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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5

       “[당신이니까.]”

        

       “잠깐, 잠깐만요.”

        

       “[당신이니까, 할 수 있다고 믿는 거예요.]”

        

       “잠깐 멈추라고 했잖아요!”

        

       “으꺅!”

        

       갑작스럽게 샤를로트가 나를 덮치는 바람에 나는 옆으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그렇다.

        

       이쪽 세상으로 와서는 나름대로 클레어와 앨리스를 따라 운동을 해왔지만, 여전히 나는 본격적인 검사들에게는 비교하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약한 근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죠? 뭐 하는 거예요? 설마 지금 저 안의 제가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얼굴이 빨갛게 변한 샤를로트는 꽤 귀여웠다.

        

       샤를로트의 저런 표정은 거의 본 적 없었는데.

        

       “물론입니다. 저 안의 시나리오가 그러니까요.”

        

       “제가 레오한테 저런 말을 했을 리가 없어요. 아니, 당연히 한 적 없는데요!”

        

       “샬럿, 목소리 좀 낮춰주겠어? 잘못하면 네가 소리 지르는 게 옆집에 들릴지도 몰라.”

        

       “…….”

        

       빙긋 웃으며 그런 소리를 하는 앨리스를 노려보며, 샤를로트는 몸을 일으켰다.

        

       [크]

       [이게 백합이지]

        

       “클레어, 밴 부탁드립니다.”

        

       “응.”

        

       내가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말하자, 클레어는 얼른 마우스를 잡아 쓸데없는 소리를 한 놈들을 밴 하거나 채팅 금지를 걸었다.

        

       역시 관리는 나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하는 게 효율적이라니까.

        

       “레오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우리가 살던 세상과 저 게임 속의 세상은 이야기가 여러모로 다르게 흘러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굳이 저를 선택해서 굳이 그런 대사를 하게 만든 것은 악취미라고 생각하는데요. 대사가 녹음되지 않은 부분도 굳이 직접 읽은 것도 그렇고요.”

        

       샤를로트는 내 생각보다 예리했다.

        

       게임에 관한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준 것도 아니고— 아니, 정확히는, 비디오 게임이 무엇인지 대략적인 개념만 알려주었을 뿐인데, 저 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추론해냈다는 게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내가 캐릭터를 조작하는 것을 보고 알아차린 것일까?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근거를 말해주시겠어요?”

        

       내가 태연하게 말하자, 샤를로트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보며 앙칼지게 물었다.

        

       “저희가 루테티아에 있을 때 기억하십니까?”

        

       “그때가 왜— 아.”

        

       나의 말에, 샤를로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래, 그렇겠지.

        

       그때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나도 기억하고 있는데, 전장에서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샤를로트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때 루테티아에서, 샤를로트는 나에게 드디어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 좋다고 했었다.

        

       거기에, 내가 샤를로트를 놓고 가겠다고 하자 절대로 그럴 생각 하지 말라는 말까지 했었고.

        

       참고로 조금 전 샤를로트의 대사는, 샤를로트와 레오가 페어로 이벤트 전에 들어가기 직전 샤를로트가 하는 대사였다.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전함이 폭파되고 전쟁 자체는 반쯤 무마된다. 무려 제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한 전략 병기가 사라진 거니까.

        

       그리고 그 전략 병기를 파괴할 수 있는 존재는 당연히 제국 깊숙이 침투한 어느 나라의 간첩일 수밖에 없다— 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참고로 그 이후로 실비아는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그러다가 작품 후반에, 적에게 둘러싸여 패배하기 직전인 주인공 일행에게 합류하며 [거기까지입니다.]같은 대사를 하긴 하겠지만, 아직은 일단 ‘생사불명’이었다.

        

       제국은 혼란에 빠졌다.

        

       전쟁 자체는 무산되었지만, 그 시점이 뒤로 미뤄졌을 뿐 들끓는 여론은 어디론가 터져나가지 않고는 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제도에도 퍼져서, 제도 내에 있는 외국계 제국인이나 외국인들이 은근히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샤를로트야 왕녀로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고, 일단 국경 근처까지 군대가 이동하긴 했어도 본격적인 전쟁이 터졌던 것은 아니라 아직은 중요한 손님으로 대우받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샤를로트의 귀에 그런 말이 들려온 것이다. 제도에 기거하는 벨부르인들이 여러모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같은 왕국 사람으로서, 아니, 그 왕국의 왕족으로서 백성을 지키고 싶긴 하지만 방법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샤를로트에게 레오를 움직여 말을 걸면 시작되는 이벤트.

        

       ……물론 나는 내용은 몰랐다. 그냥 주인공과 히로인이니 대충 호감도 이벤트가 나올 거라 생각만 했지.

        

       전투는 벨부르인들을 린치하려는 제국 사람과 싸우며 시작하는데, ‘저 사람들과 같은 제국 사람인 나를 믿느냐’라는 레오의 질문에 대한 샤를로트의 답이었다. 얼굴을 붉히고, 눈썹을 살짝 내리깔고, 볼을 붉히고—

        

       “……여기서 그 이야기를 꺼내면 당신한테 결투를 신청하겠어요.”

        

       “이 나라에서는 목숨 건 결투는 불법입니다.”

        

       잘하면 합법의 영역에 걸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칼을 쓰는 결투는 불법일 것이다.

        

       “법이라는 건 어디로든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법이에요.”

        

       “왕녀라는 분이 그런 말을 해도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미아의 교육에도 좋지 않을 겁니다.”

        

       “저, 저도 여러분과 동갑인데요!”

        

       바로 조금 전까지 얼굴을 붉히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바라보던 미아가 그렇게 외쳤다.

        

       [저게 성인?]

       [성인이었어?]

       [합법인가?]

        

       아, 맞다. 여기서 우리는 성인이었지.

        

       아마 미아도 동갑으로 되어있을 테니, 주민등록증만 찾으면 술도 담배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술을 마시는 미아는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데, 담배 피는 미아는 상상이 안 가네. 영지에서 아편도 파는데 말이다.

        

       아니, 그보다.

        

       “클레어, 저기 합법이라고 했던 사람 밴 시켜주십시오.”

        

       “알았어!”

        

       클레어는 그게 꽤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저는 허락할 수 없어요.”

        

       샤를로트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세요. 이 게임에서는 당신도 나오죠?”

        

       “죄송합니다만, 저는 지난 이벤트 이후로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

        

       샤를로트는 고개를 휙 돌려서 앨리스를 보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공략당하는 중이야.”

        

       앨리스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운 채 담담하게 말했다.

        

       “…….”

        

       “어, 나는 상관없긴 한데, 아마 이번 작품에서는 공략할 수 없을걸? 여동생이잖아?”

        

       실제로도 그랬다.

        

       말을 걸어보긴 했지만 그게 연애 루트로 가는 것 같은 대사는 아니었다. 하긴, 전작에서도 사망이 확정된 캐릭터라서 본격적으로 공략한다기보다는 죽기 전에 사연 더 만들어준다는 느낌이 더 강했지.

        

       “아, 미아는 안 됩니다.”

        

       “어째서요?”

        

       샤를로트의 말과 동시에 미아의 고개도 내 쪽으로 돌아왔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지금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레오로 미아를 공략하기를 바라세요?”

        

       샤를로트는 말없이 미아 쪽을 보았다가, 이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만.”

        

       “제가 왜요!?”

        

       미아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렇게 항변했다.

        

       “저도 여러분과 동갑이라니까요!?”

        

       미아가 이렇게까지 격정적으로 반응하는 건 또 처음이네.

        

       아, 아니다. 처음은 아니구나. 얘 앞에서 얘네 아버지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지, 음.

        

       ……그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뤄두기로 하고.

        

       “아무튼 안 됩니다.”

        

       “아니!”

        

       “내일 초콜릿케이크를 사드릴 테니 안 됩니다.”

        

       “지금 그게 무슨 논리에요……!”

        

       미아는 그렇게 외치면서도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이게 먹히는구나.

        

       하여간에 먹는 거 참 좋아한다니까. 어떻게 살이 안 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내일 먹방이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먹방만으로 방송을 꾸리지는 못하겠지만, 약간 이벤트 느낌으로. 지난번에 앨리스가 내 피규어 리뷰를 했던 것만큼.

        

       “그렇다면 지금 진행되는 이벤트는…….”

        

       “중간에 끝내는 방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화면에선 아까부터 같은 배경음악이 반복되고 있었고, 캐릭터들도 계속 서로를 노려보면서 때리려는 자세만 취한 채였다.

        

       턴제 게임이니 시간이 지나도 별로 상관은 없지만, 계속 저러고 서 있기만 하니 서로 엄청나게 뻘쭘해 보인다.

        

       “그럼 슬슬 계속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먼저 장난을 걸어놓고……무슨 상식인 같은 태도를…….”

        

       샤를로트는 중얼중얼했지만, 더 이상 내가 게임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뭐, 어차피, 아직 샤를로트 엔딩을 본 것도 아니니.

        

       게임 마지막에 이어지는 사람은 그때 가서 서로 실력으로 정해도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적어도 힘겨루기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몇 가지 방법은 생각 중이지만, 뭐, 어차피 세상만사 생각대로 되는 게 없으니까.

        

       나는 느긋하게 게임패드를 조작하여, 이벤트전답게 쉽게 이길 수 있도록 설계된 전투를 간단하게 끝냈다.

        

       *

        

       방송이 끝난 뒤 각자 옷을 갈아입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나란히 누웠다.

        

       음, 걱정했던 것만큼 답답하지는 않다. 물론 여기서 누구 하나라도 잠꼬대하는 순간 다섯 명이 모두 깨게 되겠지만.

        

       앨리스, 나, 클레어, 샤를로트, 미아. 눕는 순서를 정해두고 누운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눕게 되었다.

        

       “……어떠셨습니까?”

        

       나는 샤를로트에게 물었다.

        

       “글쎄요.”

        

       샤를로트는 작게 한숨 쉬듯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이런 곳에 혼자 떨어졌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겠지만, 지인이 이렇게나 있으니까요.”

        

       “저도요. 이 세상도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게 많아서, 아직은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어요.”

        

       “다행입니다.”

        

       “지내다 보면 마음은 편해질 거야. 너는 왕족이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푹 쉬다가 가면 좋잖아?”

        

       “……황족이신 분이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앨리스 말도 맞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 즐기다가 가면 돼. 그리고 그게 우리가 돌아갈 방법이기도 하고.”

        

       “아까 낮에 말했던 것 말이군요.”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확실히, 그게 사실이라면 다음 기회가 올 때까지는 그저 마음을 놓고 지낼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지?”

        

       클레어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어려있었다.

        

       “우리, 꽤 재미있는 곳에 많이 다녔거든. 내일부터 하나씩 소개해줄게. 아직 여기서 해보고 싶은 것도 남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요.”

        

       은근슬쩍 그런 소리를 하는 미아의 목소리를 듣고 샤를로트는 어이없다는 듯 훗, 하는 소리를 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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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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