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5

   익시온.

   세계 침식의 신을 탄생시키기 위해 흑마녀를 중심으로 모인 세계 침식자 집단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세계와 익시온 간에 1차 전쟁.

   이 전쟁에서 크게 패배한 익시온은 그대로 후퇴를 감행한 후 종적을 감췄다.

     

   그랬던 놈들이 지금 어느새 거인의 숲에 숨어들어 다시금 무언가를 꾀하고 있다.

     

   “언제부터였어.”

     

   크라슈가 질문하자 시즐리는 거인의 숲을 힐끗 보았다.

   지금 두 사람은 거인의 숲 근방 지역에 있는 여관방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런 만큼 창문 너머로 프레이야의 산을 집어삼킨 거인의 숲이 선명히 보였다.

     

   “알게 된 건 얼마 전이다. 낭군님의 돌파를 돕기 위해 사전에 길을 알아보고자 패황이 그림자를 이용해 루트를 파악하던 도중 발견했다더군.”

   “그렇다면 생각보다 더 긴 기간을 상주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네.”

   “프레이야 산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맥이니까.”

     

   아무리 제국이라도 프레이야 산맥 전체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물며 거인의 숲에 의해 잡아 먹혀 버린 프레이야 산맥이니.

   더더욱 알 수 없었겠지.

     

   “각지에 천상사강과 천하십강, 그리고 왕국들에도 알려 놓았다.”

     

   크라슈의 경우 어차피 결국 거인의 숲에 오게 될 예정이니.

   시즐리는 구태여 연락해놓지 않았다.

     

   다른 곳에 연락하느라 바빴기에 겨를이 없었겠지.

     

   효율을 중시하는 그녀다웠다.

     

   “문제는 이들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인데.”

     

   시즐리는 그리 말하며 크라슈를 보았다.

   시즐리도 눈치챈 것이다.

     

   아무리 익시온이 내몰렸다고 해도 이건 자칫하면 전멸할 상황이다.

   본래 뭉치기 힘든 성향을 지닌 이들이 모인 집단이 익시온이다.

     

   당연히 갑자기 전우애가 샘솟아 기필코 목적을 이루겠다며 희생하겠다는 숭고한 사명 따위 이들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시즐리는 이들이 최흉만이 목적일 리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유추는 정확했다.

     

   “그래, 놈들의 진짜 목적은 내가 비대해진 최흉을 흡수하는 걸 거다.”

   “뭐?”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시즐리가 얼굴을 굳혔다.

     

   “……그걸 하는 목적은?”

     

   시즐리는 현실적으로 머리를 굴릴 줄 안다.

   그렇기에 크라슈도 시즐리를 통해 매번 조언을 얻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시즐리에게 아벨라가 목적으로 한 것을 천천히 이야기했다.

     

   아벨라가 크라슈를 세계 침식의 신을 부활시킬 그릇으로 쓸 목점임을 말이다.

   전부 이야기하고 나니 시즐리가 이마를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더냐.”

   “네 성격상 반대했을 테니까.”

   “아무래도 너무 위험부담이니까.”

     

   시즐리도 크라슈를 걱정한다.

   그의 의견을 지지한다고는 해도 걱정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특히, 크라슈가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그릴 줄 아는 시즐리는 더하다.

     

   “아벨라, 그 여자에 관해 나도 꾸준히 알아봤지만 파면 팔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크라슈에게 아벨라에 관해 들은 이후 시즐리는 꾸준히 아벨라의 정보를 모아왔다.

   그런데도 아벨라의 정보는 거의 얻을 수가 없었다.

     

   “과거에 활동했던 지옥 선녀를 중심으로 알아봤지만, 그런데도 정보가 거의 없었어.”

   “괜찮아. 예상한 부분이었어.”

   “그만큼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게다. 제대로 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거인의 숲에 들여보내지 않을 거니 그리 알거라.”

     

   시즐리는 이것만큼은 진심이라는 얼굴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던 크라슈는 짧게 웃곤 입을 뗐다.

     

   그리고 아벨라와 만난 그날 떠올렸던 것을 시즐리에게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 시즐리는 미묘한 눈빛으로 눈썹을 찡그리더니 이내 숨을 내쉬었다.

     

   “……넌 그걸로 괜찮은 게냐.”

     

   시즐리는 크라슈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끝을 예감했다.

   크라슈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그것이 괜찮냐고 시즐리가 물었다.

     

   시즐리는 크라슈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가 이 자리를 이룩하기 위해 무엇을 했고, 무엇을 지켜 왔으며 어떤 것과 맞서 싸웠는지.

   그녀는 줄곧 지켜보았다.

     

   평생을 자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것이 전부 무너져 내린다.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세상에 거의 없다.

     

   여관 안.

   햇빛이 살며시 흘러 들어왔다.

     

   그런 햇빛에 비추어진 크라슈는 무척이나 초연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즐리.”

     

   크라슈는 전 회차에서 밑바닥과 같은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설령 아서가 의도했든 어찌 되었든.

   그 인생의 삶은 여전히 크라슈에게 남아 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알고 있다.

   바닥에서 시작하는 인생도 썩 살지 못할 인생은 아니란 걸 말이다.

     

   “나는 내 목표 하나만을 보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인생의 모든 목표가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고 여겼던 크라슈지만.

   저주를 받아들일 수 있고 난 후 그는 자신이 창공의 세대를 나아가게 돕는 발사대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못 하던 반푼이가 딱 하나.

   소망하며 손에 쥔 것이 세계를 멸망에서 지켜내는 것이다.

     

   “하나뿐인 내 목표를 위해 이만큼 나아왔으니 뭐가 됐든 성취감 한 번 정도는 느껴봐야 하지 않겠어?”

     

   크라슈가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를 멍하니 바라보던 시즐리는 이내 잠깐 입술을 내리눌러 물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세계의 멸망에 집착하게 만든 지 시즐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어렴풋이 그녀가 가정하는 수많은 것 중 하나가 있을 것이라 어림짐작할 뿐.

   하지만 그 가정 중에는 단 하나도 그의 인생이 순탄히 흘러갔다는 가정이 없었다.

     

   “그래, 알았다.”

     

   시즐리는 숨을 내뱉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크라슈의 두 눈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나는 낭군이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해도 하나도 잃은 게 없다는 것을 알려 주도록 하마.”

     

   곧이어 시즐리가 본인 특유의 미소를 입가에 거닐었다.

     

   “뭘 또 하려고.”

     

   크라슈가 묘하게 불안감을 느끼니 시즐리는 콧대를 드세었다.

     

   “황제와 같은 자리가 힘이 있어서 되더냐? 인망, 정치력과 같은 힘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더 주가 되지 않더냐.”

   “……미친, 날 황제라도 만들려고?”

     

   아무리 그래도 아서처럼 되는 건 사양인데.

     

   “흥, 누굴 바보로 보느냐.”

     

   크라슈가 식은땀을 흘리자 시즐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책상 위에 양손을 쭉 뻗으며 상체를 기울였다.

     

   “황제 따위로는 만족 못하느니라. 낭군이 이 세계에 해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만들어 줄 테니. 기대하고 있거라.”

     

   황제 따위라니.

   자신의 아버지조차 내려치는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도 그럴 게 시즐리는 지금까지 자기 입 밖으로 내뱉은 모든 말들을 이뤄버린 이니까.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세계를 손에 넣을지도 모른다.

     

   “……시즐리, 진정하고.”

   “진정하겠느냐. 앞으로 추진할 일이 얼마나 많은!”

     

   그 순간 시즐리가 손이 삐끗하며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당황한 크라슈가 서둘러 그녀의 몸을 받아내려는 순간 시즐리가 그대로 크라슈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 상태로 고개를 낮춰 냉큼 입맞춤했다.

     

   또 당했다.

   크라슈가 벙찐 얼굴을 하자 시즐리가 잔망스러운 미소와 함께 살짝 얼굴을 붉혔다.

     

   “참, 낭군도 나를 이리 좋아해서 어쩌느냐. 뽀뽀해달라고 얼굴을 쭉 내밀다니. 내가 안 참고 베기겠느냐.”

   “너, 늑대와 양치기도 모르냐.”

     

   자꾸만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는 끝내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아 양을 전부 늑대에게 잡아 먹히고 마는 법이다.

   하지만 시즐리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낭군이 넘어지는 나를 잡아주지 않을 리가 없지 않으냐.”

     

   크라슈가 침묵했다.

   할 말이 없어졌다.

     

   눈앞에서 애가 넘어지는데 어떻게 안 받아 줄까 싶다.

   몸이 무심코 먼저 반응한다.

     

   “나는 낭군이 내게 보호 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무척이나 잘 아느니라.”

     

   시즐리는 자신의 자그마한 체형을 돋보이며 우쭐거렸다.

     

   “성녀 같은 파괴력은 없을지언정 수요가 있는 몸인 것이지.”

   “스스로를 그렇게 말하지 마. 너 게다가 황녀잖아.”

   “물론 이런 건 낭군 앞에서만 하는 소리인 게다. 다른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려고. 낭군과 나만의 비밀인 셈이다.”

     

   하여튼 사람 놀리는 걸 멈추지를 않는다.

   하지만 그게 또 시즐리다웠다.

     

   “익시온과의 전투 준비는 전해두마. 전력이 모이는 대로 알려줄 테니 기왕 온 거 조금은 쉬어두거라. 이것만큼은 부탁이 아니라 약혼자로서 명령이니라.”

     

   하여튼 주위에 걱정하는 녀석들이 잔뜩이다.

     

   “그래, 알았어. 애초에 이 근처에 볼 일도 하나 있었으니까. 그거부터 해결하고 올게.”

     

   크라슈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하는 시즐리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늘 고맙다. 네 덕에 여기까지 나아왔어.”

     

   다음 말을 듣고, 시즐리는 잠시 입을 헤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이내 혀로 입술을 핥고는 조용히 크라슈를 흘겼다.

     

   “……시즐리 포인트 1만 점이다.”

     

   크라슈는 줄행랑쳐야 함을 직감했다.

     

     

   * * *

     

     

   쫓아오는 시즐리에게 겨우 도망친 후.

     

   크라슈는 볼일을 보기 위해 거인의 숲에서 조금 떨어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건 이미 꽤 오래전에 했던 약속을 치르기 위함이다.

     

   “크림슨가든.”

     

   크라슈가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어느샌가 하늘 위에서 날아온 까마귀가 천천히 크라슈의 앞에 내려왔다.

     

   “지금 나라면 어떠냐.”

     

   크라슈가 앞으로 나아갈 금역은 단 하나.

   거인의 숲뿐이다.

     

   지금 크라슈의 몸속에는 수많은 금역의 힘이 깃들어 있다.

   이보다 더 강해질 수 없을 만큼 크라슈는 강인한 육체를 얻었다.

     

   크림슨가든과의 거래.

   그것은 그녀가 지닌 불사를 크라슈가 훔쳐주겠다는 것이었다.

     

   단지, 여기에는 한 조건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크라슈가 크림슨가든보다 강해질 것이 조건이었다.

     

   “용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네놈 정도로 될 것 같으냐.”

     

   이렇게까지 강해졌는데도 모자랄 지경인가.

     

   솔직하게 말해 마경을 흡수하고 나서는 거의 천상사강의 코앞까지 도달했고, 세계 침식자나 세계 침식을 상대로는 그들보다 더한 파괴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건만.

     

   크라슈가 어떻게 더 강해져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

   크림슨가든이 다음 말을 이었다.

     

   “뭐, 어떻게든 용 좀 쓴다면 해볼 만은 하겠지.”

     

   크림슨가든의 반응을 본 크라슈는 기가 찬 반응을 보였다.

     

   “하여튼 네 그 태도는 한결같다.”

     

   벌써 꽤 오랜 기간을 본 것 같은데.

   변함이 없는 크림슨가든이었다.

     

   “네 기준으로 오래이지, 내 기준으로는 고작해야 잠깐이었다.”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크림슨가든, 한 가지만 묻자.”

     

   크라슈가 지금까지 크림슨가든의 불사를 받아내려고 구태여 용을 쓰지 않은 이유가 있다.

     

   “네 불사를 내가 훔치게 된다면 넌 어떻게 되냐.”

     

   크림슨가든은 지금까지 불사를 통해 목숨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불사를 가져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되냐 질문하자 그녀는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왜, 내가 죽을 거로 생각하니 아쉽더냐.”

   “당연한 소리지.”

     

   그녀와 쌓아온 연은 절대 짧지 않다.

   적어도 크라슈에게 가장 든든했던 지원군은 다름 아닌 크림슨가든이다.

     

   그러니 크라슈가 당연하게 말하자 그녀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내 삶을 누가 아쉬워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군.”

     

   그녀는 이내 크라슈의 어깨 위에 천천히 안착했다.

     

   “걱정하지 마라. 최소한 네 주위 여자들만큼은 살 수명이 남아 있으니.”

   “오래도 꿍쳐놨나 보네.”

   “적어도 내가 거두어들인 종들의 끝은 봐줘야 하는 법이니까.”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을 만나고 나서 줄곧 나름대로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야.”

     

   크라슈는 그리 말하고 프레이야의 산 옆.

     

   어느 동굴의 앞에 섰다.

   누가 봐도 그저 덩그러니 지어진 동굴이다.

     

   실제로 곰들이 겨울잠을 자려 할 때 종종 택할 만큼 이는 자연 굴에 가까웠다.

     

   크라슈는 그 동굴 안으로 발을 뻗었다.

   이윽고, 그녀의 까마귀가 울음소리를 한 번 내뱉은 순간 주위 풍경이 바뀌어 나갔다.

     

   저 멀리 초원이 보였다.

   하늘 위에는 무수히 많은 별자리가 은하수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크라슈는 곧 그곳에 자리한 거대한 붉은 용 한 마리를 발견했다.

   터무니없이 큰 몸집을 지닌 용은 깊은 잠에 빠져든 듯 눈을 감은 채 있었다.

     

   불사자,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어쩌면 크라슈와 가장 길게 이어진 인연 중 하나다.

     

   그런 크림슨가든을 바라보며 크라슈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그의 손아귀에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제 잠 깰 시간이다.”

     

   지금부터 크림슨가든을 깨운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