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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9

        

         

       한국 곳곳이 훈훈한 분위기로 물들 때, 훈훈하다 못해 화끈하게 불타오르는 분위기로 물든 곳이 있었다.

         

       바로 일본이었다.

         

       “허허허허. 일본 천하를 다스리시는 위대한 황제, 천황폐하를 배알하나이다.”

         

       일본은 난리가 났다.

       일본에는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K팝이나 드라마 같은 것에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았고, 넷 우익(ネット右翼)처럼 부정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방영한 특집 방송 내용이 일본에 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풀린 영상은 순식간에 동영상 사이트를 매개로 인터넷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기사를 쓸 것이 없나 돌아다니고 있던 기자들은 그 특종 거리를 덥석 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으며, 방송국에서는 후다닥 판넬을 만들어서 특집 방송을 소재로 사용했다.

         

       그렇게 특집 방송에 대한 것은 순식간에 퍼졌다.

         

       물론 퍼진 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방송 내용이 내용인지라 여론을 조금만 만져준다면 손해는 없고 이득만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방송을 보고 과격한 의견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힘을 조금 실어주기만 한다면, 보통 국가로 돌아가기 위한 움직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격한 이들은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서라도 그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라고, ‘저 물건은 일본의 자존심이니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한다.’라며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으며, 일반인들은 ‘굳이 과격한 수단 필요 없이 그냥 돈이나 좀 쥐여주고 가져오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저 주물을 그냥 저기다가 내버려 두자.’는 의견이 없다는 것이다.

         

       과격한 이들도, 과격하지 않은 이들도 저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민의(民意).

         

       천황보다도, 정치인보다도, 법보다도 위에 있는 의지.

       국민의 하나 된 의견.

         

       저 민의에 탑승하기만 한다면, 저 민의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만 틀기만 한다면, 저 민의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하여 자신의 방법대로 수단을 쓸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권력과 명성을 얻는 것은 물론이요, 다시 한번 역사에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달콤한 과실인가!

       이 얼마나 행복한 미래인가!

         

       무지개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미래이자, 조금만 손을 뻗으면 딸 수 있을 것 같은 향긋한 과실이라니!

         

       정치인들은 이 흐름을 기꺼워했으며, 기꺼이 이 흐름에 탑승하기를 갈망하였다.

         

       그리고 이는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마찬가지, 였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정말로, 정말로 빌어먹게도 안타깝게도.

         

       “소신이 참으로 황망하고 참담한 이야기를 들어 발걸음을 재촉하여 이곳으로 왔나이다.”

         

       과거형이었다.

         

       천황과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를 듣지만 않았어도 다른 정치인들처럼 꿈에 젖어 있었을 텐데.

       그 이야기만 듣지 않았더라도 이 민의를 어떻게 이용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을 텐데.

         

       총리는 공손하게 말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더없이 공손해 보임에도 왠지 모르게 분노와 증오가 그의 태도에서 배어 나오고 있었으며, 평소와는 미묘한 자세의 차이가 천황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었다.

         

       “그 이야기가 너무나 허황하고 불경한지라 귀를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사오나, 허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실재하는 증거를 갖추고 있던 데다가 정황이 맞아떨어져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사오니, 폐하께서는 부디 저에게 옥음을 내려주시옵소서.”

         

       총리는 공손하게, 하지만 곳곳에 악센트를 주어서 ‘지금 내 이야기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 내 심기가 지금 불편하니까 숨기려고 하지 말고 전부 다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라는 뜻을 천황에게 넌지시 보내고 있었다.

         

       교토 출신 가문을 외가로 둔 사람다운, 참으로 훌륭한 신경을 건드리는 기술이었다.

         

       “이보시오 총리. 어찌 불경하게 기별도 넣지 않고 달려와서 추궁하듯 말한단 말인가. 짐은 천황이며 이 나라의 상징이며, 하늘이 권한을 내려 이 나라를 다스리도록 한 적법한 지배자이거늘. 한낱 신하가 어찌 일국의 지존에게 이리 불경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천하의 역사를 뒤져보아도 이러한 무례는 쉬이 찾기 어려울 것이니라.”

         

       그리고 천황은 이러한 총리의 공격에 간단하게 대응했다.

         

       천황이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대충 깔아뭉개는 것.

       아무리 천황이라는 자리가 권력은 사라지고 상징으로서의 가치밖에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천황은 황제이고 총리는 명목상 신하에 불과하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하가 군주에게 따지는 것은 무례에 속하는 것.

         

       즉, 천황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아 네가 말하는 건 별로 대답해주고 싶지 않고 기분 나빠졌으니까 사라져.’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총리라는 인간은 그런 말에 쉽게 물러나는 족속이 아니었다.

         

       “역사에서 이르기를 충신은 목을 걸고 직언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폐하께서는 부디 쓰더라도 제 직언을 들어주시옵소서. 나라를 위하여 구국의 결단을 내리사, 옥음으로 가슴 속에 품으신 진실을 내리소서!”

         

       총리는 되려 천황의 타박을 이용해서 자신을 ‘충신’으로 포장하였고, 해명을 하는 것을 충신의 말을 듣고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포장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것을 ‘나라보다는 제 안위 하나를 더 중요시하는 옹졸한 모습’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서 말을 하라고 압박을 넣었다.

         

       “크흠.”

         

       이 세련된 방법에 천황은 당황했고, 총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실전에서 단련된 정치적 능력을 한껏 발휘하였고, 온갖 정치적 수사와 악마의 혀를 이용해서 속삭이는 듯한 회유와 압박을 사용했다. 당연하게도 정치가 생활화되기는 하였으나 온실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천황은 야생에서 단련된 총리의 정치적 능력을 당해낼 수 없었고, 결국에는 입을 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크흠, 총리가 이리 닦달을 하니 말을 할 수밖에 없겠구려.”

         

       물론 ‘내가 원해서 입을 여는 게 아니라 네가 압박을 줘서 말을 하는 거다. 이 역신놈아.’라는 뜻을 담은 말을 던지면서 심기가 불편함을 알리기는 했지만, 총리는 그러한 천황의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권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천황을 두려워한다면 그게 총리인가?

       그냥 갓 정치권에 입문한 의원이지.

         

       “내 얼마 전 모종의 경로로 서신을 얻게 되었소. 그 서신에는 참으로 황당하게도, 화족이 주물을 빼앗아 오기 위해 한국에 능력자들을 보냈다가 잡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천황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총리에게 불편함을 표시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때 분노와 황당함이 엄습해왔던 그때의 일을 말이다.

         

       그렇게 천황은 천천히 총리에게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해주었고, 묘사한 뒤 천천히 총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허허허.”

         

       총리는 웃고 있었다.

       다만 그 웃음은 칼이라도 품고 있는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장인에게서 배운 교토식 화법을 섞어서.

         

       “이거 제 일에 신경을 쓰느라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거 참으로 황망한 일이 아닐 수가 없겠군요.”

         

       그냥 들어보면 크게 문제가 없는 말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고, 그 사건 때문에 어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음습한 뜻을 말에다가 심고 돌려서 말하는 것으로 유명한 교토식 화법이라고 생각한다면, 저 말은 다르게 다가온다.

         

       『 나 모르게 그딴 짓을 벌였다고? 제정신인지? 너무 멍청해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감이 오지를 않는다. 』

         

       비난.

       명백한 비난이다.

         

       천황은 총리의 집안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며, 교토 출신 가문의 장인을 두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사나운 얼굴에 정도 이상으로 공손해서 되려 불편함까지 느끼게 하는 저 화법이 교토식 화법이라는 것 역시도 잘 알 수 있었다.

         

       꿈틀.

         

       그리고 지금 저 총리가 자신에게 비난을 하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천황은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얼굴 근육을 움찔거렸다.

         

       ‘이 빌어먹을 역신(逆臣)놈이….’

         

       하지만 심기가 불편해도 할 말은 없었다.

       일단 그가 이 일에 더럽게 얽혀있는 것도 사실이었고, 이 일이 총리에게 정치적으로 공격당할 수 있는 빌미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실권 역시 총리가 더 강했으며, 권력 역시 총리가 더 강했다.

         

       무엇 하나 그에게 유리한 것이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입을 다물 수 밖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나이다.”

         

       총리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천황은 지금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이며, 그저 얻어터질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말이다.

         

       『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진짜 아득히 멍청하면 상식을 뛰어넘는 일도 벌일 수가 있는 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그렇기에 총리는 마음껏 말을 내뱉어서 천황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게다가 옥음으로 들은 편지의 내용은…. 감히 소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 그리고 편지 내용은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그렇지, 그 정도 일을 제멋대로 한다고? 네가 지시해서 해놓고 지금 발 빼는 거 아니냐?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말이 안 된다. 』

         

       “물론 황실에 대한 충심으로 행한 것임은 분명하기는 하나 그 수단이 잘못된바, 그들에게는 마땅히 처벌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 아 물론 내가 딱히 할 말은 없지. 네가 빠져나가겠다는데 뭐 어쩌겠어? 어차피 네가 빠져나가지 않으면 일 더 복잡해지니까 그 녀석들 꼬리 자르고, 벌주는 것으로 끝내자고. 』

         

       “또한 그들의 과이기는 하나 그들이 보낸 이들 역시 신민이니, 마땅히 그들을 위하여 움직임을 보일 필요 또한 있을 것입니다. 소신, 폐하의 애민(愛民)의 뜻 아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옵니다.”

         

       『 그리고 한국 갔다가 실종된 놈들은 그냥 내버려 두고 싶기는 한데, 한국한테 약점 잡히는 게 더 골치니까 구하기는 해야겠다. 그런데 댁이 나설 생각 하지 말고, 내가 다 할 테니까 그냥 보고만 있어라. 어차피 발 빼고 꼬리 자르는 거 그냥 멀리서 지켜만 보라고. 』

         

       총리는 그렇게 공손한 태도와 말로, 하지만 그 안에는 비할 데 없는 불경함을 심어서 천황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리곤 이번 일에 대하여 회의해야겠다는 핑계를 대며 그대로 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총리가 사라진 뒤….

         

       휘익!

       쨍그랑!

         

       천황은 컵을 벽에다가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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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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