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87

       오랜만에 돌산으로 돌아온 바루는 느긋이 자신의 산을 돌아다녔다.

       

       이 곳의 기운에서 태어나 자라왔기에 이 곳에 한해서라면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그녀다. 산을 돌아다니는 것에 걸리는 것이 있을 리가 있나.

       

       발을 옮길 때마다 뒤바뀌는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던 그녀는 정상에 올라서서는 지루하다는 듯 턱을 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돌산은 평온했다.

       

       얼마 전에 이 돌산이 초토화 될 뻔 했음에도. 이 곳을 지키는 수호자가 며칠이나 자리를 비웠음에도. 바루를 만나기 위하여 이 곳을 찾는 손님이 늘고 있음에도.

       

       하하. 이 얼마나 지루한 풍경이더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백 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풍광이라니.

       

       하루하루마다 새로운 것을 구경하다가 이 곳에 돌아오니 절로 하품이 새 나오는 군.

       

       이래서 본인이 이 돌산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이야.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그마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 이 곳이 지루했으니까.

       

       뭐어 그래도 오랜만에 오니 반갑기는 해.

       

       고향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참으로 좋아.

       

       “왔느냐?”

       

       고개를 주억거리던 바루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리 이야기했다.

       

       이 산의 신령인 그녀는 이 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으니. 당연 자신을 만나러 온 이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제가 할 말인 것 같은데요. 바루.”

       

       백주는 할 말이 많다는 것을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가?”

       “그래요. 당신. 아무 말도 없이 훌쩍 사라져버리지를 않나. 며칠이나 다른 곳에 머물면서 한 마디 말도 안 전해주지를 않나. 생각해보니까 화나네요. 대체 왜 제가 신수님께 당신의 소식을 전해 들어야 하는 건가요?!”

       “어느 신수님께서 오셨었지?”

       “제가 뵈었던 것은 날개가 아름다우신 분이랑. 또 하얀 털을 지니신 분하고. 그리고….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하얀 털이라는 것은 백호님일 터인데. 날개가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은 또 누구일까. 신수님들 여럿이 이 곳에 당도하여 사태의 진정을 위해 노력하신건가.

       

       하기야 그 대지에 있던 모든 인간이 차원을 박살내고 아라가 등장한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경이로운 무위 또한 말이다.

       

       그것을 빠르게 은폐해야 하는 신수님들이다. 혼자서 돌아다니기보다는 가용할 수 있는 인원 전원을 가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백주가 이야기하길. 아라가 모든 것을 끝내고서 채 10분이 지나기 전에 신수님들이 여러 신선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고 했다.

       

       저들께서 이 대지에 당도하자마자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혈교의 위협을 처리한 이가 아라가 아닌 다른 절대적인 존재로 기억하도록 말이다.

       

       다만 모든 이들의 기억을 지우는 일은 불가능했다. 평범한 하수들이야 신수님들이 펼치는 도술에 저항하지 못했지만 일정 경지 이상에 오른 이들은 달랐으니까.

       

       예를 들자면 화산에 머무르는 지존이나 천마. 사파의 주. 그리고 백주처럼 오랜 세월을 산 신령들이 그러했다.

       

       신수님들께서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협조를 부탁했다. 차원을 넘어 이 세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크나큰 혼란이 자리할 터이니 부디 이해를 해달라고 말이다.

       

       “그 때 바루에 대한 소식을 들었어요. 민가님께서 사시는 세계에 놀러갔다고. 머잖아 돌아올 테니 외부인들이 무언가를 물어보면 적당히 둘러대 달라고.”

       “분위기가 좋지 않았겠구나.”

       

       분명 험악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아야 하는 입장에서 상대방을 배려해 줄 여유가 있을 리 없으니까.

       

       억지로 상대방의 입을 틀어막으려 들지 않았을까.

       

       “당연히 안 좋았죠!”

       

       그래. 그랬겠지. 허어. 아무리 신수님들이라 하여도 지켜야 할 정도가 있다. 우리의 주변인들을 건드려서는 안 되지.

       

       내 아라에게 따로 이야기를 하여.

       

       “바루. 당신은 당신보다 훨씬 더 대단하신 분께서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때 얼마나 기분이 미묘한지 아세요?! 전 알아요! 진짜 숨이 막히는 심정이었어요!”

       “…뭐?”

       “자신들로써는 도저히 민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협조해준다면 가능한 선에서 무어라도 들어줄 테니 제발 도와달라고. 무릎을 꿇고 비시는 데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백주의 이야기를 들은 바루는 눈을 끔뻑이고 말았다. 뭐라고? 신수님들께서 바짓가랑이를 붙잡으셨다고?

       

       “그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더냐.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보거라.”

       

       너무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탓에 눈을 반짝이는 바루를 보고서 백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화난 거 안 보여요?”

       “내가 그대와 하루 이틀 교제를 해보더냐. 이미 화가 났다가 가라앉았음을 안다. 그러니 짐짓 화난 체 하지 말고 앉거라. 내 아라가 살던 세상에서 마실거리를 가지고 왔으니.”

       “아라? 그게 누구인가요?”

       “…아. 민가. 민가가 살던 세상에서 말이다. 그보다! 자! 일단 앉거라! 긴 이야기가 될 것 아닌가!”

       

       말실수를 한 바루가 다급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 노력하던 그 순간.

       

       저 멀리에서 거대한 기운이 몰아쳤다.

       

       상당한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이고 포악스러운 기운.

       

       누가 말해준 것은 아니지만 바루는 저 기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아라다. 녀석. 화산에 오자마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것이냐!

       

       “…잠시 이야기를 미뤄야 할 것 같다만.”

       “그러게요.”

       

       다급히 내달린 바루와 백주가 화산에 도착했을 때 보게 된 풍경은 시연의 자리였다.

       

       화산에 머무르는 모든 이들이 화산의 부지 한 가운데에 모여 있었다.

       

       외부인들을 가르치는 학영충이.

       

       자신의 수련에 집중하느라 자취를 감추곤 하는 아라의 은인이.

       

       주사위를 담기 위한 잔을 들고 있는 지존이.

       

       화산에서 꾸준히 수련을 거듭하고 있는 이들이.

       

       부지 한 가운데에서 검을 들고 있는 이.

       

       아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라는 물음은 필요치 아니했다. 저를 눈에 새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검에 매혹되어 관객이 되어버리기 마련이었으니까.

       

       바루는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아라와 오랜 시간을 보낸 이다.

       

       당연하게도 아라가 어떤 무공을 펼치는 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라가 펼치는 무공은 보통 포악하며 패악스러웠다. 그것이 아라가 품고 있는 내기의 본질이기에 자연스레 그리 되기 마련이었지.

       

       허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아라가 펼치고 있는 무공에는 포악도 패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웠다. 검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해도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로.

       

       검이 휘둘러 질 때마다 그를 따라서 분홍과 하양이 섞인 매화가 흩날린다.

       

       본래라면 바람에 흩날려 떨어져야 할 매화의 잎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서 서 있다.

       

       그렇기에 검로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아라의 주변을 지키는 매화의 잎은 더욱 풍성해질 뿐이다.

       

       실로 요사스럽구나.

       

       저는 사람을 홀리는 검이다. 검 끝에 시선을 빼앗기는 순간 그대로 매화 잎에 둘러쌓여 자신을 잃어버릴 검이다.

       

       그렇기에 저 검은 너무도 아름답지만 또 그만큼이나 소름이 끼치는 구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라를 중심으로 하여 한 그루의 매화나무가 세워져 화산 전체에 매화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을 무렵.

       

       그녀가 검을 아래로 내려놓았고 그에 따라 그녀의 주변에 머무르던 매화의 잎들이 흩어진다.

       

       봄이 끝나는 듯한 풍경에 관객들 사이에서 드문드문 아쉬운 탄성이 들려오는 가운데에서 아라가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 본래의 매화검이다. 어떠냐. 그대들이 바라는 것과 비슷하더냐?”

       

       아라의 물음에 어느 하나 대답하는 이가 없다. 모두들 방금 전의 풍경에 압도된 나머지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아라는 그 모습을 보고서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다시금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럼 이제 다른 것을 보여주마. 방금 전의 것은 본래의 매화였을 지언저. 지금의 것은 본인의 매화다. 세상의 위에 본인의 뜻을 새기는 검이지.”

       

       검 위에 서리는 기운부터가 방금 전과는 달랐다.

       

       방금 아라가 매화검을 시연할 때엔 검 위에 많은 기운이 담겨 있지 않았다.

       

       환을 잇고 엮어 하나의 검을 만들어 내는 데에 그만한 기운은 필요치 않았으니까.

       

       허나 지금은 아니다. 매화의 규율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바라는 바를 관철하겠다는 아라의 검 위에는 세상에 균열을 내던 때의 기운이 그대로 실려 있었다.

       

       “따라할 생각은 말거라. 이는 본인밖에 하지 못하는 것일 테니.”

       

       그 기운을 조금도 가감하지 않은 채 아라가 검을 내리친다.

       

       바루는 즉각적으로 무언가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산이 반으로 갈라지던가. 하늘에 균열이 새겨지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도 고요했다. 거대한 기운이 내리쳐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들 바루와 비슷하게 생각을 하는 지 멀뚱히 화산의 부지를 둘러보던 그 때에 하늘 위에서 분홍과 하양이 섞인 꽃잎이 떨어졌다.

       

       하나가.

       

       둘이.

       

       열이.

       

       백이.

       

       천이.

       

       만이.

       

       하늘에서 눈을 내리는 설녀께서 눈 대신 매화를 던지는 것처럼 하늘 위에서 매화의 잎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척박한 화산 전체를 파묻어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양에 바루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하고 있던 그 때에. 바루의 옆에 서 있던 백주가 그녀의 어깨를 건드렸다.

       

       “무어냐.”

       “저기! 저기 봐요!”

       “무엇이 펼쳐지고 있기에 호들갑을.”

       

       떠느냐고 핀잔을 주려던 바루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얼마 전만 해도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 있던 화산의 나무에 연분홍 빛 잎이 피어나 있었으니까.

       

       한 그루 뿐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매화가 화산의 나무에 전염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화산 전체가 연분홍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허.”

       

       참으로 기이한 일이야.

       

       매화가 필 계절은 지금이 아닐 터인데.

       

       또한 화산에 매화가 피어날 리가 없을 지언데.

       

       어찌하여 화산에 찾아온 적 없는 때늦은 봄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말인가.

       

       “아름답지 않으냐?”

       

       어느새 옆에 온 것일까. 부드러운 웃음을 짓는 아라의 모습에 바루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름답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