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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7

   <정말로 베네딕과 겨룰 게냐?>

   

   베네딕과 대련을 하기로 한 전 날 밤. 나와 이런저런 논의를 나누던 할배가 문득 저런 말을 했다.

   

   ‘왜요? 겨루면 안 돼요?’

   <뭣 때문에 갑자기 그러나 싶어서 말이다. 아직 너와 베네딕 사이의 격차가 큰 만큼 얻을 것도 많지 않을 텐데.>

   

   할배의 말이 옳았다. 실전을 통한 배움이라는 것은 둘 사이의 차이가 크지 않아야 생길 수 있는 것이니까.

   

   나와 베네딕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우리 둘의 대련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베네딕이 얼마나 괴물 같은 지에 대한 체감 뿐이리라.

   

   이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내가 베네딕에게 대련을 청한 이유는 둘이었다.

   

   하나는 베네딕이란 괴물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는지를 체감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베네딕에게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소울 아카데미에 2학년이 시작되면 다시금 메인 스토리가 시작될 거야.

   

   지금은 내가 어둠의 악신을 조져버린데다가 메네스테일의 악신까지 박살낸 탓에 악신 측 세력이 조용하지만 이건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걔네들이 아카데미를 포기할 리 없어.

   

   소울 아카데미에 그들이 얻어야만 하는 물건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그걸 막는 과정에서 나는 지금보다 더한 위험 속으로 몸을 던지게 될 거야.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더 넘기게 될 테지.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자살 행위 같은 일도 몇 번이나 하게 될 거고.

   

   그 때마다 베네딕은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 내가 위험에 몸을 내던질 때마다 수많은 걱정 속에서 몸부림을 칠거다.

   

   그에게 있어 나라는 인간은 지켜줘야 할 연약한 딸아이에 불과할 테니까.

   

   그러니 이번 대련으로 인식을 바꿀 생각이다. 당신이 걱정하지 않아도 홀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는 걸 보여서 그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거다.

   

   겸사겸사 베네딕이 발작하듯 나를 만류하는 걸 조금이라도 덜 하게 만들고 싶기도 하고.

   

   <참. 솔직하지 못한 딸이구나.>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할배는 웃음기어린 목소리를 냈다. 기특하다 여기는 것이 어투에서 자연스레 드러났다.

   

   ‘아셨으면 잔말 말고 논의를 계속하시죠. 아직 답이 안 보인단 말이에요.’

   <그래. 그래.>

   

   내가 베네딕에게 청한 것은 가벼운 대련에 불과했지만 상대가 상대이기에 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발악하지 않으면 베네딕의 걱정을 키울 뿐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어떻게든 한 방을 먹일 방법을 찾아 헤맸다.

   

   지난 번 메네스테일에서 보았던 베네딕의 움직임을 떠올려가며 할배와 여러 논의를 나누었고.

   

   포셀을 비롯한 기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으며.

   

   대련을 거듭하며 실전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지.

   

   근데 대련을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베네딕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를 알게 되더라.

   

   지금의 내가 간신히 대치를 이룰 수 있을 만큼 강한 게 알른의 기사들인데. 이 녀석들조차도 이긴다는 상상조차 하기 버겁다며 헛웃음을 흘리는 게 베네딕이었으니까.

   

   ‘결국 스펙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네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네 아비는 현 시대보다는 신화의 시대에 어울리는 괴물이니까.>

   

   이대로 가면 한 방을 먹이긴커녕 아무것도 못 한 채 가지고 놀아질 게 분명하단 고민을 하던 순간 귓가에 알림음이 울렸다.

   

   [퀘스트 완료!]

   

   헤이샨이랑 2왕비가 만나서 이야기가 잘 풀렸나 보네.

   

   하긴 헤이샨도 2왕비를 나쁘게 생각하는 눈치가 아니었고 2왕비 쪽은 용서를 구하고 싶단 의지가 절로 보이는 상태였으니까.

   

   나중에 카리아가 돌아오면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된 건지 물어봐야겠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상승시킬 스텟을 고르십시오!]

   

   연이어 떠오른 푸른 창을 본 나는 가장 필요한 순간에 보상이 찾아왔다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10이라는 스텟은 단순히 신체 능력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캐릭터의 스텟 중 네 개가 100을 넘는 순간 스킬이 하나 지급되거든.

   

   [초인의 육신]이란 이름을 지닌 이 스킬은 캐릭터에게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체력의 증가. 입히는 데미지 증가와 받는 데미지 감소. 이외에도 여러 이득이 존재하는지라 빠르건 느리건 이 스킬을 얻는 게 필수적이었지. 이 스킬과 연계된 퀘스트가 게임 내에 존재하기도 하고 말야.

   

   이게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될지는 몰라. 그렇지만 베네딕을 상대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해.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 스킬을 얻어두고 밤 동안 변화에 적응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걸 아는데.

   

   [정말 민첩을 상승시키시겠습니까?]

   

   나는 쉬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왜냐고?

   

   내 비루한 지능이 자꾸 머리를 스치는 걸 어떡해!

   

   이번에 지능을 올리지 않으면 난 평생 멍청이로 남게 될 거 아냐!

   

   불가능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붙잡느냐. 멍청이에서 덜멍청이가 될 기회를 손에 넣느냐. 누가 보더라도 한 쪽으로 기울어버린 천칭 속에서 고민을 이어나가던 나는 결국 민첩을 올렸다.

   

   바이바이. 내 멍청한 지능아. 언젠가는 내가 꼭 멀쩡한 수준까지 올려줄게! 언젠간 말야!

   

   내가 보상으로 민첩을 올리는 걸 택한 순간 영약을 먹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극악한 수준의 고통이 온 몸에 퍼져나갔다.

   

   난 그제서야 이 보상이 영약의 섭취와 별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강제적으로 능력치를 올려 육신을 변화시키는 방식이니 아픈 게 당연하지! 멍청한 나! 이것조차 생각 못 한 거야!?

   

   책상을 부여잡으며 억지로 고통을 견디던 순간 내 앞에 푸른 색 창이 떠올랐다.

   

   [스킬 초인의 육신이 지급됩니다!]

   

   그게 내 기억의 끝이었다.

   

   난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 후로 한참이 지나 아침 무렵에 눈을 뜬 나였지만 무슨 변화가 생긴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외견적으로는 변화한 것이 없고 그렇다고 육신의 격이 변화했을 때처럼 체감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내가 기절해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할배랑 얼빠여우한테 물어봐도 그냥 뻗어있었을 뿐이라는 대답밖에 돌아오질 않고 말야.

   

   이렇게 된 이상 스킬의 성능을 실험해보기 위해서는 직접 몸을 움직여봐야 하는데 내가 일어났을 땐 이미 베네딕과의 대련 시간이 코 앞에 다가온 상황이어서 그럴 수도 없었어.

   

   결국 난 기본적인 몸풀기를 끝마치고 나서 바로 베네딕의 맞은편에 서게 됐다.

   

   “두 분. 준비되셨습니까?”

   

   대련장 한 가운데에선 포셀의 물음에 난 당당히 고갤 끄덕였고 베네딕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턱을 내렸다.

   

   “그럼 이제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천천히 탐색전부터 하는게다. 네 몸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

   

   나는 포셀이 한 걸음 물러서기 무섭게 앞으로 내달렸다.

   

   조언을 무시하는 행동에 할배가 온갖 잔소리를 해댔지만 무시했다.

   

   얌전히 대련을 이어나가기엔 어물쩍대는 베네딕의 행동이 너무 거슬렸던 것이다.

   

   내가 베네딕에 비해서 약한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저 괴물에 비해 약한 거라고! 손 하나 내미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할 정도는 아냐!

   

   베네딕은 내 돌진을 보면서도 따로 대처를 하지 않았다. 내가 무얼 하는 지 유심히 바라볼 뿐.

   

   무시에 가까운 행동에 짜증이 오른 나는 첫 공격부터 전력을 담았다.

   

   전신에 퍼져 있던 신성이 메이스 끝에 모여 하나의 태양처럼 빛난다.

   

   신성을 통한 강화의 극한. 신성 투술을 창안한 할배가 알려준 필살의 일격.

   

   꿈속에서 할배와 수도 없이 연습해왔던 공격을 내지르던 나는 초인의 육신이라는 스킬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했다.

   

   이 스킬의 기능은 단순하다. 그저 몸을 더 잘 쓰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본래 몸에 자리하고 있던 비효율을 지우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안내해 주는 스킬의 궤적은 내게 익숙한 종류였다.

   

   여태 날 도와주었던 철벽의 외침이 이와 비슷했으니까.

   

   그래서 난 스킬의 도움을 즉석에서 적용시킬 수 있었다.

   

   “뒈져버려!♡”

   

   최선의 위력으로 쏘아지는 일격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베네딕은 내 메이스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다가올 때가 되어서야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어깨를 느릿하게 뒤로 빼더니 내 메이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건 얼핏 허술해 보이는 일권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위력은 전혀 달랐다.

   

   인간을 초월해버린 괴물의 주먹은 인간의 필살과 동등했던 것이다.

   

   콰아아앙!

   

   베네딕의 주먹과 내 필살이 마주하며 생겨난 충격파 탓에 눈이 주변으로 흩날린다.

   

   “강해졌구나. 루시.”

   

   그 눈발 사이에서 난 베네딕의 주먹에서 피가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난 베네딕의 육신을 보았다.

   

   성장을 거둔 내 일격이 베네딕에게 닿은 것을 보았다.

   

   “너도 알른이라는 것인가.”

   

   허나 나의 환희는 길 수 없었다. 베네딕의 얼굴이 웃음기가 가득 담김과 동시에 베네딕의 분위기가 일변했으니까.

   

   “그래. 루시. 인정하마. 이 아비가 너를 제대로 마주하고 있지 않았음을.”

   “…어. 파파? 지금 파파 눈이 완전 짐승 같은 거 알아? 덮쳐질까봐 완전 무서운데?!”

   “허나 이젠 아니다. 네게서 배웠고 네 친구들에게 배움을 얻었으니 이 아비도 달라져야 할테지.”

   

   베네딕이 육신의 마력을 끌어올리는 걸 본 나는 살아남기 위해 신성으로 육신을 강화했다.

   

   ‘할아버지! 도와줘요! 저 괴물을 말릴 방법을 알려줘요!’

   <싫다.>

   ‘왜요!’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무시할 거 아니냐. 너 혼자 견뎌라.>

   ‘할아버지 진짜 쪼잔해애애애!’

   “가겠다. 루시.”

   

   *

   

   “괴물이 따로 없군.”

   

   대련장 외곽에서 베네딕과 루시의 대련을 관람하던 아서가 헛웃음을 흘리자 옆에 있던 조이가 무심히 묻는다.

   

   “어느 쪽이요?”

   “둘 다.”

   

   갑옷도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압도적인 신체능력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베네딕이나 내질러 질 때마다 폭발음이 울리는 연격 속에서 수없이 무너지면서도 끝끝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시나 아서의 입장에서는 괴물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애께서 그렇게 대단한가요? 전 지금 눈으로 따라잡는 것도 벅차서 잘 모르겠는데.”

   “단언하마. 조이. 네가 루시 알른이 선 자리에 있었다면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났을 것이다.”

   “그러는 왕자님은요?”

   “나라면…”

   

   아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단 한 번도 무너트리지 못했던 루시 알른이라는 성벽이 매 주먹마다 박살나는 광경을 앞에 두고서 어찌 자신감을 표하겠는가.

   

   “…2초 정도는.”

   “별 다를 것도 없네요.”

   

   말 한 마디로 아서를 박살내버린 조이는 당장에라도 달려나갈 듯 앞으로 몸을 내민 프레이에게 물었다.

   

   “켄트 영애라면 어때요?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

   “켄트 영애?”

   “…몰라. 그치만 한 번 붙어보고 싶긴 해.”

   “그거라면 나도 마찬가지다. 처참히 박살나더라도 저 앞에 서보고 싶어.”

   “루시한테 부탁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흐음. 가능할 것 같군. 알른 백은 루시 알른의 말을 결코 무시하지 못할 테니.”

   

   아서와 프레이가 루시를 설득할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동안 조이는 그 둘을 질린다는 듯이 쳐다봤다.

   

   저런 걸 두 눈으로도 보고도 어떻게 싸우고 싶단 생각을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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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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