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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6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크라슈가 태어나기 한참 전 시절부터 존재했던 세계 침식자이자 불사자.

     

   용왕족들은 하나 같이 영생에 집착하는 이들이 많다.

     

   모든 것을 지녔지만, 유일하게 지니지 못한 것이 불사였기 때문에.

   그들은 집요할 정도로 불사에 집착했다.

     

   그리고 크림슨가든은 이론상으로는 그런 불사를 이뤄낸 용왕족이었다.

     

   단, 그녀의 불사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녀의 영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육체가 영원토록 잠들어버리는 탓이다.

   이에 따라 크림슨가든의 육체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깊디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다.

   그저, 자기 종과 계약하여 그들의 눈을 빌려 세상을 보는 것뿐.

     

   크림슨가든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크림슨가든의 육체는 고유 공간에 넣어진 채 끊임없이 공간이 도달하는 위치를 바꿔 나갔다.

   덕분에 크림슨가든은 회귀를 반복한 아서 조차 그녀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

     

   그런 지금.

   크림슨가든의 잠든 육체 앞에 크라슈가 도달해 있었다.

     

   크라슈는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 앞에 자리한 크림슨가든을 향해 손을 들고 있었다.

     

   그의 손에 서린 것은 다름 아닌 블랙 후드.

   조건만 부합한다면 세상 모든 것을 훔쳐낼 수 있는 그의 스킬이다.

     

   크림슨가든의 몸과 크라슈의 손아귀가 동시에 빛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까마귀의 모습으로 물끄러미 보던 크림슨가든은 아주 잠시 과거를 떠올렸다.

     

   멸망해 가는 용왕족의 세계 앞.

     

   회귀자였던 친구가 자신이 회귀하고, 모든 걸 돌려놓겠다는 말만 남긴 채 덩그러니 시체가 된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가 느꼈던 막막함과 덧없음.

     

   그러면서도 언젠가 살아간다면 자기 친구를 다시 보게 되지 않을 거란 막연한 생각과 함께 손에 넣게 된 불사까지.

     

   지난날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과거도 너무 오랜 기간이 지나서인지 희미해졌다.

   크림슨가든은 원래의 자기 세계의 광경은 거의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었다.

     

   결국 자신은 멸망한 세계를 떠났고, 오랜 기간을 크라슈의 세계에서 정착했으니까.

     

   이제는 오래전 그날을 떠올리며 가슴을 앓던 일도 없었다.

     

   시간은 약이다.

   그 말이 무엇인지 크림슨가든은 이해했다.

     

   ‘하긴, 그렇군.’

     

   과거란 현재를 만드는데 받침이 되었을 뿐, 결국 잊혀 가는 것들이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현재의 자신이다.

   그리고 끝을 맞이할 것 또한 자신이다.

     

   이윽고, 크라슈가 손을 콱하니 틀어쥐었다.

     

   [ 대상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

     

   동시에 크림슨가든의 까마귀가 날개를 펼치며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퍼덕이는 날갯짓이 거세게 날아올라 크림슨가든의 머리 위를 지나간 순간.

     

   쿵-

     

   공간 전체가 한차례 거세게 흔들렸다.

   고요한 적막이 주위를 감돌았다.

     

   크라슈의 손아귀에는 어느새 빛이 꺼져 사라졌었다.

     

   그러한 고요함 속.

   크림슨가든의 닫혀 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깜빡이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이내 목을 쭈욱 빼며 몸을 일으키곤 자신의 상태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기다란 붉은색의 다리와 몸체.

   그리고 등 위로 펄럭이는 날개 한 짝.

     

   자기 눈으로 직접 자기 몸을 내려다보는 것은 너무나 오랜만이라서일까.

   그녀는 여러 생각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정말로 이날이 다시 오게 될 줄이야.

   괜히 생각이 많아진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을 떨쳐내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한 이가 있었다.

   자신의 불사를 대신해서 가져간 남자.

     

   그는 크림슨가든의 불사를 받자마자 굳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평소라면 이제 일어났냐며 장난을 쳤을 녀석이.

   고개를 하늘 위로 쳐든 채 그 자리에 우뚝 굳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크림슨가든은 잠깐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서서히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네 녀석 설마!”

     

   그가 무슨 상황인지 눈치를 챈 크림슨가든이 서둘러 모습을 바꾸었다.

     

   피막이 있던 붉은 날개 대신 붉은 머리카락이 돋아났다.

   동시에 머리 위에 돋아난 뿔과 붉은 비늘의 꼬리가 흔들렸다.

     

   용왕족의 인간폼이 된 크림슨가든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모든 면에서 타종족보다 우월한 종족임을 보여주듯 그녀의 붉은 속눈썹은 기다랬고, 다급해져 앙다물어진 입가는 그녀를 더욱 고귀하고 기품 있게 만들었다.

     

   화려하디화려한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하늘 위에 휘날리며 크림슨가든이 달렸다.

     

   “크라슈!”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의 불사를 받아 갔다.

   불사는 영혼을 평생 유지 시켜주지만 대가로 육체를 영원한 잠에 빠트린다.

     

   크라슈가 자신만만하게 불사의 치명적인 단점을 해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이 실패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안된다.

   혹여나 그가 잘못된다면 안된다.

     

   적어도 크라슈는 이런 식으로 잘못되어서는 안 되는 녀석이다.

     

   크라슈에게 도달한 크림슨가든이 그의 어깨를 콱하니 잡았다.

   동시에 그녀의 손아귀에서 여러 종류의 마법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불사에 잡아 먹히려는 크라슈를 강제로 일깨우기 위해서다.

     

   “태워라! 불사를 전부 태우는 거다! 너라면 할 수 있다!”

     

   그렇게 소리친 그녀가 크라슈가 못한다면 자신이 하기 위해 마법을 발동시키려는 그 순간.

     

   “프하!”

     

   크라슈의 입에서 대량의 연기가 흘러나왔다.

   크라슈는 고개를 쳐든 자세로 연기를 길게 내뿜더니 한차례 비틀거렸다가 자세를 바로 했다.

     

   당황했던 크림슨가든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졌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크라슈를 조용히 바라봤다.

     

   그러자 크라슈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크림슨가든을 보았다.

   그러고는 반쯤 일그러진 얼굴로도 그녀의 걱정을 덜어 주고자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 어울리게 웬 호들갑이야?”

   “너…….”

     

   크림슨가든은 기가 막힌 얼굴을 하였다.

   그러고는 이내 천천히 한숨을 내쉬고는 크라슈에게서 떨어져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다.

     

   “못난 놈이 그대로 콱 죽어버리지 그랬느냐.”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이 크림슨가든이 성을 냈다.

   그러면서도 안도하는 기색이 얼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여튼 새침데기 같은 녀석이다.

     

   “이제는 불사라서 죽지도 못하잖냐.”

     

   크라슈의 몸에서 붉은색의 기운이 일렁였다.

   이는 불사가 크라슈의 영혼에 적용되었다는 증거였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크림슨가든은 이내 물었다.

     

   “나는 네가 내게 받아 간 불사를 이그니스로 바로 태워 버릴 거라 생각했다.”

     

   불사가 없어지긴 하겠지만 그걸로 크림슨가든의 약속은 이뤄준 셈이니까.

   어찌 되었든 크라슈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 크림슨가든 네 불사는 나한테 필요해.”

     

   아벨라를 만나고, 그녀에게 대항할 방법을 떠올린 시점.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의 불사 또한 아벨라를 쓰러트릴 수에 포함했다.

     

   불사에 붙어 있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영혼의 주박.

   크라슈는 이 주박이 꼭 필요했다.

     

   그러니 성검과 불사.

   이 두 가지가 있어야만 아벨라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쓰러트릴 수 있다.

     

   “그러니까 수 좀 썼어.”

     

   크라슈는 블랙 후드를 쥐었던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곧이어 크림슨가든은 무언가 눈치채고 서서히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다.

     

   이 미치광이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지른 지 눈치챈 탓이다.

     

   “너, 설마.”

     

   크라슈는 폈던 손을 쥐었다.

     

   “그래, 나는 블랙 후드를 크림슨가든 너 말고도 불사에도 사용했어.”

     

   불사에게 사용한 블랙 후드.

   크라슈는 그런 불사에게서 한 가지를 뽑아냈다.

     

   영혼을 영원히 유지 시키기 위해 잠에 빠져드는 잠의 저주 영면불멸(永眠不滅).

     

   최상위 저주보다도 더한 이 지독한 저주는 불사에 붙어 기생하는 놈이었다.

     

   불사를 향해 블랙 후드를 발동시킨 크라슈는 기생하던 영면불멸을 강제로 꺼내었다.

     

   그 대가로 불사가 불안전해지긴 했지만 괜찮다.

   어차피 불사는 아벨라와 맞붙기 전까지만 유지되어도 괜찮으니까.

     

   크라슈는 영면불멸을 뽑아낸 즉시 백염을 통해 화려히 태워버렸다.

     

   육체 안쪽에서 태워버리느라 열이 올라 정신이 어지럽긴 했지만.

   덕분에 영원불멸을 뽑아낸 불사만이 남았다.

     

   ‘잠들기 전에 해내야 하는 만큼 꽤 아슬아슬한 시간 싸움이었지만.’

     

   만약 그대로 불사에게 정신을 빼앗기며 잠들어버렸다면 크라슈도 꽤 아찔했다.

     

   크림슨가든에게는 이 사실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크라슈를 바라보는 크림슨가든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했다.

     

   크림슨가든이 크라슈에게 블랙 후드를 가져가라 내건 조건은 사실 타인에게 불사를 함부로 넘길 생각이 없는 탓이다.

   불사가 넘어가는 순간 그의 인생이 끝장날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불사를 버리고 싶음에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없었다.

     

   참으로 지극히 크림슨가든다운 책임감이었다.

     

   ‘크림슨가든이 보기에 나라면 자신의 불사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겠지.’

     

   매일 까마귀 같은 모습으로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그녀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다른 이를 아끼는 것이 그녀기도 했다.

     

   크림슨가든과 함께 있었던 기간은 일종의 그런 그녀를 설득하는 시간이었다.

   크라슈 발하임이라면 불사를 준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거라는 확신을 만들어주기 위한 시간.

     

   크림슨가든이 황당함이 가득한 눈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이게, 제정신이더냐?”

     

   그리고 어느새 손을 들어 크라슈의 등짝을 팍팍 때렸다.

   걱정해서 손해 봤다는 듯이 그녀는 성을 냈다.

     

   그러고는 이내 크라슈의 옷깃을 콱하니 쥐었다.

     

   “다음부터는 최소한 말을 하고 하거라.”

     

   다른 이들과 달리 다음에 이러면 진짜 죽여버린다는 얼굴이었기에 크라슈는 옙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괜한 걱정 해서 손해만 보게 하기는.”

     

   그러면서도 안도하는 걸 보니 크림슨가든다웠다.

     

   쿠궁!

     

   그 순간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림슨가든이 불사에서 깨어나고 나니 할 일을 잃은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던 크림슨가든은 몸을 돌렸다.

     

   “나가기나 하자구나.”

   “앞으로는 어쩌게.”

     

   앞서가는 크림슨가든을 따라 크라슈가 걸음을 옮기자 크라슈가 따라붙으며 물었다.

   그러자 크림슨가든은 뭘 묻냐는 표정으로 크라슈를 돌아봤다.

     

   “세계 침식자 놈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더냐. 넌 아벨라라는 미친 여자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아껴야 하는 타이밍이고.”

     

   크림슨가든의 손이 두둑하니 풀렸다.

     

   “오랜만에 기상이다. 정신을 차리려면 몸을 풀어야지.”

     

   그 말을 들은 크라슈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는 천천히 웃음 지었다.

     

   “내가 살다 살다 불사자가 직접 싸우는 걸 다 보겠네.”

   “보고 놀라지 말거라. 진짜 용왕족이 어떤 건지 보여 줄 테니 말이다.”

     

   그녀가 그 말을 끝으로 크라슈와 함께 동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동굴 앞에는 에벨아스크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시체들과 함께 주위를 서성거리며 얼굴 가득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도 크라슈가 크림슨가든의 불사를 받으러 간다는 사실을 아는 탓이다.

     

   “우왁?!”

     

   그러는 순간 그녀는 크림슨가든이 걸어 나오자 깜짝 놀란 표정을 하였다.

     

   “크, 크림슨가든이야?”

     

   그러고는 어수룩한 얼굴로 되묻자 크림슨가든이 한차례 콧방귀를 내쉬었다.

     

   “가슴아.”

   “……맞네.”

     

   이런 식으로 타인을 부르는 건 크림슨가든 말고는 거의 없었다.

     

   “네 가슴에 찬 지방만큼 일 좀 할 시간이다. 준비하거라.”

   “지, 지방이라 하지 마! 요!”

     

   에벨아스크가 자기 가슴을 감싼 채 얼굴을 붉히며 괜히 크림슨가든의 기세에 눌려 소리쳤다.

   하지만 크림슨가든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딱하니 맞췄다.

     

   그러자 그녀의 옷이 어느 멸망하여 사라진 제복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성을 휘감은 용이 그려진 검붉은 망토가 휘날렸다.

     

   동시에 그녀의 입가에는 전투를 향한 열망과 거친 웃음이 그려졌다.

     

   용왕족 제국의 최고 장교이자 최강의 전투 마법사라 불리었던.

     

   마신(魔神)

   크림슨가든 아우구스트

   

   

   

   

     

   그녀가 재림한 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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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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