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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7

       오늘 밖에 나갔다가 오는 길에 앨리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옷을 사 오긴 했지만……

        

       “앨리스, 진지하게 물어보는데, 사이트 알고리즘이 어떻게 되어있는 겁니까? 무슨 영상을 봤길래 이런 복장이 나오는 겁니까?”

        

       “무슨 영상이라니? 당연히 운동 영상이지.”

        

       “아니, 아무리 운동 영상이라도……”

        

       운동이나 헬스 영상에 나오는 여자들이 죄다 이런 복장이라고?

        

       …….

        

       죄다, 까진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다 이런 복장이었던 것 같긴 하다. 단순히 유튜브 조회수를 노렸다기보다는 그런 복장이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하고 입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예쁘긴 했다.

        

       물론 내가 가진 감성은 아직은 소녀의 감성보다는 아저씨의 감성에 더 가까워서, 예쁘고 몸 관리 잘 된 사람들의 몸을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것이었다. 실제 여자들이 그런 복장을 입는 심리는 잘 모른다.

        

       그렇다.

        

       나는 잘 모른다.

        

       “이, 이렇게 몸매가 다 드러나는 복장이라니. 이쪽 세상 사람들의 수치심은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여기 잘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샬럿, 너무 다른 세상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면 안 돼. 이쪽 세상에는 이쪽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있다고. 무엇보다 문화적, 사회적으로 많이 개방되어있어서, 잘 관리된 외모나 몸을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은 당당하게 해도 되는 일이야.”

        

       아니, 개방적인 건 맞지만, 그 개방적인 것도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쉬는 날마다 클럽에 가서 새로운 이성을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집안에서 뒹굴뒹굴하며 영화나 보며 팝콘이나 씹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만난 그날 바로 몸을 섞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행위에 의미를 크게 두어서 한참을 사귀고 나서야 몸을 허락하는 사람도 많다.

        

       뭐, 종교니, 뭐니 하는 쪽까지 들어가면 그보다 훨씬 보수적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을 진지하게 따지는 사람은 이 나라에서는 소수이니 넘어가기로 하고.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애들이 자유연애를 하며 혼전 순결 같은 것을 구닥다리 취급할 아이들은 아니다. 이쪽으로 넘어온 지 고작 한 달 조금 넘는 시간 안에 성 관념이 바뀌기에는 그쪽 세상이 너무 보수적이다.

        

       뭐, 아무튼.

        

       “앨리스.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혹시 황실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 자유로운 감각을 맛본 나머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일탈을 해보고 싶은 것이 아닙니까?”

        

       “…….”

        

       눈을 피하는 걸 보니 맞구만.

        

       참고로 지금 여기 있는 다섯 명 모두 그런 복장이었다. 헬스 영상에 나오는 여성 트레이너들이 자주 입는 딱 달라붙는 운동복.

        

       조금 헐렁한 트레이닝복도 선택지에 넣어볼 만했을 텐데, 앨리스의 고집으로 굳이 이런 복장을 하게 되었다.

        

       앨리스는 하늘색, 샤를로트는 회색, 클레어는 남색에 미아와 나는 검은색.

        

       바지 길이는 모두 길었지만, 몸에 딱 달라붙었고, 상의는 그래도 제각각이었다. 클레어는 조금은 대범하게 배부분이 드러나고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이었고, 미아와 샤를로트, 그리고 나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앨리스와 클레어가 강력하게 추천한 나의 옷은 상체의 피부가 조금 드러나 보이는 복장이었지만.

        

       그나마 미아는 상의 자체는 헐렁한 것을 입혀둔 걸 보면, 앨리스에게도 최후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나는 수영복도 입어봤고, 무려 바니걸 옷도 입어봤지만, 전자는 애초에 수영장에서 다 같이 입고 다니는 옷이었고 후자는 잠입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위해 입은 복장이었다.

        

       “그래도 움직이기 좋은 옷이라는 건 맞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애초에 운동 할 때 입으라고 만든 옷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전투할 때 입었던 교복보다 이 옷이 더 활동성은 좋을 거다.

        

       “그럼, 방송 다시 켤까?”

        

       “…….”

        

       옷을 갈아입는 동안 방송을 켜둘 수는 없었기에 하던 방송은 잠깐 꺼둔 상황이었다.

        

       아무리 카메라를 껐다고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소리를 듣는 와중에 옷을 갈아입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중엔 없었으니까.

        

       내가 마우스를 움직여 다시 방송을 켜자—

        

       [오]

       [게임스킨으로도 없던ㅋㅋㅋㅋㅋㅋ]

       [ㅗㅜㅑㅗㅜㅑ]

       [좋다]

        

       그런 채팅들이 주룩 올라가고,

        

       [황녀님 결국 돈에 넘어가셨군요ㅜㅜ]

        

       라는 도네가 왔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요.”

        

       차라리 주민등록증의 나이가 진짜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으면 온갖 이유를 대면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하긴, 그랬다간 바로 동사무소에서 찾아왔겠지. 성인 없이 애들만 집에 살고 있다는 소리니까. 게다가 이런 식으로 전셋집에 들어와 사는 것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럼, 미션 내용대로 게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종 때까지 제가 게임을 하는 것이 조건이었지요?”

        

       다시 한번 채팅창이 주룩 올라갔다.

        

       캐릭터로서의 실비아는 호불호가 갈렸다.

        

       디자인이 잘 되었다는 것인 캐릭터 성 자체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리즈 중간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캐릭터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전작에서 일구어둔 스토리를 되돌려버린 캐릭터였고.

        

       그렇게 밉보이기도 했고, 무표정 캐릭터 특유의 ‘망가뜨리는 재미’도 있다 보니,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 투고 사이트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자주 망가진다나. 물론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게 ‘캐릭터’일 뿐이긴 하지만, 솔직히 괜히 기분 나빠질 것 같으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저 사람 중에서 과연 몇 명이나 나를 진짜 실비아와 겹쳐보고 있을까? 대부분은 그저 코스프레에 컨셉 잡고 방송하는 사람으로만 볼 것이다. 컨셉을 조금 철저하게 잡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실존 인물. 캐릭터를 싫어한다고 나까지 싫다고 한다면, 그건 사실상 정신병이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여캠이라 싫어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

        

       “…….”

        

       옆에서 클레어가 친절하게 특유의 링 모양의 컨트롤러를 넘겨주었다.

        

       일부러 세팅하는 척하고 시간 끌고 있었는데.

        

       하지만 미션 금액은 이미 많이 올라서, 벌써 30만 원이 넘어가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컨트롤러를 받아들었다.

        

       *

        

       그리고 당연하게도,

        

       “하아, 하아, 하아…… 흐으.”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나마 침을 흘리지 않은 것이 아직은 나의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근거다.

        

       [야 쟤 죽는다 ㅋㅋㅋㅋㅋㅋㅋ]

       [ㅎㅇㅌ]

       [황녀님 숨 쉬세요 숨]

        

       “하아…… 후우.”

        

       나는 억지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최대한 몸 상태를 재정비했다.

        

       [자아, 따라해보세요, 스읍~ 후우~ 스읍~ 후우~]

        

       유명 여성 스트리머의 목소리로 녹음한 도네가 엄청나게 짜증 난다. 물론 그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만, 대체 도네와 목소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매칭시키는지.

        

       “언니, 힘들어? 교대해줄까?”

        

       “미션 금액이 있으니 오늘은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알았어, 알았어. 나도 할게. 그럼 됐지?”

        

       앨리스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서, 나는 속으로 분을 삭였다.

        

       이 빌라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빌라다. 그런 것치고는 그래도 그럭저럭 방음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발 구르는 소리가 아래층에 안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사에서는 친절하게도 그런 상황의 사람을 위한 옵션까지 안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제자리걸음 대신 무릎을 살짝 굽히는 건데, 얼핏 보기에는 이게 그렇게까지 체력을 많이 소모할 것 같지 않았지만 실제로 해보니 죽을 맛이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다.

        

       당연히 옷도 죄다 젖었고.

        

       “조금만 더 가면 클리어할 수 있어요!”

        

       샤를로트도 그런 내가 조금 짠했는지, 열심히 응원해주었다.

        

       [응애 실비아는 응원이 필요해요]

       [아 포기할거냐고ㅋㅋㅋㅋㅋ]

       [미션금 안받을거야?]

        

       “갑니다…… 지금.”

        

       나는 다시 몸을 억지로 움직이다가, 다시 한번 길을 가로막는 적을 마주쳤다.

        

       “하아.”

        

       한숨을 푹 쉬면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또…… 스쿼트…….”

        

       내 잇새로 흘러나온 말은 그거였다.

        

       게임 시작할 때, 괜히 자존심 세운답시고 운동은 조금 하는 편이라고 설정했다. 옆에서 클레어와 앨리스가 부추긴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한 체력 클레어와 앨리스 옆에 언제나 따라다니고, 나 자신도 엄연한 현역 군인……까지는 아니고 후보생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세상의 웬만한 베테랑만큼 전투를 겪어본 사람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다. 나는 언제나 시간을 돌리며 체력을 최대한 안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붙은 체력이라도, 그런 사람을 위해 이 게임은 상당히 빡센 모드가 있었다.

        

       내가 지금 플레이하는 모드였다.

        

       아래쪽에 찬 게이지의 한 칸 한 칸이, 새끼손톱 가로 폭보다 좁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여러분도, 하는, 겁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내가 스쿼트 하나를 할 때마다 한 마디씩 끊어서 외치자, 앨리스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채팅창에는 ㅋ이 도배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저는 링피트를 사본 적도 없습니다.

    운동할바에는 굶고 말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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