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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6

       여신 르퀴네스.

       

       이 세상에 살고 있던 ‘나’를 아렌스 대륙으로 차원이동시켰던 장본인이자, 현재는 직속 상사가 된 사람.

       

       그녀가 사람을 차원이동하게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게임, 소설, 영화, 만화, 논문.”

       

       이 중에서 나는 논문 리뷰를 하다가 잡혀왔다.

       

       그러나 이건 통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나는 게임을 안 한다. 소설이나 만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영화 애호가도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빙의하게 할 건덕지가 없었다. 때문에 여신은 논문 빙의라는 초강수를 두었던 것이고.

       

       성현은 달랐을 것이다.

       

       만약 김성현… 아니, 버멜 호르데라는 사람이 나와 접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구에서 만났을까?

       

       아니, 어떻게 봐도 접점이 없다. 당장 ‘이태연’을 만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지 않았던가.

       

       추리 끝에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나와 성현은 아렌스 대륙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물증으로 그의 컴퓨터에 깔려 있는 게임이 있었다.

       

       “이게 여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연락책이라는 말이죠?”

       

       로즈마리가 해당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에 물든 아카데미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고딕 양식의 첨탑의 모습은 영락없는 틸레트 아카데미이구나 싶었다.

       

       “찾아보니까 여기서 꽤 유명한 게임으로 통하더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하나요?”

       “게임하는 사람들 영상 몇 개를 봤는데, 기본 조회수가 수십만이더라고.”

       

       게임성은 뛰어났다.

       

       스토리 볼륨이 큰 건 당연지사. 컨텐츠도 풍부하고 과금의 영향도 적어서 오랫동안 즐길 요소가 많았다.

       

       심지어 쉬운 난이도는 굉장히 뉴비 친화적이었다.

       

       마수가 북방 침공을 안 한다든지, 인연 레벨이 금방 오른다든지, 핵심 마법의 개발 속도가 아주 빠르다든지.

       

       …내가 슈퍼 호구라 흑주를 아예 안 만들기도 한단다.

       

       그 정도로 쉬운 건 플레이하지 않을 생각이다. 오히려 김성현과 내 관계를 짐작해 보려면 실제 아렌스 대륙의 상황과 가장 비슷했던 난이도를 골라야겠지.

       

       [난이도를 선택하십시오.]

       

       어디 보자.

       

       [0. 아기(Baby)]

       

       [응애]

       

       “일단 이건 아니고.”

       

       아무래도 이쪽은 유저들이 만든 모드인 것 같다. 다른 일반적인 난이도 위주로 살펴보는 것이 좋겠지.

       

       나는 스크롤을 쭉 내렸다.

       

       [1. 광휘(Sheen)]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난이도입니다. 초반부 자원 보너스를 비롯한 여러 혜택이 있습니다. 괴물들이 아카데미에 침공해 오지 않으며, 동료들이 타락하지 않습니다.]

       

       [2. 석양(Sunset)]

       

       [기본이 되는 난이도입니다. 스토리와 스릴을 같이 즐기실 수 있습니다. 스트리머 및 BJ에게 추천합니다.]

       

       [3. 암흑(Darkness)]

       

       [괴물들이 더욱 능동적으로 움직입니다. 동료를 영입하기 어려워지고,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입니다. 1회차를 마친 플레이어들에게 추천드립니다.]

       

       [4. 침묵(Hush)]

       

       [괴물들의 지능이 한 단계 향상됩니다. 그 누구도 온전히 믿지 마십시오. 공격은 외부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5. 섬망(Delirium)]

       

       [괴물들의 공작 수준은 실제 인간에 비견됩니다. 그들은 경우에 따라 당신의 동료와 나라를 우선적으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고도로 숙련된 플레이어만이 이 역경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재앙(Catastrophe)]

       

       [괴물들은 당신이 플레이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 혹시 이 난이도로 해 보시려고요? 그렇다면 해 보세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고요.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7. 절멸(Extinction)]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소개 문구를 보면 재앙이나 절멸 난이도를 해야 할 것 같다.

       

       일단 로즈마리만 봐도 그렇다. 성현이 아카데미에서 뭔가 행동을 했더라면 로즈마리가 곧바로 눈치챘겠지.

       

       “일단 재앙으로 해야 하나?”

       “재미없을 것 같은데요.”

       

       로즈마리가 절멸 난이도에 커서를 가져갔다.

       

       딸깍.

       

       [최종 보스인 마왕을 쓰러뜨리더라도 게임을 깨지 못할 수 있습니다. 멸망의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섬뜩한 경고문이군.

       

       그러나 이 문구 덕분에 확신이 섰다. 이 난이도로 해야 한다는 확신 말이다. 내가 겪었던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다.

       

       로즈마리가 다시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러자 메인 화면이 암전되며 로딩창이 나타났다.

       

       [TIP : <다키스트 아카데미아>에서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다릅니다.]

       

       바로 찾았다.

       

       여신의 메시지다.

       

       “1년 내내 쉬고 와도 된다는 소리 같은데요?”

       “그런가 보네.”

       

       성현이 서울대에 들어가는 건 보고 떠날 수 있겠다.

       

       [TIP :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팁글이 3초 간격으로 떴다 사라졌다.

       

       그렇게 게임창이 나타났을 땐 캐릭터 커스텀 화면이었다.

       

       커스터마이징까지 대충 끝냈다. 아렌스 대륙에서 성현이 남자였다는 가정하에 남성 캐릭터로 게임을 시작했다.

       

       “언니가 해 볼래요?”

       “아냐. 나는 됐어.”

       

       절멸 난이도라 그런지 할 엄두는 안 난다. 로즈마리가 하는 것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련다.

       

       본격적인 게임 화면이 나타났다. 어두운 새벽의 틸레트 아카데미 근처… 가 아닌데.

       

       “외모 꾸민 게 이상하게 바뀌지 않았어요?”

       “그러게. 엘프가 됐어.”

       

       평범하게 인족 남자로 하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엘프로 변해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타팅 포인트를 틸레트 아카데미 근처로 잡았는데, 막상 시작하자 지도 위치가 ‘메르헤름’으로 잡혀있었다.

       

       이름은 처음에 설정했던 대로 ‘버멜 호르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나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한 가지뿐이다.

       

       여신이 우리가 하는 게임에 개입했다.

       

       “메르헤름이라면… 카우렐리아 수도네요. 여기 정보도 잘 알고 있죠.”

       

       로즈마리는 스코프로 얻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러더니 곧 커서를 움직이며 캐릭터를 조작했다.

       

       게임 시간으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 거지 신분에서 탈출했다.

       

       타다닥!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현란한 손놀림을 보여주는 로즈마리.

       

       게임 시간으로 1년쯤 지나자 재물과 아이템 몇 개를 모아 일리야드 아카데미 시험을 치르는 곳까지 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정신 나간 속도였다.

       

       [==마법 상인 리베라가 당신과의 거래를 요청했습니다.==]

       

       [─좋은 마도구가 많이 들어왔어요. 한번 보고 가시겠어요?]

       

       [수락/거절]

       

       로즈마리는 곧바로 거절을 눌렀다.

       

       마법 상인의 얼굴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녀는 힝힝거리며 다른 곳으로 떠났다. 뭔가 처량해 보였다.

       

       “보는 시늉이라도 해 주지 그랬어.”

       “쟤, 제가 심어놓은 스파이라서 그래요.”

       “뭐?”

       “중독 효과가 있는 별가루를 팔고 돌아다니면서 엘프국을 약쟁이들 나라로 만들라는 지령을 내렸었거든요. 거래해도 쓸모없을 물건만 볼 테고, 시간 아까워서 그냥 거절했어요.”

       

       그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대체 얼마나 공작을 뿌려댔던 거야?

       

       그런데도 용케 안 망한 카우렐리아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쨌거나 그 뒤로도 ‘가짜’들의 내부 공격은 계속됐다.

       

       [─못 보던 젊은이군. 여기서 식사라도 좀 하고 가게나.]

       

       “이 사람은 마수는 아니지만 다단계로 매수했었죠.”

       

       [─저, 저, 저기! 첫눈에 반했어요! 괜찮으시다면 저와 사귀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사람을 잡아먹은 다음 그 사람으로 위장하는 액상형 마수예요.”

       

       [─그 소식 들었어? 마왕군이 곧 있으면 여기로 들이닥친다던데. 빨리 피난을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이 무렵에 한 건 전부 기만 작전이었어요.”

       

       사소해 보이지만 잘못 누르면 엔딩에 큰 영향을 주는 선택지들. 그런 선택지들을 로즈마리는 공략집 하나 없이 단신으로, 그것도 1회차인 몸으로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확률이 작용하기도 했는데, 로즈마리는 그것까지 전부 계산해서 최적의 선택을 내렸다.

       

       “미쳤다.”

       

       내 입에선 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역시 절멸을 상대할 수 있는 건 같은 절멸뿐인가 보다.

       

       그렇게 게임을 시작하고 9시간 반쯤 지났을 무렵.

       

       “깼는데요?”

       

       길고 길었던 대장정이 끝났다.

       

       로즈마리는 게임 속 자신을 회유하고, 나도 구해내고, 동료도 잔뜩 만들어서 마왕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쉽네, 쉬워.”

       

       로즈마리가 손을 탁탁 털며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있었다.

       

       [Normal Ending]

       

       [마왕을 쓰러뜨렸고 세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새로운 위기가 도래하고 말 것입니다.]

       

       옆에서 지켜본바, 생각보다 싱거웠다.

       

       물론 난이도는 미쳐 날뛰었다. 오죽하면 클라이스가 죽고, 메리가 선생님이 죽고, 세실 총장까지 죽었겠는가.

       

       로즈마리는 필요한 사람과 필요하지 않은 사람을 딱딱 갈라냈다.

       

       그리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그 소임을 다하자마자 가차없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마수인 로즈마리다운 플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죽은 사람들은 뭔가 짠하네.”

       “게임이잖아요, 게임. 일단 깨는 게 목적이죠.”

       “이걸로 해피엔딩을 볼 수 있을까?”

       “흐으음.”

       

       내 질문에 로즈마리는 침음을 삼켰다.

       

       “주요 인물을 한 명도 안 죽게 하고, 언니도 처음부터 구출하면 되지 않을까요?”

       “확실히 그렇네.”

       

       절멸 난이도로 해피 엔딩을 본다면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이 돌아온다거나, 여신의 숨겨진 메시지를 볼 수 있다거나. 아니면 다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거나.

       

       기억 쪽이라면 큰 기대는 안 한다. 어차피 김성현과 다시 만나기는 만났으니까. 기억 못 한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다는 소리다.

       

       “해피 엔딩이라.”

       

       한참이고 고민하던 로즈마리가 입을 열었다.

       

       “한번 해 볼게요.”

       

       

       **

       

       

       <다키스트 아카데미아 갤러리>

       

       [제목 : 님들아 ㅁㅊㅁㅊ 노말 신기록뜸 ㄷㄷㄷㄷㄷㄷ]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포카리스윁 님, 50코원 후원 감사합니다!

    마카물리를 통해 꿈을 다지시는 분이 있으셨다니, 정말 영광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제가 처음에 이 소설을 쓴 이유 중 하나가 성취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마카물리는 사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물리에 친숙해지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소설이었습니다.

    전체 독자분들 중에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작중 가끔씩 나오는 전문용어를 찾아보거나, 연구밖에 모르는 바보 주인공에게서 무언가를 느끼는 분이 계셨으면… 하는 김칫국을 들이켜곤 했었죠. 적어도 이 소설을 계기로 과학에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썼습니다.

    또한 마카물리는 저 스스로도 현생의 목표가 흔들릴 때 마음을 다잡으려고 쓰는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에테르는 어떻게 보면 제 우상이었어요.

    아무튼 저와 같은 생각으로 소설을 읽어주셨던 독자분이 있다는 일은 무덤까지 가져갈 행운인 듯합니다. 부디 후원자님께서 훗날 좋은 연구자가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작품이 완결된 이후로도 비슷한 작품을 많이 쓸 계획입니다. 그때도 후원자님을 만나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후원 고맙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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