마력을 지니고도 어떠한 표식도 달고 있지 않은 가장 허름한 로브를 뒤집어쓴 은발의 여인이었다.

     

    “저 방면은 도로시가 있던 곳. 임전태세를 갖춰.”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선언과 동시에 마법사들이 빠르게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1학년이라 다행이군.

    테트라포스는 시간이 걸리는 주문을 외우는 몇몇 덕분에 화망이 그리 촘촘하지 못하고 충분한 상태이상마법으로 자신의 발을 묶을 수도 없음을 알았다.

     

    <잔악혈조술>

    <방어술 – 혈린갑>

     

    전신에 실로 만든 갑옷을 두르며 돌격하는 테트라포스의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돌진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대부분의 마법은 조준점을 지나쳐 눈에 담을 수도 없고, 조준이 필요 없는 마법은 혈린갑에 막혀 충분한 위력과 상태이상 누적을 가하지도 못했다.

     

    ‘엄청난 실전경험을 지닌 강자!’

    ‘역시 3학년인가?’

     

    그러나 샌드쿠커가 들어올린 대지의 벽과 로지니가 피워올린 화염방사는 테트라포스가 향할 진행방향에서 좌우측면과 상단을 빼앗았다.

    오직 정직하게 정면으로밖에 돌파할 수 없는 테트라포스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북부대공녀 아이린.

    화력으로는 2학년 상급반의 일원 백색의 성기사 루에게도 견줄만한 강자가 그녀였다.

     

    ‘2학년과 3학년은 천지차이. 하지만 1학기의 나와 2학기의 나도 천지차이야.’

     

    아이린은 줄곧 보았다.

    오크노디의 여정을.

    그리고 체감했다.

    더 강한 힘의 필요성을.

    저만한 강자를 영입하려면 호감작만으로는 안 된다.

    그녀 본인부터가 오크노디의 옆에서 떨어져나가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지녀야 한다.

     

    <5위계 – 프로스트 밤>

     

    샌드쿠커가 만들어낸 길을 따라 얼어붙은 얼음들이 로지니의 화염방사로 인해 팽창하며 사방으로 혹한의 얼음파편을 흩날린다.

    실을 둘러도 피할 수 없는 몸의 얼어붙음!

     

    <3위계 – 급속동결>

     

    흩날리는 파편을 다시 한 번 얼리며 이중동결을.

     

    <2위계 – 빙결>

     

    발이 느려진 대상에게 지정주문으로 삼중동결을.

     

    <2위계 – 워터 밤>

    <3위계 – 서리바람>

    <2위계 – 강풍>

     

    연이은 후속주문으로 속박의 지속시간과 위력을 증강하며 계속해서 발을 묶는다.

    그 틈에 머뭇거리던 모든 마법사들이 다시금 영창을 끝마치며 마법을 날리니, 테트라포스의 몸이 커다란 얼음에 둘러싸여 꼼짝도 못하고 수십 개의 마법을 연달아 맞았다.

     

    ‘이 정도면 쓰러지겠지?’

     

    모두의 기대를 꺾듯이 꽁꽁 얼고 깨져 너덜너덜해진 실갑옷 너머로 더욱 새빨간 피로 맺힌 혈갑옷이 나타났다.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빌어먹을 햇병아리들아. 갈취한 피보다 더 많은 피를 쓰기 시작했다고.”

     

    테트라포스의 두 눈 가득 피어나는 혈광에서 전해지는 압도감에 아이린을 포함한 모든 마법사가 바짝 얼어붙어 감히 마법을 날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손대중을 한다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이었나?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한 놈 죽여봐?

    살심을 품으며 한손 가득 핏빛으로 뭉친 둥근 고리를 형성하던 그의 귓가에 또 다시 소리가 들렸다.

     

    ━또각.

     

    망할 구두소리.

     

    “운 좋은 줄 알아라, 애송이들.”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도 못하는 이들의 옆을 테트라포스가 유유히 지나쳤다.

     

     

    * * *

     

     

    “이게 진짜 되네?”

    “3학년들은 구두소리 트라우마가 있거든!”

     

    도서관원정에 필요한 물건이라며 배낭에서 구두를 꺼내 양손에 장착한 오크노디를 보며 의아하던 즈앙도 이제는 구미가 당겼다.

     

    “구두 한 켤레 더 있어?”

    “있어!”

    “나도 해볼래.”

     

    구두소리가 두 배로 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들 환풍구에서 구두 가지고 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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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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