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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6

    이따금씩 부엉이가 우는 늦은 밤.

     

    -벌컥-.

     

    루크의 방 문이 열렸다.

    바로 가족들 몰래 밤산책을 나섰던 그녀가 텔레포트를 이용해 한 순간에 집으로 복귀한 것이었다.

    자신의 방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찰칵-.

     

    큰 소음이 나지 않도록 루크가 조심스레 방 문을 닫자, 침대에서 막 자다가 일어난 것 처럼 부스스한 머릿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루크가 몸을 일으켰다.

     

    “주인, 복귀를 환영함.”

    그건 루크로 변장한 케이트였다. 

    비록 골렘 특유의 딱딱한 말투였지만, 그 목소리와 표정은 듣는 이로 하여금 굉장히 즐겁고 평화로운 감정을 자아내는 인사다.

     

    “아아, 그래. 다녀왔다…….”

     

    하지만 루크의 표정은 그다지 평화롭다고는 볼 수 없었다.

     

    ‘끔찍한 차원 멀미군. 마력의 성질이 너무 갑자기 변한데다……. 체내에 남은 약물이 너무 치명적이다.’

     

    그 외부 마력을 차단하는 안개와 흑마법으로 오염된 환경에 놓여져 있다가 갑자기 이토록 맑은 마나가 있는 숲으로 전이한 것이다.

    사실 그 정도의 환경 변화는 평소의 컨디션인 루크에게는 별 일 아닌 일이었으나,  루크의 체내에 아직 효과가 머무르고 있는 마력의 의지력을 묶는 약물이 그것을 별 일로 만드는 것이다.

     

    마력이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순환할 수 없으니, 다른 마나와 섞여들기 쉬운 맑고 청량한 마나도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장시간 질 나쁜 식사를 해 소화기관과 몸이 약해진 사람에게 갑자기 너무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야 배탈이 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체내의 마나를 숲의 마나에 희석해 움직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다.

    루크는 후유증으로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신음을 흘렸다.

    게다가 루크의 본질은 서클이었으므로, 체내의 마나에 영향을 끼치는 약물은 특히 더 위험한 독이었다.

     

    그렇게 루크가 어지러운 상태로 흐느적거리고 있으니, 케이트가 다가와 부축했다.

     

    “이렇게 침대까지 부축하겠음.”

    “아아……. 고맙다, 케이트.”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는 루크에게 케이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주인. 상당한 피로가 관측됨. 굉장히 걱정스러움.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으음,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좀 쉬면 나을 거야.”

    “……알겠음.”

     

    자신의 모습을 한 채 곁에 서있는 케이트의 모습에 루크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는 마치 자기자신에게 병문안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다, 자신을 향한 그 걱정어린 눈빛이 굉장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감정은 단순한 자기애라고 하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따지고 본다면 케이트는 자신이 만든 자식과도 같은 존재인데다, 자신은 루크가 만든 자식과도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자신이 낳은 자식이 귀여워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내 외모를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이건 마치 자신의 아이에게 걱정을 받아 뿌듯한 부모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루크는 아이를 가져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자식을 키워 본 적도 없으니 이는 단순한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털썩.

     

    그렇게 루크를 침대에 뉘어준 케이트는 자신은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제 변신을 풀고 주인이 이 잠옷으로 환복하는 것을 돕겠음.”

    “아아, 케이트. 잠시만 그 전에.”

     

    루크는 자신이 걸터앉은 침대 곁을 가볍게 톡톡 치며 말했다.

     

    “이리 와 앉아보겠느냐.”

    “……?”

     

    루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 고개를 잠시 갸우뚱거린 케이트는 이내 루크의 말대로 머리맡에 조심히 앉았다.

    그러자 루크는 베개 대신 케이트의 무릎을 베며 웃었다.

     

    “주인……?”

     

    마법사인 주인답지 않은 행동에 당황한 케이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그 귀여운 반응에 루크는 즐거운 듯 미소지었다.

     

    “어쩐지 응석을 좀 부리고 싶구나. 잠시만 이대로 있어 주겠느냐, 케이트.”

     

    인형의 모습으로는 체온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심장에 마력이 묶였기 때문일까?

    신성력을 쓰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응석을 부리고 싶어지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왠지 그 느낌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게다가 케이트의 서클자체가 자신을 본따서 만든 것이었기에, 그 규칙적인 박동을 느끼고 있으면 자신의 서클 역시 공명하여 더욱 빠르게 호전되어가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굳이 케이트가 변신을 유지해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아주 잠깐, 이성을 잘 유지하면서 이를 요구하는 것 정도는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음, 알겠음…….”

     

    본래 인형으로서 루크에게 안겨 있는 것을 좋아했던 케이트 역시 그것이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그것이 주인의 명령이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케이트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 만족한 미소를 짓는 루크가 마치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인형을 안는 것이 아니라 인형에 안기다니, 케이트는 이 상황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가벼운 아이러니함에 즐거워하는 것은 뭇 마법사들의 특징이기도 했기에.

     

    케이트는 곧, 가만히 무릎만 내어주고 앉아있지 말고 내친김에 자신이 주인 같은 행세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인형인 자신이 받고 싶었던 일을 해 주면 나중에 루크 역시 인형인 자신에게 그것을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케이트는 루크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스윽, 슥.

     

    과연, 인조로 구성된 자신의 것과는 달리 굉장히 부드러운 머릿결이었다.

    케이트는 그렇게 루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묻는다.

     

    “그런데 주인, 몸은 씻지 않아도 되나?”

    “찝찝하지만……. 지금은 그냥 이대로 있고 싶구나. 아니면, 내가 더러워서 싫은 게냐?”

    “나는 인형이라 냄새는 맡을 수 없음.”

     

    머리를 쓰다듬는 자신의 손길을 느끼며 기분좋은 표정을 짓고 있는 주인의 모습에 케이트는 급기야, 주인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는 것에 이르렀다.

     

    -토닥, 토닥.

     

    본 모습이 폭신한 인형이기 때문일까?

    그 손길은 참 포근하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없는 사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느냐?”

    “다행히, 없었음.”

    “그렇구나.”

    “주인, 그런데 이러다 예르나가 오면 어떡하나.”

    “뭘, 인형이랑 노는 중이었다 하면 된다.”

    “음.”

     

    그렇게 케이트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루크가 서클을 진정시키던 그 순간이었다.

     

    “……!”

     

    뭔가 속에서 차오르는 듯한 느낌에 루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해대고 말았다.

     

    -콜록, 콜록!

     

    “으아! 주인!”

     

    그리고 터져나온 기침 속에는, 피가 섞여 있었다.

     

     

    그것도, 꽤 많이.

     

    “으, 어……?”

     

    루크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루크가 기침으로 토한 피, 그것은 신체 내부에서 죽은 피였다.

    약물로 인해 안에서 죽어 고여있던 피가, 신체가 회복되는 것에 따라서 밖으로 배출된 것이겠지.

    죽은 피를 몸 안에 쌓아두면 당연히 병에 걸리거나 좋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기침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폐물을 처리하는 일반적인 신체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기침을 하면서 케이트가 입고 있던 잠옷과 이불에 온통 튀고 말았다는 것이다.

     

    “혈흔이 너무 선명함…….”

    “맙소사, 이걸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이냐?”

     

    루크가 피가 튄 이불과 케이트의 잠옷을 바라보며 허둥댔다.

     

    왜냐하면 이걸 만일 예르나, 또는 다이튼이 본다면 침구에 피가 묻은 경황에 대해 물어올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거짓말을 못 하는 루크는 당연히 예르나에게 자신이 어쩌다 피를 토하게 된 건지 그 사건의 원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좋지 않은 일이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점 외에도, 자신이 오늘 시설 내부에서 겪은 그 위험했던 상황을 예르나에게 낱낱이 설명하게 되면 이번에야말로 외출금지를 약속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큼은 절대 안된다.

    일에 앞서 대비를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는 외출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을 테니까.

     

    “주인? 안색이 안 좋은데, 정말 괜찮은 게 맞나?”

     

    루크의 안색이 실시간으로 파래지는 것을 곁에서 바라보던 케이트가 걱정스레 부른다.

    그러자 루크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다.

     

    “아아, 내 몸은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할 거 없다. 하지만…….”

     

    루크는 다시 피로 더러워진 이불을 내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건 어찌한단 말이냐.”

     

    일반적으로 클린 마법은 일종의 소독과 같은 개념일 뿐, 그것만으로는 얼룩이나 더러운 것을 없앨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핏자국을 세탁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마법으로는 원래 생물 그 자체의 성질을 변형시키는 현상을 일으킬 수 없는데, 피는 과거 생물체를 구성하는 물질이기에 마법으로는 영향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제약을 찍어 누르는 것이 마법사의 의지인데, 이 피는 심지어 죽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피다.

    이는 곧 자신의 의지를 초월하지 않으면, 기본적인 법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마법으로 핏자국을 지울 수 없다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빠져나갈 방법은 전혀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예르나와 다이튼이 일어나기 전에, 얼른 세탁을 마치면 되는 거니까.

    그래, 일단은 그 방법 밖에는 없다.

     

    “케이트, 내가 시트를 걷어낼 동안 갈아입을 다른 잠옷을 가져오거라, 얼른!”

     

    ——

     

    케이트와 노닥거리던 시간이 좀 있어서 그런가, 지금은 이른 새벽의 시간대다.

    자칫하면 다이튼이나 예르나가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기에, 루크는 저택의 ‘사일런스’ 기능을 작동시켰다.

     

    ‘좋아, 이렇게 하면 내 발소리와 세탁하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겠지.’

     

    그렇게 루크는 외부 소음을 차단할 목적으로 미리 저택에 인챈트해둔 사일런트의 범위를 살짝 조작하여 몰래 빨랫감을 가지고 세탁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제는 최대한 빨리 세탁을 마치면 될 것이다.

     

    루크는 이불과 잠옷에 물을 붓고 세제를 적당량 덜어 이불과 옷의 얼룩 부위에 문질러댔다.

     

    -북, 북, 북.

     

    그렇게 힘을 주어 한참을 문지르고 있으니 조금씩 얼룩이 사라져가는 것 같았다.

    그래, 이런 걸로 적당히 얼룩이 빠지면, 이후엔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이제보니 좀 번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잠시 펼쳐서 확인하던 순간.

     

    -드륵-!

     

    세탁실의 문이 열렸다.

     

    다이튼이었다.

     

    “…….”

    “…….”

     

    그렇게 서로 눈이 맞자,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다가오는 발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아, 사일런트를 걸어 두었지.

    그러니 당연히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리라.

     

    다이튼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동시에 옷 안으로 손을 넣어 배를 벅벅 긁으며 심드렁하게 묻는다.

     

    “뭐야, 이 시간에 빨래하냐?”

    “아, 으, 응…….”

     

    루크가 미처 둘러대지도 못하고 허둥대고 있자, 다이튼은 그런 루크를 졸린 눈으로 힐끔 쳐다보고는 루크의 뒤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암……. 그래, 고생이네. 근데 나 화장실 좀 가게 비켜줄래.”

     

    화장실 외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한 다이튼의 행동에 루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들고 있던 빨랫감을 등 뒤로 숨겼다.

    혹시 핏자국을 보지 못했다거나, 다른 얼룩으로 착각을 한 걸까?

    뭐어, 만약 그런 거라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넘기면 될 일이다.

     

    “아ㅡ, 그래. 바로 비켜주지. 길을 막고 있어서 미안하네.”

     

    그러자 다이튼은 별 말도 없이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루크는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화장실을 왜 갑자기 이쪽으로 와서 사람 심장을 이토록 떨리게 만든단 말인가?

    안방에도 화장실은 있을 텐데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이튼의 반응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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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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