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88

       

       

       

       —뀌오오오오!

       

       정글을 내달리는 한마리 짐승. 아니, 그것은 그냥 짐승이 아니라 멧돼지와 물소, 하마를 뒤섞어 두 배로 키운 듯한 중대형 마수였다. 

       

       그 육중한 짐승의 몸에는 투창이며 화살이 여럿 꽂혀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두꺼운 가죽에 생채기만 났다는 듯이 짐승은 땅을 울리며 수풀을 헤치고 나뭇가지를 부수며 맹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사냥꾼들. 

       

       『저쪽으로 간다!』

       『오른쪽! 오른쪽으로!』

       『왔다! 당겨!』

       

       동료들의 신호에 맞춰, 나무 위에 있던 사냥꾼 한 명이 덩쿨을 꼬아 만든 밧줄을 당겼다. 짐승은 눈 앞에 튀어나온 그물에 걸려버렸고, 그물을 던진 사람은 투창을 내리꽂았다. 창과 그물의 아미야리였다.

       

       —뀌에에엑!

       

       『우라아앗!』

       

       짐승이 그물에 걸린 틈을 타, 뒤에서부터 근육질의 사내가 도끼를 들고 달라붙었다. 하지만 힘 좋은 오오노는, 짐승이 크게 몸을 뒤트는 바람에 마치 차에 치이듯 튕겨져나가 정글나무에 쳐박히고 말았다. 

       

       『우악!』 

       

       짐승은 덩치답지 않게 몸을 기민하게 놀려 그물의 속박에서 벗어나서는, 사냥꾼들로부터 다시 도주하기 시작했다. 활 잘 쏘는 야우마가 수풀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화살을 날렸지만, 짐승의 돌진을 멈출 수는 없었다.

       

       『크악! 놓쳤다! 물새바위 쪽으로 간다!』

       『원래부터 그쪽으로 몰아갈 셈이었으니 괜찮다! 그쪽에는—』

       

       촘촘하게 뒤틀린 나무를 꺾고 땅을 뒤흔드며 거구의 중대형 마수가 달려가는 전방에는, 나무들 사이로 높다란 바위 하나가 우뚝 세워져 있었다. 

       

       물론, 사냥꾼들은 눈에 띄는 바위가 있는 방향으로 짐승을 몰았지만, 짐승이 바위에 머리를 박고 죽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바위 위에는, 구석으로 몰린 짐승을 마무리지을 누군가가 서 있었으니까.

       

       거친 천으로 짠 옷과 가죽 망토 틈으로, 조금 그슬리긴 했지만 다른 사냥꾼들에 비하면 흰 얼굴과 피부가 드러났다.

       

       죄수복과 교복, 고무타이즈수트는 진작에 벗었다. 이 무덥고 습한 정글에서 그런 갑갑한 옷은 체력만 깎아먹을 뿐. 

       

       청년과 소년 중간쯤의 그 누군가는, 짐승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손에 든 금속 칼이 햇빛을 받아 번뜩였고, 짐승도 순간적으로 그것을 보았지만, 

       

       보았다고 해서 피할 시간은 없었다.

       

       —푸욱!

       

       나는 공중에서 낙하하는 그대로, 칼날을 마수의 정수리에 박아넣었다. 

       

       —뀌에에에엑!

       

       관성에 의해 몇 걸음 힘없이 걷던 짐승은 육중한 소리와 함께 옆으로 쓰러졌고, 그와 동시에 멀리 뒤쪽에서 환호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인! 천인! 천인! 천인!』 

       

       후우. 또 한건 했네. 나는 칼을 공중에 휘둘러 칼날에 맺힌 피를 흩뿌리고, 치렁거리는 천옷에 문질러 닦은 뒤 납도했다.

       

       사실 내가 한 건 별로 없었다. 애초에 중대형 마수라고는 해도 육식이 아닌 초식 마수니만큼 그리 위험한 것도 아니고. 

       

       다만 사람에게 달려드는 놈이라면 모를까, 도망치려는 놈은 이렇게 여럿이서 몰이사냥을 해야 사냥할 수 있는 것이고, 몰이사냥은 필연적으로 몰이의 마지막에 막타를 꽂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것을 내가 자처한 것 뿐.

       

       막타는 역시 나처럼 확실한 한 방을 꽂을 수 있는……

       

       —뀌이이……!

       

       쓰러진 채 부들부들 떨던 짐승이 벌떡 일어났다. 

       

       “어, 씨발 뭐야.”

       

       당황한 나머지 소중한 우리말 욕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튀어나오고, 반사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대며 발도하려는데,

       

       『위험해요!』

       

       갈색 피부의 또래 여자아이, 모리꼬가 내 뒤에서 슥 나타나더니, 청동검으로 짐승의 가슴께를 깊숙히 찔렀다. 짐승이 다시 쓰러져 미동도 없어진 것을 확인한 모리꼬는 나에게 말했다.

        

       『이 녀석은 심장 옆에도 뇌가 하나 더 있어서, 이곳도 찔러야 해요.』

        

       장애물이 많은 정글 지형에서는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소뇌가 두 개인 마수가 종종 있었다. 정글 지형의 마수를 오랜만에 사냥해봐서 잠깐 까먹었었네. 이래서 사냥꾼은 사냥을 자주 해야 해. 

       

       『고맙다. 이건 네가 잡은 걸로 하자.』

       『키힛! 그럴 수는 없죠. 시라바야시 천인은 다음 부족장이 될 몸이잖아요? 부족장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죠.』

       『아니, 나는 부족장 그런 거 안 한다니까.』 

       『하지만 천인이라도, 부족의 전통을—』

       

       그 즈음, 뒤에서 사냥감을 몰던 다른 사냥꾼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하나둘 몰려왔다.

       

       『역시 천인! 이 커다란 부타카바를 한 번에……!』

       『이렇게 큰 놈을 사냥한 건 오랜만이지! 그동안은 힘들었는데……』

       

       몇몇은 각성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중대형 마수를 사냥하기란 쉽지 않은 일. 

       

       덩치 큰 오오노는 아까 마수의 몸에 맞고 튕겨나가서 나무에 쳐박혔던 것은 개의치 않고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 정도면 마을 사람들이 실컷 먹겠는걸! 오늘 밤에는 잔치를 벌여도 되겠어!』

       『그러게 말이야! 모리꼬! 부족장님께 건의해서……』

       

       

       

       ***

       

       

       

       그날 밤. 부락의 한가운데  넓은 공터에 수많은 부족민들이 넓게 둘러앉았고, 높은 장작불이 피어올랐다. 잔치가 열린 것이다. 

       

       마수의 것이라고는 해도 식용 가능한 고기가 있다. 

       이계 식물의 과일을 발효시킨 것이라고는 해도 술이 있다. 

       북과 피리의 원시적인 것이라고는 해도 음악이 있다.

       

       고기도 있고 술도 있고 음악도 있고, 취기에 들뜬 사람들이 있다. 노래하는 사람이 있고, 춤추는 사람이 있다. 

       

       간만에 큰 사냥감을 잡았으니 배불리 먹고 마시는 것은 당연지사. 길게 이어진 잔치는 부족장과 마을 어른들이 먼저 자리를 비우고, 높은 장작불도 사그라드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좋네.’

       

       나는, 아까 사냥에 나갔던 젊은 축들이 마수를 사냥했던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땀흘려 사냥하고, 또 그것을 모두와 나누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이것이 본래 인류에게 맞는 생활방식이 아닐까? 이기적이고 번잡한 문명세계야말로 이상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곳에서의 삶도 그리 나쁘지는—

       

       ‘……아니, 잠깐. 이게 아니지.’

       

       나는 이상한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부족민들과 부대끼며 산지 벌써 며칠 째. 정보를 얻기 위해 자처해서 부족민들과 사냥도 하고 어울려 지내던 것이, 수렵채집인으로서의 삶이 너무 보람찬 탓에 원래의 목적을 잊을 뻔 했다.

       

       ‘이게 아니지! 정신 차려, 백철연!’

       

       나는 두 손을 들어 내 뺨을 쳤다. 부족민들의 삶에 녹아들려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과몰입해서야 완전히 주객전도다. 이러다가 마음 속까지 원주민이 되어버려요……! 

       

       ‘……잠이나 자자.’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생각해야지. 어차피 슬슬 잔치도 파했고, 다들 자리를 떠나 각자의 움막으로 자러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움막으로 향했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움막은 다른 부족민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움막이었다. 

       

       땅을 판 둘레로 흙과 나무를 이용해 야트막한 벽을 세워 지푸라기 지붕을 얹었으며, 바닥에는 지푸라기를 깔고 가운데에는 난방과 취사를 위한 화덕이 있는, 그런 허름한 움막. 

       

       내가 움막에 들어가서 막 누우려고 할 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라바야시 천인—?』

       

       목소리의 주인은 문 역할을 하는 거적데기를 들추고 내 움막 안으로 동의도 없이 들어왔다. 낮에 함께 사냥을 나갔던 내 또래의 소녀, 모리꼬였다.

       

       『시라바야시 천인은 왜 이런 움막에서 지내요?’천인의 거처’에서 지내도 될텐데.』 

       

       모리꼬의 말마따나, 수감자는 자신이 지내고 있는 ‘천인의 거처’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었다. 얼기설기 지었지만 일본풍으로 그럴듯하게 건축된 그 집 말이다. 

       

       하지만 나는 거절하고 빈 움막에 거처를 정했던 것이다. 

       

       『난 여기가 편해.』 

       『키힛! 하지만 차기 부족장인데, 천인의 거처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아요?』

       『계속 얘기했지만 나는 부족장 안 어울려. 너나 해.』 

       

       수감자의 손녀 모리꼬는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차기 부족장으로 확실시되던 아이였다. 어차피 나는 이곳을 나갈테니 부족장은 얘가 하는게 맞겟지. 

       

       『너, 수감…… 부족장의 손녀라며? 직계 후손이잖아? 네가 하는게 맞지 않아?』

       

       내가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모리꼬는 내 옆에 다가와 앉아,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제 할아버지로부터 못 들으셨어요? 천인이 없다면 천인의 직계 후손이 부족장을 맡지만, 새로 내려온 천인이 있다면 그 천인이 부족장을 맡는 것이 오랜 전통이에요.』

       『그놈의 전통. 얼마나 오랜 전통인데.』

       『선조의 선조, 조상의 조상, 태초의 천인이 이 땅에 떨어졌을 때부터…… 수천, 수백 년은 된 전통이죠.』

       

       ‘미친. 겁나 오래됐네.’

       

       바깥 세계에서는 고작 몇 년이라도 이곳에서는 수천 년이다. 스케일 어지럽네. 

       

       아무튼 그놈의 전통에 의하면 나는 차기 부족장 확정이었기에 천인의 거처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 시험을 완수하고 탈출해야 하는 나로서는 수감자를 그리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도 시라바야시 천인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어요.』 

       

       수감자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라. 그러니까 더더욱 안 되는 거야. 

       

       ‘수감자와 함께 지내기엔 껄끄러워서 말이지.’

       

       수감자가 못미덥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동아공영회 를 배신했고, 비밀 정보를 미국에게 넘겨주다가 잡혀왔다고 했다. 사실, 나로서야 참 믿을만한 사람이지. 그리고 수감자는 나를, 이 부족을 이끌 부족장 자리의 후계자 쯤으로 생각하는지 굉장히 호의적이기도 했다.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수감자는 한때 대동아공영회에 반기를 들었을지언정 이곳에 잡혀온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조차 완전히 자포자기하고 부족장 노릇에 안주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되면 안 되지.’

       

       당연하지만 나는 원시부족 부족장 자리 따위를 물려받을 마음은 없었다. 그러니 수감자와 가까이 붙어있어봤자 후계자 교육이나 받을 것 같아서, 일부러 어느정도 거리를 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차피 수감자를 죽여야 해.’

       

       내가 원하느냐 마느냐와는 별도로, 그것이 이 시험의 정답이리라. 설령 그를 죽이지 않고 넘어가더라도, 이곳의 부족장이 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난 여기서 탈출해야 하니까.

       

       『아무튼 안 돼.』

       『아무리 천인이라고 해도 전통을 따라야 하는데도요? 천인이 부족장을 맡는 것. 그것이 전통이에요.』 

       『또 설득할 셈이야?』 

       『설득할 필요도 없어요. 결국 그렇게 될 테니까.』 

       

       모리꼬는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몸을 확 기울였다. 

       

       헐렁하게 걸쳐진 천쪼가리가 아슬아슬하게 흘러내리고, 건강하게 그슬린 탄력적인 갈색 피부에서는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나는 체취가, 

       

       『그리고 천인이 부족장을 맡으면,』

       

       입에서는 달큰한 과실주 향이 물씬 풍겨왔다. 그렇게 얼굴이 맞닿을만한 거리에서, 모리꼬가 입술을 열었다. 

       

       『선대 천인의 직계 후손이 그 아이를 낳는 것이…… 부족의 전통이에요.』 

       

       뭣.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