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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4

        

       무사가 본 면사녀가 진짜 천화검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객잔 밖으로 던져졌다가 정신을 잃고, 이후에는 유랑가객과 면사녀, 그리고 오랑캐 년에게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하고 있을 뿐이 아니겠나.

       그러니 절대 도망이 아니라, 이 위중한 사태를 보고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야말로 찢어지는 가슴으로 동료들을 뒤로한 것이다.

         

       사흔의 대답은 머리 높이까지 번쩍 들어올린 손바닥이었다.

       사파 무사가 목을 움츠인다.

       하지만 무사는 거북이 아니라서 그런다고 해서 머리가 몸통에 파고들지는 않았다.

       다만, 나름 충격을 줄이려고 한 노력이었지만-

         

       “음. 아니지. 발상은 나쁘지 않군.”

         

       사흔이 천천히 팔을 내린다.

       그에 사파무사가 안도하며 다시 목을 빼는 순간이었다.

         

       짝!

       한 박자 늦은 뺨다구에 사파무사의 목이 홱 돌아갔다.

         

       “이건 단주를 우습게 안 벌이다. 개도 안 믿을 만한 소리를 나더러 믿으란 소리냐?”

         

       “죄송합니다!”

         

       정파 무인, 심지어 본인이 초절정의 무위를 가진 이가 굳이 자객을 쓰겠냐고.

       거기에 기껏 자객을 보내놓고는 대놓고 어울려 함께 싸우는 의뢰주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천화검을 엮어낸 발상 그 자체는 오히려 뛰어나다고 하겠다.

       지금의 대치 상태를 깰 만한 명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게 진짜 천화검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고작 계집을 희롱한 정도로 여덟의 목숨을 취한 일은 너무 심한 손속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그냥 트집잡을 건수를 잡았단 소리다.

         

         

         

       그에 사흔이 두 상급 전투단의 단주에게 쪼르르 달려가 말했다.

         

       “요즘에 천화검 그 계집이 남녕 시내를 아주 제집처럼 돌아다닌다지 않소이까?”

         

       그에 백호단주 문정역이 이를 으득 간다.

         

       “맞습니다. 빌어먹을 년. 재수 좋게 친왕이 오는 때에 맞췄을 뿐인데 아주 기고만장이 아닙니까. 감히 사도련의 영역에서 그리 방자하게.”

         

       “어허. 그리 화를 내진 말게. 그게 바로 그 계집의 계책이야. 연의에서 제갈량이 손권을 놀려 참전을 이끌지 않았나. 도발을 통해 속을 뒤집어 목적을 이룬다. 이는 바로 격장지계의 계책이네.”

         

       필패병법 조광앙의 병법 타령이었다.

         

       “그놈의 병법. 그리고 이제 방년이 넘은 핏덩이가 무슨 계책이야? 그냥 타지에 와서 생각 없이 놀러 다니는 거겠지.”

         

       “쯧쯧. 상대는 초절정일세. 적을 우습게 아는 실책을 범할 셈인가? 모름지기 지피기지면-”

         

       “백전백승! 나도 알아!”

         

       “쯧쯧,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라네. 어디서 주워들으려면 제대로 주워듣던가.”

         

       조광앙의 핀잔에, 문정역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내 폭발해 무언가 외치려는 순간.

       절묘한 때에 사흔이 입을 여는 것이다.

         

       “크흠, 안 그래도 천화검 그년이 거슬리는 차라, 본 단주가 흑웅단원들에게 활동 중에 천화검을 보면 살살 약을 올려보라고 지시를 했소이다.”

         

       “올커니! 좋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왜 격장지계를 이쪽에서 쓸 생각을 못했냔 말이야. 자네도 머리깨나 쓰는구만?”

         

       사흔의 눈가가 씰룩거린다.

       백급 전투단과 흑급 전투단의 서열이 있다 해도 사흔이 엄연한 연장자가 아닌가.

       물론 전투단의 급도, 본인의 무위도 모자란 상황에서 나이만 더 많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자네라니.

       사흔이 입을 다물고 있던 이유였다.

         

       “이리 오신 것을 보니 건수라도 잡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복주제일검은 사람이 됐다.

       사흔이 그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년이 객잔에 보이길래 마침 노래를 팔던 유랑가객이 있어 희롱을 한 모양이네. 당연히 분기에 차서 검을 뽑아들었고. 그리고는 감히 사도련의 무사를 자그마치 여덟이나 참살하지 않았겠나.”

         

       말이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법.

       쉰이 넘도록 굴러먹은 무인의 관록이다.

       

       부하 관리를 못해 여덟이나 잃어 먹은 무능한 단주에서, 명분을 잡기 위해 계략을 꾸몄다가 수하의 목숨과 맞바꾸어 상상 이상의 성과를 성취한 냉철한 계략가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그에 두 단주의 눈빛이 번뜩인다.

         

       “감히! 대 사도건아를 해하다니!”

         

       “젊은 년이라 그런지 앞뒤 가릴 줄 모르고 날뛰는군. 기어코 피를 보았다 이거지.”

         

       여덟이 죽었음에도, 조광앙은 오히려 킬킬 웃으며 계책을 꺼내 드는 것이다.

         

       “먼저 칼을 뽑았다면 우리도 거리낄 것이 없지. 판을 더 키우세. 친왕이 계림검파에 있지 다른 데에 있던가? 만만한 정파 무관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계림검파 놈들도 그저 친왕 믿고 처박혀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겠지.”

         

       문정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오. 방금 친왕이라 하지 않았나? 그럼 이제 내기의 결과는 인정하는 모양이로군? 필패병법 조광앙. 딱 어울리는 별호로다.”

         

       조광앙의 표정이 팍 썩어 들었다.

       그에 문정역이 만족스레 웃으며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와는 별개로, 강호의 선배님들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망아지에게는 벌을 줘야지.”

         

       “흥. 그게 자네 힘으로 되겠나? 화염마군을 쳐죽인 년이라던데?”

         

       기분이 상한 조광앙이 빈정거린다.

         

       “내 듣기로는 용궁루에 자주 들린다지? 시궁창 박쥐새끼들 시켜다 산공독이나 마비산이라도 먹여놓으면 그만이지. 사사의께 약을 좀 부탁드려다가, 음? 근데 사사의께선 요즘 통 얼굴을 안 비치시는군? 그 재미있는 일이 안 풀리니 심통이 나셨나?”

         

        참고로 시궁창 박쥐새끼들이란 사파 무리들이 하오문도들을 부르는 말이다.

       

       문정역이 그리 말하며 조광앙을 바라본다.

       의문의 투서를 날려 계림 제자와 숙수들에게 괜한 고통을 준 장본인, 조광앙이 왜 날 보냐는 투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쨌든. 구경꾼 잔뜩 끌어다가 사문 들먹이며 모욕을 주면 도망가지도 못할 터. 그래, 자네 좋아하는 그 병법에서는 이걸 뭐라고 하던가?”

         

       “음, 그러니까……”

         

       사람이 하는 일이 병법으로 딱 무엇이다 정의해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히 늦어지는 대답에, 문정역이 아주 신이 나서 놀려대는 것이었다.

         

       “딱딱 대답이 안 나오는 걸 보니 병서를 읽은 것이 모자란 모양이지? 수백 번을 읽어도 딱딱 대답이 안 나오면, 앞으로 수백 번은 더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조광앙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

         

         

       보열은 청에게 마지막으로 닷새를 기다려 주겠다더니, 엿새째에 또 연서가 날아드는 것이 아닌다.

         

       「축시, 석봉실.」

         

       와, 내용 단 한 줄!

       먹이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한 줄짜리 연서만 보아도 보열의 심기가 단단히 상했음을 알겠다.

         

       그런데 석봉실이야?

       그러면 보석, 나무, 꽃, 곤충 혹은 짐승 순서로 객실 이름을 지으니까, 꿀벌이면 또 한 층 내려간 거 같은데.

       늙은이가 전낭 사정이 점점 나빠지나?

         

       뭐, 어쨌거나.

       청이 연서를 화로에 툭 던지며 생각했다.

         

       혈사독 한 병만 더 얻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려나.

       노인네가 마두 주제에 은근 순진하던데, 어떻게 살살 구슬리면 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청이 손가락을 딱 튕기는 것이 아닌가.

         

         

         

       축시.

       사사의 보열은 심기가 단단히 상했다.

         

       “이년이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도 유분수지, 아주 호구로 보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약속 따위 지킬 생각도 없었던 게야. 고얀 년 같으니.”

         

       늙은이의 특기, 혼잣말이다.

         

       그렇게 보열이 분한 마음에 석봉실 좁은 객실을 왔다 갔다 ‘망할 년 죽일 년 내가 가만히 두나 봐라’ 정신 사납게 중얼거리며 빙빙 돌고 있을 때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보열이 울화를 담아 소리친다.

         

       “들어와! 이년아, 도대체 사람이 그렇게 우수워 보이디! 내가-”

         

       버럭 화를 내려던 보열이 멈칫했다.

       청이 아니라, 복장을 보아하니 객잔에서 일하는 여급이었으니까.

         

       “크흠, 무슨 일이냐?”

         

       “용궁실에 계신 손님께서 어르신을 모셔 달라고 하셔서……”

         

       공연히 욕을 먹은 여급이다.

       고수의 기세 앞에 어깨를 움츠리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다.

         

       “용궁실에 있는 손님이라니? 나를 일러 모셔달라고 했단 말이냐? 누가? 또 내가 누군지 알고?”

         

       “저도 모르고, 그, 면사를 쓴 손님이, 석봉실 쓰시는 어르신을 정중하게 모셔오라고만 하셔서……”

         

       면사를 쓴 손님에다가 석봉실을 콕 찝어 말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에 보열이 용궁루 꼭대기로 향했다.

         

       벌써 복도의 때깔부터가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붉은 비단에 온갖 장식까지 더해 아주 밤중에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용궁실 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리며 청이 맨얼굴로 살살 눈웃음치며 반기는 것이 아닌가.

         

       “앗, 오셨어요?”

         

       “하, 너는 감히 어른을 오라가라 도대체 어디서 먹은 버르장머리, 음? 이 향은?”

         

       보열의 코에 진한 차향이 콱 스민다.

         

       “천하의 사사의가 겨우 석봉실에 머무르셔야 되겠어요? 제가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여길 잡았어요. 오늘은 여기서 쉬다 가시고, 자, 딱 맞춰 오셨네. 제가 어르신 생각이 나서 육보충시를 챙겨왔잖아요.”

         

       “흠흠. 내가 뭐 차나 얻어먹자고 부른 건 아닌데.”

         

       서문수린류 예절교양에는 당연히 다예가 포함되어있다.

       방사능 주입으로 각인된 청의 차 내리는 솜씨였다.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또 일절이다.

         

       누구보다 차에 진심인 사사의다.

       향만 맡아도 찻잎의 상태가 어떠한지, 또 찻물은 제대로 우렸는지 곧장 파악되는 경지에 있는 것이다.

         

       청이 찻주전자의 뚜껑으로 조심스레 윗물을 걷어내는데, 이는 차 내리는 과정에서 춘풍불면이라 하는 기예다.

         

       보열이 찻잔을 쥐고 찻물을 들여다본다.

       다예에서는 품차라 하는 과정이다.

         

       온도 좋고, 색 좋고, 향 좋고.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한 잔에, 보열의 입가가 느슨하게 풀어진다.

         

       “흠흠, 다예를 아주 제대로 배웠구나.”

         

       “뭘요, 아직 모자란 실력인걸요.”

         

       한바탕 따지겠다는 전의는 온데간데없고 보열이 싱글벙글 육보충시로 혀를 적신다.

         

       “히야, 좋구나. 그래, 내 남녕 땅에서 이 한 잔을 못 보는구나 하고 안타깝던 차에, 네가 소금팔이 놈보다 훨씬 낫구나.”

         

       “헤헤. 소금 파는 놈한테 짠물 말고는 뭐가 나오겠어요.”

         

       “그래, 맞다. 쯧. 도대체가 말야.”

         

       그렇게 세 번 우려 마시고 잔향으로 여운까지 즐기고 나서야, 보열이 아차 싶었다.

       화를 낼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크흠. 그런데 약조한 시일이 지났는데, 어찌 소식이 없느냐?”

         

       “아유, 말도 마세요. 밥 한 끼 먹으려면 아주 막대기 독침을 한다고 막대기를 다섯 개씩 꽂아대는 통에 하독은 무슨, 요리의 태부터가 엉망이 된다니까요.”

         

       “뭣이!?”

         

       “혹시 그쪽에 무슨 내분 같은 거 있어요? 듣자 하니 누가 익명으로 독을 조심하라고 투서를 보냈다고 하던데. 어르신이 보내진 않으셨을 거 아냐.”

         

       “너랑 나 말고 누가 계획을 안단, 음.”

         

       보열이 황당함에 되물으려다 돌연 입을 꾹 다물었다.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놈의 새끼들, 늙은 놈이 한 건 해 보겠다는 것이 배가 아파서 방해를 해?

       애초에 뭐 혼자 좋자고 하는 작전도 아니고, 차일피일 시간 버리며 이런 궁벽한 시골 촌동네에 머무르기보다는 빨리 끝내고 복귀하는 것이 모두에게 낫지 않겠나.

       그런데 그걸 또 방해를 하고.

         

       “역시. 그쪽에서 보낸 거 맞죠? 뭔데요? 사람 일 시켜놓고 방해하기 있어요?”

         

       “크흠.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나 아니라 누가 하독해도 실패할수밖에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 혹시 한 병 더 갖고 계시면……”

         

       “뭐야! 실패했단 말이냐!”

         

       “실패라고 하긴 그렇고, 그냥……”

         

       청이 말끝을 흐렸다.

       그냥 아무것도 안 했을 뿐이라고 다 말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투서가 날아올 줄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독침봉이 다섯 개인데…….”

         

       청이 불쌍한 척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차라리 청이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으면 강 대 강으로 부딪칠 수 있었겠지만, 귀한 차 잘 얻어먹고 투서 건도 뜨끔하니 마음에 걸리는 참에 뭐라고 하기도 뭐한 것이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더 줄래도 가진 게 없어. 그러니까 필히 성공해야 한다. 이번에도 닷새 줄 터이니 제발 좀 먹여 봐.”

         

       앗싸. 세 병.

       청이 실실 웃으며 혈사독을 챙겼다.

         

         

       —-

         

         

       한편, 보열에게 괜히 욕을 먹은 여급은 다급하게 아래층으로, 일 층에 닿아서도 더 아래 지하층으로 향했다.

         

       서러운 여급 신세, 천것 취급이 서러워 어디 숨어서 울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여급은 천것 취급을 반가워하는 부류였으니, 이렇게 천한 신분을 이용해서 수작을 부리는 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바로, 강호에서 하오문이라 부르는 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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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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