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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3

        

       차이네는 이제순이 보내는 압박을 이길 수가 없었다.

         

       담력이 강한 사람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거대한 광기를, 일개 연예인 한 명이 감당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차이네는 자신이 황장산에서 보았던 것들을 떨리는 목소리로 세세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순이 건네준 종이에 대략적인 형태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이제순이 보여준 사진을 사용해 그때의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그런 설명이 얼마나 이어진 것일까?

         

       “하하하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차이네 씨. 아니. 김선미 씨. 흐흐흐.”

         

       이제순은 만족할 수 있었다.

         

       “김선미 씨의 도움 덕분에 기사가 더 디테일해지겠어요.”

         

       그는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차이네의 본명을 입에 담으며 그녀를 치하해주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대로 문을 열고 사라져버렸다. 문을 닫지 않고 사라졌기에 그가 차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그대로 들렸는데, 기이하게도 한 사람이 걷는 소리 뒤에 자그마한 발소리가 뒤따르는 듯 느껴졌다.

         

       마치 그의 뒤에 귀신이 있고, 그 귀신이 이제순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면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후.

       차이네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문을 열고 밖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히, 히이익….”

         

       그녀가 문을 열자 보인 것은 깜깜한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엎어져 있는 매니저였다.

         

       매니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상태를 확인해보자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숨을 쉴 때마다 몸이 조금씩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 적어도 생명에 지장은 없는 듯했다.

         

       그는 무슨 약이라도 먹고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몸이 축 늘어져 있었으며, 차이네가 접근해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차이네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눈동자가 까뒤집혀 있기까지 했다.

         

       차이네는 그런 매니저를 구하기 위해 119에 신고하려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 구두가 말하길 여자에게 오물을 던지려 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지. 나무 위에서 똥을 집어 던지는 원숭이처럼 비겁하고 지저분한 족속이 있어 수작을 부리려고 하니, 악의와 폭언으로 가득한 정보의 바다에서 오물이 덕지덕지 묻게 될 거라고 하였어! 그것은 씻어도 쉽게 악취가 가시지 않을 것이니, 조심을 해야만 할 것이다! 』

         

       『 사장은 아니야! 이사도 아니지! 팀장도 아니고! 그런데 이상하다? 남은 게 하나밖에 없네? 저 여자는 무슨 말인지 알았을 거야! 하-하-하! 』

         

       오물을 묻힐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장도 아니고, 이사도 아니고, 팀장도 아니다.

         

       ‘오물….’

         

       그녀는 반쯤 양아치같이 힘을 휘두르는 자신의 소속사를 떠올렸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녀에게 오물을 묻힐 능력이 있었고, 오물을 묻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독심(毒心)이 있었다. 실제로도 부당 계약에 항의하면서 여론몰이하거나, 갑질과 폭언을 당했다면서 소송을 한 연예인들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스캔들이나 과거 때문에 오물이 묻어서 큰 고생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냥 미친 사람의 말이라기에는….’

         

       그녀는 미치광이처럼 보였던 이제순을 떠올렸다.

         

       분명히 미치광이 같았지만, 자신을 소개할 때 ‘기자’라고 생각했던 것을 생각했다면….

       그가 정보의 거래랍시고 그녀에게 먼저 제시한 정보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몰랐다.

         

       꿀꺽.

         

       차이네는 긴장 때문에 침을 꿀꺽 삼켰다.

         

       ‘사장은 아니고….’

         

       이사도 아니다.

         

       그들이 그녀에게 굳이 오물을 묻힐 이유가 없다.

       그들은 적어도 양아치는 맞지만, 오직 돈만 바라보는 양아치다.

       회사에 폐가 될만한 사고를 치지 않고, 돈만 벌어주고 나간다면 그들은 굳이 그녀에게 미련을 갖지 않으리라. 그냥 사람을 물건처럼 바라보던 평소처럼 그녀를 똑같이 물건으로 여기면서, ‘그래. 이 정도면 본전 뽑았다. 잘 썼네. 낡기도 했고, 더 쓰기도 힘들 것 같고. 그냥 깔끔하게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지 뭐.’라고 저들끼리 떠들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그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팀장은?

         

       양아치 아래에서 일하는 놈들답게 악독하고, 사납고, 깡패 같은 면이 있는 족속들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윗사람의 지시에 철저하게 따를 줄 알았으며, 상품 가치가 낮아질 만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며, 윗사람의 비전과 시야를 공유할 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냥 보내주겠다는 사장과 이사의 뜻을 철저하게 따를 것이며, 보복하기는커녕 잡음이 따르지 않게 하려고 힘을 쓸 것이다.

         

       그러니 팀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남은 것은…?

         

       꿀꺽.

         

       차이네는 쓰러져 있는 매니저의 몸을 뒤져서 그의 스마트폰을 찾아내었다.

         

       그녀가 매니저의 스마트폰을 켜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문구가 떴다.

         

       ‘비밀번호는, 그러니까…. 매니저 전 여자 친구 생일….’

         

       매니저가 담당 연예인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만큼이나, 연예인이 담당 매니저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많은 법.

         

       그녀는 어렵지 않게 매니저의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풀어내었고, 그 안의 내용물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

         

       그리고 그녀는 알게 되었다.

       이제순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말이다.

         

         

         

        * * *

         

         

       디테일을 얻었다.

       기사에 쓰기 충분한 디테일이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이제순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기사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 웃음은 자기 작품에 만족하는 예술가의 것 같기도 했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테러리스트같이 보이기도 했으며, 단순히 그냥 감정이 고조되어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하는 미치광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순.

       그는 웃었다.

         

       “그 녀석들 발음, 발음이 일본인이었어. 일본인이었다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자신이 쓴 완벽한 기사.

       그리고 저번에 그를 납치해서 고문하고 린치를 한 빌어먹을 녀석들이었다.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체격도 가물가물한 그 녀석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그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기억이 난다.

         

       일본인이 한국말을 할 때의 그 특징이 묻어나오는 그 목소리.

         

       “너희는 대가를 치러야 해. 대가를….”

         

       그들이 행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문을 하고 폭행을 한 것도 그렇지만,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주물을 부순 일이었다.

         

       신발.

       수다쟁이의 혀로 만들었던 신발.

       그에게 온갖 정보를 가져다주었고, 그를 성공으로 이끌어야 하는 그 주물을 박살 내버린 그들을 이제순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 보물을 망가뜨린 그들을.

       다시 한번 의식을 진행하게 만들고, 그 의식에서 끔찍한 공포와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만든 그 작자들은!

         

       “흐.”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풀릴 정도의 대가를.

       자신이 다시 한번 주술 의식을 진행하면서 치른 대가와 똑같은….

       아니, 더 거대한 대가를 말이다.

         

       ‘그래. 대가…. 대가를….’

         

       이제순은 거대한 대가를 치렀다.

         

       주의사항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의식을 행했고, 그 대가로…. 그 대가로….

         

       ‘뭘 줬더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어디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고, 그 껌껌한 오지에서 혼자서 수상해 보이는 의식을 진행했었다. 괴상한 생김새의 요정이 튀어나왔고, 그것을 상대하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겠지.

         

       공포라는 것은 머리를 마비시키게 만드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의문의 주술사가 건네준 방법대로 의식을 행했다고.

       거기 적혀 있는 주의사항을 어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말이다.

         

       아니, 확신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이제순이 멀쩡하게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만약 방법이 틀렸다면 그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신체 일부가 소실된다거나, 끔찍한 꼴이 되어서 그 오지를 벗어나지 못했거나, 아니면 최악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겠지.

         

       먼 후손이라면서 친근하게 그를 대하는 요정에게는,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러니 그는 완벽하게 의식을 행했다.

       의식에 아무런 차질도 없었고, 그는 아무런 문제 없이 주물을 만들 수 있었다.

         

       저번처럼 ‘미약한 힘’을 가진 주물이 아닌,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주물을 말이다.

         

       그런데 그때 뭐라고 했더라?

       그 요정이 뭐라고 했었지…?

         

       [ 탭탭, 팁탭. 먼 후손아. 요정의 피를 이은 태가 나는구나. ]

         

       이제순은 그때 요정이 말한 말을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흐, 그래. 두 번째로 만났으니 친해지긴 했지. 그래….’

         

       이제순은 노트북의 옆에 놓았던 요정 인형을 조심스레 왼손으로 들었다.

       그리곤 작성한 기사를 편집장에게 보내고, 그대로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곤 요정에게 물었다.

         

       “조상님. 조상님. 편집장이 이 기사를 허가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요정이 답해주었다.

         

       “항상 술에 찌들어 있는 후손아! 너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제대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구나! 그 편집장이 이런 기사를 허락해주겠느냐? 사장이 과연 허락해주겠느냐?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특종이라고 한들 이런 것을 허락해줄 리가 없다! 편집장의 재량 아래 이 기사는 생명을 잃고 구석진 곳으로 밀리게 될 것이다!”

         

       요정은 비관적인 미래를 노래했다.

       하여, 이제순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편집장의 약점을 말해주십시오.”

         

       그 물음에 요정은 웃었다.

       인형이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것처럼 웃었고, 주물의 기능을 충실히 발해주었다.

         

       그리하여 이제순은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 * *

         

         

         

       『 주술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

       『 다만 이번에는 인과가 나에게 이어져 있는바. 』

       『 너에게 가는 대가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니라. 』

       『 다만 그 이후부터는 오직 너의 선택에 따른 것이니. 』

       『 온전히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

       …

       …

       『 나는 종이에는 올바른 것을 적었다. 』

       『 다만 종이에 바르지 않은 것이 적힐 수도 있으니. 』

       『 만약 모순되는 항목이 있었다면. 』

         

       『 행운을 빌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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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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