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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8

        

         

       오딜리아는 못마땅하다는 듯 화면 속의 차이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차이네라는 여자 연예인은 그리 비호감으로 비치진 않았다. 물론 PD에게 밉보인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출연 빈도가 낮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주술사인 박진성이 주인공이니 참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녀는 중간중간 출연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도 했고, 동행한 사람들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리고 군인 무리나 스태프 사이에 껴서 이동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그리 이상한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그네스는 그런 스승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스승님. 머리카락 색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그녀는 타박하듯 오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딜리아는 정곡이라도 찔린 것인지 입을 꾹 다물었고, 그 모습을 본 아그네스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분과 사이가 안 좋아도 그렇지, 머리카락 색 비슷하다고 다른 여자도 그렇게 못마땅하게 여기시면 어떻게 해요.”

         

       “그런 게 아니란다. 머리카락 색 때문이 아니라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리고 그분하고 좀 화해 좀 하세요. 지금 30년째죠? 그때 싸운 거로 도대체 몇 년이나 싸우시는 건지….”

         

       아그네스는 그렇게 말하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 나오는 차이네는 암청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상태였다. 외국에서는 미드나잇블루(Midnight Blue)라고 부르는 그 색상은 산속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부서지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색이었다.

         

       염색으로 만든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그네스의 스승인 오딜리아는 저 색상의 머리카락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녀와 앙숙인 스페인 출신의 대마녀, ‘비약의 대마녀’라고 불리는 가브리엘라(Gabriela)의 머리카락이 저 암청색이었다.

         

       예전에는 같이 회사를 운영했던 절친이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크게 싸운 뒤 원수 사이가 되어버렸다. 한때 오딜리아와 같이 화장품 회사를 운영했던 가브리엘라는 그녀와 찢어진 뒤 마찬가지로 화장품 회사를 세웠고, 사사건건 오딜리아를 방해해왔다. 그 방해라는 것이 어찌나 집요했는지 회사가 휘청일 뻔한 적도 몇 번 있었으며, 교묘한 수법으로 회사 자체를 통째로 먹어 치우려는 수작도 몇 번이나 방어했었다.

         

       그 덕분에 회사의 중역들은 자본주의의 쓴맛을 몸으로 겪으면서 백전노장이 되었지만…그 반대급부로 그들이 가브리엘라에게 보내는 원망은 더더욱 깊어졌다.

         

       오딜리아 역시 마찬가지.

       처음에는 미안함도 품고, 먼저 사과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일말의 고민이라도 품고 있었지만…가브리엘라의 집요한 공격을 맞으면서 그러한 마음도 사그라져버린 상태였다. 도리어 마음에 독기까지 자라나 있었고, 저 빌어먹을 대마녀의 회사를 망하게 만들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심어졌다.

         

       오딜리아에게 있어 가브리엘라는 공존할 수 없는 사이이며, 누군가 한 명이 패배해야만 이 빌어먹을 싸움이 끝이 나는 관계였다.

         

       오딜리아가 보기에는 말이다.

         

       “보니까 그분도 조금 비틀리기는 했어도 화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하지만 아그네스가 보기에는 달랐다.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뒤로 물러나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았던 아그네스는, 저 둘의 싸움이 마냥 증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뒤끝이 길고 사나운 성격의 오딜리아.

       무언가 비틀린 성정이 있는 가브리엘라.

         

       두 대마녀의 ‘대마녀’라는 칭호에 걸맞은 괴팍한 성격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을 벌이면서 시간을 하염없이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아그네스는 둘 다 조금씩 양보만 한다면 예전처럼 사이좋은 관계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당사자의 입장은 또 다른 법.

         

       “어림없는 소리! 그 여자가 나한테 한 짓이 있는데!”

         

       오딜리아는 사랑하는 제자의 말에도 완강하게 거부했다.

         

       사과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고.

       그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도 받아줄까 말까 고민할 정도라고.

         

       그녀는 단호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더 이상 말을 하기 싫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고, 고집이 묻어있는 얼굴로 TV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네가 뭐라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니까 말을 걸지 말라는 신호였다.

         

       아그네스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저런 모습을 보였음에도 계속해서 말을 반복한다면, 삐지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호텔 방 안은 침묵이 감돌았다.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불평불만을 쏟아내던 오딜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고, 아그네스는 오딜리아의 기분을 해치지 않기 위해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설전에 숨을 죽이고 있던 엘라와 아나스타시아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렇게 방 안의 공기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거운 분위기를 깨는 소리가 있었으니.

         

       짹.

         

       새가 내는 울음소리였다.

         

       자그마한 소리는 방 안의 정적을 깨뜨리듯 작고 짧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위엄 있는 울음소리를 낸 주인은 엘라의 품 안에서 힘껏 날개를 펼쳐 올려 V자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이 끔찍한 분위기를 깨뜨렸다고 자랑하듯이, 혹은 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자신이 주도하겠다고 선언을 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승리의 자세를 취한 새는 몸에서 빛을 발했다.

       눈부실 정도의 빛을 뿜어내었고, 그 빛의 색상을 계속해서 바꾸었다.

         

       빨간색에서 주황색으로, 노란색에서 초록색으로,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파란색에서 하얀색으로.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의 새는 ‘게이밍’이라는 이름이 붙은 물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과 똑같은 빛을 발했고, 통통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엘라의 품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짧은 날개를 위아래로 움직여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고, 엘라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째액.

         

       게이밍 오목눈이는 엘라의 머리 위가 둥지라도 되는 것처럼 그대로 몸을 깔고 앉았다. 그리곤 엘라의 모자라도 된 것처럼, 혹은 원래부터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었다는 것처럼 무게를 거의 지워버리곤 딱 달라붙었다.

         

       엘라가 머리에 손을 뻗어 떼려고 시도해도 떨어지지 않았고, 도리어 자신을 밀어내려는 엘라의 손을 날개로 살짝 톡 쳐서 건드리지 못하게 방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렇게 엘라의 머리 위로 올라간 게이밍 오목눈이는 어마어마한 빛을 뿜어내었다.

         

       마치 클럽의 조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화려하고 어마어마한 무지개색이란!

       냉각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두 사람조차도 본능적으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빛이었다.

         

       아그네스와 오딜리아는 방 안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조명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풋.”

         

       그렇게 고개를 돌린 곳에 있는 것은 머리 위에 게이밍 오목눈이를 얹은 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엘라.

         

       평소의 귀족 아가씨 흉내는 온데간데없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지나가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에 머리를 얻어맞고 어안이 벙벙한 듯 서 있는 다람쥐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엘라의 모습이었다.

         

       아그네스는 그러한 엘라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얘, 그 꼴이 뭐니. 후훗.”

         

       그녀는 엘라가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레이디에게 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여섯 살 먹은 천사 같은 아이에게 보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귀엽다는 감정과 함께 모성이 깃들어 있었고, 자기 제자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물론 그 시선을 받는 처지에서는 그 귀엽다는 시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그게, 이 게이밍 오목눈이가…. 그, 대체 왜 이러는지….”

         

       이러한 엘라의 흔히 볼 수 없는 귀여운 모습에 쐐기를 박기 위함일까?

       어디선가 아나스타시아가 불쑥 솟아오르더니 엘라의 옆에 딱 자리를 잡았다.

         

       자신을 언니라고 주장하는 작은 키의 소녀는 어디서 챙겨왔는지 모르는 양복을 입고 있었고, 지적으로 보이기 위함인지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귀에는 인이어(In-Ear)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으며, 솜털같이 보송보송한 털이 붙어 있는 자그마한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잠깐! 이 언니가 나서겠습니다! 지금부터 이 언니는 오목눈이 전문 통역사입니다!”

         

       아나스타시아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엘라의 입을 딱 막고 게이밍 오목눈이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렇게 통역이 시작되었다.

         

       짹.

         

       게이밍 오목눈이가 엘라의 머리 위에서 그렇게 작게 울었다.

         

       그러자 아나스타시아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게이밍 오목눈이의 말을 번역해주었다.

         

       “육신에 얽매이는 필멸자들에게 고하노니, 본좌는 빛을 담아 그 형상을 빚어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감상하고 싶은 마음뿐이로다. 하여 부득이하게 미약하게나마 힘을 발휘하였으니 이에 감읍하여야 할 것이다.”

         

       짹?

         

       아나스타시아의 번역을 들은 게이밍 오목눈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의 노래와 같은 나의 목소리가 제대로 닿지 않는구나. 보잘것없는 필멸자로서는 나의 의지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이니, 이에 따라 그 간극이 심해지는 것 같도다.”

         

       뺘악!

         

       고개를 갸웃거리던 게이밍 오목눈이는 계속해서 초월 번역이 이어지자 날개를 퍼덕거리며 몹시 화가 났을 때 보이는 자세를 취했고, 제대로 통역을 하라는 듯 아나스타시아를 바라보며 울었다.

         

       “알았어용~”

         

       아나스타시아는 게이밍 오목눈이가 항의하자 장난기 서린 웃음을 터뜨렸다.

         

       “이 언니의 완벽한 능력으로 통역해보자면, 게이밍 오목눈이는 TV를 보고 싶어 하고 있어요!”

         

       그녀는 이번에는 초월 번역을 하지 않고 게이밍 오목눈이의 의도를 적확하게 전달해주었다.

       그러자 아그네스는 ‘알았어. 같이 재미있게 TV를 보자꾸나.’라고 웃음기를 감추지 않고 말했고, 오딜리아는 입을 꾹 다문 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가져갔다.

         

       그렇게 다시 호텔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참으로 훈훈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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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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