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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3

       

       

       『……오늘? 3시간 뒤?』

       『예.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2시간 40분 정도 남았네요.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아니,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 쯤으로 생각했지, 바로 세 시간 뒤라니. 그마저도 대략 세 시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두 시간 사십 분 남았댄다. 

       

       아니, 그동안 뭘 하다가, 오늘에서야 알려줄 거면서, 왜 이렇게 일정을 촉박하게 잡았냐고! 내 탐탁치 않은 얼굴을 보았는지 렌까가 변명하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정한 것은 아니니까요.』

       『딱히 널 탓한 건 아닌데……. 그나저나 차 타고 가는 거면, 어디 멀리 가는 거야?』 

       『그렇기는 합니다만, 너무 심배하지 마세요. 오늘 저녁 전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요.』

       

       렌까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는 렌까를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시험 내용은 말해줄 수 없는 거야? 설마 책상 앞에 앉아서 문제 풀고 정답 적어내는 시험은 아닐테고. 마수, 아니면 대동아공영회가 만들어낸 괴물같은 거랑 싸우는 건가?』 

       『마수나 괴물과 싸우는 것이 시험의 주요 내용은 아닙니다만……』  

       

       렌까는 말을 흐렸다. 어디까지 말해도 좋을지 고민하는 투였다.

       

       『그래도 전투가 있을 수 있으니, 싸움에 필요한 무기는 가져가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렌까는 그 말을 마치고 먼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역시 시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렌까가 한 말을 곱씹어 보았다. 멀리 가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니다. 전투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게 시험은 아니며 시험의 주요 내용은 따로 있다…… 

       

       하긴, 나는 시마즈 당주로부터 전투 능력을 이미 인정받았다. 이제와서 마수나 괴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평가하진 않겠지. 

       

       그렇다면 시험의 주요 내용은 뭘까. 충성심 테스트? 

       

       ……라고는 해도, 그걸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것이지.

       

       이런저런 가정이 떠올랐지만, 확실하게 이거다 할만한 것은 없었다. 뭘 준비하고 뭘 대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으음……’

       

       어쨌든, 전투가 있을지 모른다고 했으니 무기는 챙겨야겠지. 

       

       나는 무기와 장비를 있는대로 모두 챙겼다.  주무기인 히히이로카네(緋々色金) 태도(太刀)는 물론, 교장으로부터 받은 고글과 승마채찍, 그리고 한구석에 짱박아두었던 권총까지 챙겨서 허리띠에 결속했다. 

       

       복장은 교복.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학생의 기본 외출복장이 교복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렌까가 준 이 교복은 특수 재질로 방어력이 상당했으니까. 거기에 더해, 혹시 모르니 안에는 타이즈수트까지 입은 채였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완전무장이다. 준비를 마친 나는 가게를 나서며 함서주에게 말했다. 

       

       “안에서 하는 얘기, 들었지? 늦게 돌아올 것 같으니까 저녁은 먼저 먹고.” 

       “네에……. 근데 저어, 학생손님.”

       

       하고 나를 멈춰세우는 함서주.

       

       “응?”

       “저가 이런 말 해두 될런진 몰르겠지만요……”

       

       함서주는 가게 바깥쪽을 힐긋거리더니, 혹시 누가 들을세라 조심하며 나에게 속닥였다.

       

       “아까요. 저 시마즈씨 아가씨가 한 농담 있잖애요.”

       “아니, 그걸 왜 굳이 얘기하는데.”

       

       그 얘기를 지금 한다고? 그런데 함서주는 날 놀리려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왠지요, 그냥 허투루 한 농담이 아닌 것 같았어요.”

       “……뭐?” 

       

       그냥 한 농담이 아니라니. 설마, 얘는 내가 렌까랑 정말로 그렇고 그런 짓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캥기는 것도 없었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 변명하듯 말을 쏟아냈다. 

       

       “아니, 그거 쟤가 농담한 거 맞거든? 너도 여기서 우리가 하는 얘기 들으면서, 쟤가 농담이라며 깔깔대는거 다 들었을 거 아냐? 그리고 나도 결백하거든? 나 하늘에 맹세코 아무 짓도 안 했거든? 그럴 사람도 아니거든?”

       

       이렇게 변명을 하기는 했지만, 미래였으면 중학교 3학년 다닐 여자애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굉장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렌까 때문에 이 무슨 고역이란 말인가.

       

       “알아요! 근데요, 그게 진짜 그렇다는게 아니구요, 으으…… 그러니깐요! 농담은 농담인데, 왠지 진지하게 말한 것 같은 느낌……?”

       “아니, 그게 뭐야.” 

       “몰라요! 저두…… 그냥 저 보기엔 그래요.”

       

       그냥 그렇다니, 본인도 모르겠는 얘기를 대체 왜 하는데! 함서주는 얼굴이 발개진 채로 말을 이었다.

       

       “하여간 조심하시라구요! 저두 저 시마즈씨 아가씨는 전부터 봤지만은…… 물론 저가 할 말은 아닌 줄은 알지마는요, 어딘지 음습하구 음흉스런 구석이 있달지…… 잘못 엮이면은 학생손님만 신세를 망치지나 않을지……”

       “어, 그건 동의.”

       

       그건 인정이지. 

       

       “……네? 

       “나도 알아. 쟤가 좀 이상하고 위험한 애라는걸 내가 모르겠냐. 근데 쟤도 다 마음의 상처가 있어서 그런 거야.” 

       “……네에? 그치만, 그래두, 저어……”

       

       하고 올려다보는 함서주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쪼그만 애가, 혹시라도 내가 이상한 여자한테 잘못 걸려서 신세 망치지 않을지까지 걱정을 해 준다. 

       

       그게 조금 기특하면서도 참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 싶어서, 나는 함서주의 머리를 살짝 톡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나도 쟤 위험한 거 알고, 적당히 거리는 두고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하여간 쪼끄만 애가 어른 걱정을 다 해요.” 

       “피! 나만 애예요? 두 살 많으면 어른인감? 맨날 내 말만 허투루 듣구, 속상해……”

       “네가 해주는 말 허투루 안 들으니까 염려 마세요. 그럼, 나 간다.” 

       “…….”

       “참! 나 렌까랑 같이 차 타고 떠나는거 봐서, 지하실에서 애들 올라오라고 해 줘.” 

       “……네에. 몸 조심히 다녀오셔요.” 

       

       나는 함서주의 걱정과 당부를 뒤로 한 채, 가게 밖으로 나와서 대기중인 승용차의 뒷좌석에 올랐다.

       

       『준비는 마치셨나요?』

       『응. 가자. 늦진 않았지?』

       『이제 2시간 20분쯤 남았지만, 충분해요.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린 모양이에요?』 

       『으응. 얘기 좀 하고 나오느라.』

       『얘기라면……』 

       

       렌까는 창 밖으로 가게를 힐긋 보더니 말을 이었다.

       

       『쇼쥬, 라는 이름의 아이와 말인가요? 저도 얘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만, 귀엽고 영특한 아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쇼쥬 쨩과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네가 너무 무서웠다길래 달래주고 오는 길이야.』

       『무슨…… 후, 후후! 시라바야시 상도 짖궃군요! 제 농담에 농담으로 복수하는 건가요?』

       

       미안, 렌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야. 나도 가끔은 네가 무서운데, 서주가 보기엔 오죽하겠니.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운전수는 언제나처럼 다까히로. 차는 부드럽게 출발하며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40분쯤 지났을까. 차는 한강 쪽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다리를 건너자 여의도였다. 정치계와 방송계, 금융계의 중심지가 되는 미래와는 달리 지금은 갈대밭과 모래톱만 가득한 섬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섬은 아니었다. 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비행장이 있었으니, 경성 여의도 비행장이었다. 

       

       그리고 차가 멈춰선 곳은, 한쪽 활주로에 대기중인 경비행기의 바로 근처. 경비행기는 언제라도 바로 출발할 수 있게끔 프로펠러가 맹렬히 돌아가고 있었다.

       

       『……설마, 비행기 타고 가는 거야?』

       

       차에서 내린 내가 묻자, 함께 내린 렌까도 프로펠러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소리를 크게 해서 외쳤다.

       

       『그렇답니다! 이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걸리면 시험 장소입다만, 비행은 처음인가요?』 

       『그야……』

       

       미래에서는 여러 번 타봤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처음이지. 아마 수원 시골에서 살다가 막 경성으로 올라왔던 원래의 백철연도 비행기는 못 타봤을 것이다. 

       

       『……물론, 타본 적 없지.』

       『저 역시 비행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전연 걱정할 것은 없답니다! 비행기를 동원한다는 것은, 이번 일에 아버님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럼, 탑승하도록 하죠!』

       

       대체 어디를 가길래 비행기까지 동원하는걸까. 어련히 알아서 시험 장소에 데려가는 것이겠지만…… 경비행기의 승객칸에 오르니, 

       

       『시라바야시 상은, 이걸 쓰세요!』

       

       어느새 귀를 덮는 비행모(飛行帽)를 챙겨 쓴 렌까가 나에게도 하나 건네주었다.

       

       『어! 고맙…… 응? 뭐야, 이거.』

       

       나에게 건네준 것은 비행모가 아니라, 그 뭐야, 흉악범들 끌고 갈 때 머리에 씌우는 자루같은…… 아니, 자루 맞잖아. 

       

       『……너는 멀쩡한 비행모 쓰고, 나는 죄수처럼 자루나 뒤집어쓰라고?』

       『시험이 치러지는 곳은, 대동아공영회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숨겨진 장소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해요!』 

       『…….』

       『……그, 그렇게 노려보지 말아주시겠어요? 제가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니니까……』

       

       비밀 장소니까 어디로 가는지 몰라야 한다는 것인가. 뭐, 렌까의 말마따나 이런 규칙을 렌까가 정한 것도 아니고, 따져봐야 소용 없을 것이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차례 한숨을 내쉬고는, 좌석에 앉은 뒤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창 밖을 못 보는 것은 아쉽지만…….』

       

       미래처럼 등받이 스크린이 있어서 영화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창문이라도 쳐다보는게 덜 지루할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못하게 되다니.  

       

       비행이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었지. 이런 경비행기는 흔들리고 덜컹거려서 잠도 편히 못 잘텐데, 그동안 꼼짝없이 명상이나 하게 생겼다. 

       

       그런 아쉬운 생각을 하며 말없이 좌석에 앉아있자니, 

       

       『아라아라! 말이 없는 것을 보니, 그 대담한 시라바야시 상도 비행은 긴장되나 보네요? 앞까지 못 보는 상태이니까 물론 그렇겠지요! 비행이 무섭다면, 제가 손이라도 잡아 드릴 수 있습니다만?』

       

       뭔가 오해한 렌까가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아니, 내가 비행 따위가 무섭겠냐고. 이 시대의 경비행기 성능이 조금 못미덥기는 해도, 시마즈 당주가 자기 딸까지 태우는 비행기를 아무거나 골랐을리는 없으니 괜한 걱정일테고.

       

       『난 괜찮은데.』

       『거짓말쟁이! 비행이 무섭지 않다고요? 처음이면서?』

       

       그러는 사이, 조종석 방향에 있을 조종수가 출발하겠다며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활주로를 달리며 속도를 높여가는 비행기. 

       

       렌까가 다급하게 물어왔다. 

       

       『시, 시라바야시 상! 정말 손 잡지 않아도 괜찮은가요?』

       『그렇다니까. 손은 안 잡아도 돼.』

       

       나는 혹시라도 렌까가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아예 가슴앞에 팔짱을 끼었다.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의 속도가 점점 높아지며 덜덜덜덜 진동이 전해져 오고, 조금씩 동체가 떠오르는 감각이 전해져 왔다.

       

       『그, 그럼, 사람의 체온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제가 바싹 옆에 붙어앉아 드리죠! 그렇게 마, 만용을 부리다가, 비행 공포증 때문에 긴장해서 시험에 실패하면, 곤, 곤란할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그렇잖아도 바로 옆자리였던 렌까가 내 쪽으로 몸이 닿도록 바짝 땡겨앉는 것이 느껴졌다. 덧붙여, 내 팔뚝의 옷자락을 꽉 움켜잡는 떨리는 손아귀도.

       

       ……아무래도 렌까 얘, 자기가 무서워서 그런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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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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