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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5

       왜인지 모르게 몸이 무거웠다.

       

       가위에 눌리거나 한 건 아니다. 몸은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었다.

       

       뭔가 말랑하고 포근한 덩어리가 얹힌 느낌이었다.

       

       오묘하다.

       

       한사코 눈을 감고 있었던 나는 호기심에 못 이겨 서서히 눈꺼풀을 밀어올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야생동물의 눈동자처럼 희번덕거리는 쌍라이트.

       

       나는 비명을 지르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상황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쉿!”

       

       쌍라이트의 주인이 가냘픈 소리를 냈다.

       

       “저예요, 저, 로즈마리.”

       

       눈동자와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로즈마리.

       

       뭐 하다 이제 들어온 건지 눈가에는 피곤한 기색이 선연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로즈마리가 내 몸 위에 일자로 누워있다는 점이었다.

       

       “…내려와.”

       “쉿.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일단 내려와서 해.”

       “쉬잇!”

       

       애가 뱀도 아니고 자꾸만 쉭쉭거린다.

       

       “어디 나갔다가 이제 들어온 거야?”

       “이 나라의 국력을 염탐하고 왔죠.”

       “염탐?”

       “이런 방 안에서 계속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침략을 하든 바캉스를 즐기든 이 나라를 알 필요는 있다고요.”

       

       그러면서 로즈마리는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짤랑짤랑.

       

       기장이 넓은 소매 안에서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뭘 한 거야.”

       “일단 돈부터 모을 필요가 있었어요. 때마침 길거리에 자판기가 있지 뭐예요? 해서 몇 개 건드렸죠.”

       

       아니, 이 녀석이.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범죄를 저지르는 건데.

       

       “원래는 이걸로 기초자금을 만든 뒤 은행 계좌를 개설하려 했어요.”

       

       “계좌는 뭐 때문에 만들려고?”

       “그래야 원격으로 돈을 모으죠.”

       “그런데?”

       “이 나라 사회제도가 보통 대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리 말하며 울상을 짓는 로즈마리.

       

       계좌를 개설하고 돈 모을 궁리를 하려던 모양인데, 어림도 없지.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른바 불법체류자 신세다. 괜히 내가 여기 얹혀살게 해 달라고 성현에게 부탁한 게 아니다.

       

       생각해 보니 김성현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노숙을 했었을 것이다.

       

       “허어.”

       

       하마터면 모처럼 받은 휴가가 넝마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도대체 여신은 무슨 생각인 걸까. 아니, 생각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직속 상사지만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돌아가면 따져봐야겠군.

       

       “아무튼 계좌 만드는 게 힘들다는 말 아니야.”

       “그렇죠.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 자체가 힘들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은 자. 나머지는 한숨 돌리고 생각하자고.”

       “넹.”

       

       그제야 로즈마리는 내 곁으로 내려왔다. 왼쪽 팔에 느껴지는 부피감이 상당하다.

       

       다른 게 아니라, 로즈마리가 내 왼쪽 팔을 베개 삼아 쓰는 탓이다.

       

       동글동글 귀여운 동생의 머리를 책더미 위에 얹힐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내 팔을 희생하기로 했다.

       

       기계인지라 저릿하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묘하게 불편하다. 치킨을 시켰는데 콜라가 오지 않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언니랑 같이 자네요.”

       “그러게.”

       “작은 언니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돌아가면 셋이서 같이 자자.”

       “넹.”

       

       얼마 안 지나서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는 나도 안심하며 잠들었다.

       

       지구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끝났다.

       

       

       **

       

       

       둘째 날.

       

       나와 로즈마리는 머리를 대충 빗어넘기고 고양이 세수를 했다. 이때까지 성현은 일어나지 않았다.

       

       냉장고를 뒤져 보니 달걀이나 부침용 두부 따위가 있었다. 한쪽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도 보였다.

       

       나를 따라 냉장고를 뒤적이던 로즈마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되게 서민적이네요.”

       “서민 맞아.”

       “저라면 이런 걸로 만드는 음식은 못 먹을 것 같아요.”

       “내가 만들려고 했는데?”

       

       내가 그리 말하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무는 로즈마리. 

       

       그녀의 몸이 화덕에 구운 도자기처럼 뻣뻣하게 굳는다.

       

       “어, 언니가 만드는 요리.”

       “왜. 먹기 싫어?”

       “아뇨?”

       

       머리를 묶고 인덕션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요리 준비를 끝마치자 곁에서 꼴깍꼴깍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하지만 로즈마리였다.

       

       존경하는 언니가 만드는 음식이라면 뭐라도 꼭꼭 씹어서 삼키겠다는 의지를 목울대로 천명한 셈이었다.

       

       “어디 보자.”

       

       찬장을 찾아보니 햄 통조림에 식용유도 한 병 있었다. 이것들을 사용해서 아침을 만들면 될 듯싶었다.

       

       촤아악….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다음 먼저 두부를 부쳤다. 자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키친타올을 올리고 두부 한 모를 바드름한 접시에 가지런히 담는다.

       

       이어서 인스턴트 햄을 잘라서 약한 불에 올린다. 살짝 익을 때쯤에 다른 접시에 멋스럽게 옮겨 담았다.

       

       이제 키친타올로 프라이팬을 닦고 우유와 소금, 달걀 여섯 개를 풀어 스크램블을 만들기만 하면 끝난다.

       

       이렇게 보니 야채는 없고 온통 지방에 단백질뿐인 식사였다.

       

       그래도 내 조잡한 요리 실력으로는 이 정도 정성이 한계란 말이지.

       

       밥을 뜨자 성현이 귀신같이 일어났다.

       

       “…뭐 해?”

       “밥하는데.”

       “네가?”

       “그러면 뭐.”

       

       성현의 두 눈동자가 땡그랗게 커졌다.

       

       “아, 미안. 스크램블 하느라 계란 여섯 개 풀었어.”

       “왜 하필이면 스크램블인데?”

       “내가 제일 잘하는 요리니까.”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한다면 세 명 먹을 양식에 계란 여섯 개는 선 넘었지. 으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이다.

       

       “배달시키려고 했는데.”

       “배달비 비싸지 않아?”

       “직접 요리해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너도 요리는 못하는구나?”

       

       자취하는 남자 중에 요리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도 어릴 땐 앨리스 언니가 차려준 것만 받아먹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늘 주먹밥 두 개로 하루를 버텼다.

       

       애당초 무언가를 스스로 해먹을 시간이 안 났다.

       

       “자, 다 됐으니까 먹고 정신 차려서 공부해.”

       

       나는 앙증맞은 소형 탁자에 3첩 반상을 차렸다.

       

       햄 구운 거, 에그 스크램블, 노릇바삭하게 구운 두부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시중에서 파는 1인용 김치까지 올려놓으면 원룸에서 먹는 것치고는 제법 호화로운 식탁이 된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가, 감사합니다….”

       

       성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남이 차려준 거 얼마 만에 먹는 건지 모르겠네.”

       

       혼자 살면 그렇겠지.

       

       혼자 차려서 먹거나, 배달을 시키거나.

       

       떠올려 보면 타인이 차려준 밥상 앞에 앉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던가.

       

       젠장, 이러니까 내가 얘네 엄마가 된 것 같잖아.

       

       하여튼 성현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반찬을 집어먹었다.

       

       반대로 로즈마리는 불퉁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두부나 스크램블을 몇 번 깔짝이더니 수저를 내려놓았다.

       

       “왜? 맛없어?”

       “아뇨.”

       

       로즈마리가 침음을 삼켰다.

       

       “휴가치고는 지나치게 소소해서 그래요.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요.”

       

       묘하게 짜증이 깃들어 있는 말투.

       

       그럴 법도 하다. 로즈마리는 전 마왕군 간부였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왕족이었으니까.

       

       평생 고상한 대접만 받고 자라온 그녀였다.

       

       정말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러는 것이라면 몰라, 놀러 왔는데 이러고만 있으면 화를 낼 법도 하지.

       

       하지만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안하기도 했고.

       

       아마 좋은 추억이라고는 치킨 먹여준 것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로즈마리가 성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당신, 은행 계좌 있어요?”

       “어? 있지. 있는데 왜?”

       “당신 명의로도 좋으니까 돈 좀 벌게 해 줘요. 솔직히 이런 좁은 곳에서 언제까지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로즈마리의 선언은 폭력적이고 무자비했다. 오죽하면 성현이 충격을 받아 젓가락을 떨어뜨리겠는가.

       

       “뭐해서 돈을 벌게?”

       “보아하니 기존의 주식 말고도 암호화폐라는 투자수단이 있더라고요.”

       “미친. 안 돼.”

       

       내가 곧바로 로즈마리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코인은 함부로 할 짓이 못 돼.”

       “알아요. 보니까 단순히 사고파는 짓은 주식 이상으로 위험부담이 크더라고요. 기댓값을 생각했을 때 안 하는 게 좋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게?”

       

       내 질문에 로즈마리는 한껏 의기양양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직접 만들어서 채굴해야죠.”

       

       

       **

       

       

       10억.

       

       로즈마리가 한 달이 채 안 되어 벌어들인 액수다.

       

       얘가 블록체인이니 뭐니 공부하더니 자기 자신을 그래픽카드 삼아서 암호화폐를 마이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가다 잊는 사실인데, 지구에서 로즈마리와 나는 기계였다.

       

       그냥 기계도 아니고 현시대 기준으로 오버 테크놀로지에 해당하는 고성능 컴퓨터나 다름없었다.

       

       로즈마리는 노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돈을 쓸어담았다.

       

       그 와중에 컴퓨터과학계에서 난제라고 불리는 문제 하나를 제 스스로 해결한 것은 덤이었다.

       

       “미쳤네.”

       

       우리 3인방은 수도권의 한 아파트에 집을 마련했다.

       

       월세나 전세도 아니고, 말 그대로 자가(自家)였다.

       

       원래는 돈을 더 모아 서울 한강뷰를 보려고 했으나 성현이 너무 미안해하여 이 정도에서 그쳤다.

       

       무엇보다 갑작스레 떼돈을 벌면 세금 문제도 터지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 정도면 이 나라 수도와 한 시간 거리네요. 원하는 곳 어디라도 갈 수 있겠어요.”

       

       로즈마리는 이삿짐을 풀고는 허리춤에 손을 척 얹었다. 스스로도 엄청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7억 정도를 들여 30평대 아파트를 샀고, 1억 정도를 더 써서 컴퓨터를 비롯한 인테리어를 장만했다.

       

       “로즈마리 선생님, 제 절을 받으십시오.”

       

       이삿짐 정리가 끝나자마자 성현은 로즈마리에게 큰절을 시전했다. 로즈마리는 ‘절’이라는 개념을 몰랐지만, 눈치껏 이 나라의 최고 예법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눈두덩을 치켜올렸다.

       

       “저와 언니가 고향에 돌아가면 그때부턴 당신 집 하세요.”

       “저, 정말 그래도 되는 겁니까?”

       “이 정도 집이야 제겐 아무것도 아닌데요 뭐.”

       

       어차피 우린 불법체류하는 신세라서 실소유도 할 수 없고 말이지.

       

       “오늘은 이사 때문에 지쳤지? 하루 쉬자.”

       

       내 제안에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쉰다는 것은 내가 수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 성현은 자신에게 마련된 방으로 들어가서 자습했다.

       

       원룸이 아니니까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면… 이젠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해야겠지.”

       “여신이 우리에게 보낸 연락책을 보는 것 말이죠?”

       “그렇지.”

       

       통칭 <다키스트 아카데미아>.

       

       나와 성현이 어떤 관계였는지 짐작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플레이해 볼 가치가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서울대 과탐이 1+1 조합이 된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읍니다…

    ㄴ(0O0)ㄱ

    작가도 늙어버린 것이에요……

    **

    에스더Esther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독자님의 정주행과 후원 덕분에 작가는 더더욱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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