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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8

    다음 날, 루크는 아카데미에 가야 했다.

    이유는 오늘이 아카데미 졸업시험이 있는 날이기도 했고, 축제날 케일라와 했던 내기의 결과와 정산까지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는 미룰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졸업시험을 치러야 정상적인 졸업이 가능했고, 케일라의 정산금을 받아야 각종 계획의 자금을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탁탁.

     

    그렇게 바닥을 몇번 차는 것으로 구두의 위치를 조정한 루크는 가방을 챙겨들고는 문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예르나가 다급하게 묻는다.

     

    “벌써 가니? 챙길 건 다 챙겼고?”

    “……네, 챙겼어요.”

     

    예르나가 말하는 ‘챙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루크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듯 대답했다.

    아마도 예르나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것, ‘생리대’일 것이다.

     

    ‘돌겠군.’

     

    생리라니.

    그건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오해지만, 그렇다고 예르나가 바보라서 그런 오해를 한 것은 아니다.

     

    ‘빨래가 제대로 안 되었을 줄이야…….’

     

    피 묻은 침구를 몰래 빨려다가 다이튼에게 들킨 것 외에도 피가 덜 빠진 이불과 시트, 그리고 잠옷이 보여진 것이 너무나 결정적이었다.

     

    그것도 하필 잠옷의 아래쪽을 향해 묻은 핏자국을 보면…… 솔직히 그런 오해를 겪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대역을 위해 케이트에게 자신의 잠옷을 입힌 상태에서 무릎 베개를 베고 있다 무심코 피를 토해낸 것이니 당연히 잠옷 아랫부분에 피가 묻은 것이겠지만.

     

    ……그리고 루크는 그 오해를 정정하지 않았다.

     

    이는 어쩔 수 없었다.

     

    토해낸 죽은 피의 양이 그다지 적은 것도 아니다보니, 만약 거기에서 ‘그건 하혈이 아닌 각혈이었다’ 라고 한다면 이어질 대화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

     

    ‘뭐? 피를 토했다고? 왜?’

    ‘뭐? 몹쓸 독에 당해? 어쩌다가?’

    ‘뭐어? 혼자 그 시설에 갔어? 거의 죽을 뻔 했다고?’

    ‘엄마랑 거기엔 안 가기로 약속했잖아? 자꾸 혼자서 그렇게 위험한 짓 할래? 이렇게 피를 토한 거 보면, 이번엔 진짜로 위험했던 거잖아! 안 되겠어, 이번엔 정말 크게 혼나야겠어. 루크, 넌 진짜로 당분간 외출 금지야.’

     

    그래, 이 순서를 밟을 것이 너무나 뻔하다.

    웬만해서는 그 결정을 번복시키기 어렵겠지…….

     

    외출 금지, 그것은 예르나가 정한 최상위 단계의 체벌.

    외출 금지는 루크의 행동에 큰 제약이 되는 만큼, 루크에게도 가장 확실한 체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단치거나 엉덩이를 때리는 것 보다는 외출 금지라고 하면 그만큼 효과도 좋았고.

     

    사실, 예르나의 입장에서는 말은 외출 금지라고 해도 필요하면 혼자서 잘 돌아다닐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루크는 예르나에게 약속을 당부 받으면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르나는 루크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그토록 엄격하게 적용되는 개념인지 사실 잘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아, 이 나이를 먹고 외출금지가 가장 두려울 줄이야.’

     

    그래서 루크는 결국 예르나의 오해를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생리가 지속되는 기간 조금 더 걱정을 받는 게 전부.

     

    그것도 보통 한두달의 주기를 갖는 걸 생각하면, 오해는 풀어도 됐다.

    그리고 그 뒤면, 모든 일이 끝날 때다.

     

    ……하지만, 그 덕분에 평생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생리대 착용 법 같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

     

    “그래, 루. 힘든데 시험이라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아무튼 잘 다녀와?”

     

    루크의 힘 없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는지, 예르나는 루크에게 다가와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루크는 예르나의 포근하게 안아주는 감촉을 느끼며 가슴 속 한 켠에 죄책감이 자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 잠깐만 숨기면 된다.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어.’

     

    루크는 잠시 어제 밤의 대화를 떠올렸다.

     

     

    ‘루크, 혹시 엄마한테 바라는 거 없어? 아니면 선물로 받고 싶은 거, 라던가.’

    ‘선물이요?’

    ‘응, 오늘은 축하하고 싶은 날이니까. 아무거나 얘기해 봐.’

    ‘……그럼.’

     

     

    그 질문에 루크는 잠깐 고민했다.

    자신이 예르나에게 바라는 것, 그것은…….

     

    ‘저 때문에 엄마가 다시는 위험한 일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피해를 감수하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것이 예르나에게 바라는 유일한 바람이다.

    그녀는 너무나 좋은 여성이고……. 자신의, 새로운 어머니이니까.

     

    감정을 깨닫고 난 후, 어머니라는 이름에는 언제나 그리운 감정이 든다.

    이는 아마도 심장에 새겨진 감정이리라.

     

    파르바티, 그녀는 어쩌면 예르나를 진정한 자신의 어머니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처음 알에서 깬 새가 처음으로 본 존재를 어머니라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응? 왜 그래, 갑자기 내 얼굴을 그렇게 빤히 바라보고……. 루, 역시 힘들어서 그런거야? 아아, 하필 시험인데……. 어떡하니. 다른 방법이 없는 지 아카데미에 한번 연락해 볼까?”

     

    아차, 예르나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니. 그건 안 될 일이지.

    예르나에게 다른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그런 민망한 오해도 받아들였건만, 이런 일로 또 걱정을 끼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루크는 예르나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다녀오겠습니다.”

    “으응. 그래, 잘 다녀와.“

     

    예르나의 품에서 벗어난 루크는 드디어 문을 연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네!”

     

    예르나의 배웅을 받으며 손을 흔들어준 루크는 다시 정면을 향해 기분좋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화창한 햇살이 쌀쌀한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따사롭다.

     

    오늘은 꽤 괜찮은 하루가 될 것만 같은 날이다.

     

    ——-

     

    무난하게 졸업시험을 마친 뒤, 루크는 케일라가 있을 제과제빵 동아리로 발걸음을 향했다.

     

    저번 축제로 번 돈의 정산금과, 레시피와 찻잎의 대금, 그리고 내기의 결과를 케일라에게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드륵-.

     

    그렇게 루크가 제과제빵 동아리의 문을 열자, 몇몇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케일라가 반갑다는 듯 손을 크게 흔들며 먼저 인사해왔다.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케일라.”

     

    루크는 가방을 문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약속한 대금을 받으러 왔다.”

    “그래, 내기의 결과하고 말이지?”

    “…….”

     

    -끄덕.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라는 루크의 그 진지한 표정에 피식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뭐야, 그렇게까지 긴장돼? 긴장 풀어, 별 거 아닌 내기였잖아?”

     

    흠, 케일라에게는 그 규모의 추가예산이 걸린 내기가 별 거 아닌 내기였나?

    글쎄,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것이겠지만.

    부자와 서민의 인식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그 옛날에 나 또한 부자였던 적이 있기는 하나…….’

     

    그 시대의 부자와 지금 시대의 부자는 비교하기 어려운 감이 있기는 하다.

    그 당시엔 아무리 금은보화가 많아봤자 마땅히 쓸 데가 없었으니, 그 시기의 부자였던 경험을 끌어와 봤자 별 도움은 되지 않으리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작 정말로 필요한 것들은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라, 대부분은 직접 나서서 구해와야 했으니까.

    반면, 현대는 뭐든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시대다. 당연히 크게 다르지.

     

    “하아, 너무 시간을 끌지는 말아주게. 요즘, 굉장히 바쁘단 말이지.”

     

    루크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케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바로 결과를 말해줄게. 지금, 공개되는 그으 결과느은……!”

     

    약간의 장난스런 뜸들임, 하지만 루크의 인상이 서서히 찌푸려지는 것을 본 케일라는 바로 몇 초 뒤에 입을 열었다.

     

    “무승부야.”

    “뭐?”

     

    무승부라니?

    그런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나중에 정산해보니, 둘이 정확히 똑같은 숫자가 팔렸더라고, 정말 대단하지 않아?”

    “…….”

     

     

    그날 팔린 음료의 개수만 해도 100잔이 가볍게 넘는데, 그 중에서도 정확히 밀크티와 활력차의 판매량이 같다는 것은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이다.

     

    케일라가 건넨 기기로 내역을 빠르게 훑어본 루크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턱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조작된 흔적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유리하게 조작을 하고 싶었다면, 자신의 승리로 조작을 하지 애매하게 무승부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찌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이건 설마, 그 때 정확히 불운과 행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그 당시의 자신은 분명 불행했으나,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는 갑자기 행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게 당시의 행운의 균형이 맞춰진 덕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운명의 변곡점을 관측할 수 없는 이상 증명할 방법이 없는 가설이었다.

     

     

    루크는 케일라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헌데 무승부가 되면 내기는 어떻게 되는 게냐?”

     

    그에 케일라는 씨익 웃고는, 손가락을 두개 펼쳐보이며 말했다.

     

    “두가지 방법이 있지.”

    “……그렇군.”

     

    무효로 하거나, 두명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거나.

     

     

    그리고 루크는 후자를 선택했다.

     

    —–

     

    “준비 됐어?”

    “후우, 잠시만.”

     

    루크는 케일라의 무릎에 앉은 채 크게 심호흡했다.

    레시피의 값을 1.5배로 받는 대신, 그녀의 승리 요구조건인 ‘하루종일 마음대로 쓰다듬기’를 이행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녀의 말처럼 하루종일 쓰다듬는 것은 아니었다.

    루크도 케일라도 시간이 되면 집에 가야하는 만큼, 두시간 정도를 참으면 된다.

     

    그 정도라면 자신의 일정에도 큰 차질은 없을 터.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니까…….’

     

    1.5배의 돈을 받으면, 준비할 수 있는 인형의 질과 수가 확연히 늘어난다.

    그러면 당장 드워프의 지팡이를 연구하는 데에도 충분한 자금이 확보될 것이고, 구상중인 새로운 아린세이아 연동 아티팩트의 계획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다.

    고작 두시간만 참으면…….

     

    루크는 그런 다짐 끝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좋다, 이제 마음껏 만지거라.”

     

    허락의 말.

    그러나.

     

    “…….”

     

    어찌 된 영문인지, 당장 꼬리나 머리 등에 느껴지는 감촉은 없었다.

    케일라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일까?

    옅은 숨결만이 여전히 루크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저기……, 케일라? 안 쓰다듬을 건가? 지금도 시간은 가고 있다만.”

    “…….”

     

    루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묻는다.

    하지만, 케일라는 조용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쫑긋, 쫑긋.

     

    “…….”

     

    자신의 숨결이 닿아 간지러운지 연신 쫑긋거리는 루크의 귀의 움직임에 매료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까부터 루크의 귀 끝만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

     

    그녀는 아직까지 어머니와 그루밍을 주고받을 정도로 본능을 자유롭게 여기는 가문내에서도 특히나 남들보다 강한 본능을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눈앞에서 파닥거리는 그 조그만 삼각형의 모습에 고양이로서의 본능을 억누르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고가 그 삼각형의 첨단에 집중된다.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마치 실 묶은 동전으로 최면에 걸린 것 처럼, 오롯이 한 가지의 충동만이 케일라의 내부에서 회몰아친다.

     

    하지만, 그건 안될 일이야.

    루크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루크가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저, 케일라……? 딱히 아무것도 안 하겠다면, 지금 일어나도 되겠나?”

    “…….”

     

    그리고 그것이, 케일라가 억누르던 충동이라는 심지에 불을 붙이는 꼴이 되었다.

     

    -합!

     

    케일라는 끝내, 루크의 귀 끝을 입 안에 넣고 싶다는 충동을 참지 못했다.

     

     

    “끼얏! 지, 지, 지지금 대체 뭐하는 거냐!!”

    “음! 이 느끔으으!”

     

    말랑하고 폭신한 혀 끝의 이 감촉!

    이것은 마치 어릴때로 돌아가서 테이블 위에 놓인 컵을 떨어트리며 놀던 날의 그리운 감각이 연상될 정도로 행복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평온한 케일라와는 달리 루크는 절규하며 외쳤다.

     

    “귀를 입 안에 물고 말 하지 마아아!”

    그리고 다음 순간.

    케일라는 루크에 의해 동아리실 바닥에 메쳐졌고, 그녀가 눈을 뜬 것은 두시간 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렇게 보면 케일라가 참 변태같은데요…
    사실 변태가 맞습니다.

    근데 저희 강아지 귀 끝 깨무는 건 저도 재밌어서 이해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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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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