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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7

    잠시 후, 다이튼이 다시 방으로 돌아가자 그곳에는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지 예르나가 침대에 걸터앉은 채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안방에도 화장실이야 있지만, 예르나가 씻고 있는 데 거기에 들어가서 냄새나게 볼일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미안해, 나 씻는다고 화장실 못 쓰게 해서. 방에서 나가기 귀찮았지?”

    “으응, 괜찮아. 별로 신경 안 써.”

     

    아직 잠에 취해 눈가를 비비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다이튼은 문득 아까 전 루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그 이불에 묻어 있던 자국……

     

    ‘조금 번지긴 했어도 그건 분명 피가 맞는 것 같았지.’

     

    다이튼 역시 피를 볼 일이 잦은 숲지기다.

    다른 얼룩과 핏자국을 헷갈릴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다이튼이 피를 보고도 그다지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짐작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건가.’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는 건 그것뿐이었다.

    들키기 전에 몰래 세탁하려는 모습이 마치 고아원에서 이불에 실례를 한 애들 같은 느낌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냥 이불에 피가 묻었다고 보기에는 마침 잠옷도 자러간다고 입었던 것과는 밤 사이 다른 옷으로 바뀌었지 않은가?

     

    뭐, 그런 성장세면 지금 하는 게 특별히 이상한 게 아니긴 하지.

    고아원에선 녀석보다 어려보이는 여자애들도 다 하는 거였으니까, 종종 15살 이상으로 오해를 받는 루크라고 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다만 다이튼이 그 때 입을 닫았던 것은, 솔직히 거기에서 정확히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몰라서 반응을 미룬 것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게, 20대 초중반인 다이튼이 ‘딸의 첫 생리’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제대로 알 리가 만무하다.

    물론 디아나도 나중에 크면 언젠가 하게 될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걔는 벌써 그걸 생각할 나이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애초에 아직 그런 걸 고민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여러가지로 복잡한 마음일 루크의 앞에서 뭐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남자인 자신은 그걸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여러가지로 종합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해 봤을 때, 그 때는 못 본 척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이튼은 ‘아마 이런 건 같은 여성인 예르나가 더 잘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예르나. 말해줄 게 있어.”

    “응? 뭔데?”

     

    다이튼의 말에 예르나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손질하는 자세 그대로 목소리만 높여 흥미를 표현했다.

     

    “루크가 오늘 아침에 보니까 피 묻은 이불을 빨고 있던데. 혹시 그건가? 해서.”

    “어머ㅡ, 그래? 피 묻은 이불 말이지…….”

     

    -멈칫.

     

    머리를 빗질하며 반사적으로 대꾸하던 예르나의 움직임이 돌연 뚝 끊겼다.

    그리고 이내 놀란 기색을 숨김없이 내비쳤다.

     

    “뭐? 진짜로? 루크의 이불에 피가 묻어 있었어? 설마……?”

     

    예르나 역시 그렇게 추측한 것인지, 예르나의 표정에는 걱정 보다는 약간의 흥분이 섞여 있었다.

    그에 다이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응, 자러 갈 때 입었던 잠옷도 바뀌어 있었고. 지금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딱 그거 밖에 없는 것 같아.”

    “어머나, 그럼 축하할 일이잖아!”

     

    예르나는 루크의 성장에 굉장히 즐거운 듯 보였다.

    하긴, 어찌 즐겁지 않을까?

     

    루크에게 생리가 왔다는 것은, 루크가 한 명의 여성으로서 올바르게 자랐다는 증거와도 같다.

    따라서, 아이의 초경을 축하하는 것은 어머니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바로 자신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예르나의 반응에 다이튼은 ‘과연, 저렇게 반응하면 되는 건가?’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문스러운 점을 중얼거렸다.

     

    “그런데 축하할 일이라면 왜 몰래 빨래하려고 했던 거지?”

    “자고 일어났는데 이불에 묻은 피를 보고 자기가 다친 줄 알아서 그런 거 아닐까? 나도 처음엔 그래서 놀랐는 걸.”

     

    게다가 루크는 박식하지만 성적인 부분에서는 꽤나 어리숙하다.

    이는 루크가 그동안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는 점이 한 몫을 할 것이다.

     

    따라서 루크는 생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을 심산이 크다.

    남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걸 정말 싫어하는 루크는 아마 이불에 묻은 피를 보고 자신이 아픈 줄 알고 놀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지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겠지.”

     

    가서 물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그 추측은 상당히 그럴 듯했다.

     

    “그럼, 보통은 뭘 어떻게 축하해 줘? 나, 그런 거 전혀 몰라서. 축하파티라도 여나?”

    “아, 그건 말이지…….”

     

    ——

     

    아침식사 준비가 한창인 주방.

    메뉴는 예전에 루크가 특히나 좋아했던 음식들로 즐비하다.

    “맛있는 냄새!”

    “와, 오늘 아침은 고기야?”

     

    아침부터 식욕을 돋우는 냄새에 디아나와 파이리스는 이미 홀린 듯 테이블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으나, 루크는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진작에 나와서 함께 식사 준비를 했을 아이인데, 오늘은 상당히 피곤한 모양이다.

                                                                       

    “루크야, 나와서 밥 먹자!”

     

    그렇게 루크는 예르나가 부르고 나서야 거실에 모습을 보였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루크는 얼굴에서 노곤한 표정을 숨기질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꽤 늦게까지 잤나 보네?”

    “으응……. 그랬지.”

     

     

    루크는 그에 대충 대답하며 눈가를 비빈다.

    늦잠을 잘 수 밖에 없었다.

    밤에 잠을 아예 못 잤으니까.

     

    아린세이아에서 한달을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곳이 아린세이아라서였다.

    원래도 루크는 고양이답게 긴 수면시간을 갖고 있었으나, 요즘 들어 수면시간을 줄이며 활동시간을 늘렸기에 어느정도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오늘의 일은 루크에게 상당한 피로를 남겼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루크는 엄격하게 관리하는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이리저리 비죽 튀어나간 머리카락을 정돈조차 하지 않은 무방비한 상태였다.

     

     

    하지만 루크가 여러모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어도 예르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이튼은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어서 와서 앉아! 준비 거의 끝났으니까-.”

     

    하지만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브레스를 쓰는 바람에 입 안이 전부 얼얼한 상태였으므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지금은 그저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니, 루크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 오늘은 입맛이 없다. 차만 따라서 들어갈 생각이야.”

     

    그렇게 다이튼과 예르나를 지나쳐 찻잎을 우려내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머그컵에 따르고 있으니, 다이튼과 예르나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 너 좋아하는 음식으로 다 만들었어. 꼬치도 있고, 고기도 있고, 생선구이도 있다구. 그리고 식후에 먹을 디저트도 많은데…….”

    “다 나랑 예르나가 직접 만든 거야.”

     

    저 많은 것 들을 전부 자신을 위해 직접 만들었다니…….

    고생한 것이 눈에 보여서 고맙기는 하지만, 그런다고 없는 식욕이 되돌아오지는 않는 법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하루를 굶는다고 신체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 루크는 다시 한번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생각 없다. 그건 아이들에게 더 먹여주거라.”

    “그래……?”

     

    루크의 단호한 대답에 예르나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이튼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생선이랑 꼬치구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녀석이, 오늘은 완전 저기압이네.’

    ‘그러게, 아무래도 루크는 그게 많이 힘든 타입인가봐. 평소랑 너무 다르네…….’

    ‘어쩌지, 예르나? 루크는 전혀 축하할 분위기가 아닌데.’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조용하게 축하해주자. 일단 지금은 쉬게 해 주고…….’

     

    아이가 성장을 해서 맞는 초경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저런 상태의 아이에게 초경을 맞은 것을 축하한다고 말해봤자 딱히 즐거워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루크한테 그 서류를 보여준 바로 다음 날 닥쳐온 거니까……. 많이 심란할 수도 있겠네.’

     

    예르나는 차를 컵에 따르는 와중에도 비몽사몽으로 보이는 루크를 다독이며 말했다.

     

    “루크, 그럼 배 따듯하게 하고 방에서 푹 쉬고 있어. 이따가 엄마가 죽이랑 간식거리 가지고 올라갈 테니까.”

    “으응,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엄마.”

     

    루크는 예르나의 배려에 감사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배를 따듯하게 하라는 말을 보면 자신의 어디가 아픈 줄 알았던 모양이다.

    자신의 모습을 슬쩍 거울에 비춰 보니 뭐어, 얼굴에 이렇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니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루크는 따른 차를 불어 식힌 뒤에 홀짝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향했다.

     

    ‘피곤해…….’

     

    피곤하지만, 아직도 생각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아린세이아를 연동시킨 휴대폰을 대체하고 전투 중에도 무리없이 활용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연동기기의 구상.

    인형 군단을 만들고 제어하기 위한 시스템.

     

    그리고, 최후의 순간 세이어의 머릿속에서 간신히 읽어낸 단 하나의 문장, ‘니드호그’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낼 방법.

     

    루크는 이 모든 것을 서둘러 알아내야 했다.

     

    시간이 없다.

    앞으로 두달, 짧으면 한달안에 차원의 균열이 안정화된다.

    그렇게 되면 ‘시가르마타’는 다시 이 세계에 간섭할 능력을 갖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분명, 무언가 일이 터지겠지.’

     

    루크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홀로 다짐한 루크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은 예르나가 계단을 오르던 루크에게 외쳤다.

     

    “루크! 진짜 무리하면 안된다! 알겠지? 푹 쉬어! 생리하는 중에는 무리하면 절대 안돼!”

     

    -풉!!

     

    예르나의 예상치 못한 언어공격.

    그에 루크는 마시던 차를 입에서 뿜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ㅇ, 예? 예르나, 방금 저한테 뭐라고요?”

     

    대체 이건 또 무슨 소린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축하파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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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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