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4

   마경이 닫혔다.

   그 소식은 금방 세계 전역으로 퍼져갔다.

     

   마경을 닫아낸 이카루스의 영웅들.

   세계는 그들을 칭송하고, 환호했다.

     

   크라슈는 마경에서 귀환한 뒤, 어느 여관방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크라슈의 앞에는 샬롯에게 받은 성검이 있었다.

     

   이제 남은 금역은 정말 거인의 숲밖에 없다.

   그곳을 끝내고 나면 남은 건 아벨라뿐.

     

   ‘아니, 아벨라만 있는 건 아니겠지.’

     

   익시온 소속이었던 세계 침식자들이 아직 존재한다.

   그들은 분명 아벨라의 편을 들고 있을 터.

     

   ‘세계를 꽤 이 잡듯이 뒤졌다고 생각했는데.’

     

   익시온 소속 세계 침식자들은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이 크라슈로서는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무언가 노림수가 있는 건가.’

     

   에벨아스크나 크림슨가든의 정보력으로도 잡지 못한 놈들이다.

     

   그렇다면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소리는 맞을 텐데.

   과연, 어디일지 크라슈도 짐작 가는 게 없었다.

     

   ‘아벨라도 나와 같은 걸 옆에서 봐왔으니까.’

     

   적어도 크라슈가 알법한 곳에는 절대 숨겨 놓지 않았을 터.

     

   “크림슨가든, 아벨라의 위치는.”

   [ 꾸준히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더군. ]

     

   아벨라가 있는 곳.

   그곳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아벨라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하늘 위다.

   하늘 위에 펼쳐진 우주 공간.

     

   그곳을 아벨라는 천체의 자전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처음에는 요격해볼 생각도 해봤지만.

   마황조차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섣부른 마법으로 혹여나 천체의 자전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염두 한 것이다.

     

   아벨라는 먼 고대부터 이어져 온 마법사다.

   그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힘을 쏟아야 할 텐데 그 부분을 걱정한 것이다.

     

   하물며 아벨라도 수틀리면 천체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녀는 이미 아서의 회귀 속에서 세상을 한 번 멸망 시켜본 마녀다.

   그녀라면 정말 언제든 세상을 멸망시키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크라슈는 아벨라의 요격을 포기했다.

     

   ‘어차피 내가 금역을 전부 삼키게 된다면.’

     

   아벨라는 필연적으로 그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녀는 지금 크라슈를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할 그릇으로 보고 있으니까.

     

   “개 같은 년.”

     

   크라슈는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손으로 마른세수하였다.

     

   내일이면 바로 거인의 숲으로 향해야 한다.

   그런 만큼 더 이상 생각에만 계속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크라슈는 침대에 기대었다.

   저 멀리 밤하늘 위, 무수히 많이 박힌 별들이 보였다.

     

   별똥별 하나가 지나쳐갔다.

   어쩌면 저 별똥별 중 아벨라가 있을지도 모른다.

     

   ‘네 생각대로 되게 두지 않을 거다.’

     

   그녀와의 긴 인연을 끝장내기 위해.

   크라슈가 조용히 푸른 눈동자를 불태웠다.

     

   똑똑-

     

   크라슈의 귀에 문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크라슈가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걸자 누군가 문을 열었다.

   흩날린 백색 머리카락의 정체는 비앙카였다.

     

   “크라슈 님, 식사해요.”

   “크라슈 님! 밑에 술판 벌이고, 난리 났어요!”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서 카란디스가 불쑥 나오며 외쳤다.

     

   매일 같이 생사를 넘나드는 이카루스다.

     

   동료의 죽음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오늘의 축배를 거하게 들어야 했다.

   그래야 죽은 이들이 아쉬워하지 않고, 기뻐하며 떠나갈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크라슈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래, 먹을 건 먹고 자야지.”

     

   밖으로 나온 크라슈가 비앙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살포시 웃던 순간 크라슈는 옆에서 온 기습에 몸을 부딪쳤다.

     

   크라슈가 살짝 물러서자 거기에는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금발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스트리아 스티그마 프리만.

   무려, 전 성녀였다.

     

   그녀의 얼굴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풀려 보이는 눈동자를 본 크라슈는 곧 눈치챘다.

     

   “아스트리아, 너 취했냐.”

   “아닌데에.”

     

   말꼬리가 늘어지는 시점에서 취한 게 분명했다.

     

   “미안, 내걸 줄 모르고, 한잔하셨어.”

     

   그러자 뒤늦게 하링이 나타나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하링은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

   워낙 수많은 독을 다루다 보니, 독에도 거의 면역인 그녀다.

     

   당연히 술 정도로는 취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는 상당한 도수의 술을 손쉽게 먹는다.

     

   아스트리아도 그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걸 들이킨 걸 보니 크라슈는 대충 상황을 예상했다.

     

   아스트리아가 술을 마시는 날은 딱 하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 때다.

     

   ‘이번 마경은 생각 이상으로 벅찼다.’

     

   이카루스는 분명 크게 선전했다.

     

   금역을 전전하며 강해진 베테랑 이들이었던 만큼.

   마경이라 해서 그들이 손쉽게 죽지 않았다.

     

   하지만 사망자는 나온다.

   특히, 최상위 악마계 침식종과 격전을 벌인 이후 악마성에서의 수성전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크라슈는 구태여 죽은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단장인 자신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카루스 모두가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테니까.

     

   하지만 아스트리아는 다르다.

     

   그녀에게 오는 이들은 대부분 중상자다.

   거기에는 급하게 이송되느라 뒤늦게 죽었음을 깨닫게 되는 이들도 존재한다.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기에 가장 많은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스트리아라고 해서 죽은 이까지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크라슈는 손을 들어 아스트리아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러자 고개를 든 그녀의 눈가에 찍힌 눈물 자국이 보였다.

     

   강인해 보이지만 늘 마음이 여린 그녀다.

   가장 많은 사람을 치료해주는 만큼 이카루스의 단원들은 모두가 그녀와 눈도장을 찍었다.

     

   아스트리아도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을 터.

     

   “헤헤, 당신.”

     

   눈이 마주치자 아스트리아가 헤실거리며 웃었다.

     

   취기 정도는 본인의 신성력으로 날려 버릴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는다는 건 취한 채로 있고 싶다는 거겠지.

     

   “아스트리아, 힘들면 다른 이들에게 맡겨도 돼.”

     

   이카루스에는 수많은 신성왕국 프리만 출신들이 있다.

   프리만에서도 이카루스를 팍팍 밀어주는 만큼 많은 수의 사제를 지원 보냈으니까.

     

   하지만 아스트리아는 큰 눈을 끔뻑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내가 빠지면 더 늘어나니까.”

     

   이카루스에서 아스트리아의 힘은 크다.

   그녀의 회복력이 있기에 이카루스가 나아갈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크라슈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를 감싸 안아주고는 머리를 토닥여줬다.

   그것만으로 아스트리아는 꽤 많은 게 회복됐는지 크라슈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그래, 너답다.”

     

   아스트리아는 성녀다.

   그것만은 크라슈가 무조건 보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푹-

     

   그 순간 크라슈는 다른 쪽에서 오는 부드러운 감촉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비앙카가 크라슈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동시에 하링도 살짝살짝 다가와 크라슈의 어깨 쪽에 몸을 기댔다.

     

   둘의 움직임을 눈치챈 아스트리아 뒤늦게 도끼 눈을 떴다.

     

   “너희 둘 다 뭐해. 지금은 내가 이 사람이랑 안고 있잖아.”

   “떨어지라고는 안 하잖아요.”

   “크라슈, 나도 취해.”

     

   비앙카는 아무렇지 않게 새침한 표정을 하고, 상위 독도 통하지 않는 하링이 취한다면서 머리를 기댔다.

     

   아스트리아가 황당해한 순간 크라슈의 등 뒤에서도 무게감이 쿵하니 왔다.

   거기에 있는 건 어느새 그의 뒤로 돌아간 카란디스였다.

     

   “저도요! 저도 취했어요!”

     

   아직도 크라슈를 포기하지 않은 카란디스의 적극적인 어필이었다.

     

   “다 떨어져. 쉭쉭!”

     

   취기 덕분인지 평소보다 아스트리아가 감정을 드러내며 고양이 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고양이들은 그럴수록 더 달라붙을 뿐.

   아스트리아의 내쫓음은 아무런 힘을 지니지 못했다.

     

   더불어 쥐도 한 마리 있었다.

   크라슈의 주머니 안에서 꿈틀거린 시체쥐가 말이다.

     

   [ 자업자득이군. 고추를 놀릴 대로 놀리니 그 꼴 나는 게다. ]

     

   크라슈도 이제는 크림슨가든의 말에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단지,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는지라.

   앞으로도 이렇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 * *

     

     

   거인의 숲.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금역이자 온갖 것들이 본래 크기보다 훨씬 거대해지고 강인해진 숲.

     

   그곳으로 향하게 된 크라슈의 앞에 의외의 인물이 나타났다.

     

   “오랜만이구나.”

     

   시즐리 에파니아.

   현재는 크라슈의 약혼녀이자 제국의 4황녀인 그녀였다.

     

   어느새 그녀와 크라슈도 스무 살.

   둘 다 처음 봤던 앳된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성숙함이 깃들었다.

     

   물론 타고난 체형이 그리 크지 못한 시즐리는 크라슈보다 한참 작았지만.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만큼은 크라슈 못지않았다.

     

   이곳은 기어코, 거인의 숲이 전부 잡아 먹은 프레이야 산에 입구.

   그곳에서 시즐리는 주둔한 채 크라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웬일이냐. 직접 행차를 다 하고.”

     

   크라슈는 시즐리와 꾸준히 연락을 나눴다.

   그녀는 그동안 제국의 정세는 물론 여러 가지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런 만큼 세계의 흐름에 가장 발이 빨랐고, 중간중간 소식들을 계속해서 크라슈에게 전해주었다.

     

   오죽하면 금역의 우선순위를 나누는데 도움을 준 것도 시즐리였다.

   알게 모르게 금역을 막는데 숨은 공신이다.

     

   “금역 중에는 거인의 숲이 마지막이지 않더냐. 제국과 근교인 만큼 와있던 게지.”

     

   시즐리는 그렇게 말하며 크라슈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대뜸 코를 킁킁거리더니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여인들의 향기가 잔뜩 뒤섞였구나. 내가 좋아하던 낭군의 향이 이제는 덮일 지경이야.”

     

   최근 크라슈의 주위 여자들의 공세가 조금씩 더 강해지고 있다.

     

   다들 이제는 어린 티를 벗은 성숙한 여성이기 때문인지.

   어디서 듣고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크라슈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슬쩍 접근해 왔다.

     

   크라슈가 이미 다 받아들인 마당에 굳이 이래야 하나 싶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네들끼리 무언가 라이벌 의식이라도 있던 모양이다.

     

   ‘두루두루 잘 지내줬으면 좋겠지만.’

     

   여자들 사정도 있는 법이다.

   서로가 선만 넘지 않는다면 괜찮겠지.

     

   게다가 그렇게 지내는 덕분에 서로 더 많이 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

   크라슈는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런 건 어떻게 아는 거야.”

   “나 말고도 누구든 알 거 같다마는?”

     

   시즐리는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걸어와 크라슈를 폭하니 안았다.

   그러고는 자기 얼굴을 크라슈의 가슴팍에 마구잡이로 흔들며 비볐다.

     

   그 행동이 어이없어 보고 있으려니 시즐리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어떠냐. 이러면 이제 당분간은 내 향기만 잔뜩 날 게다.”

   “너도 그런 걸로 경쟁하는 성격이었냐?”

   “후후, 나도 낭군 앞에서는 여자인 게다.”

     

   시즐리는 그리 말하고는 크라슈의 품에서 두 걸음 물러서 여관방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오늘 온 이유다.”

     

   역시나 용건이 있을 줄 알았다.

     

   “익시온의 잔당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 말은 크라슈의 얼굴을 굳게 했다.

     

   “거인의 숲, 중심지. 우리가 전선을 유지하는 틈을 타 그들이 그곳에 숨어들었다.”

     

   썩을.

     

   “익시온, 그들이 최흉을 완전히 일깨우기로 작정한 모양인 게다.”

     

   익시온과의 2차 전쟁이 시작됐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