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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7

        

       “차하아압!”

         

       검이 짓쳐 들어온다.

         

       패(霸)의 묘리란 무엇일까.

         

       보통 패라는 묘리의 정의는 강과 쾌가 적절하게 조합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나 역시 오랜 세월 그리 생각해 왔다.

         

       그러나 모용연화과 계속해서 손을 섞고 있자니 패라는 묘리가 다르게 느껴졌다.

         

       쩌엉!

         

       거침없이 연이어 휘둘러지는 모용연화의 패도일휘검을 받아낸다.

         

       패는 그저 빠르고 강한 것이 아니라 흐름을 가져오는 묘리였다.

         

       빠르고 강한 것만큼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위협이 또 있을까. 그런 위협을 받았을 때 상대는 움츠러 들 수 밖에 없고 그런 상대의 소극적인 움직임을 유도해 계속해서 공세를 이끌어내며 자신의 흐름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 흐름을 유지할 수 없을 때 과연 패의 묘리를 살리는 검술은 어떻게 될까.

         

       검을 뻗었다.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의도의 움직임이 아닌, 그저 상대방과 검을 맞대기 위한 움직임.

         

       착(着).

         

       상대방의 검에 검을 붙여 공세를 막아내는 수. 검을 제대로 뻗을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하며 상대의 공세를 무효화시키는데 주로 사용되는 묘리다.

         

       내 검을 떨쳐내기 위해 연신 검을 휘두르는 모용연화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서렸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 이유는 지금까지 패도적인 공격만을 퍼부어 왔던 내가 갑자기 수법을 바꾸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지금 내가 사용한 착의 수법은 패도일휘검과 반연무월검 어느 쪽으로도 쉬이 떨쳐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수세는 패도일휘검으로 깨부순다.

         

       상대의 공세는 반연무월검으로 흐트러뜨린다.

         

       그렇다면 수세도 공세도 아닌 제압을 택한 자는 어찌 상대할 것인가.

         

       이 질문에 모용연화는 제대로 답을 내지 못했다.

         

       카각! 카가가각!

         

       나는 때로는 적당히 검을 휘둘러 모용연화를 흔들었고 검을 떨쳐내기 위해 날 휘두르려는 모용연화의 장단에 맞추어 주기도 했다.

         

       한동안 길항 상태가 유지되었다.

         

       나 역시 착의 수법은 이론만 알고 있었을 뿐 실전에서 사용한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으니 숙련도가 부족했다.

         

       또한 내 입장에서는 이런 길항 상태를 깰 이유도 없었다.

         

       내 목적은 비무의 승리가 아니라 모용연화가 지금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으니까.

         

       “흐으읍!”

         

       연신 지금의 상황을 깨트리기 위해 힘을 쓰는 모용연화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분타주가 직계와 자신만만하게 대립했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하는데 말이야.

         

       혈교의 조법은 모용세가의 패도일휘검, 그리고 반연무월검의 상성이었다.

         

       극단적인 공격도, 극단적인 방어도 용이하게 대처할 수 있는 모용세가의 무공.

         

       그리고 상대방을 제압한 뒤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 혈교의 조법.

         

       어제의 중진은 날 얕보고 제압을 건너 뛴 채 파상공세를 퍼부었지만 직계와의 비무에서도 그런 짓을 하리라는 건 너무 과한 기대였다.

         

       연무장에 파괴흔만 남아 있었던 이유도 간단했다.

         

       상대방은 제압하는 초식은 연무장에 흔적이 남을 일이 없었고 패도적인 수법만이 연무장에 흔적을 남겼을 테니까.

         

       “윽!”

         

       콰악!

         

       모용연화의 검이 내 검에 눌려 땅에 박혔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펼쳐보는 착의 수법. 시간이 지날수록 착의 수법을 펼치는 요령이 붙었으니 모용연화는 숙련도가 올라간 내 착의 수법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압당해 버린 것이다.

         

       “으음. 완전히 당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용연화의 얼굴에 쓴웃음이 서렸다. 외인에게 본가의 무공이 품고 있던 허점을 정확하게 공략당했으니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겠지.

         

       “헌데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수법을 펼친 연유가 있으신지요.”

         

       잠시 망설이던 나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당연히 철혈서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숲에서 중진을 만난 이야기만 전달했다.

         

       “그런 위험한 일을 벌이셨다니요!”

         

       “괜찮소. 본 실력을 발휘하면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까.”

         

       “…그렇습니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모용연화의 얼굴에 수심이 깃들었다.

         

       “뇌검낭인님께서 갑자기 수를 바꾸신 것은 중진이 펼친 무공 때문입니까.”

         

       “그렇소.”

         

       나는 중진이 펼친 조법을 최대한 상세하게 묘사했다. 묘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모용연화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모용연화 역시 내 묘사 속에서 그 조법이 바로 모용세가 검술의 상성임을 눈치챈 것이다.

         

       잠시 우리 둘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무공과 무공간의 상성을 뒤집는 일은 고작해야 며칠의 훈련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다시 한번 위험을 무릅써 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군요. 모용서 어르신의 비무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시오?”

         

       “…글쎄요.”

         

       모용연화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서도 모용연화의 얼굴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옷이 눅눅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땀을 흘린 모용연화.

         

       그만큼 특훈에 열과 성을 쏟았다는 반증.

         

       “뇌검낭인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승산이 있다 여기십니까.”

         

       “높지는 않다고 생각하오.”

         

       “후후. 그래도 승산이 있기는 한 모양이군요.”

         

       나는 뭐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침묵을 택했다. 그러자 모용연화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저도 모르게 짓궂은 질문을 던져 버리고 말았군요.”

         

       “그렇소?”

         

       “예에. 분타에서 연기를 하는 동안 뇌검낭인님을 휘두르는 것에 맛이라도 들린 모양입니다. 곤란한 표정을 보니 조금은 힘이 나는군요.”

         

       “크흠…”

         

       “후후, 농담입니다.”

         

       모용연화는 검을 들어올렸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은 사실이나.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하겠다고 결심했으니 이 정도로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기수식을 잡아가는 모용연화의 눈빛에는 열의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가겠소.”

         

       “예!”

         

       *** ***

         

       모용연화와 특훈을 이어가던 도중 일행에게 전혀 의외의 전언을 받았다.

         

       모용모가 나를 찾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오, 형님! 여기입니다!”

         

       일행이 머물고 있는 객잔 한켠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모용모는 반가이 날 맞이해 주었다.

         

       “아우님.”

         

       나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모용모를 바라보았다.

         

       분타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모용모의 손님이었던 나는 분타 내에서 증발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적혈서랑 혈인을 마주하는 바람에 위장 신분까지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으니까.

         

       “미안하구만. 일이 이렇게 되어서…”

         

       “하하하! 괜찮습니다. 형님이 없어졌다는 소식에 당황했지만, 연화 누님을 쫓아가기 위해 월담을 한 것 같다고 했더니 크게 의심하지 않더군요!”

         

       “음…”

         

       모용모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그 어수선한 시기에 모용모의 손님이 경계를 뚫고 사라져버렸으니 모용모는 꽤 큰 곤욕을 치렀을 터였다.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 있나 확인할 겸 잠시 들린 것 뿐입니다.”

         

       “신경 쓰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본가와 분타의 비무는 대외비였다. 분타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시선을 모으고 싶지 않았을 테고 본가의 입장에서는 방계와 직계의 갈등을 공개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비무 자체도 인적인 드문 공터에서 조용히 치러질 예정이었고. 그 결과 역시 모용세가 내부에서만 수용될 일이지만 결코 섬서분타 방계들에게는 적은 일이 아니다.

         

       광산의 운영과 더불어 지금까지 꽁꽁 숨겨왔던 분타주와 중진들의 실력과 무공이 공개되는 날이니까.

         

       그런 대격변의 바람을 이틀 앞둔 모용모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기뻐 보였다.

         

       “오늘 형님께는 감사 인사를 전하러 왔습니다.”

         

       “음?”

         

       “형님 덕분에 광산의 실태도 알고, 형님이 알려주신 방법 덕에 광산의 문제도 공론화되었으니까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기뻐하긴 이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울 때 모용모의 말이 이어졌다.

         

       “아직 광산의 향방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오늘 시찰을 해 보니 죄지은 상인들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이것저것 하고 있더군요. 뭐, 광산의 향방이 결정된 뒤에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겠지만 말입니다.”

         

       “…그런가.”

         

       “예. 이게 다 형님 덕입니다.”

         

       나는 웃고 있는 모용모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 가지 묻겠네.”

         

       “예.”

         

       “아직 광산의 향방이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 않았나? 분타가 직접 광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상인들이 관리하게 될 수도 있는데 아우님은 어째 벌써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만.”

         

       “음…그렇지요.”

         

       그렇게 수긍하는 모용모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음?”

         

       …모용모의 대답은 완전히 내 예상 외였다.

         

       “아무래도 방계들이 직접 광산을 다루는 게 이상적인 결과겠지요. 하지만 상인들이 계속 광산을 다룬다 해도 제가 노력하면 될 일입니다.”

         

       “…노력 말인가.”

         

       “예. 광산의 실태도 알았고, 광부들은 상인들의 횡포에 저항하는 방법을 알았으며, 저 역시 광산에서 무엇을 보고 관리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야…”

         

       “뭐 분타에서는 싫어하겠지요. 그러나 달라질 것이 있겠습니까? 이미 분타에서는 천덕꾸러기 신세이니까요. 상인들이 광산을 돌본다면 제가 더 열심히 해서 상인들을 지적하고 감시하며 광산을 관리하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제야 모용모가 왜 웃고 있는지 이해했다.

         

       비무의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좋을 일이다.

         

       그러나 비무의 결과 상인들이 광산을 돌보게 될지라도 굽히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것이 옳은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비무의 결과와 관계없이 모용모는 이미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한 것이다.

         

       “하하하! 형님께서 무사하신 것도 확인했으니 이만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사실 광산 시찰을 한다고 빠져나왔을 때 다른 방계들의 표정이 좋지는 않았거든요.”

         

       “…그렇구만.”

         

       “그럼 나중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나는 홀가분하게 떠나는 모용모를 배웅해 주었다. 인파들 사이로 사라지는 모용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후우.”

         

       답답함을 안고 나는 다시 모용세가의 직계들이 머무는 객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용모의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직계들이 비무에서 승리하고 그 뒤로도 꼬이는 일 없이 혈교의 내통자들을 수습하고 온건한 처벌을 내린다 한들 모용모가 광산을 직접 돌볼 수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아무리 온건한 처벌을 내린다 한들 섬서분타의 방계들이 이 섬서분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으니까.

         

       혈교와 접촉한 방계들을 다시 그 자리에 그대로 두면 재접촉할 가능성이 있으니 섬서분타의 방계들은 각지의 분타로 찢어지거나 아니면 본가로 송환되겠지.

         

       모용모는 확실히 혈교와 내통한 혐의로부터 결백한 편이지만…냉정하게 말하면 본가에서 굳이 모용모를 섬서분타에 남길 이유도 없었다.

         

       모용모가 광산에 애정이 있다 한들 모용모가 광산의 전문가인건 또 아니었으니까.

         

       어찌어찌 남았다고 치더라도 광산에 대한 접근 권한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기도 했고.

         

       그런 생각을 품고 잠시 모용서와 모용찬경이 수련하고 있는 쪽을 둘러보았다.

         

       “더 강하게 이어나가라! 이 정도로 석질의 흐름을 끊을 수 있겠느냐!”

         

       “으아악!”

         

       수련 자체는 열심히 하고 있었으나 어설픈 부분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찬경의 수련을 봐 주고 있는 모용서의 표정 역시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비무에서 이겨도 전망이 좋지 않은데 비무에서 패배한 경우엔 어떻게 될까.

         

       분타 전체가 혈교와 내통한 혐의를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과정속에서 무력 충돌이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피바람이 몰아치겠지.

         

       모용모 역시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딱히 유쾌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더니 어느새 모용연화의 수련 장소까지 도달했는지 파공음이 내 귓가를 울렸다.

         

       쉬익! 쉬이익!

         

       “후욱!”

         

       패도일휘검과 반연무월검을 조금이라도 더 조화롭게 펼치기 위해 가열차게 초식을 바꾸는 모용연화.

         

       내가 전언을 듣고 자리를 비운 뒤 계속해서 연습에 매진했는지 얼굴은 이미 땀범벅이가 되어 있었다.

         

       “조금 쉬시는 것이 어떻겠소.”

         

       “아, 돌아오셨습니까.”

         

       모용연화가 살짝 비틀거렸다. 아무래도 온 힘을 쥐어짜 초식을 펼치다보니 내공이고 체력이고 다 바닥난 모양.

         

       비틀거리는 모용연화의 팔을 붙잡고 의자까지 부축했다.

         

       “후우…추태를 보여드리고 말았습니다.”

         

       “아니오.”

         

       나는 파김치가 된 채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는 모용연화를 바라보았다. 모용연화는 정말로 승산을 점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비무에서 승리한다면 모용모는 무사할 수 있을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모용연화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방금 만난 사람이 모용모라는 점. 그리고 모용모가 어떤 각오를 품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모가 그런 각오를 품었단 말입니까…”

         

       “비무에 승리한다면, 모용모는 직접 광산을 돌볼 수 있겠소?”

         

       모용연화는 즉답했다.

         

       “어렵겠지요.”

         

       그런가.

         

       …익히 예상한 답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그러나 제가 그리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모용연화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온전히 수습할 수만 있다면…아마 가능할 겁니다. 제가 책임진다던가 하는 조항을 달거나 모용서 숙부의 힘을 빌리거나 부모님께 떼를 써야 할지도 모르지만요.”

         

       부모님께 떼를 쓴다는 말이 창피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는 모용연화.

         

       나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려는 것이오?”

         

       왜.

         

       모용연화에게 있어 섬서분타는 그냥 모용세가에 있는 많은 분타 중 한 곳이었다. 광산을 일구며 쌓은 추억도 없었고 특별한 친분이 있는 이도 없는 곳.

         

       그럼에도 어째서 모용연화는 이 섬서분타를 위해 그런 위험부담을 짊어질 각오를 했을까.

         

       “글쎄요. 제가 모용세가의 직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모용연화는 그렇게 대답했다.

         

       “이곳에 계시는 방계 분들과도 어린 시절에는 본가에서 함께 지냈었지요. 모와는 같이 골목을 뛰어다녔고 분타주 어르신께서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주셨었지요.”

         

       “그분들은 잘못된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그분들은 이런 선택을 쉬이 하실 분이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아직도 믿고 있습니다. 섬서분타의 방계분들에게 이런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요.”

         

       “…그들을 그렇게 믿는 이유가 무엇이오? 어린 시절 보았기 때문이오?”

         

       “그것도 그렇습니다만…오직 믿음만으로 지금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모용연화는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분타주님은 더욱더 큰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방계이기에 독립했습니다. 그리고 전 직계이기에 본가에 남아 비전절기를 전수받았지요. 직계라는 이유로 누렸던 권리…그런 권리에 대한 값을 치를 때가 되었을 뿐입니다.”

         

       “…의무라.”

         

       “예. 직계라는 이유로 본가에 남아 비전절기를 받으며 편히 강해졌다면, 적어도 제가 본가에 남아 편히 수련할 수 있도록 모용세가를 지탱해주신 방계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의무겠지요.”

         

       거기까지 말한 모용연화는 민망하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

         

       “사실 거창하게 이런저런 이유를 붙였지만 결국 이렇게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가.

         

       모용연화 역시 진작부터 마음가짐을 굳게 먹은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본가에 반기를 든 분타를 처리하기 위해 오천 리 길을 밟아 요녕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섬서분타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테니까.

         

       결국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나 혼자였던 것일까.

         

       “땀이 식었군요. 다시 한번 지도해주시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쥐는 모용연화를 보며 생각했다.

         

       비무에서 승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가.

         

       있다.

         

       그건 바로 깨달음이었다.

         

       모용연화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중진과의 비무에서 승산을 점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모용연화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과연 일이 어떻게 흘러갈까.

         

       혈교에서는 진행하던 계획이 무산되었으니 당연히 후속 조사에 착수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호천안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겠지.

         

       호천안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의심을 사지는 않겠지만 비무 직전에 형편 좋게 깨달음을 얻은 모용연화의 정황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정보를 접한 외조부는 반드시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머릿속에서 깨달음에 대한 생각을 지워냈다.

         

       혈교의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내 핏줄에 엮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그럼 가겠습니다.”

         

       쉬이익!

         

       잠시간의 휴식으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탓인지 현저히 기세가 떨어진 검세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검세를 떨쳐낸 모용연화의 눈에는 한점 흔들림이 없었다.

         

       분타의 상황이나 방계들의 결정과 관계없이 자신이 믿는 바를 관철하기로 정한 모용모.

         

       스스로 저지른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 분타를 구하기로 정한 모용연화.

         

       모두 핏줄과 환경이 잡아끌었음에도 그들은 스스로의 길을 정했다.

         

       나는 지금처럼 침묵한 채 이들이 맞이할 결과를 지켜볼 수 있을까.

         

       “시발.”

         

       “대협…?”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중증의 사이다패스 환자였으니까.

         

       내 안위를 위해 입을 꾹 닫고 모용모가 고꾸라지고 모용연화가 패배하는 고구마를 넘길 수 없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모용연화의 깨달음을 입에 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루 연재를 무단으로 펑크내버리고 말았네요.

    평소에 마무리 욕심이 도진 지각과 달리.

    글이 써지지 않아서 이리저리 끙끙대다보니 그냥 하루가 지나버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잃어버린 1화는 멀지 않은 날짜에 채워 넣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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