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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6

       “그럼 다오, 네 목숨.”

         

       그녀가 무덤덤한 말투로 그리 선언하였을 때.

         

       백우진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드릴까요.”

         

       진정 제 목을 베고 싶었다면 그리 말하지 않았을 터다.

         

       조용히 제 곁으로 다가와 목을 베면 그만이니까.

         

       그보다 쉽게 제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백우진은 그녀를 전적으로 믿고 있으니까.

         

       이러한 사실을 그녀가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런데도 목숨을 내달라고 굳이 말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

         

       고작 한마디 반문조차 없이 어떻게 목숨을 내어주면 되겠냐니.

         

       이 무거운 신뢰는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다른 이였다면 사람 그리 믿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라도 했을 터인데.

         

       ‘녀석에게는 그런 말도 못 하겠구나.’

         

       그가 자신을 비롯한 조원 하나하나의 목숨을 위해 순간순간 최선에 가까운 수를 두려 노력하고 또 노력함을 알기에.

         

       “…혈교에서 나온 녀석이 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혈교의 인물이 자신을 찾아온 것부터 어떤 제안을 건넸고, 또 무엇을 조건으로 걸었는지.

         

       “동생을…, 가족을 살리고 싶으면 네놈의 목을 가져오라더구나.”

       “…….”

         

       언제고 이러한 날이 오리라곤 예상했다.

         

       그녀와 속절없이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쏟아낼 날이 분명 오리라고 생각했건만.

         

       전부가 아닌 일부만 얼핏 들었음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더없이 무겁고, 참혹했다.

         

       그 사실이 가슴 아프다가도, 또 하나의 이야기가 그를 놀라게 했다.

         

       “죽은 동생의 영혼을…, 불러왔다고요.”

       “그렇다.”

       “동생이 확실했습니까?”

         

       그의 물음에 혈수마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막냇동생이 분명하였느니라. 그 아이의 목소리, 말투, 기억…, 전부 나와 동생만이 알고 있는 것들이었으니.”

       “…….”

         

       망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것.

         

       그것은 분명 장삼이 제게 건넨 하나의 해법이었다.

         

       신예화 그리고 유화연.

         

       그들로 하여금 진실을 깨닫게 하고, 새로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그리고 이것은 분명 모산파에 전해져 내려오는 영술서에 적혀 있는 비술이라고 하였다.

         

       말인즉.

         

       “거기에 있었구나…?”

         

       자신과 장삼이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던 영술서가 그들의 손에 있다는 뜻.

         

       그렇게 또 한 가지, 혈교를 무너뜨려야 할 이유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을 때.

         

       “본녀는 믿지 않는다. 놈들이 내 동생을…, 가족을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누이.”

         

       믿지 않는 것이었다면 제게 목숨을 내어달라고 말을 꺼냈을 리 없다.

         

       허황된 말이라고 여겼다면 그날 놈의 목을 틀어쥐어 분질러 버렸을 테고.

         

       그러지 않았음은.

         

       “하나…, 본녀는 지푸라기라도 쥐고 싶다.”

         

       그래.

         

       그러한 이유 때문일 터다.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쥐고 흔들어보고 싶은 거겠지.

         

       그것을 알기에, 백우진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잠깐 생각을 좀 해보죠.”

         

       그는 고심했다.

         

       그녀의 자그마한 바람을 들어줌과 동시에 혈교를 끝장낼 방법은 없는지.

         

       ‘개자식들.’

         

       그들은 선을 넘었다.

         

       안 그래도 난도질당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여인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아 있는 동생의 영혼을 불러와 살릴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불어넣다니.

         

       빠득!

         

       이를 바득바득 갈아대는 백우진.

         

       그는 결심했다.

         

       ‘대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반드시 산 채로 잡아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이란 고통은 전부 다 겪게 하리라.

         

       그리 다짐할 때.

         

       괜찮은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놈뿐만 아니라, 잘하면 혈교주까지 불러와 엮어 조질 수 있는 계획.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그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그려내며 혈수마녀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오랜만에 한 판 붙읍시다, 누이.”

       “…뭐?”

         

       그것도 아주 찐하게.

         

         

       * * *

         

         

       혈교의 눈을 속이려면 어지간한 수로는 어림도 없다.

         

       어딘가에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녀석에게 제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끔 여길 정도로 강렬한 격돌이 필요했고.

         

       그녀 또한 멀쩡하지 않고, 자신은 더욱 그러해야만 했으니.

         

       그래서 싸웠다.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라, 현경 고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드러내 가며.

         

       그렇게 당도한 자리.

         

       피칠갑을 한 채로 쓰러져 있던 백우진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혈수마녀를 속였다는 녀석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

         

       ‘이 새끼…, 일혈귀잖아.’

         

       기운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일혈귀였다.

         

       땅바닥에 처박혀 있던 얼굴에 의아함이 스치고 지나간다.

         

       ‘분명 내가 목을 벴는데.’

         

       그런 녀석이 대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 문득 자신이 마주했던 팔혈귀 중 셋째, 삼혈귀 석견이 떠올랐다.

         

       목을 베였음에도 하루 만에 되살아났던 기묘한 혈술을 익히고 있던 녀석.

         

       그러나 이 또한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

         

       ‘분명 놈은 혈술을 익히지 않았다고 했는데.’

         

       놈의 체내에서 정순한 기운만이 느껴지는 까닭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갈래는 두 가지 정도.

         

       ‘정말로 사람을 살릴 수 있거나, 어떤 술수를 부려 죽음으로부터 빠져나갔거나.’

         

       아마도 후자일 확률이 높겠지.

         

       피에 젖은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그려졌다.

         

       ‘모가지를 베도 안 죽는단 말이지.’

         

       대체 놈을 어떻게 죽이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먼 곳으로부터 거대하고 추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는,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께름칙한 기운.

         

       ‘왔다.’

         

       혈교주의 등장이었다.

         

       상황은 예견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

         

       “네년의 가족을 이곳으로 불러오는 것보다, 네년 하나만을 가족들의 곁으로 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느냐.”

         

       영혼을 불러오는 것은 가능해도 사람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던 모양.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다다랐을 즈음.

         

       백우진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제가 말했잖아요. 거짓말인 게 뻔하다니까.”

         

       자신이 나설 차례임을.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급격하게 몸을 움직이려니 곳곳에서 통증이 느껴진 탓이었다.

         

       ‘생각보다 꽤 아픈걸.’

         

       지나치게 몰입해서 싸운 결과였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쯤 되지 않았으면 혈교주를 여기까지 불러들이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일으킨 백우진.

         

       기괴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야, 오랜만이다?”

         

       앞뒤에 선 백우진과 혈수마녀를 번갈아 노려보던 그가 마침내 깨달았다.

         

       “속임수였구나. 본좌를 끌어들이고자 하였느냐?”

       “응, 맞아.”

         

       백우진이 답하자, 혈교주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하나, 그 몸에 난 상처와 피는 거짓이 아닌 듯하다만.”

       “그것도 맞아. 이 정도는 해야 널 끌어들이지.”

         

       혈교주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그래, 네놈의 말이 맞구나. 이 정도 되지 않으면 본좌가 움직였을 리 없지, 암.”

         

       그는 속 시원히 인정했다.

         

       제 몸까지 버려가며 판 함정인데, 당하지 않고 어찌 배기랴.

         

       함정을 당했음에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았다.

         

       “흐흐흐…, 그 몸으로 본좌를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중경상의 백우진과 경상의 혈수마녀.

         

       강렬한 기의 격돌을 통해 내외적으로 제법 손실을 겪은 두 사람이라면 자신 혼자서 상대할 수도 있을 법하다고 여겼기에.

         

       “오냐. 정성스레 판 함정에서 한 번 놀아보자꾸나.”

         

       그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주변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파릇파릇하게 자라난 잡초는 까맣게 죽고, 곧게 뻗은 나무는 기괴하게 뒤틀렸다.

         

       달빛 한 점 없는 먹먹한 하늘 위.

         

       붉은 비가 쏟아져 내린다.

         

       벌써 두 번째 보는 혈교주의 심상을 마주한 감상은 담백했다.

         

       “언제 봐도 끔찍한 곳이구먼.”

         

       끔찍하고, 끔찍하고, 끔찍하다.

         

       여기에 쏟아지는 붉은 피는 혈교주 본인의 것도 아니요, 하물며 혈교도들의 것도 아니다.

         

       타인의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죽여 없앤 이들의 무고한 피가 비로 화하여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끔찍하지 않을 수 있을까.

         

       “뭐…, 나도 마찬가지긴 하지.”

         

       깨닫고 보니 그러했다.

         

       자신의 심상 또한 혈교주 못지않게 끔찍한 곳이 아닌가.

         

       백우진의 발밑으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거무죽죽하게 죽어버린 잡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황폐한 땅이 펼쳐졌다.

         

       이윽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묘비와 낡아빠진 검들.

         

       이를 본 혈교주가 이죽거린다.

         

       “네놈의 세계 또한 끔찍하긴 마찬가지 아니냐.”

       “그렇긴 하지.”

         

       수긍하는 백우진.

         

       동시에 그의 뒤편에서 혈수마녀의 세계가 펼쳐졌다.

         

       아우우우-!

         

       붉은 안광을 흩뿌리는 늑대들이 당장에라도 혈교주의 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울부짖는다.

         

       무림사에 길이 남을 세 고수의 심상에서 비롯된 세계가 충돌했다.

         

       한 자락이라도 더 자리를 빼앗기 위해.

         

       전력을 다한 두 사람의 세계가 혈교주의 세계를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할 무렵.

         

       다른 무언가가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정확히는 혈교주와 혈수마녀 사이.

         

       날카롭게 바닥에 꽂힌 여인이 혈교주로부터 한 세계를 떼어내며 말했다.

         

       “약속대로 이 여인은 본녀가 맡도록 하지.”

         

       익숙한 음성.

         

       항거불능의 기세를 뿜어내는 천마의 등장으로 싸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눈작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요 며칠간 죽었다 살아났습니다.

    두통, 발열, 인후통, 기침 때문에 정말 밥 먹고, 약 먹고, 잠들고, 이 세 가지만 반복한 것 같네요.

    오늘 일어나서 상태가 좀 많이 호전되어 연재 재개하게 되었읍니다.

    아직 잔기침이 많이 나고, 밥 맛이 이상하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이것도 곧 사라지겠죠.

    컨디션 온전히 회복하게 되면 미흡한 부분 충당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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