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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8

       하늘에서 떨어지던 매화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을 무렵에도 아라가 흩뿌린 매화는 여전히 화산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화산 전체를 본인의 뜻대로 재편한 것이니까. 본인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이 곳은 언제나 이럴 것이다.”

       

       그것이 의문스러워 바루가 꺼낸 물음에 아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본인이 화산의 문주일지언제 화산을 내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 무어가 문제냐는 말과 함께.

       

       “무엇이 문제냐니. 제발 상식을 좀 가져다오.”

       

       바루는 할 말이 많았다.

       

       세상의 법칙과 규율이라는 것이 존재할 터인데 저리 매화를 피워두면 어찌 하냐고.

       

       매화라는 꽃은 이리 척박한 곳에서는 자라나지 못하는 바 저들은 피어있으면서도 고통 받을 것이라고.

       

       “바루야. 우선 말하자면 작금의 본인에게 규칙과 규율, 즉 상식이란 것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건 안다마는.”

       “그리고 말이다. 저 매화가 자라나기 좋게 화산을 바꾸어버리면 매화가 고통 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이 척박한 화산 또한 아름다운 곳이 될 터.”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가 생긴 원인 자체를 지워버리겠노라. 어깨를 피고서 당당히 이야기하는 아라의 모습에 바루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저 녀석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면 말릴 수 있는 이는 존재치 아니하니. 정 커다란 문제가 생기면 신수께서 달려와 처리해 주시겠지.

       

       “그보다 바루야.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지 않으냐?”

       “흠?”

       “보라. 혈교의 수작에 의하여 죽어버렸던 화산에 생기가 돌아왔구나. 이것이 무슨 의미겠느냐.”

       “…아? 아!”

       

       그래. 아라의 말이 옳다. 강제적인 방식이기는 하나 생기가 사라졌던 화산에 생명이 돌아왔다. 매화의 꽃이 산 전체를 뒤엎어 봄을 만들어냈단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

       

       바루는 아라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몸을 움직이려 했다. 허나 바루의 발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기 전에 아라가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았으니까.

       

       “뭐하는 짓이냐! 본인은 지금 가서 확인을 해봐야 한다!”

       “네 걸음으로 달려봐야 오래 걸릴 것 아닌가. 데려다 주마.”

       

       아라가 한 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바루가 돌산에서 사용했던 도술처럼.

       

       동굴의 앞에는 이미 한 인형이 바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란 도복을 걸치고 있는 청년은 바루를 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었다.

       

       “오랜만입니다. 바루.”

       “나율! 드디어 힘을 되찾은 게로구나!”

       “예에. 방금 전에 막. 갑자기 산에 생기가 모여 들어서 말입니다.”

       

       화산의 신령인 나율은 위엄이란 단어를 잊고 폴짝거리는 바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아라에게 다가와서는 허리를 숙였다.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만 우선 인사드리겠습니다. 화산의 은인이시자 주인 되신 분이시여. 저는 나율. 화산의 신령입니다.”

       “나를 아는가?”

       “부족하지만 신령이니 말입니다. 산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알고 있지요.”

       “말해보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아라의 명령을 들은 나율은 순순히 자신이 아는 것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혈교에 의해 산이 죽어가던 때의 일. 아라가 혈교를 분쇄할 때의 일. 화산은 새롭게 세울 때의 일. 이후 꾸준히 산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바루와 백주의 일.

       

       나율은 자신이 말했던 대로 화산에서 일어났던 대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방금 전 화산을 매화로 뒤덮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묻겠다. 여태까지 본인이 걸어 온 행보에 불만이 있느냐?”

       “있을리가요. 척박했던 화산이 이리 아름다운 곳이 되어 저도 기쁩니다.”

       

       아라는 웃으며 대답하는 나율의 모습을 가만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을 돌렸다.

       

       “불만이 없다면 내가 할 말은 없군. 자리를 비켜줄 터이니 네 친구들과 회포를 풀거라.”

       

       그 말이 끝이었다. 아라가 발을 떼는가 싶다니 그대로 그녀의 형체가 사라져버렸으니까.

       

       “친절하신 분이네요.”

       “포악하고 제멋대로인 인간이기도 하지만.”

       

       바루는 아라가 사라진 자리를 살피다 이내 지팡이를 흔들었다.

       

       동굴 근처에 펼쳐 두었던 도술을 없애 버림과 동시에 땅의 바위를 제 뜻대로 움직여 탁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둥근 탁자에 앉을 자리는 세 개였다.

       

       “백주야. 빨리 튀어 나오거라. 내 말했던 것처럼 그대들의 혀에 새로운 체험을 시켜줄 테니.”

       

       바루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수풀이 흔들리며 백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하면 어떡해요! 놀래켜 줄 생각이었는데!”

       “본인조차도 알아챌만큼 허술한 잠복이었다. 화산의 신령인 이 놈이 못 알아챘겠느냐?”

       

       백주를 타박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루와 백주의 시선이 나율에게로 꽂힌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고개를 돌린 채 딱딱한 목소리를 냈다.

       

       “전 혀 못 알아채겠던데요?”

       “봐라. 알아챘잖느냐.”

       “…하아. 다시금 태어나도 거짓말 못 하는 건 여전하네요.”

       “어쩌겠습니까. 그런 사람인데.”

       

       입술을 삐죽거리는 백주와 목을 주물럭거리는 나율을 반강제로 의자에 앉힌 바루는 자신의 품 안에서 투명하며 동그란 용기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죠?”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

       

       그 안에 든 것은 음식이었는데 그 색은 붉음으로 물들어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붉음이 아니라 네 놈의 위장을 불태워주겠노라 선언하는 듯 위협적인 붉음으로 말이다.

       

       그 색을 확인한 두 사람이 기겁하는 모습에 바루가 코웃음을 흘렸다.

       

       “다른 세상에서 인기 있는 음식이다. 내 그 곳에서 즐겨 먹은 녀석이지.”

       “즐겨먹었다고요? 이걸?”

       “왜 그러느냐. 냄새를 맡아보아라. 절로 침이 고이지 않으냐.”

       “그건 그런데…”

       “일단 두 사람 다 먹어 보고 이야기를 하거라. 내 독은 넣지 않았으니.”

       

       바루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용기 안에 든 음식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찾는 곳에서 만든 거니까.

       

       바루가 자주 먹었다는 말도 사실이고, 독이 들어있지 않단 것도 사실이다.

       

       허나 바루가 모든 사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일지어니.

       

       “…어? 잠. 흡. 하악!”

       “흡! 흐윽! 매워어어어!”

       

       그 날. 화산에 머무르던 두 신령은 물을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매움에 비명을 내질렀다.

       

       *

       

       화산의 신령은 생각한 것보다 이지적인 자였구나.

       

       독으로 주변을 녹이는 모습만을 보았던지라 실제로도 괴팍한 성격을 지녔으리라 생각했는데. 당가 쪽의 사람들과는 다르군.

       

       그 동네는 괴인들의 집합소였는데 말이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발을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천마신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에 거대한 신공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저기에 백화령이 있겠군.

       

       위치는 수련장인가.

       

       한 걸음으로 위치를 바꾸어 백화령의 뒤에 선 순간 백화령과 대련 중이던 한서우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갑작스레 등장한 내 얼굴에 움직임을 멈춰버렸고 그대로 백화령의 주먹에 얻어 맞아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무어냐. 우둔한 제자야. 이 정도 공격을 못 피하다니.”

       “이번에 한해선….”

       

       내가 목소리를 내기 무섭게 백화령이 내 쪽을 향해 권을 내질렀다.

       

       자그마한 가감도 없는 전력.

       

       일격에 상대를 박살내고자 하는 필살.

       

       허어. 이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게 며칠 전인데 그새 새로운 깨우침을 얻은 것인가. 내지르는 권이 한결 더 위협적으로 바뀌었군.

       

       화룡무인의 육신이었다면 위험했겠어.

       

       나는 백화령이 내지른 권에 감탄함과 동시에 손을 움직였다.

       

       많은 움직임은 필요치 않다. 백화령의 손목을 툭하고 밀어주는 것이면 족하지.

       

       거대한 힘의 방향을 바꾸어주기만 한다면 내게는 자그마한 피해도 없을 터.

       

       “좋구나.”

       

       나를 빗겨나가 허공을 타격한 백화령의 권을 살핀다. 불안한 자세에서 갑작스레 준비한 권인데 이 정도 위력인가.

       

       “이대로 정진하면 좋은 결과가 있겠어.”

       

       성장이 실로 가파르구나. 과거의 본인보다도 더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마는. 진심을 담은 칭찬이었지만 백화령의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언제 온 게냐.”

       “방금.”

       “…기척이 안 느껴졌는데.”

       “감추었으니까.”

       

       흐음. 역시 본인의 은신은 완벽하구나. 백화령 수준의 무인이 감지하지 못할 정도니까 말이다.

       

       허나 동시에 기이하기도 하다. 백화령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여 짐승들은 눈치채고 본인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알 수가 없구나.

       

       “하아. 어찌 따라잡으라고 그리 높은 경지에 올라가서는.”

       “따라잡을 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데.”

       “노친네같은 소리나 하다니.”

       

       백화령은 그리 이야기를 하고는 곰방대를 꺼내 들어서 입에 물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러 온 거냐.”

       “너라면 본인과 대련을 하고 싶어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자신의 앞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하늘이 등장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천마신공을 수련하는 이라면 그 하늘의 높이를 자신의 무로 짐작하고 싶을 터.

       

       내 그리 이야기를 했더니 백화령이 키득거렸다.

       

       “날 너무 잘 아는 군.”

       “그래서 어찌할 테냐.”

       “잠시 기다려 줄 수 있겠나? 제자를 굴리는 중이라서 말이다.”

       “뭐어. 그거야 어렵잖지.”

       

       어차피 바루가 회포를 풀 때까지 시간을 보낼 셈이었으니 말이다.

       

       “아. 그 전에 잠시 저 녀석과 대화를 좀 해도 되겠나?”

       “마음대로 해라.”

       

       허락을 구하고서 저 멀리로 날아간 한서우의 근처로 이동했다.

       

       녀석은 시체마냥 널부러져서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슬쩍 살기로 짓눌러 주었더니 허리를 튕기며 몸을 일으켰다.

       

       “죄송합니다! 스승!… 화령님?”

       “그래. 나다.”

       “실례했습니다.”

       

       녀석은 저 멀리에서 얌전히 곰방대를 피우고 있는 백화령을 확인하고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태까지의 수련이 상당히 고되었던 모양이야.

       

       “무슨 일이신가요?”

       “네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말이다.”

       “부탁이요?”

       “그래. 한 사람과 아피스에서 대결을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이 한 사람이라는 것은 바루다.

       

       아피스에 푹 빠져 온갖 사람들을 박살내고 다니던 그녀는 최근 지루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상대들이 더럽게 약했기 때문에.

       

       어쩌겠는가. 그 곳에 머무르는 이들은 대부분 투쟁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이다. 바루가 만족할 수준의 무인을 찾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니.

       

       우연에 기댈 바에야 그냥 한서우 수준의 무인을 데려다 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

       

       “어렵지 않은 일이죠. 언제 할까요?”

       “네 일정에 맞추어라. 이 쪽은 별 상관 없으니.”

       

       좋아. 이로써 바루의 상대도 구했구나.

       

       만족스러워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으려니 한서우가 마침 잘 됐다는 이야기와 함께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원래는 따로 연락드릴 생각이었는데 마침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지금 말씀 드리는 게 낫겠죠.”

       “백화령에게 구르는 걸 미루기 위해서라도 대화가 간절한 것이 아니라?”

       “…제 부탁은요.”

       

       부정하지는 못하는 것이 성실하구나. 웃음을 흘리는 내 모습이 얼굴이 벌게진 한서우는 헛기침을 내뱉은 후에 말을 이었다.

       

       “혹시 이벤트 매치에서 프로게이머와 대전해주실 생각 없으신가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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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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