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6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베네딕의 얼굴을 살피던 나는 손을 뻗어 그 눈물을 닦아내 주었다.

   

   메스가키가 할 법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내 움직임은 가로 막히지 않았다.

   

   군도에 다녀오는 것으로 행동의 제약이 어느 정도 풀린 덕분이다. 아니 어쩌면 이게 루시가 바라는 행동이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고.

   

   베네딕의 표정이 멍해지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내 마음 속 차오르는 감정이 점차 선명해진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루시가 베네딕을,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루시.”

   

   저주 속에서 고통 받던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했었다. 자신을 지옥 속에 홀로 내버려 두었던 이를 증오했다.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원죄를 베네딕에게 부여하려 했다.

   

   허나 이 원망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베네딕이 보여준 헌신이 그 원망을 거두게 한 것이다.

   

   “루시…”

   

   다만 루시는 이 마음을 베네딕에게 전하지 못했다. 베네딕의 헌신을 깨닫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이 너무도 많아 그럴 수 없었다.

   

   저주에 가로 막혀 진실됨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가 어찌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진심을 내비치는 방법을 알겠는가.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 주는 거니?”

   

   이 모든 감정을 읽은 나는 여전히 내 안에 루시가 머무르고 있음을 확신했다.

   

   네가 못 다했던 말들을 베네딕에게 전해달라는 거지? 루시?

   

   그것이 네 바람이라면 기꺼이 그러도록 할게.

   

   “루시?”

   

   나는 베네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 안에 머무르는 메스가키 스킬의 저주가 용서의 말을 왜곡할 것을 알았기에. 그 대신 무릎을 펴고 베네딕의 앞으로 걸어가서 그의 허리를 껴안…

   

   으려다가 실패했다.

   

   아니! 최선을 다해서 두 팔을 벌렸는데 허리를 껴안는 것도 못 하는 게 말이 돼?! 이 인간 진짜 쓸데없이 크네!

   

   본래의 목표에 실패해버린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무릎 꿇은 베네딕을 올려보다가 다음 목표를 찾아냈다.

   

   허리에 안기는 건 무리지만 저기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여전히 굳어 있는 베네딕의 목에 폴짝 뛰어서 매달리니 그제서야 베네딕이 조심스레 나를 안아 들었다.

   

   “이게 대답 대신이라는 거구나.”

   

   베네딕은 울면서 웃었다.내 뜻을 이해한 베네딕은 하염없이 울었다.

   

   나를 껴안은 채로 주저앉아 그 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얼굴이 커다란 만큼 베네딕에게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기분 나쁠 정도로 많았지만 난 그의 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직 나는 베네딕을 힘으로 이길 수 없었으니까.

   

   오열하는 와중에도 나를 껴안는 팔만큼은 조심스러워서 숨이 막힐 일은 없었지만 아무튼 난 베네딕 때문의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후로도 한참이나 울던 베네딕이 이성을 되찾은 것은 내 옷이 비에 맞은 것처럼 흠뻑 젖었을 무렵이었다.

   

   베네디의 품에서 빠져 나온 나는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단어로 퉁치기에는 불쾌함이 너무도 컸으니까.

   

   내 짜증을 눈치 챈 베네딕은 퉁퉁 부어서 오크조차 겁먹고 도망칠 얼굴로 사죄의 말을 내뱉었지만 이미 골든 타임은 지난 지 오래였다.

   

   그가 눈치가 있었다면 중간에 내가 불평의 말을 내뱉었을 때 나를 풀어줘야만 했다.

   

   “변태 파파. 딸을 이렇게 축축하게 만드니까 기분 좋아?”

   “아. 아니. 그. 루시. 알잖으냐. 내가 바라여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거구나? 알겠어. 파파. 자세한 이야기는 철창 너머에서 듣도록 할게.”

   “루시?!”

   “왕국을 지켰던 영웅이 사실은 딸을 노리던 변태였단 소문이 돌면 참 재밌겠다. 그치?”

   “잠. 잠깐만 기다려다오. 루시. 이 못난 아비가 잘못한 것은 맞다만 그게 사회적으로 죽어야 할 정도의 죄는 아니잖으냐!”

   

   팔을 내저으면서 필사적으로 변명하던 베네딕이었지만 그 반항은 내 차가운 눈빛 하나에 제압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의 죄를 용서받았다 한들 베네딕이 딸바보라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딸바보인 베네딕을 괴롭히는 데 죄책감이 없냐고?

   

   그치만 말야. 이렇게 베네딕을 갈구고 있는데도 마음속에서 아무런 감정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루시도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잖아. 죄책감을 지닐 이유가 있나?

   

   루시의 방관 하에 베네딕을 괴롭히던 나는 베네딕이 무엇이라도 할 테니 제발 용서해달라 말을 꺼내고 나서야 갈굼을 멈췄다.

   

   “정말이지? 파파? 뭐든 해준다고 그랬지? 허접마냥 이건 안 되고 저건 안 된다고 그러는 거 아니지?”

   “…저어. 루시. 그래도 되도록 상식의 선 내에서.”

   “자꾸 치사하게 굴면 나 마마 무덤 앞에서 파파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다 말해버릴 거야.”

   “내가 잘못했다. 잘못했으니 부디 미라한테만큼은 아무 말 하지 말아다오!”

   

   필살기 앞에 장렬히 전사한 베네딕은 결국 내가 말하는 걸 뭐든 들어주기로 약속했지만 불안한 티가 역력했다.

   

   과거의 루시에 익숙한 베네딕이라면 사치스러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지 않으려나.

   

   물론 지금의 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베네딕을 괴롭히다보니 자연스레 말이 흘러나왔을 뿐.

   

   지금 베네딕한테 부탁해야 할 게 있나? 곰곰이 생각해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아. 좋은 생각이 났다.

   

   헤이샨하고 함께 왕국에 돌아오자마자 카리아가 걔를 데리고 2왕비에게 향했으니 분명 며칠 내로 퀘스트가 완료될 거야. 그럼 스텟 보너스가 지급되겠지.

   

   그럼 네 가지 스텟이 100을 넘길 수 있을 테니까. 그로 인해 생겨날 스펙의 상승을 생각하면 베네딕을 상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지 않을까?

   

   그 광경을 떠올린 나는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베네딕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파파.”

   “뭐. 뭐를 부탁할 생각이기에 그렇게 웃는 거니?…”

   “내 메이스로 허접한 바보 파파를 박살내줄게.”

   “…응?”

   “얼굴이 트롤처럼 변해서 지능도 트롤이 된 거야? 왜 이런 쉬운 말을 이해 못 하는 거지? 하아. 알겠어. 난 착하니까 멍청한 파파한테 친절히 설명해줄게. 대련을 하잔 거야. 대. 련.”

   

   *

   

   교회의 모든 일과를 끝마친 후 방 안에서 홀로 아침기도를 준비하던 페이비는 빈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책상에 이마를 박았다.

   

   “어떡하죠. 머리가 새하얘요.”

   

   본래 페이비는 아침 기도의 내용을 가지고 고민을 하지 않았다.

   

   과거 아직 성녀의 역할에 미숙할 적에야 여러모로 고생을 했지만 몇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 온 지금의 페이비는 삼십분 정도면 모든 준비를 끝마치곤 했지.

   

   그런 그녀가 이토록 고뇌를 하고 있는 이유는 아침 기도를 생각해야 하는 머릿속을 한 사람의 얼굴이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것까지 다 끝내고 영애님께 연락을 드릴 거어어얼.”

   

   페이비는 방금 전 루시와 수정구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내용 자체는 별 특이할 게 없었지만 페이비는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난 지금도 대화의 풍경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장난스럽고 거만한 웃음을 짓던 루시가. 제대로 된 감정을 드러낼 줄 모르던 것처럼 보이던 그녀가. 처음으로 아이다운 해맑은 웃음을 보여준 것이다.

   

   안 그래도 아름답고 신성했던 사람이 지어 보인 진심 어린 미소는 주신 교회의 성녀를 격추시키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흐아앙. 억울하고 원통해요. 저도. 저도 두 눈으로 영애님의 웃음을 보고 싶은데. 그 분과 대화하면서 웃고 싶은데에에.”

   

   다른 이들의 시선이 없는 방 안이기에 팔다리를 퍼덕거리며 투정을 부리던 페이비는 이내 책상 위에 널부러져서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아직 교회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신년이 되면 공식적인 행사가 모두 끝나니 성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성녀의 직함을 지닌 페이비가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은 한 둘이 아니니까.

   

   여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아카데미가 개학을 하고 나서야 영애님을 만날 수 있지 않으려나.

   

   태양보다도 따스한 빛을 알고 있는데 그 옆에 있을 수 없단 사실에 한참 동안 좌절하던 페이비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성녀님. 잠시 나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녀에게 한없이 익숙한 것이었다.

   

   현 주신 교회의 수장. 그 어떤 이도 쉬이 대하지 못하는 교회의 권력자. 노령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흐트러짐도 없는 철인. 페이비를 거짓된 성녀로 만드는 데 분명 무언가 역할을 했을 사람. 그래서 페이비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다 생각했더 인물.

   

   교황.

   

   “금방 나가겠습니다. 교황 성하.”

   “급한 일은 아니니 천천히 준비해도 괜찮습니다.”

   

   페이비는 재빠르게 옷차림을 바로 하고 거울 속에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그 곳에 방금 전까지 투정을 부리던 그녀는 없었다. 거울에 비친 페이비는 누가 보더라도 성녀답다 말할 만큼 정갈한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린 페이비가 조심스레 문을 열자 교황의 인자한 웃음이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오랜만입니다. 성녀님.”

   “…실로 그렇습니다. 성하.”

   

   페이비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교황의 주변에 비쳤던 것에 대해 생각했다.

   

   성하의 주변에는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죠? 따스함도. 차가움도. 이외의 어떤 것도 비치질 않는 거죠?

   

   분명 저 분의 안에 도사리는 신성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할 터인데 어찌하여.

   

   “아카데미에서의 생활이 당신께 깨달음을 선사했나보군요.”

   

   페이비의 생각은 교황이 내뱉은 말에 의해 끊어졌다. 보자마자 바로 제 변화를 눈치채시다니. 역시 교황 성하를 속이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보네요.

   

   “예. 그 곳에서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입니다.”

   “그 또한 주신의 인도겠지요. 실로 좋은 일입니다.”

   

   페이비를 바라보는 교황의 시선은 한없이 인자했다. 그녀를 거짓된 성녀로 택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녀님.”

   “예. 교황 성하.”

   “잠시 휴가를 떠나시겠습니까?”

   “휴가…라니요?”

   “신년까지의 행사가 끝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 동안 성녀님께서 고생을 해주셨으니 응당한 보상을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페이비가 굳어있는 동안 교황은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서면으로 보내겠다 말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그렇게 혼자 남겨진 페이비는 교황이 서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황 성하께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지?

   

   *

   

   베네딕이 우물을 만들 기세로 펑펑 울어대고서 이틀이 지났을 무렵. 눈보라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떠오른 날의 아침에 난 방패와 메이스를 치켜든 채 베네딕을 마주하고 있었다.

   

   반대편에 서 있는 베네딕은 그 어떤 무장도 하지 않은 채였지만 누구도 그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베네딕이라는 인간은 육신 자체가 흉기나 다름없는 괴물이니까.

   

   “루시야. 정말 대련을 할 게냐?”

   

   몸에서 자연스레 풍기는 위압감과는 달리 베네딕의 표정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칫 실수해서 내가 잘못될까봐 걱정하는 거겠지.

   

   “파파는 힘조절을 할 자신도 없는 허접이야?”

   

   그의 마음을 이해한 나였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현 대륙에서 최강이라 불리는 사람이 어느 정도일지 몸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그건 아니지만 말이다. 혹시나라는 게.”

   “그럼 허~접 파파는 얌전히 맞고 있으면 되겠다♡ 딱 좋네♡ 허접에 바보인 파파는 덩치 하나는 크니까!♡ 샌드백으로 제격일 거야!♡”

   

   베네딕에게 지금의 내가 어느 정도 힘을 지녔는지 알려주고 싶기도 했으니까.

   

   진심을 담아 도발했음에도 우물쭈물거리는 중인 베네딕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메이스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베네딕에게 한 방을 먹이는 것.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베네딕은 딸보다 자기 자신의 힘이 무섭다.

—-

글래여님 응원의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