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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4

       

       

       『 황장산에서 발견된 유물, 천황폐하 보우하사 조선 신민 만세? 』

       

       『 광복했음에도 지워지지 않는 일본의 그림자. 어째서 한국은 아직도 일본에 비굴한가? 』

       

       터졌다.

       

       기사가, 터졌다.

       

       이제순은 주물을 사용해서 편집장의 약점을 알아내었고, 그 약점을 토대로 편집장이 ‘자발적으로’ 그의 기사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기사에 싣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기사가 터진 뒤 누군가가 자신을 혹시나 찾아올까 봐 잠적하기까지 했다.

       

       마무리까지 완벽한, 이제순의 설계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설계 뒤에는 후폭풍이 따르는 법이다.

       

       특히나 이제순이 일으킨 것은 물결.

       그냥 차가운 냇가에 발을 담가서 첨벙첨벙 발장구를 쳐서 만드는 물결 정도가 아니라, 드넓은 호수에 바윗덩어리를 저 하늘 위에서 집어 던진 후 생기는 것과 같은 거대한 물결이었다.

       

       “이제순, 이제순! 이 새끼 어디 있어-!”

       

       그리고 물결이 일면 안에 사는 생물들이 난리를 피우기 마련이다.

       커다란 물결은 엉덩이가 무거운 이들이 허겁지겁 움직이게 해주었고, 그렇게 사색이 되어 찾아왔을 때는 당연하게도 이제순 대신 욕을 들어먹을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너 이 새끼야-! 너는 아랫놈들을 어떻게 관리하길래 이런 짓거리를 해! 내가 저번에 네가 사적으로 연락했을 때 그 건은 엠바고로 부탁한다고, 만약 기사를 쓰게 될 것 같으면 너희한테 주겠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은 터졌고, 쌀은 익어 밥이 된 것을.

       

       엉뚱한 사람에게 한껏 화풀이하고 돌아간 높으신 분들은 결국 잡친 기분을 여과 없이 표현해줄 욕설만 한 바가지로 쏟아부은 채,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다. 

       그들은 이 일을 터뜨린 기자도 잡지 못했고, 기자의 얼굴도 마주 보지 못했으며, 그 기자에게 앞으로 네놈의 인생이 평탄하지 못할 것이라는 엄포도 놓지 못했다. 또한 돌아가는 길에 이 빌어먹을 기사로 인해 터진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해결책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일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진성은 그것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름지기 압력이라는 것은 터지기 전에 빼는 것이 가장 좋은 법. 이것은 모두 훌륭한 미래로 이어지게 될 것인즉.”

       

       그는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점술 도구를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낸 것은 탄피였다.

       오랫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던 것인지 새까맣게 변해 있었고, 탄피 안에는 채 닦아내지 못한 흙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찌그러진 것이 태반인데다가 더럽기까지 하니 빈말로라도 가치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어 보였다. 

       

       쓰레기.

       

       버려야 하는 쓰레기.

       고물상에게 넘기는 것이 그나마 푼돈이라도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진성은 그 더럽고 찌그러진 탄피를 한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곤 야구공을 던지듯 몸을 비틀고 있는 힘껏 벽으로 그것을 날렸다.

       

       터엉-!

       짤그랑!

       

       탄피 뭉치는 벽에 부딪히자 커다란 소음을 내며 곳곳으로 흩어졌고, 바닥에 쏟아지면서 특유의 짤그랑거리는 금속음을 냈다. 어떤 탄피는 몇 번이나 바닥에 튀면서 소리를 내기도 했고, 어떤 탄피는 팽이가 돌 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어떤 탄피는 더 찌그러질 데가 있다는 듯 우그러졌고, 어떤 탄피는 바닥에 데구루루 굴렀다.

       

       그렇게 무질서하게 탄피는 실내에 흩어졌다.

       

       하지만 진성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있다.

       무질서처럼 보이는 저것에도 분명히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고, 그 질서는 그에게 암시로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피가 속삭였다.

       탄피에 서린 사념이 속삭였다.

       원혼이 되지 못하고 떠나버린 원주인들이 남긴 사념이 탄피를 움직이고 있었고, 탄피가 제 위치를 찾아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행성이 제각각 움직이는 것 같아도 명확한 법칙과 질서에 기초를 두고 움직이듯이, 그렇게 행성이 움직여서 의미를 만들어내고 이적을 발휘할 힘이 되듯이. 행성과 별의 움직임이 사람의 삶을 읽고 미래를 알아낼 수 있는 상징이 되듯이.

       

       탄피 역시 그러하였다.

       

       무인들이 이르기를 인간은 소우주라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인간은 제각각 소우주요, 세계요, 하나의 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다면 탄피에 남은 사념들을 긁어모으면 별의 찌꺼기의 찌꺼기의 찌꺼기라도 흉내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보인다.

       무질서 속의 메시지가.

       

       그에게 속삭이는 미래에 대한 것이.

       

       탄피로 행하는 점괘의 결과가, 보인다.

       

       “보자. 가장 먼저 시작은 방송이겠구나.”

       

       탄피는 제각각을 이으면 특정한 형상을 만들고 있었다.

       그 형상은 마치 네모난 것에 안테나가 달린 듯한 모습.

       

       그렇다.

       

       TV였다.

       

       그리고 그 TV의 안에는 사람의 형상을 흉내 낸 것 같이 찌그러진 탄피가 이리저리 뭉개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 보면 한 사람이 다급하게 다른 사람을 쫓아가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였고, 어찌 보면 칼을 든 사람끼리 싸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찌 본다면 누군가가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고, 어찌 본다면 누군가가 웃는 얼굴로 방송에 나오고 있는 것 같이도 보였다.

       

       그 모든 것은 말하고 있었다.

       

       방송을 통해서 진행될 것이고, 방송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진성은 점괘에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바닥에 굴러다니던 탄환들이 자석에 끌리듯 천천히 허공을 날아 그의 앞에 한데 모이기 시작하였고, 투명 인간이 강한 힘으로 눌러 붙여서 모양을 만드는 것처럼 탄환은 한 점에 모여 찌그러졌다. 그렇게 모인 탄환은 마치 찰흙으로 모양을 만드는 것처럼 특정 모양을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그 형상이 꼭 바퀴 같았다.

       

       수레바퀴의 형상이었다.

       

       

       

                      *                          *                *

       

       

       

       “이야, 이 빌어먹을 양반들 보게? 일을 이따위로 하면서 우리한테….”

       

       진성의 점에서는 방송에서 일이 굴러갈 것이라 나왔다.

       

       그리고 그 점괘는 맞았다.

       

       ‘추적, 탐사, 보도’ 팀에서 가장 먼저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배알이 뒤틀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여있었고, 말은 하지 않지만,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비웃음, 조소를 가득 품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서로를 눈짓으로만 바라보며 지금 터진 상황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었으며, PD가 말문을 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미친 듯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무슨 요원이 나와서 감시하지를 않나, 멋대로 방송을 내보내면 큰일이 날 거라고 하지를 않나. 우리 무슨 선진국 맞습니까? 누가 보면 무슨 독재국가의 어용방송국 직원인 줄 알겠어요!”

       

       “우리가 누구입니까? 민주주의 국가의 방송인 아닙니까? 근데 이딴 일을 당하고, 게다가 심지어 우리가 철저하게 정부의 말에 따랐는데도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해서 일을 그르치게 만들다니. 이게 뭡니까? 우리가 한 고생은 그냥 헛수고 아닙니까?”

       

       “보면 말입니다. 군대 비리랑 똑같아요. 잘못은 높은 분이 저질러놓고 병사한테 지랄하지 않습니까? 그거랑 똑같은 거 아닙니까! 아주 억울해 죽겠습니다. 진짜로 우리가 방송이라도 내보내서 화제라도 얻었으면 몰라. 지들이 어디서 입단속 잘못해서 흘려놓고 말이야, 어. 우리한테 이렇게 지랄을 해댔다는 게 참 짜증도 나고 그러네요.”

       

       “게다가 말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면서 우리한테 사과 한마디 없어요. 적어도 의례적으로나마 ‘미안하다. 일이 잘못 풀렸다.’라고 말이라도 해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근데 우리를 이렇게 대접한다는 건 뭐냐. 우리 알기를 아주 우습게 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래 봬도 방송계 사람인데!”

       

       ‘추적, 탐사, 보도’ 팀은 쌓인 게 많았는지 기회는 이때다 싶어 속에 있는 말을 미친 듯이 쏟아내었다. 게다가 그들이 있는 곳은 도청 걱정이 없도록 철저하게 설계해서 만든 방송국의 회의실인지라 욕을 해도 자신을 감시하던 이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더더욱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욕은 점점 수위를 더해가기 시작하였고, 나중에 가서는 높으신 분들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얘기할 수준이 되었다. 

       

       그 정도가 되자 PD는 사람들의 말을 제지했다.

       

       아무리 안전한 것 같아도 말은 어디선가 샌다는 이유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

       특히나 입이 가벼운데다가 인맥은 대단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것이 방송계인지라, 입은 되도록 조심하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PD는 욕을 하는 대신에 더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더 확실하게 그 사람들에게 엿을 먹일 방법.

       뒤늦게라도 시청률을 보장받는 방법을 말이다.

       

       “방송하자.”

       

       그는 결연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곤 위에 설득받으러 갔다.

       방송을 틀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요청은 너무나도 손쉽게 통과되었다.

       

       이미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일이고, 다시 수습하기도 힘드니 그냥 자신들이 이득을 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리라. 아니,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방송을 튼다면 시청률이 기존보다 배는 더 뛰어오를 수 있겠다는 기대 또한 있었으리라.

       

       그렇게 한동안 지체되던 방송이 틀어졌다.

       

       거대한 불씨를 품은 채로.

       화약고에 튀었을 때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불꽃을 안에 품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사를 했는데 아직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아 컴퓨터로 쓴 글을 스마트폰으로 옮겨서 업로드 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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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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