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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6

        

         

       그레모리는 느낄 수 있었다.

       저 방송에서 넘실대는 비밀의 기운을.

       비밀이 살짝 열린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였고, 밀폐된 방 안 어딘가에 실금이 있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밀이라는 그런 것이다.

       일상에 존재하지만 숨겨져 있는 것.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

       그리하여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보고 나서야 그 실체가 보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비밀이다.

         

       그레모리에게는 그 비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레모리의 권능이었으며, 계약자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

         

       그레모리는 지긋이 이세린을 바라보았다.

         

       능력을 사용할 것이냐고 묻는 것처럼.

       권능을 사용해서 저 방송에 숨겨진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이 있느냐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시선에 고개를 아주 천천히 저었다.

         

       ‘궁금하긴…한데…. 오빠라면 또 무슨 짓을 해놓았을 것 같아서….’

         

       이세린이 그레모리의 권능을 사용하기를 거절한 이유는 바로 일전에 있었던 사건.

       멋대로 진성의 비밀을 훔쳐보려다가 곤욕을 치렀던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던가?

         

       그때만 생각하면 가끔 밤에 이불을 차기도 했다.

         

       이세린은 그런 일을 다시 한번 재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진성의 주술을 뚫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다시 할 생각이 있기야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진성의 주술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권능의 사용이 능숙하지 못했으니, 시간이 필요했다.

         

       넉넉하게 잡아서 몇 년 정도…?

         

       ‘그리고 정말 궁금하면…. 물어보면 대답해 줄 것 같기도….’

         

       이세린은 그레모리에게 그렇게 대꾸하며 다시 TV로 시선을 가져갔다.

         

       방송에서는 진성이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는데, 중간중간 왠지 모르게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여자 연예인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나저나 바보는 뭐 하고 있으려나…?’

         

       그것을 보던 이세린은 자신의 혈연메이트를 떠올렸다.

       짐승을 흉내 내는 무공을 사용하다 보니 정말로 머리가 짐승처럼 되어가고 있는 쌍둥이 자매이자, 허구한 날 언니 행세하려고 하는 반쯤 원수 사이 비스름한 무언가.

         

       이아린은 굳이 가족들과 함께 보는 것을 거부하고 학교에 있었다.

       듣기로는 친구들과 같이 방송을 보겠다고 한 것 같은데….

         

       ‘술 먹고 있는 거 아니야…?’

         

       러시아에 있을 때 행실을 본다면, 술판 깔아놓고 달리다가 잠들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 * *

         

         

         

       “건배!”

         

       놀자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

       이능을 익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학업을 하는 신성한 공간.

       선생과 학생이 학문을 익히고 능력을 발전시켜야 하는 교실의 안에서, 여학생 여럿이 돗자리를 깔고 놀고 있었다.

         

       책상과 의자는 한쪽 벽면으로 쭉 밀려 있었고, 바닥에는 각자 챙겨온 것으로 보이는 색색의 돗자리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리고 여학생들은 신발을 벗고 둥글게 자리를 잡은 채 손에 든 음료를 꿀꺽꿀꺽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체육복을 입은 채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여자.

         

       이아린이었다.

         

       이아린은 손에 캔을 든 채 학생들 사이를 오가면서 건배라고 외치며 캔을 내밀었고, 그녀의 앞에 선 학생은 회답하듯 손에 쥔 컵이나 캔을 부딪치며 똑같이 건배라고 외쳤다.

         

       학교보다는 등산 모임이나 야유회에서나 보일 법한 모습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이대가 있는 그런 모임들과는 달리 저들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마시고 있는 음료가 알코올이 있는 음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으로서의 최소한의 본분은 지키겠다는 듯 그들이 마시고 있는 음료는 에너지 음료나 사이다, 콜라 같은 것들이었고, 조금 더 분위기를 즐겨보겠다 하는 이들의 손에는 논 알콜 칵테일(Non-alcohol Cocktail)이 들려 있었다.

         

       보기에만 떠들썩할 뿐, 그들은 그래도 최소한의 절제는 하고 있었다.

         

       단 한 명을 빼면 말이다.

         

       “캬아, 맛 끝내주네! 건배!”

         

       이아린의 손에 들린 것은 알코올이 있는 음료였다.

         

       크바스(квас)라고 불리는 음료였다.

         

       크바스는 호밀빵이나 잡곡으로 만든 빵을 발효시켜서 만드는 음료였는데, 만들기에 따라서 알코올이 거의 없을 수도 있고 맥주처럼 도수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음료였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동유럽 쪽에서는 전통 음료이자 익숙한 음료였으며, 집마다 남은 빵을 이용해서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서 김치가 가정마다 다른 맛과 레시피를 가지듯 이 크바스 역시 집마다 다른 레시피를 가지고 있었는데, 집에 따라서 허브를 넣거나 과일을 넣어서 특색을 갖추기도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이아린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이 특색이 그대로 담긴 크바스였다.

         

       러시아에 있을 때 사귀었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알게 된 레시피로 직접 담근 크바스였다. 그냥 크바스에다가 시트러스 계열의 말린 과일을 넣고, 민트와 로즈마리 허브를 정해진 양만큼 넣어서 만드는 레시피였다.

       이 레시피로 만든 크바스는 새콤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나는 것이, 마시면 마실수록 침이 고이고 식욕이 돋구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들린 크바스를 마치 맥주라도 되는 것처럼 벌컥벌컥 마시면서 돌아다녔고, 때로는 자신과 건배를 한 여학생의 옆에 앉아서 몸을 바싹 밀어붙이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금나수를 사용해서 상대방의 음료를 빼앗으려고 한다거나, 상대방이 금나수로 반격을 가하면 마치 대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수를 교환하기도 하거나….

       혹은 그것을 보고 방심하고 있던 아이에게 과자 하나를 집어서 날린다거나.

         

       퍼억!

         

       물론 그렇게 날아간 과자는 요격당했다.

       이아린의 과자 암기의 목표가 되었던 아이는 이아린과 같은 과 여학생.

       당연하게도 무공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과자를 향해 과자를 집어 던져서 요격하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와….”

         

       구석에 있던 여학생 한 명은 그것을 보고 감탄했다.

         

       하찮은데 뭔가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라면 나이대에 비해서 높은 경지의 무공일 텐데, 그런 무공을 저렇게 하찮은 곳에 사용하는 모습이라니.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아닌가.

         

       “응?”

         

       하지만 그 탄성은 여학생에게 있어서 불행이 되었다.

       여학생의 탄성은 작았지만, 무공 덕분에 청력이 강화된 이아린의 귀를 피할 수 없었다. 이아린은 금나수로 장난치는 여학생과 과자로 장난치던 여학생에게서 관심을 떼었고, 그 대신에 감탄을 내뱉은 여학생에게로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맹수가 먹잇감을 노리는 것처럼 여학생을 바라보았고, 여학생이 그 뜨거운 시선에 히익 하고 몸을 움츠리자 번개같이 움직여 그 학생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그녀가 도망칠 수 없도록 팔짱을 단단하게 끼고, 어떻게 장난을 칠까 고민하는 눈으로 그녀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인이 아니라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였고, 심지어 전투 쪽도 아니라 공학 쪽을 지향하는 학생이었다. 그 때문에 무인이었던 다른 여학생들과는 달리 심한 장난을 칠 수가 없었으니….

         

       이아린은 과연 어떤 장난을 쳐야 적당할지 고민하며 여학생을 내려다보았고, 여학생은 맹수가 어떻게 자신을 요리할까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에 빠져나가려 몸을 바둥바둥 움직였다. 하지만 단단하게 묶인 구속구처럼 팔짱은 풀리지 않았고, 그녀는 도망갈 수 없었다.

         

       그녀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으며, 다른 여학생들 역시 도와줄 생각이 없었으니….

       그녀가 이아린의 장난 대상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하지만 구원은 있었다.

         

       “어? 아린아! 그거 시작한다!”

         

       “어? 진짜?!”

         

       이아린이 붙잡힌 사냥감의 처우를 막 결정하려고 했을 때,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이 이 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

       이아린의 오라비가 출연한다고 했던 그 방송.

         

       추적, 탐사, 보도 특집방송이 시작한 것이다.

         

       이아린은 방송이 시작되자 여학생에게서 관심을 떼어버리고 고무공처럼 통통 튀어서 TV 근처까지 움직였다. 가는 길에 과자와 음료수를 챙긴 것은 덤이었다.

         

       그렇게 이아린은 방송을 볼 준비를 완료했고,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친구들 역시 방송에 집중했다.

         

       이아린은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몰랐던 오라비가 방송에 출연하는 이 기념비적인 사건을 머릿속에 똑똑히 저장해두기 위해서.

       이아린의 친구들은 이아린이 평소에 그렇게 떠들고 다니던 오라비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그들은 방송에 집중했고….

         

       “오오, 오라비 멋있는데.”

         

       마침내 진성이 나왔을 때, 이아린은 감탄했다.

       평소에 후줄근하게 하고 다니던 모습이 아니라,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모습으로 오라비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저 행동거지를 보라. 평소에 이상한 기행을 하고 다니던 것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가.

         

       동생으로서 당연하게도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앗…제가 연참 날짜를 말씀 안드려서 혼란을 줬군요…
    죄송합니다…ㅠㅠ
    연참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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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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