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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3

       때는 겨울이었다.

       

       수능이 막 끝나고 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시점. 연휴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이다.

       

       나와 김성현은 아무렇게나 껴입고 거리로 나왔다.

       

       우리는 서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다른 게 아니라, 수능 공부를 위한 교과서와 문제집을 사기 위함이었다.

       

       “EBS 교재부터 사는 게 좋을까요?”

       

       김성현이 멋쩍게 웃으며 그런 질문을 했다.

       

       “일단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봐야죠. 혹시 수능 본 적 있으세요?”

       “네, 현역 때 한 번.”

       “국수영탐이 어떻게 되세요?”

       “으음, 14323 정도요.”

       “한국사는?”

       “2였나 3이었나…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내 입에서 오,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국어가 1등급?”

       “네. 소설을 많이 읽어서요…. 하하.”

       

       생각했던 것보다 공부를 잘한다.

       

       “현역때 그 정도였으면 괜찮은 대학 갈 수 있지 않았나요?”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어요.”

       

       요즘 같은 세상엔 어중간한 대학 간판은 돈 낭비다. 봐라, 사교육 시장도 급격히 무너지고 있지 않느냐. 등등.

       

       “그런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수긍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남들 대학에서 공부할 시간에 군대 문제부터 해결했죠. 사회로 돌아오면 취업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었나 보군요.”

       

       성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실업계도 아니고, 인문계를 나왔거든요. 고등학교 딱 졸업했을 땐 벌어먹고 살 기술이 없었어요. 위탁 교육 같은 것도 안 받았었고.”

       

       그것을 보완하고자 성현은 군대에서 자격증을 몇 개 땄다고 한다. 이후 사회에 돌아와서는 관련 공부도 해 보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헬스장도 끊었다고 한다. 채용 사이트 뒤적이며 취업 정보를 찾는 건 당연히 했다.

       

       “그 외에도 스펙을 올리려고 웬만한 건 다 해 봤어요. 학점은행제라는 것도 건드려 봤고요.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해도 취업엔 실패했죠. 여기 넣어도 떨어지고, 저기 넣어도 떨어지고.”

       

       성현의 한숨이 더욱 깊어진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취업에 매번 실패하는 것은 비단 그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대졸자만큼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그놈의 AI가 어지간한 생산직은 다 대체했지 뭐예요.”

       

       이 세상에도 마수는 존재했다. 그들은 아렌스 대륙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든, 대학교든.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에게 좌절을 알려주는, 흉폭한 마수였다.

       

       “군대에서 말뚝 박아볼 생각은 안 하셨어요?”

       “했죠. 그런데 병사로 복무하던 도중에 딱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여긴 내 길이 아니구나.”

       

       성현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김을 불었다. 솜사탕처럼 희뿌연 연기가 하늘을 향해 피어올랐다.

       

       “군대는 두 번 갈게 못 돼요. 정말로.”

       

       그래, 알지. 군대 문화가 안 맞는 사람은 진짜 적응 못 한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훈련소 3주를 버티는 게 고역이었다.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힘들더군요. 되는 게 없었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요.”

       “…그런가요.”

       “네. 그때부터 한동안 다 때려치웠어요. 그나마 호프집 알바 하나만 하러 다녔죠. 이것도 어렵게 구한 거였는데,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일했어요.”

       

       그렇게 돈을 벌면 월세 내고, 식비 내고, 저축하고. 거기에 가끔씩 게임이나 소설 결제하는 데 썼다고 한다.

       

       “알바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백수나 다름없는 삶이었죠. 할 것도 없었고, 의지도 없 었어요.”

       

       말만 들어보면 암울한 삶이었다.

       

       이는 경제 수준의 문제 따위가 아니었다.

       

       성현은 마땅히 하고 싶어하는 것이 없었다. 인생 자체에 권태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 동생분께 보여드렸던 그 게임 있죠?”

       “다키스트 아카데미아… 말인가요?”

       “네. 그나마 그 게임 공략해서 커뮤니티에 올리는 게 활력소였어요.”

       

       이건 비단 이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겠지. 비록 유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한민국 청년 대다수가 느끼는 문제다.

       

       “이쪽도 마찬가지구나.”

       “뭐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육 제도나 그런 게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아니다.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선 말을 아끼자. 나는 더이상 이쪽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나라고 이 나라의 청년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럴 이유도, 의무도, 자격도 없다.

       

       대신.

       

       “많이 어려우셨겠어요.”

       “아뇨. 무얼….”

       

       눈앞의 사내아이 하나 돌봐주는 것쯤이라면 가능하다.

       

       다른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땅히 해 주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에서 우러나오는 선심이다.

       

       이제라도 이 청년이 안정적이고 목표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것을 하숙비로 내면 되겠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현역 때 그 성적이었다면 베이스는 있는 겁니다. 스타트가 굉장히 좋아요.”

       “저, 정말인가요?”

       “물론이죠. 제대로, 열심히 하면 합격할 수 있어요.”

       

       특히 지금처럼 대학 정원은 그대로인데 출산율 감소로 응시생 수는 매년 줄어드는 경우라면 더더욱 유리하다.

       

       물론 이것 자체는 사회적으로 영 좋지 못한 현상이다. 하지만 김성현에겐 호재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설물천? 만점 아니어도 갈 수 있어요. 몇몇 과목 잘 보고, 전략만 잘 세우면 될 거예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성현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을 만나려면 물리학과에 가는 게 좋겠죠. 하지만 자신이 없어요. 수학도 그렇고, 물리도 그렇고.”

       “수학은 잘 못하시나요?”

       “못 한다거나 이전에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물리는요?”

       “중학교 때 이후로 접해본 적이 없어요. 그나마 있던 내용도 다 까먹었고요.”

       

       수학 싫어하는 사람은 보통 물리도 싫어하던데.

       

       딱히 잘못된 건 아니다.

       

       수학이라는 게 원래 어느 선까진 재미도 없고 어렵게 느껴지기만 하는 과목이다.

       

       어릴 때 그 선을 넘느냐 마느냐에 따라 수능 성적이 좌우되는 거지.

       

       “수학 과학은 제 특기거든요.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쉽게 기초부터 가르쳐 드릴 수 있으니까….”

       “그래도요.”

       

       성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솔직히, 아직도 망설여집니다. 제가 공부한다고 해서 정말로 서울대에 갈 수 있을지.”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하죠. 하지만 해 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잖아요.”

       “제 입으로 말하면 한심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랬어요. 늘 실패했죠. 그러니 무언가를 새로 해 보려고 해도 쉽지 않네요.”

       

       어느덧 성현의 토로는 맥락을 잃고 말았다.

       

       짜증이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겼다. 확실히, 아까 털어놓았던 고민에 비하면 진짜 고민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와 이 사람이 각별한 사이였다는 증거겠지.

       

       생각을 마친 내가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그 다키스트 아카데미아인가 뭔가 하는 게임을 하셨을 때, 공략을 찍어 올렸다고 하셨죠.”

       

       뜬금없는 주제 전환이었다. 성현도 그것을 알았는지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변했다.

       

       “…네.”

       

       그래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는 성현.

       

       “게임은 엔딩까지 다 깨신 건가요?”

       “네.”

       “최고 난이도로?”

       “그렇죠.”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던가요?”

       “아뇨, 아무나는….”

       

       성현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곧 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난이도로 히든 엔딩을 본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하면서 즐거우셨나요?”

       “당연하죠. 원래 게임은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잖아요.”

       “난이도가 높으면 하다가 접을 법도 하실 텐데.”

       “그래도 그 과정에서 얻는 게 있잖아요. 소소하게 알아내는 것도 있고, 실패해도 계속 반복할 수 있고….”

       

       딱.

       

       내가 손을 튕기며 쓰게 웃었다.

       

       “수능 공부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어요?”

       “아니, 게임이랑 공부랑은 다른 게…….”

       “저는 그렇게 했어요.”

       

       성현의 표정이 멍청하게 변한다.

       

       나도 안다. 표면적인 부분만 들어서는 이게 뭔 개소린가 싶겠지.

       

       “시험 문제에는 물론 답이 나와 있겠지만, 저는 그런 거 없다 생각하고 풀었어요. 일단 딱 보고, 내가 지금부터 이 난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요. 특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 그랬죠.”

       “중간에 안 풀리면 어떡해요? 답지 같은 거 안 보시나요?”

       “네, 안 봐요. 왜 봐요? 푼 사람이 없다고 가정하고 내가 풀어봐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들어가는 건데.”

       

       실제로 이 방법은 대학생 시절, 그리고 대학원생 시절에도 주효했다.

       

       대학 예제는 솔루션이 비었거나 절판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를 풀어놓고도 이게 정답인지 오답인지 조교가 채점해 줄 때까지 몰랐던 경우가 빈번했다.

       

       “만약 그렇게 푼 게 오답이면 어떡해요?”

       “다시 풀어야죠. 이게 딱 정답이다, 하고 감이 견고해질 때까지.”

       “그게 돼요?”

       “그게 될 때까지 게임 기본서를 펼쳐놓고 보는 거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혹시 이 일화 들어보셨어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만들기 전 전자기학 책을 걸레짝이 될 때까지 봤다는 이야기요.”

       

       그 사람도 물론 천재겠지만, 천재는 단순히 영감으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기본서 하나를 가지고도 파고 파고 또 파서, 고난도 게임을 공략하는 것처럼 파내야만 얻어내는 성취다.

       

       “이걸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경지가 껑충 뛰어있어요. 내가 과연 수능을 잘 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안 하더라도 모든 문제에 길이 보이게 돼요. 왜냐하면 나는 그만큼 그 분야에 대해 충분히 많이 생각했으니까.”

       

       여기까지 말해도 될 듯하다.

       

       나는 이제 주먹을 들어올렸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내년에 돌아올 게임에서 상위 2% 이내 랭커가 되어보세요. 그것만으로도 당신 인생은 많이 바뀌어 있을 테니까.”

       

       단순히 수능에서 1등급 받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그만한 노력을 해서 그 정도 성적을 받으면 구라 안 치고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비록 그 윤곽은 흐릿하겠지만, 앞으로 인생을 게임처럼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이정표는 되어주겠지.

       

       왜냐하면 내가 그 이정표를 바탕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선생님, 이름이….”

       

       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안 했군.

       

       “에테르 살리에르입니다. 혼혈, 이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버멜 호르데입니다.”

       “네?”

       “외국 이름이에요. 한국식 이름은 김성현이고요.”

       

       그렇군.

       

       버멜 호르데라.

       

       처음 듣는데,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툭.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성현이 내 손에 자신의 손을 맞대었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 대답하는 그의 얼굴은 아침 햇살처럼 한층 밝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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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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