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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2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종업원은 나와 로즈마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자를, 그것도 두 명이나 혼자 사는 집에 들인다는 걸 탐탁지 않아했지만 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김성현은 이태연이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 말이지.

       

       “실례하겠습니다.”

       

       나와 로즈마리는 구두를 벗고 현관에 들어왔다.

       

       보증금 500에 월세 85만원인 신촌 원룸.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싱글 사이즈 침대와 책상이다. 그 옆으로는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었다. 밥 먹을 때 놓고 쓰는 탁자도 하나 보인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남자 혼자 쓰는 방치고는 그렇다.

       

       “얼마 전에 대청소를 했거든요. 아마 다시 더러워질 것 같긴 한데….”

       

       청년, 김성현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가볍게 방안을 둘러보던 내 눈에 싱크대가 걸렸다.

       

       “설거지를 안 하셨네요.”

       “아니, 그건….”

       “제가 해 드릴게요.”

       

       나는 팔을 겉어붙이고 싱크대 앞으로 다가갔다.

       

       설거짓거리가 접시 몇 개뿐이라고는 하나, 이거라도 안 하면 무전취식한 게 마음에 걸려 잠을 못 이룰 판이다.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라고.

       

       청년이 말릴 틈도 없이 스펀지에 주방 세제를 짜 넣었다.

       

       성현은 그런 나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여기 들어오자마자 내가 설거지부터 할 줄 몰랐나 보다.

       

       “언니?”

       

       그리고 그건 로즈마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청년에게 공부하는 방법 같은 거 알려준다면서요. 왜 설거지부터 하고 있어요?”

       “아까 고민상담 한 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말이야. 이런 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지.”

       “언니는 성격이 너무 좋아서 탈이에요.”

       

       한동안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원룸을 맴돌았다.

       

       설거지를 다 하고 수건에 물기를 닦아낼 때쯤, 로즈마리는 청년과 잠잘 곳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는 언니랑 같이 잘 거예요.”

       “그러면 두 분이 침대에서 주무세요. 저는 바닥에서 자도 괜찮으니까….”

       “오호. 그래도 돼요?”

       

       콩!

       

       내가 로즈마리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얏! 왜요?”

       “우리는 얹혀사는 입장이잖아. 집주인이 침대에서 주무셔야지.”

       “언니가 이 사람을 가르치는 입장이잖아요. 세상에 스승보다 위에서 자는 제자가 어디 있어요?”

       “여기선 스승 제자가 그런 개념이 아니야. 이 바보 블루베리 동생아.”

       

       우리 둘이 옥신각신해하는 모습을 보던 성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까 제가 아래에서 자도 되는데….”

       “아뇨. 집주인이자 수험생이 될 분을 밑에서 재울 수는 없죠. 저희 배려는 안 해주셔도 돼요.”

       

       내가 완고하게 나가자 성현은 입을 들썩였다. 눈치를 보는 듯했다. 손님이라서 신경을 써 주는 건가?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매트리스를 하나 더 사는 거예요. 그 위에 얇은 이불을 하나 더 덮으면 침대 하나를 더 만들 수 있어요.”

       “괜찮겠어요? 돈이라든지….”

       “간이 매트리스면 얼마 들지도 않아요. 뷔페 한 번 갈 돈 아꼈다고 생각하면 되죠.”

       

       나는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좋은 청년이다. 각박한 세상에서도 이런 사람은 있구나. 사소한 곳에서 진심으로 존경하게 된다.

       

       이 청년을 서울대에 보내 드려야겠다는 의지가 셈솟는다.

       

       수능 공부한 지 시간이 꽤 되기는 했는데, 어떻게든 되긴 할 것이다. 수능 때 전국에서 100등 이내였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

       “네. 언니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어떻게든 타협을 봤다. 이제 로즈마리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가 있었다.

       

       “언니, 이것 봐요. 재앙급 미니어처가 이런 곳에 있어요.”

       

       로즈마리가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마왕성이나 마탑을 지키는 마수 중에 저렇게 생겨먹은 게 있었다.

       

       로즈마리는 모니터를 본 적이 없으니 새삼 신기하게 보는 눈치였다.

       

       “뭔가 친숙하게 느껴지네요.”

       “그건 컴퓨터라는 겁니다.”

       “컴퓨터?”

       “네, 여기를 누르면 작동하는데….”

       

       성현은 로즈마리에게 자연스럽게 컴퓨터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을 본 내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 혹시….”

       

       성현이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동생분은 컴퓨터를 본 적이 없으신가요?”

       “네. 얘가 온실 속 화초로만 자라서요. 스마트폰이 뭔지도 모를 거예요.”

       

       뭔가 대화가 어색하다.

       

       현대 지구인이라면 오지에서 살지 않은 한 컴퓨터가 뭔지 모를 일이 없을 텐데.

       

       성현은 로즈마리가 컴퓨터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도 전혀 놀라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보면 볼수록 의심이 커진다.

       

       여신이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덩달아 궁금해졌고 말이다.

       

       “오우, 언니!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쥐새끼처럼 생긴 도구를 움직이니까 포인터가 따라서 움직여요!”

       “그건 마우스라는 거예요.”

       “마우스라. 그러면 이 옆에 있는 건요?”

       “키보드라고 부릅니다. 글자를 입력할 때 씁니다.”

       “오우….”

       

       내가 다 창피하군.

       

       그렇다고 아주 새롭거나 한 건 아니었다. 컴퓨터의 재원 자체는 마왕군이 사용하던 마석과 큰 차이가 없었다. 로즈마리는, 어쩌면, 몇 번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만으로도 컴퓨터의 원리를 깨우쳤을 것이다.

       

       “여기에 글자를 적으면 관련된 정보를 가져다주는 것 같네요. 광역 통신 마법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보라. 그 증거로 벌써 적응하기 시작했다.

       

       로즈마리는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폴더를 이것저것 눌러댔다. 그래도 신기하긴 신기한가 보다.

       

       “재미있는 이름의 디스펜서가 많네요.”

       “디스펜서?”

       “뭔가를 담아 공급하고 있으니까 디스펜서죠.”

       

       폴더를 디스펜서라고 부르는 게 퍽 귀엽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로즈마리가 기어코 폴더 숨김을 해제하는 방법까지 찾아내고 만 것이다.

       

       “이 디스펜서는 왜 숨겨져 있던 거죠? 직박구리?”

       

       로즈마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직박구리가 뭐예요? 새 이름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청년과 눈을 맞추었다. 성현의 표정이 나라 잃은 사람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하아, 새끼.

       

       어쩔 수 없군.

       

       “그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왜요?”

       “숨겨져 있었던 걸 보면 보안에 관련된 디스펜서일 거야. 일부러 열어보고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어…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죄송해요.”

       

       로즈마리는 곧장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착한 동생이다. 언니 말도 잘 듣고.

       

       사실 내가 아니라면 말을 듣는 경우가 거의 없는 아이지만.

       

       “그러면 이건 눌러봐도 돼요?”

       

       로즈마리가 다른 아이콘으로 커서를 가져가며 물었다.

       

       강철로 된 거대한 지네가 지붕을 집어삼키고 있는 모양의 아이콘이었다. 보기만 해도 게임 바로가기 아이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Darkest Academia>

       

       로즈마리가 커서를 올려놓은 채로 뒤를 돌았다. 성현에게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게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다.

       

       “무슨 디스펜서인가요?”

       “오락 같은 겁니다. 게임이에요.”

       “게임이라면 놀이 같은 거 얘기하는 거죠?”

       “그렇죠.”

       “신기하다. 눌러봐도 되나요?”

       “…예. 괜찮습니다.”

       

       딸깍, 딸깍.

       

       더블클릭과 동시에 검은 창이 화면을 덮는다.

       

       이어서 ‘르퀴네스 스튜디오’라는 이름의 게임 회사 로고가 뜨고, 어두운 분위기의 메인 테마가 나타난다.

       

       잠깐만.

       

       “르퀴네스?”

       

       로즈마리가 의아해하는 듯 고개를 까딱인다.

       

       “언니, 이거….”

       

       뭔지 알겠다.

       

       이건 오히려 로즈마리에게 왜 내가 이쪽 세계 지식을 알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호기를 놓친다면 앞으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없게 된다.

       

       나는 로즈마리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여기서 여신이 우리와 이런 식으로 소통하려는 것 같아.”

       “그런 건가요?”

       “응. 이쪽 세계에 오기 전에 나한테 이것저것 말해줬거든. 이 세상의 문명이라든지, 대략적인 소통 방식이라든지.”

       “그렇군요. 어쩐지 이 세상 사람들과 말이 통한다 했어요. 여신의 간섭… 이 아니라, 배려가 있었던 거로군요.”

       

       로즈마리는 총명하다. 그런데 총명해도 너무 총명해서, 가끔은 단서를 주는 것만으로도 지나친 추측을 벌이기도 한다. 그 덕분에 오해하는 경우도 잦았고.

       

       어쨌거나 의도했던 대로 오해해 준 모양이다. 이제부턴 나에게 다른 자아가 조금이나마 섞여 있다는 사실을 따로 얘기해 주지 않아도 되겠지.

       

       여기에 한 가지 더. 김성현이라는 청년과의 관계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거기 튜토리얼이라고 쓰인 버튼 있죠?”

       “이거요?”

       

       로즈마리는 성현의 말에 따라 튜토리얼을 진행했다.

       

       곁에서 그 내용을 지켜보고 있자니, 생각보다 컨텐츠가 다양해서 놀랐다.

       

       우선 게임 장르는 RPG였다. 아카데미에서 캐릭터를 모으고, 강화하고, 육성한다. 그렇게 키운 동료들과 함께 마왕군을 무찌르는 것이 핵심 스토리였다.

       

       [각 회차의 상황은 자동으로 저장됩니다. 플레이어가 한번 결정한 결과는 해당 해차에 영구히 기록됩니다.]

       

       더불어 로그라이크적인 요소도 지니고 있다.

       

       “와,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어 보이네.”

       

       로즈마리가 입맛을 다셨다.

       

       불과 몇 년 전 아렌스 대륙의 상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니. 확실히 흥미진진하게 느껴지긴 한다.

       

       “재밌어?”

       “재, 재밌네요. 아직 조작법만 배우고 있는데도 퀄리티가 느껴져요. 손으로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에요.”

       

       로즈마리의 말이 뭔가 이해가 간다.

       

       뭐라 해야 하나… 2차대전에 참전했던 장교가 자기가 현질 아이템으로 나오는 게임을 하는 감각이겠지.

       

       자기가 보스로 나오는 걸 보면 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만약 거기까지 가면 그것대로 웃길 것 같았다.

       

       “얘 이거 계속하게 둬도 괜찮나요?”

       

       내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수능 준비라든지….”

       

       그렇다.

       

       로즈마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된다. 애초에 고된 업무에서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즐기러 온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 우선 이 김성현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태연’과 어떤 관계인지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와 재회할 수 있도록 수능 학습 전략을 짜 줘야 한다.

       

       이게 고민이었다.

       

       아카데미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쳐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입시과목도 제대로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뭐, 일단 부딪혀 봐야 아는 거겠지.

       

       “나가요, 우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 이거, 23일까지 완결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7월부턴 많이 바빠지기 때문에 지금 시간이 있을 때 빨리 끝내야 하는데…

    이러다가 정말 어느 독자분의 말씀처럼 400화를 채우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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