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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2

       

       

       『……저 곰도 놀랐을 걸. 그보다, 동굴 밖에 이런 지형이 있었네.』

       

       나는 뻥 뚫린 구멍을 통해 동굴 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대강 둘러보니, 서늘한 한랭기후의 산간지대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주변 풍광을 둘러보기도 잠시,

       

       —키에에에에에-엑!

       

       곰 마수의 피 냄새를 맡아서인지 아니면 우리를 먹잇감으로 인식해서인지, 하이에나와 비슷한 역할을 하겠지 싶은 중소형 마수 세 마리가 달려들어왔다. 

       

       ‘역시 마수가 꽤 있었군.’

       

       예상대로, 마문 근처에서 조금만 나가도 중소형 마수가 꽤 많았다. 그동안 마문으로부터 마수가 튀어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마 마문이 외진 곳에 막혀있던 좁은 동굴 속이라서 그랬겠지. 

       

       파삭! 나는 칼을 발도함과 동시에 한 놈의 목을 베어내고 한 놈의 다리를 잘라냈다. 무라사끼 녀석도 한 놈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이후에도 비슷한 중소형 마수가 여럿 달려들었지만 대부분은 양복자와 이유하가 적절히 처리했다. 마수들에게 수십 미터 위의 공중으로 솟구치는 발사체험이나 전신이 얼어붙는 급속냉동을 경험시켜 주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십수 마리의 마수를 처리하고 나니, 이 근방에는 더 없었는지 이어서 달려드는 마수는 없었다. 

       

       『그다지 강한 마수는 아닌 듯 하오.』

       『그야 우리가 너무 강하니까! 그나저나, 뎃 군!』 

       

       그래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쉬던 도, 양복자가 물어왔다.

       

       『여기서 잡은 마수에서 나온 마석은, 다 우리 꺼지?』

       『뭐, 당연히 그렇지?』

       『이예-이! 그럼, 마석 채취하자! 우리 금방 부자되겠어!』 

       

       양복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쓰러진 마수들의 시체에 다가갔다.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마문에 출입할 수 없는 학생 신분이라, 여기서 마석을 모은다고 해도 나가서 팔기는 어렵겠지만…… 마석은 능력치 향상에도 도움이 되니까 나쁠 것은 없겠지. 

       

       ‘흐음.’

       

       나는 분대원들이 마수로부터 마석을 채취하는 모습을, 정확히는 시체가 된 마수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다 잡몹들이야.’ 

       

       우리가 이런 잡몹따위는 가볍게 상대할 정도로 강해진 것도 있지만, 사실 어지간한 헌터—엽사라면 쉽게 잡을 만한 중소형 중하급 잡몹들이었다. 

       

       사실 이계에서 나오는 대다수의 마수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이계의 위험도는 딱 평균이거나 평균보다 살짝 낮은 정도.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주위 풍경을 바라보며 이 이계에 대한 평가를 이어갔다. 

       

       자연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다. 지구의 그것처럼 파란 하늘로 둘러싸인 대기는 무리없이 호흡도 가능하고, 자생하는 이계 식물들은 식용 가능한 종류도 몇 있다. 

       

       중력이 지구보다 살짝 낮은 느낌은 있지만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흙이 촉촉한 것을 보면 그리 건조한 환경이 아니니 어딘가에는 강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좋은 곳이네.’

       

       이계라는 곳이 워낙 하나같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개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미래라면 기업이나 길드, 지금이라면 각종 엽사조합이나 동양척식회사가 눈독들일 만한 곳이다. 하지만……

       

       ‘그럼 뭐하냐. 나한테는 좀 애매한데.’

       

       가용인원이 적은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저번 동소문 마문 때처럼 이계 전체가 그냥 동굴같은 지형이어야 좋았다. 그 편이 소수의 인원이 탐사하고 공략하기 용이했으니까. 이런 개방되고 광활한 환경의 이계는 공략하기 나쁜 것이다. 

       

       ‘우리끼리 탐사하다간 뒤지기 딱 좋겠지.’

       

       정글까지는 아니지만 나름 숲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뒤덮고 있었고, 산의 지형 자체가 험준하고 광대했다. 

       

       이런 험한 산악지대를 고작 몇 명이서 무턱대고 돌아다니다간, 사방에서 몰려오는 마수들에 둘러싸이기 딱 좋다. 하나하나가 강한 마수는 아니지만, 워낙 수가 많다보니 우리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테고. 

       

       하여간, 공략해서 적절한 용도로 쓰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거나,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이계였다. 

       

       ‘……리셋할까?’

       

       저번 동소문 마문 때처럼 적석에 새겨진 회로를 망가트리면 이 이계와의 연결은 끊긴다. 그리고 다시 스테이터스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회로를 재구축하면, 새로운 이계와 매칭되겠지.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마력 회로를 재구축하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마력량으로는 부족해서 마석이 꽤나 많이 필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게다가 새로 연결된 이계가 얼마만큼 마음에 드는 이계일지도 알 수 없다. 무작위 매칭이니까 정말 위험하거나 영 못써먹을 이계로 연결될 수도 있겠지. 

       

       잠시 고민한 나는, 그냥 이 이계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잡몹 뿐이라고는 해도 간간히 마수를 사냥하고 싶을 때 유용하리라. 

       

       그리고 앞서 우리가 빠져나온 동굴은 나름대로 안전했으니, 좀 좁기는 해도 그곳을 임시 대피소로 만들어도 되겠고. 

       

       무엇보다, 지금의 나한테나 애매할 뿐 이런 개척하기 좋은 환경의 이계와 연결된 적석이라면, 나중에 미국에 갔을 때 비싸게 팔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마지막의 이유가 가장 컸다. 나중에 미국 갔을 때 풍족하게 살만한 밑천은 꼭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돌아가자.』 

       

       우리는 온 길을 되짚어서, 마문을 통해 가게의 지하실로 돌아왔다. 

       

       마문을 통과한 분대원들은 이번에도 속이 울렁거린다고 또 뉴비처럼 우웩거렸다. 뭐, 얘들도 차차 익숙해지겠지.

        

       시간을 확인하니 이제 막 정오를 넘겼다. 짧은 시간 치고는 큰 수확이었다. 

       

       나는 적석을 꺼내들어 마문을 닫은 뒤, 주머니에 넣었다. 잡몹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걸 확인했으니, 항상 열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지하실 문을 열기 위해 다가가는데, 

       

       ‘쪽지? 메모?’

       

       아까는 없던 종이 한 장이 문고리에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우리가 이계를 탐사하는 동안 함서주가 두고 간 것이겠지.

       

       “잠깐! 조용히.”

       

       나는 녀석들을 조용히 시킨 뒤, 메모를 읽어보았다. 

       

       [島津의 놉픈 아가씨 急來! 學生손님 차저요. 市內 갓다구 얘기.햇더니. 막무가내! 올때까지 기다릴려구.마냥 눌러안잣겟지요. 오실때 조심!] 

       

       함서주가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는, 시마즈의 높은 아가씨, 즉 렌까가 갑자기 나를 찾아와서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렌까가?’

       

       그러고보니 방학식 이후로 여태까지 일주일간, 간단한 안부인사 말고는 연락이 없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직접 찾아와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는 것일까.

       

       나는 분대원들에게 메모 내용을 보여주고는 말했다.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줘. 우루루 나오면 의심스러울 테니까.” 

       

       나는 혼자서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향했다. 

       

       지하실 계단은 가게 앞쪽이 아니라 방을 사이에 두고 뒷쪽, 그러니까 부엌 쪽과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올라와서, 빙 돌아 앞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날 기다리는 모양이네.’

       

       가게 앞 골목에 렌까의 자가용인 1937년형 뷰익 스페셜이 주차되어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딴데 갔다가 돌아온 것마냥 가게에 들어섰다.

       

       “서주야, 나 왔어! 가게에 별 일 없었지?”

       “오셨어요. 그보다 안에 손님이……”

       “응? 손님이?”

       “네. 방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역시 내가 나갔다가 돌아온 것인 양 연기에 맞춰주는 함서주. 물론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렌까가 조선어를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의심하지 않을테니까. 

       

       나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미닫이문을 열었다. 예상하고 있었듯, 

       

       『아라, 시라바야시 상! 이제 오는군요.』

       

       안쪽 방에 정좌하고 앉아있는 렌까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이 살짝 놀라는 티를 내며 말했다. 

       

       『어! 손님이라 해서 누군가 했더니, 렌까가 와 있었네!』 

       

       좋아. 자연스러웠어. 내가 신을 벗고 방 안으로 올라서자 렌까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경성 부내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으응. 가게 명의나 뭐 그런 것 때문에 서류 부칠 게 좀 있어서. 근데 너는 무슨 일로? 전화도 없이.』 

       

       대충 핑계를 둘러대고 마주앉으며 렌까에게 묻자, 렌까는 다소 진중해진 어조로, 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전화보다는, 직접 전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라서요.』 

       

       방금 전까지 짓고있던 미소까지 거두고 어쩐지 어두운 표정이었다. 이렇게까지 분위기를 잡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전에 말한 ‘개혁’ 얘기를 나누러 왔나? 그런 것이라면 확실히,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비밀스럽게 꺼낼만한 이야기이긴 한데…… 

       

       렌까의 표정이 이렇게 어두운 것을 보면, 뭔가 잘못된 것일까?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 아버지—시마즈 당주—에게 발각되기라도 한 것일까? 괜히 나까지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타는 목을 적시기 위해 물을 마시며 물었다.

       

       『그 중요한 이야기라는게 뭔데?』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

       

       푸-웃!

       

       마시던 물이 분출했다. 설마 내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얘를 부적절하게 건드린 적이 있었는지, 죽기 직전 주마등 펼쳐지듯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과거들. 온갖 상념이 총알 날아다니듯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런데, 내가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그 물을 뒤집어 쓸 뻔한 렌까는— 

       

       『아하하핫! 아하핫! 농담, 농담이랍니다! 아하핫! 뭔가요, 그 얼굴은!』 

       

       하고 입을 가리고는 눈물이 나도록 깔깔대며 웃는 것이다. ……농담이라고? 농담? 

       

       ‘미친 년인가 진짜. 이게 재밌냐.’ 

       

       농담을 해도 이런 농담을 하다니, 설마 진짠 줄 알고 주마등 매드무비를 뇌내재생한 내가 바보 천치지. 나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농담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아하핫…… 흠흠. 실은, 당신도 그리고 저도 적잖이 긴장되어있는 듯 해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일부러 짖궃은 농담을 꺼내 보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어요.』

       

       하나도 재미는 없었지만 하도 어처구니없어서 긴장이 풀리긴 풀렸다. 이래서야 렌까가 무슨 얘기를 꺼내도 곧이 곧대로 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정말 중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들어봐야겠지.

       

       『뭔데.』

       『당신이 치러야 할, ‘시험’에 대해서입니다. 시험 일정이 정해졌거든요.』

       『시험……? 아.』

       

       내가 치러야 할 시험이라면, 그리고 그 얘기를 렌까가 직접 전하기 위해 굳이 여기까지 왔을 정도면, 뻔한 학교 시험 얘기가 아니라 그거 얘기겠지. 

       

       ‘대동아공영회 입회 시험.’ 

       

       저번에 내가 렌까의 집에서 까뜨린느 소동을 해결하고 당주와 전화통화를 했을 때, 시마즈 당주는 수화기 너머로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너 시라바야시여, 본회에 들었다고 안심하지 말지어다. 너는 쓸모를 보이는 만큼 쓰일 것이며, 쓸모를 보이지 못하면 처분되리. 조만간 너를 다시 한 번 시험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때 당주는, 나를 대동아공영회에 정식으로 입회시킬지를 결정할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었다. 그게 5월 31일의 일이었으니,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난 셈이었다.

       

       그 시험이라는 것을 도대체 언제쯤 내리나 기다리다가 이제는 반쯤 잊어먹고 있었는데, 슬슬 얘기를 해주려는 것인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빨리 치르는 것이 좋겠지.’ 

       

       대동아공영회 내부에서 지금 나의 입지는 일종의 임시 회원. 

       

       저번에 형광화 제조공장이나 서봉도 연구소같은 대동아공영회의 시설에 들어갈 때마다 당주나 렌까와의 친분을 이용한 적은 있어도, 실질적인 권한은 일절 없는 애매한 상태였던 것이다.

       

       대동아공영회에 정식으로 입회해야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나 장소도 늘어날테니, 앞으로 사보타주를 제대로 하려면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을테고 말이다. 나는 렌까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시험을 언제 치러야 할지 말해주러 온 거야? 나는 바로 내일이라도 가능한데.』 

       『3시간 뒤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자아, 밖에 차가 대기중이니 저와 함께 가시죠.』

       

       아니,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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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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