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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8

       다음날에도 허벅지가 아팠다.

        

       그 전날 방송 끝났을 때는 거의 반건조 오징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미션은 클리어했고, 덕분에 평소보다 많은 돈을 얻을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다음 날에도 똑같은 방송을 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똑같이 들어온 미션을 쳐내버렸다.

        

       “차라리 제가 대신 할 걸 그랬나요?”

        

       샤를로트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가 방송을 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던 돈입니다. 아마 당신이 방송한다고 해서 같은 금액을 받을 수는 없겠죠. 사람들은 제가 힘든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니까요.”

        

       “……마음은 이해해요.”

        

       ……아니, 거기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친구가 고생했는데.

        

       물론 나도 왜 이해하는지 알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방송을 하며 고생하면 나도 옆에서 보면서 웃었을 테니까.

        

       미아는 조금 아니었으려나? 미아 쪽은 오히려 뭔가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뭐, 그래도 덕분에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여러분 두 분이 방송에 들어오신 이후로 하루에 들어오는 금액도 늘어났으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이 온 지도 시간이 조금 흘렀다. 물론 기간으로 보면 아직 일주일이 채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두 사람이 합류한 뒤의 첫 휴일을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 방송이 끝나자마자 떠날 준비를 마쳤고, 오늘 아침 식사 후 조금 느긋하게 나가기로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돈을 모아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솔직히 우리가 지방으로 이사하지 않는 이상은 지금부터 돈을 모아서 더 큰 집으로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이곳으로 들어오는 비용도 집의 크기에 비해 조금 싼 가격에 들어온 것이라, 당장 전세금을 뺀다고 해도 같은 서울 안이라면 오히려 더 좁은 곳으로 가게 될 거다.

        

       기껏 아이들이 이곳에 적응했는데 또 이사를 하는 건 좀 그렇지. 무엇보다 내 머리가 아프고.

        

       그러니 그럴 바에는 비상금으로 저축할 금액 빼고는 그냥 알차게 써버리는 편이 낫다. 어쨌거나 남은 평생을 여기서 지낼 생각도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서울?”

        

       “지난번에 가보지 못한 곳도 있으니까요. 방은 다른 쪽으로 잡으려고 합니다.”

        

       한강 북쪽을 돌아보았으니 이번에는 남쪽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나야 원래부터 서울에 살던 사람들이지만, 나머지 네 사람은 어차피 외국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해외여행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당장은 가까운 곳부터 가고, 조금 시간을 들여 준비한 뒤에 먼 곳까지 가는 것도 좋겠다.

        

       “아침 일찍 나가면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었죠?”

        

       샤를로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대체 얼마나 많길래 그렇게 시간을 피해 가며 출발하는 건가요?”

        

       “직접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겠죠. 식사한 뒤에 영상으로 찾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말에, 샤를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식사 뒤에 내가 보여준 영상을 보고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지?

        

       서울의 월요일을 다시는 무시하지 마라.

        

       기껏 회사도 안 다니고 있는데 굳이 그 사이에 끼어있고 싶지 않았다.

        

       하필이면 지금의 내 몸은 여기저기 튀어나온 곳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체크인 시간도 아침은 아니라서 일찍 나가봐야 가방을 맨 체 몇 시간 동안 돌아다녀야 했다.

        

       왕족인 샤를로트는 그런 건 모르겠지만.

        

       *

        

       “아, 잠깐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지하철까지 가는 와중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자리에 멈추어 섰다.

        

       “어디에 가려고?”

        

       “잠깐 복권 좀.”

        

       “…….”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내 말에 다들 나를 짠한 눈으로 바라보길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언니…… 돈이 부족하면 그냥 부족하다고 해도 돼. 무리할 필요 없어. 나는 굳이 용돈 안 받아도 되니까.”

        

       “화, 황녀님 집에 얹혀사는 처지니, 식사를 줄여도 괜찮아요.”

        

       “지금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내가 무슨 스크루지도 아니고.

        

       이 중에서 정신적인 연령이 가장 높은 사람은 나였다. 다들 일단 법적으로는 성인이긴 했지만, 실제론 아직 10대들이기도 했고.

        

       같이 사는 사람 중 내가 가장 연장자였으니, 당연히 보호할 의무도 나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용돈을 줄이거나 먹는 것을 줄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게다가—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원래 복권이라는 것은 꿈을 사는 행위입니다.”

        

       “…….”

        

       내 말에 다들 표정이 멍해졌다.

        

       그래, 그렇겠지.

        

       아제르나에도 복권은 있다. 심지어 이건 게임 시스템으로도 있는 것이었는데, 1편에서 스토리 중간중간 황도로 돌아올 때마다 갈 수 있는 복권 가게에서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복권을 구매하면 확률에 따라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시스템상 수십억씩 받아버리면 게임 밸런스가 너무 이상해지니 늘어나는 돈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황녀였던 나는 애초에 돈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굳이 복권 가게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복권을 한 번에 살 수 있는 금액이 정해져 있고, 신분증 검사도 하는 이 나라와는 다르게 아제르나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제가 서민으로 지냈을 때, 종종 복권을 사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1등이 되지 않더라도 1등이 되면 무엇을 할까 상상하는 것이죠.”

        

       “……그, 언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 설명을 들은 아이들의 얼굴이 더 짠해졌다.

        

       “아무튼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기왕 돌아왔으니 해보는 겁니다.”

        

       “기왕 돌아왔으니 해보는 거라면 술이나 담배도 해보겠다는 거야?”

        

       “당연히 안 됩니다. 여러분은 실제로는 성인이 아니니까요.”

        

       앨리스의 말에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기가 찬다는 듯 “허.”하고 짧게 웃었다.

        

       “오히려 여유가 있으니 사는 겁니다. 마권도 아니고 복권이니 그렇게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유희로 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

        

       내 말에, 다들 얼굴을 마주 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살까.”

        

       “…….”

        

       뭐, 일단 법적으로는 성인이니까…….

        

       물론 바로 조금 전에 술과 담배는 안 된다고 했던 나였지만, 복권이야 산다고 건강을 해치는 물건은 아니었다.

        

       게다가 여기 있는 아이들 전부 평소에는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아이들. 아마 중독되는 게 중독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좋습니다. 어차피 자주 할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해보려던 것이니까요.”

        

       사실은 복권이 당첨되면 이사라도 갈 생각이지만, 애초에 당첨될 가능성이 희박하니까, 뭐.

        

       *

        

       그렇게 복권까지 산 우리는 해당 복권들을 모두 모아서 가방 안에 넣어두고, 내가 예약한 호텔에 갔다.

        

       “꽤 훌륭하네요. 이 세계의 건축 방식은 정말 발전했어요. 뭐랄까,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샤를로트는 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거실 하나를 두고 방 두 개가 마주 붙어있는 곳이었다. 한쪽 방에는 더블 침대가, 다른 한쪽 방에는 싱글 침대 세 개가 꽉 차있는 곳이었다. 문자 그대로 가족 방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가족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맞아. 이런 건물은 제국에서도 린드버러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건물이잖아. 그런데 이 도시에만 해도 수도 없이 세워져 있으니…….”

        

       “확실히,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묵을 수 있는 거겠죠. 만약 서울에 이런 건물이 손꼽을 정도밖에 없다면, 그곳에 묵는 가격도 지금보다 훨씬 더 비쌀 겁니다.”

        

       참고로 이곳은 1박에 30만 원쯤 하는 것이다. 그것도 특정 사이트에서 예약하면 할인해서 들어가는 가격이고, 실제로 표기된 정가는 거의 두 배였다.

        

       물론 그 정가에 예약하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을 테니 사실상 우리가 예약한 가격이 정가나 다름없었지만.

        

       “그럼 잠깐 쉬었다가 출발하죠. 이곳에는 저녁 늦게 돌아올 예정입니다.”

        

       “저녁 늦게요……?”

        

       벌써 침대에 누웠던 미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런 좋은 방을 예약해두고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냐는 표정이었다.

        

       “……의뢰받으면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나가셨으면서, 지금은 생각이 달라지셨습니까?”

        

       “하, 하지만 지금 저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잖아요.”

        

       그렇다.

        

       미아는 어떤 의미로는 샤를로트보다 훨씬 빠르게 이 세계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어머니한테 압박받을 일도 없고, 귀족이라는 티를 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 삶을 사는 미아는 한때 이쪽 계열에서 유행한 단어인 ‘건어물녀’에 가까웠다.

        

       최근에는 마법 소녀 애니메이션도 보는 것 같던데, 괜히 지적했다가는 다시는 보지 않게 될 것 같아서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걸 가르쳐준 사람이 클레어라는 사실에 나는 조금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고기를 잔뜩 먹으려고 했는데, 만약 괜찮으면 혼자 돌아와 쉬어도 됩니다.”

        

       “저녁 늦게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아요.”

        

       미아가 바로 정색하며 그렇게 말하자, 클레어, 앨리스, 샤를로트가 동시에 피식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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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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