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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5

    -콰광-!

     

    신체의 내부에서 터졌기 때문에 폭발과 충격에 비해 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이는 마계의 대기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좌표교란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꼼수 중 하나.

    그것은 대기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내부를 좌표로 지정하여, 신체의 내부에서 폭발시키는 방법이었다.

     

    비록 의지를 지닌 생물에게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기는 하나, 마계는 체내에 간섭받을 마나가 없는 경우도 왕왕 있었기 때문에, 마수가 언데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꽤 유용한 수단이었다.

     

    -철퍽…….

     

    어보미네이션이 체내에서 폭발한 원소들의 충격으로 인해 육편으로 화하는 것을, 루크는 확실히 끝이 났는가 가만히 지켜보았다.

     

    “후우…….”

     

    루크는 크게 한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지친다.

    마나를 금하고 좌표를 교란시키는 가스와 약물에 당한 채로 5서클의 파괴마법을 운용하는 것은, 아무리 루크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건 과거 8서클에 이르던 대마법사이던 시절의 자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그 때와는 달리 아직 5서클인 자신이다.

    그나마 압도적인 마력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마법은 꿈도 꿀 수 없었겠지.

    뭐,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후의 수단이던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이 고생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셈이다. 

     

    그나저나, 세상에 이런 기술까지 존재한다니…….

     

    마계의 대기상황을 마법이 아닌 연금술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심지어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손바닥만한 고위력 살상병기라니…….

    과연, 이 시대에는 아직도 자신이 모르는 물건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토록 위험한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었단 말인가.

     

    ‘이건 나도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군.’

     

    아무래도 과거와는 달리, 서클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을 체감한다.

    이 시대에서 공식적으로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5서클이지만, 그래봤자 5서클에 불과하다.

    모든 상황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힘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서클을 올리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시간을 필요로한다.

    서클은 반드시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의 마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이만한 마나를 모을 수 있었던 것도 꽤 서두른 편이긴 하지만, 6서클은 여전히 너무나 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서클만 키워봤자, 기반이 없는 서클은 결국 모래 위에 지은 성이나 다름없다.

    안 그래도 서클이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방식이다.

    게다가 서클이 본체인 자신에게 불안정이란 특히 더 위험하다.

     

    여신과 파르바티를 억누르고 살기 위해 서클을 키우는데, 지나치게 서둘러서 소멸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본말 전도가 아닌가?

     

    따라서, 최대한 다른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 것인데…….

     

    ‘인형계획을 예정보다 더 서둘러야겠군.’

     

    일이 마무리 되는대로, 한번 인형사를 찾아가봐야 할 듯 싶다.

    뭐, 이미 인형에 쓸 소재와 자금은 축제로 어느정도 확보를 한 상태니…….

     

    루크는 천천히 바닥에 늘어진 세이어를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이제 정말로 끝났군.”

     

    안개도 이제 슬슬 옅어져 가고 있고, 어보미네이션은 죽었다.

    녀석이 사용하던 지팡이도 빼앗아 떨어트려 두었고, 브레스가 눈에 직격한 탓에 그는 눈도 뜰 수 없다.

     

    “세이어, 아직 살아있나?”

     

    살아있겠지, 죽이지 않았으니까.

    아직 몸이 녹아내리지 않고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단 루크의 의도대로 살아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세이어는 불타버린 얼굴을 감싸쥔 채 한탄하듯 웃었다.

     

    “이런, 이런. 한방 먹었는 걸.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건 독이라더니……. 이제보니 가끔은 불도 나오는 것 같네.”

    “……마지막까지 시끄러운 녀석이로고.”

     

    세이어의 농담에 루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언제는 어린 여자아이 취급이더니, 이제 와서는 악녀취급이나 한다.

    삶에 무게가 없는 자라, 농조차 일관성이 없는 것인가?

    루크는 무어라 쏘아붙이고 싶기는 했지만, 안 그래도 브레스로 입 안이 화끈거리는 와중인데다, 그와는 농담이나 나눌 정도로 정이 든 사이도 아니었다.

     

    “뭐, 일단 살아있다니 다행이군. 묻고 싶은 것이 많거든.”

    “……내가 대답해주지 않겠다면?”

    “힘들다면 굳이 말할 필요 없네.”

     

    ‘리치의 기억을 읽는 건 5서클이면 충분하니.’

     

    “크큭, 그런가.”

     

    뒷말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세이어도 그 의미는 아는 듯 보였다.

    루크의 목소리와 발소리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듣던 세이어는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철컥-.

     

    그의 품 속에서 다시 들려오는 기묘한 쇳소리.

    그것은 처음의 것보다 훨씬 작은 크기로 만들어진 ‘드워프의 지팡이’였다.

     

    그것을 본 루크의 눈이 다시금 살짝 커졌다.

     

    ‘흠, 주머니는 전부 뒤졌던 것 같은데……?’

     

    어째서 놓쳤을까?

    루크는 그가 겨눈 지팡이의 끝에서 시선을 살짝 내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검은 피로 범벅이 된 세이어의 복부.

     

    과연, 품 안에서 자꾸 뭔가 꼼지락거린다 싶더니, 저런 걸 숨겨두고 있었나.

    아마 작은 지팡이를 뱃 속에 미리 넣어둔 채,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둔 것 같다.

     

    ‘뭐, 굳이 몸 속까지 뒤져볼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확실히 작은데다 마력 감지수단에는 나타나지도 않는 무기다.

    저렇게 몸 속에 숨기면 찾기 어렵겠지.

    검이나 활처럼 구조적으로 충분한 살상력을 내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 큰 것도 아니다.

    꽤 훌륭한 무기 은닉법이 아닌가.

     

    하지만…….

     

    -탕-!

     

    다시금 울려퍼지는 굉음.

     

    그러나, 그의 지팡이에서 발사된 탄은 이번엔 루크의 머리칼조차 닿지 못하고 기둥에 틀어 박히기만 했을 뿐이었다.

     

    “…….”

    “하, 하. 역시 빗나갔나…….”

     

    그래봤자 눈 먼 화살이다.

    아무리 지쳤기로서니, 이미 한번 본 수단에 다시 당할 만큼 루크의 대응력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루크는 그를 향해 말했다.

     

    “무기를 꺼낸 방법이야 참신했다만, 기습이 통하지 않아서야 의미도 없다.”

    “…….”

     

    세이어는 씨익 웃었다.

    실로 그렇다.

     

    그는 모습을 보이기에 앞서 부하를 보내는 것으로 인형사에게서 인형을 빼앗았고, 시설의 ‘그것’을 재우기 위해 준비해두었던 안개를 이용해 마나를 빼앗았으며, 어보미네이션과 지팡이를 이용해 격투도 제한시켰다.

     

    그런데도 결국 마지막에는 이렇게 되고 만 것인가?

     

    아아, 이 모습을 ‘그’가 보았다면 참으로 우스워했겠지.

     

    “포기해라. 그러면 죽이진 않아.”

    “아아, 그래?”

     

    -툭.

     

    세이어는 순순히 손을 내렸다.

     

    은닉용으로 만들어진 소형 모델이라 들어있는 탄은 단 두발.

    거기서 한 발은 빗나갔으니, 눈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남은 한발로는 절대 소녀를 상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철컥.

     

    “만나서 반가웠어.”

     

    세이어는 돌연 자신의 목에 지팡이의 끝을 가져다 댔다.

     

    “……? 잠까-!”

     

    무엇을 하려는 지 깨달은 루크는 급히 그를 막으려 했으나, 지친 몸이 손가락에 올린 방아쇠를 당기는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샘플.”

     

    –탕–!

     

    소리가 울려퍼졌다.

     

    ———-

     

    결국 그렇게 세이어는 죽었다.

    이번에는 마취를 위한 탄이 아니라 순수한 살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탄이었는지, 세이어의 머리는 지팡이의 힘에 의해 깔끔하게 부서지고 말았다.

    영혼이라도 읽으려 했건만, 그마저 이 안개에 방해받아 불가능했다.

     

    그렇게, 그를 통해 비밀을 알아내겠다는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

     

    루크는 녹아내리기 시작한 그의 시체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미간을 짚었다.

    결코 이런 결과를 바라던 게 아니었다.

    이래서는, 당장에 얻어가는 것이 없지 않은가.

     

    자살이라니…….

     

    “…….”

     

    혹시나 하여 날아간 세이어의 턱을 발로 툭 건드려 내부를 확인하니, 딱히 지팡이가 아니었어도 자살하는 방법은 있었던 것 같다.

    이빨 내부의 독약은 꽤 클래식한 자살수단이 아닌가.

    구태여 총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한방에 끝나는 쪽을 선호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하아…….”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내 손을 더럽히지는 않게 되었다만…….’

     

    기억을 읽을 수 없게 되었으니 알고 싶은 것 들은 단서를 통해 직접 알아보는 수 밖에 없다.

    훨씬 귀찮아진 것이다.

    ‘니드호그가, 뭐지?’

    마지막의 순간 간신히 읽어낼 수 있었던 건 고작 그 한 단어 뿐이었다.

    어떤 것의 이름인지, 아니면 현상인지도 모를, 단서 하나 없는 그저 단어.

    마지막 순간에 가장 강렬히 남은 기억이니 가장 중요한 단어임은 확실한데…….

    기억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바로 알았을 테지만, 지금은 알 수 없다.

    ‘끝까지 도움이 되질 않으려 하는 군, 세이어.’

    루크는 세이어가 지니고있던 지팡이들과 아직 사용하지 않은 탄환, 그리고 가스를 담았던 것으로 보이는 통과 각종 약품통을 되는대로 회수하고 일어났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뿐.

     

    ‘돌아가는 시간……. 맞출 수 있을까.’

     

    슬슬 예르나와 다이튼의 수면 확정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자는 김에 푹 잔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꽤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뭐, 그래도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순간이동을 시도하는 방법이 아직 남아 있다.

    아린세이아의 슈퍼컴퓨터를 가속시키면, 하루에 한 번 정도는 텔레포트가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한번 몸소 증명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방해받지 않고 공간이 적당한 안정적인 장소까지만 도착하면 텔레포트로 자신의 방까지 한순간에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록 역천의 모래시계를 사용한 시간가속까지 필요한 고연산작업이 필요한 탓에, 하루에 한 번 정도가 한계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 휴대폰도 요즘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연산능력은 아린세이아가 충당한다면 굳이 휴대폰의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고, 적당한 성능의 코어를 구해 단말용 악세사리를 만드는 편이 더 낫지 않나?

    어차피 단말기는 출력만 가능하면 되는 거니까…….

     

    ‘음……. 괜찮은 발상인 것 같은데.’

     

    그래, 이것도 여러가지로 연구해볼 수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일단은 이 지하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생각하자.

     

     

    “미치겠군.”

     

    부서진 엘리베이터를 한번 보았다가, 힘없이 계단 쪽을 바라본 루크의 목소리.

    그것은 마치 단말마와도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게 내 도주 경로다! (삶으로부터 도주)

    사실 세이어의 도플갱어들끼리는 기억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지 않습니다.

    따로 행동하다가 일정주기, 또는 사망시에 백업되는 방식인데, 1호기는 루크에게 죽을 때 마나의 맹세가 얽혀서 제대로 백업이 안 되었고, 2호기는 마계화된 환경 탓에 마나가 막혀 백업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이어가 이번에 루크를 처음 봤을 때, 전에 만났냐는 듯이 추측하는 투로 말하면서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했던 거에요.

    그런데 이제 3호기가 등장한다고 하면…. 공교롭게도 걔는 루크를 또 처음 보는 거 겠네요.

    어이어이 세이어 네녀석, 루크와 첫만남을 몇번 하는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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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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