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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89

    <389 – 극악무도한 유희>

     

    “이런 건 이상합니다. 어째서 인류의 영웅들이 서로의 목숨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도비가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좌중의 모두가 시선을 뿌렸다.

    그 기세만으로도 도비는 자신을 감싼 마나역장이 형편없이 찌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모두의 표정에 깃든 감정은 억울함과 원통함, 그리고 그보다 더한 짜증과 분노였다.

     

    “그래서. 우리가 자폭하지 않으면 뭐가 달라지지?”

    “그야 생명의 소중함이!”

    “그 소중한 생명들이 벌레처럼 죽어나가면서 저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달이 되었어. 별은 피와 죽음의 땅으로 변했고. 그런데서 우리만 살아남는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윽…”

    “애초에 너처럼 약한 녀석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고작 너 같은 존재에게 어째서 귀한 마나를 낭비하는지도 모르겠어. 차라리 네가 미끼가 되는 편이 인류를 위해 낫지 않겠어?”

     

    날이 선 지적에는 인류 최후의 결사대로서의 자부심도, 영웅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울분에 차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재능이 많고 뛰어나다고 한들, 그 비범함을 뽐낼 기회조차 남지 못하고 문명이 멸망한 뒤에는 하등 쓸모가 없다.

    모두가 삶의 의미를 잃고 죽을 자리를 찾는 시대.

    그런 시대가 와버린 것이다.

     

    “…”

     

    도비는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감히 평할 수 없었다.

    이들의 대장 격인 2m30cm의 거한에게 그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성토할 수도 없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그것이 종말이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결사대원의 지적은 옳았다.

    그는 아무 쓸모도 없는 목숨이다.

    인명을 경시하며 최후의 돌격을 위한 자원처럼 소모하는 결사대장이 어째서 자신처럼 하등한 약자에게 귀한 자원을 나누어줬을까?

     

    “왜 저입니까?”

     

    산의 정상에 올라선 뒤.

    결사대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최강의 대장.

    최약의 도비.

    어쩌면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블러디스폰 한 마리조차 격퇴하는데 손을 보태지 못한 걸림돌 따위, 결사대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스펙도 자격도 없으니까.

    그런 도비의 물음을 건방지다 여기며 탓할 법도 하건만 거한은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신규 퀘스트.”

    “?”

    “새로운 떡밥이 등장했으니까.”

     

    남자는 무심히 말했다.

     

    “아카데미 1학년 복장. 능력은 저조. 트리거만 알아낸다면 시간이동도 가능하리라 추정. 이런 괴이한 녀석을 넘어가면 플레이어가 아니지.”

    “플레이어…?”

    “이 세계의 유희를 오롯이 즐길 존재라는 뜻이다.”

     

    도비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유희라니.

    그건 드래곤이나 즐기는 거잖아.

    그럼 이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 드래곤이란 말인가?

     

    ‘오히려 그럴법해.’

     

    이제야 납득이 가는 구석도 있다.

    인간치고는 지나치게 큰 덩치.

    심상치 않은 분위기.

    인간의 목숨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태도.

    정말로 인간을 하등생물 취급하는 드래곤이라면 모든 이상함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물린다.

     

    “꼭 이 방식이어야만 했습니까?”

     

    그래서 더 억울했다.

    드래곤이라면 지상최강의 생명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도 훨씬 넓을 것이 아닌가.

    그런 강자가 대체 왜.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닐진대.

    굳이 자신의 유희를 함께 보낸 이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잔인한 작전을 세운단 말인가.

     

    “능력은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이미 해피엔딩이 끝나버린 세계에 더는 미련 따위도 없어. 그러니 딜계수를 극한으로 올리는 거다.”

    “딜계수…?”

    “강한 동료 한 명이 죽을 때마다 우정과 분노의 힘으로 데미지를 올리는 형편 좋은 기능보정의 힘이지. 일정스택 이상을 쌓으면 보스전에서 패턴을 밀어버리는 아주 유익한 기능이다.”

    “역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단 말입니까?”

    “마음만 먹으면 못할 건 없지. 하지만 한방캐릭이 아니라면 컨셉도 지키지 못하는 캐릭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일격필살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

     

    그가 스스로의 뜻을 드러내었을 때, 비로소 그의 정체성이 펼쳐졌다.

    너무나도 무성의한, 인간의 이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용의 장난처럼 붙여진 이름.

     

    ‘거짓이다. 거짓이 아니더라도 거짓이어야만 해.’

     

    저런 무성의한 자에게 처음부터 이 세계를 향한 애정 따위가 있었을 리가 없다.

    세계의 명운이 저런 존재에게 걸린 시점에서 이 세계는 이미 끝장이다.

     

    “난 당신을 인정할 수 없어.”

    “인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거지?”

    “반복할거야. 그리고 찾아내고 말겠어. 당신의 결심을 뒤바꿀 무언가를.”

     

    도비는 자신의 의지로 마나역장을 해제했다.

    끓어오르는 피가 기화하여 체내에서 빠져나가는 비참한 말로를 남자는 말리지 않았다.

     

     

    * * *

     

     

    “어차피 죽기 전에 살면서 가장 후회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북부대공 아이린은 세계도 제 삶도 끝나가는 마당에 지켜야 할 비밀이 어디에 있겠냐며 시원스럽게 들려주었다.

     

    “빙결마법으로 사람을 죽인 과거를 후회해. 강한 마법으로 강력한 마족을 해치우겠다는 다짐 하에 스승님이 정한 한도를 넘어선 마나를 모은 것이 화근이었어. 무의식중에 넘쳐흐른 마나가 냉기마법으로 구현되어 내게 다가오던 병사를 얼려 죽였지.”

     

    제국황제 야요이는 수심이 드리운 얼굴로 괴로웠던 과거의 기억을 들춰내었다.

     

    “친밀한 가족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황위계승권을 두고 다투던 경쟁자들의 죽음은 도리어 제게 큰 상심을 남겨두었죠. 저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고 있었으니까요. 막을 수 있었을 죽음을 외면했던 순간이 가장 후회스럽답니다.”

     

    초신속의 록펠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검집에 묶인 머리띠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뭔데 남의 과거를 알려 드는 거지?”

    “아니, 어차피 죽을 때 다 됐는데 선심 써서 알려줄 수도…”

     

    세상이 갈라진다.

    서걱, 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발검에 목이 베였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몸이 무너진 뒤였다.

     

     

    * * *

     

     

    록펠을 설득할 방법을 간신히 찾았다.

    머리띠의 주인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었다.

     

    “도로시. 그녀를 지켜내지 못한 것이겠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무를 연마했는데 내 눈이 닿지도 않는 곳에서 그녀가 죽었으니까.”

     

    천음의 만델라는 귀족스러운 당찬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오옷~~홋호호호! 후회란 어제를 충실하게 보내지 못한 낙제생이 품는 것. 참된 귀족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감정이어요!”

     

    그밖에 결사대원들의 후회를 들으며 도비는 준비가 끝났음을 깨달았다.

     

    “해묵은 과거를 파헤치는 이유가 뭐냐.”

    “시간여행자 흉내나 좀 하려고요.”

    “뭐? 시간여행자라니, 그게 무슨 엉뚱한…!?”

     

    도비는 자신의 의지로 마나장막을 해제했다.

    이번에도 육신은 빠르게 미라가 되어 허물어졌다.

     

     

    * * *

     

     

    “나는 과거의 당신들이 보낸 시간여행자다. 그 증거로 너희가 가장 후회하던 순간을 알고 있다. 우선 아이린, 당신은 과도하게 축적한 마나의 강제마법발현현상으로 인한 병사의 죽음을 후회하지.”

    “!?”

    “제국황제 야요이, 당신은 황태자와 제2황녀의 죽음을 슬퍼했고.”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제 본심을 어떻게… 저, 정말로 과거의 제가 당신을…?”

    “그럼 내 과거에 대해서도 말해봐라.”

    “록펠. 어, 그러니까… 뭐였더라?”

     

    너무 많은 과거를 들어서 잠깐 과거가 헷갈린 도비가 말을 절었다.

    록펠은 주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수상한 녀석은 살려둘 수 없다.”

    “진짜 까먹었는데…”

     

    원통한 한 마디와 함께 눈이 감겼다.

     

     

    * * *

     

     

    “록펠 당신은 고향숲에 두고 온 도로시라는 연인의 위기를 곁에서 지켜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다.”

    “정말이군. 믿겠다.”

     

    몇 번이고 실수와 까먹음을 견뎌가면서 시간을 반복한 도비.

    모두에 대한 설득력을 얻게 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대장의 지시를 거부하도록 모두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해병대장의 계획은 잘못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암울할지언정 여러분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블러디 슈퍼 문을 파괴하려면 신정산을 올라야하고 산을 오르려면 자폭으로 초대형 블러디스폰을 소멸시켜야 하는데.”

    “모두가 힘을 합치면 가능합니다. 꼭 한 방에 속전속결로 해치우지 않아도 서로가 위험을 나누어 분담하는 겁니다.”

     

    드래곤의 유희체, 약칭 <근력해병>은 이상하리만치 모든 전투에서 한방을 중시했다.

    그가 데려온 결사대원들 또한 일격에 특화된 빌드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언뜻 보기에는 효율적으로 보이는 구성이 실제로는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몇 번을 관찰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한 방에 무리하지 않아도 두 번 세 번 몰아붙이면, 서로 힘을 합쳐서 부족한 호흡과 틈을 메우는 합공을 펼치면 훨씬 수월하게 전진할 수 있잖아.’

     

    힘이 없기에 잔머리가 필요한 하급반 학생다운 기초적인 깨달음이었다.

    재능이 넘치기에 잔머리가 필요하지 않은 이들은 의식적으로 따라하지 않았던 깨달음이었다.

     

    “그건 곤란한데.”

     

    근력해병은 사납게 눈을 치뜨며 도비를 노려보았다.

     

    “컨셉은 지켜져야 한다. 예외는 없어.”

    “당신의 놀이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런가. 너는 다른 모두의 부탁을 받고 미래로 온 DLC 컨텐츠의 시간여행자일지는 몰라도 내 부탁을 받고 찾아오지는 않았나보군. 하긴 NPC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어차피 유희를 하는 동안 이런이런 제약을 두고 즐기겠다, 같은 시답잖은 이유가 있겠지.

    도비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여기 있는 모두는 제약을 두었다. 모든 적을 일격에 격퇴할 테니 힘을 얻겠다고.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 영구적으로 능력치의 반을 잃겠다고.”

    “!?”

     

    제약은 있었다.

    그러나 시답잖은 유희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격이 허용되지 않는 순간, 강적에게 자폭해야 한다. 어차피 반으로 감소할 전력, 최대의 가치로 최대의 화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발을 뺄 수 없는 제약을 강제로 두게 만든 극악무도한 유희 때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레이어의 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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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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