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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7

   거인의 숲, 안쪽.

   최흉의 근교 지역.

     

   사람의 발길은 들일 수 없는 곳에 인영들이 모여 있었다.

     

   “야수왕, 괜찮겠나. 최흉이 터지면 우리도 전부 죽는 거라네.”

     

   야수왕, 베르도가 넓은 귀를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명장이라 불리는 땅의 정령, 제그롭이 베르도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익시온의 잔당.

   세계 침식자들이다.

     

   평소에는 자기들끼리 전혀 뭉치지 않는 이들이지만 이번에는 제그롭과 모두 의견이 같았다.

     

   거인의 숲에 최흉이 터지면 세계 침식자들도 무사하지 못한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래, 그 마법사에 의하면 확실하다.”

     

   베르도는 지옥 선녀가 소개해준 한 마녀를 떠올렸다.

     

   붉은 마녀, 아벨라.

   베르도가 그 여자와 처음 마주했을 때 새까만 도화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너무나 검기에 한없이 순수한.

   그런 느낌을 베르도는 그녀에게서 받았다.

     

   더불어 익시온은 은연중에 그녀의 의도에 의해 움직였음을 눈치챘다.

   흑마녀는 본인이 꼭두각시가 된 것도 모른 채 죽었겠지.

     

   하지만 베르도는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세계가 멸망하고 도피해 온 이들이다.

     

   다양한 사상들이 뒤엉켜 만들어진 익시온인 만큼 당연히 누군가는 익시온을 이용하려 할 수 있었다.

     

   베르도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

   자신의 목적과 상대의 목적이 동일한지다.

     

   그렇기에 베르도는 이번 계획을 들었을 때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세계 침식의 신을 탄생시켜 무얼 할 작정이지?」

     

   아벨라는 이 세계의 주민이다.

   그녀는 딱히 돌아갈 세계도 없고, 딱히 세상을 적으로 척지지 않아도 됐다.

     

   그런 그녀가 대체 무엇을 위해 세계 침식의 신을 창조하려는 걸까.

     

   베르도의 질문을 들은 아벨라는 잠깐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그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게. 그걸 몰라서 해보는 거야.」

     

   그것을 보고 베르도는 얼굴을 서서히 굳혔다.

   아벨라의 눈은 순진할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이 여자.

   절대 제정신이 아니다.

     

   오싹!

     

   베르도가 전신에 소름을 느꼈다.

   마치,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자신이 마주한 기분이 들은 탓이다.

     

   아벨라의 눈 너머 심연이 보였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연이다.

     

   온갖 악의가 한데 점철되어 순수함 밖에 안 남은 형태.

   그게 바로 붉은 마녀, 아벨라였다.

     

   자신이 하는 짓이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조차 오히려 흥미롭다며.

   그녀는 베르도를 향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위험하다.

   지금까지 봐온 사람 중 아벨라는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세계 침식의 신은 내가 먼저 사용한 후 너희 마음대로 해도 좋아.」

     

   아벨라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래.」

     

   베르도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베르도는 익시온의 남은 잔당들과 함께 아벨라의 명대로 최흉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나는 내 소신대로 할 뿐이다.”

     

   베르도의 대답을 들은 익시온 잔당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다들 그의 말에 반박 없이 따랐다.

     

   흑마녀가 사라진 지금, 익시온의 단장은 베르도 말고는 없으니까.

     

   “썅, 최흉이고 자시고, 크라슈, 그 개새끼가 여기 오는 게 확실하지!”

     

   그 순간 세계 침식자 중 한 명이 소리쳤다.

   주홍빛의 호랑이 털을 지닌 안대 낀 여자는 얼굴 가득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장공주, 슈아 델피아.

   그녀는 몇 년 전 크라슈의 계략에 호되게 당한 이였다.

     

   크라슈를 흑마녀의 칠흑 공간에 배달하고, 자신의 무기 저장고로 갔더니.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금왕과 딱 마주쳤다.

     

   「내 물건 좀 돌려받아야 하거든.」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무장공주를 그대로 덮쳤다.

   무장공주는 기겁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자신의 예쁜이가 금왕한테 전부 빼앗기게 생겼다.

   그녀는 필사의 저항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려 천하십강인 금왕을 단독으로 이길 수 없었다.

   하물며 금왕은 무장공주를 잡으려고 모든 사전 준비를 마쳤다.

     

   금왕은 자신이 태울 수 있는 금화를 대가로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이는 금의 신과 직접 거래하여 탄생시킨 금왕만의 비기다.

     

   슈아 델피아를 잡으려고 산더미 같은 금화를 쓴 그녀다.

   최소한 그녀의 무기 저장고를 전부 털고, 무장공주의 무기도 털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결국 무장공주는 금왕에게 탈탈 털려 10대 천검인 막령도 도로 빼앗기고, 지닌 무기들도 죄다 던지며 도망쳐야 했다.

     

   그녀의 필사적인 도주에 비기의 시간이 다 끝난 금왕은 쫓는 걸 그만뒀다.

   그녀는 수지 안 맞는 일은 안 하는 타입이었다.

     

   대신, 무장공주의 무기 저장고는 그야말로 탈탈 털어갔다.

   무기를 좋아하는 녀석답게 무장공주가 지닌 무기들은 하나같이 고가품이다.

     

   그렇게 금왕이 무장공주의 무기 저장고를 전부 털어간 후.

   무기 저장고로 돌아온 무장공주는 절망하며 비명을 미친 듯이 질렀다.

     

   그러곤 뇌가 망가진 듯 우리에 갇힌 동물마냥 그 자리를 한참을 빙글빙글 돌며 한 달을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익, 히잉, 이이, 힉.」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던 무기를 전부 잃었다.

   그녀는 세상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한 세계 침식자를 통해 진실을 들었다.

     

   자신을 계략에 빠트린 인물이 누구인지 알게 된 덕이다.

     

   크라슈 발하임.

     

   자신을 계속 죽 쓰게 만들었던 그 개자식.

     

   또 그 자식 짓이었다.

     

   「죽일 거야.」

     

   무장공주의 두 눈에 살의가 가득 차올랐다.

   그녀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죽일 거야. 반드시 죽일 거야악!」

     

   찢어지는 소리를 내지른 무장공주는 그대로 세계 침식자를 따라 익시온 잔당과 합류했다.

     

   “그 새끼는 내가 무조건 죽일 거야!”

     

   그렇기에 지금 거인의 숲까지 따라온 그녀가 빽빽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명장, 제그롭은 황당한 얼굴로 무장공주를 보았다.

     

   “무장공주, 그 사내를 죽여서는 안 된다니까.”

   “시끄러워! 죽일 거야! 죽일 거라고!”

     

   그녀는 꼬리와 전신을 곤두세운 채 으르렁거렸다.

   제그롭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그사이, 베르도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크라슈 발하임.’

     

   베르도의 황금빛 눈이 조용히 빛났다.

     

   그는 익시온을 가장 크게 방해했던 인물이다.

   베르도는 그를 딱 한 번 보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천황의 방해를 받아 잠시였다.

     

   그때는 자신에게 한참 못 미칠 수준이었지만.

   수많은 금역을 삼킨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베르도는 조용히 생각하곤 피어나고 있는 최흉의 씨앗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자기 무릎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들 준비해라.”

     

   베르도의 말에 모두의 눈빛이 바뀌었다.

     

   “적이 왔다.”

     

   거인의 숲, 저 너머.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적이 나타났다.

     

     

   * * *

     

     

   프레이야 산맥을 전부 집어삼킨, 거인의 숲.

   그곳에서 크라슈와 함께 이카루스가 전력 질주로 돌파하고 있었다.

     

   거인의 숲의 특성상 커다란 덩치의 침식종이 많다.

   그런 놈들에게 둘러싸여서 공격받는다면 이카루스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니 최단 루트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뛰어나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침식종을 전부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쿠웅!

     

   바닥을 파헤친 땅강아지 한 마리가 치솟아 오르며 이카루스를 덮쳐왔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 한들 한낮 땅강아지.

     

   이카루스의 소속될 실력의 기사들이라면 손쉽게 베어버릴 테지만.

   땅강아지는 거인의 숲에 의해 그 육체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훨씬 강인해졌다.

     

   오죽하면 땅강아지의 몸 표면에 흐르고 있는 건 명백히 저주였다.

   닿는 즉시, 상대를 돌로 만들어버리는 석상의 저주다.

     

   콰가가가각!

     

   그러나 땅강아지가 채 이카루스를 덮치기도 전.

   치솟은 그림자가 땅강아지를 집어삼켜 버리며 놈을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이카루스 단원들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거인의 숲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익숙한 얼굴이 되었다.

   왜냐하면 저 그림자는 바로 패황, 글라이시스 락테아가 펼친 그림자였으니까.

     

   “후우, 망년에 무슨 난리인지. 노부의 몸 여기저기가 아주 삭신이 다 쑤시다 못해 부서지겠어.”

     

   그림자의 파도를 타며 유유히 나아가는 글라이시스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선두에서 검을 휘두른 천황, 달피론 쥬논이 그녀를 돌아봤다.

     

   “아직 한창이지 않나.”

   “자네 같은 어린애가 무얼 안다고.”

     

   글라이시스의 눈에는 달피론도 어린애라며 투덜거렸다.

     

   “젊은 애들한테 자리는 제때 넘겨야 하는 법이지.”

     

   그녀의 눈이 달피론의 너머 중심에서 달리고 있는 크라슈에게 향했다.

   그녀와 마주친 크라슈는 아주 짧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그릇은 못 됩니다.”

   “자기 수준을 아주 낮추는구나. 금역을 그렇게나 집어삼킨 녀석이 말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글라이시스의 눈은 못 속인다.

     

   지금 크라슈의 몸에 들어 있는 세계 침식의 힘은 명백히 위험한 것이었다.

   만약, 크라슈가 온존하게 다룰 수 있다면 천상사강조차 넘볼 그럴 힘 말이다.

     

   “스스로 폭탄이 되기를 자처하는 게냐?”

   “별명이 유리 대포라서요. 별명에 맞게 살아야죠.”

     

   크라슈의 웃음을 본 글라이시스는 혀를 찼다.

     

   “딱 보니 무슨 고얀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주변 사람 힘들게 하지 말아라.”

     

   그 말대로다.

   확실히 주변 사람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지.

     

   “노부는 이번 원정을 끝마치면 은퇴할 거다.”

     

   그러면서 글라이시스는 다시금 그림자를 끌어 올렸다.

     

   “빈자리는 알아서 꿰차 가거라.”

     

   그리고 그림자가 앞에서 뛰어 내려온 표범을 거세게 후려쳤다.

   표범이 휘청이다 순식간에 날아오른 달피론이 표범을 갈라버렸다.

     

   하지만 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거대화한 동물들이 끊임없이 이카루스를 덮치고 있다.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익시온 잔당이 최흉을 강제로 더 빠르게 피우고 있는 만큼 거인의 숲은 더더욱 크게 폭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침식종들만이 적이 아니다.

     

   “크라슈.”

     

   크라슈는 부름을 듣고, 옆을 힐끗 보았다.

   크라슈가 데려온 마법사라는 명목으로 함께 하게 된 여성 한 명이 로브 사이로 붉은 눈을 빛내며 크라슈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크림슨가든이다.

   그녀의 부름과 함께 크라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라슈도 제 육감을 통해 느꼈다.

     

   “익시온 잔당이 온다. 전원 세계 침식자와의 전투 준비.”

     

   크라슈가 입을 떼자마자 이카루스의 대열이 바뀌며 전투에 대비했다.

     

   쿠우우우우우웅!

     

   그 순간 나무 하나가 골렘의 형태로 뒤바뀌며 손을 들어 올렸다.

   뒤이어 나무 골렘 사이로 솟아오른 검은 낙뢰가 이카루스를 향해 쏟아졌다.

     

   그러한 나무 골렘과 검은 낙뢰 아래.

   각양각색의 세계 침식자들이 이카루스와 맞서고자 뛰쳐나왔다.

     

   전부 익시온의 잔당들이다.

     

   익시온과 세계 연합 이카루스.

     

   세상을 건 마지막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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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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