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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프란체는 에덴의 집무실 앞에 섰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후우.”

         

       심호흡하자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던 심장이 안정되었다.

         

       ‘좋아.’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비장한 눈빛으로 문을 두들겼다.

         

       “소 공작님. 프란체입니다.”

         

       덜컥.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공작가의 여러 업무를 분담해 맡고 있는 에덴. 그는 힐끗 프란체를 쳐다볼 뿐, 딱히 하는 말은 없었다.

         

       “혼처를 결정했기에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프란체의 말을 듣고, 에덴은 그제야 고개를 올려서 프란체를 바라봤다.

         

       “어디 가문이냐.”

       “프라이덴 후작가입니다.”

       “…프라이덴 후작가라.”

         

       탁. 에덴은 손에 들린 만년필을 놓고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앉아라.”

       “네.”

         

       프란체의 20년 인생 중, 처음으로 둘이 마주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서로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프라이덴 후작가를 고른 이유는?”

       “가문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가문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에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명단에 있는 귀족들은 데카르트의 위신을 떨어트리지 않는 가문일 뿐이지, 우리 가문에 도움이 되는 자들이 아니다.”

         

       사실이었다. 프라이덴 후작령이 관리가 잘되어 부유한 곳은 맞다. 나쁘지 않은 평판과 나름 귀족 사이에서 힘이 강한 가문. 그럼에도 제국의 일등공신인 데카르트 공작가의 이름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했다.

         

       에덴은 손가락으로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명심해라, 프란체. 이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아무도 네게 기대하지 않고 바라는 것은 없다. 너는 그저 이 공작가에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거다.”

         

       도저히 가족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 어린 시절의 프란체였더라면 상처를 받았을 테지만, 이제는 익숙해서 아무런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만남을 주선하도록 하지.”

       “날짜는 어떻게 될까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길어야 일주일이겠지.”

         

       에덴의 결정으로 만남은 성사되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프란체는 진의 계획이 정말 잘 흘러갈까에 대한 걱정이 불안감으로 몰려들었다.

         

       기다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명단을 확인하는 에덴. 눈을 얕게 뜨고 잠시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공작령으로 부르는 게 낫겠군. 일의 진행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이만 나가봐도 좋다.”

         

       프란체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에덴은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프란체에게 일절 관심을 주지 않았다. 조용히 명단만 살펴볼 뿐.

         

        “…….”

         

       그렇게 조용히 집무실을 나갔다.

         

       프란체는 뒤늦게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진의 계획이라 늘 하던대로 믿고 받아들이긴 했다만…….

         

       ‘이거 잘못되면 정말 일이 크게 번질 수도 있겠는걸.’

         

       에덴의 주도하에 이뤄진 만남에서 독설을 하고 안 되면 뺨까지 때려서 모욕을 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심하게 무모한 계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프란체가 한 일이 에덴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그냥 끝나지는 않을 거다.

         

       ‘이미 일은 진행됐는데…….’

         

       프란체의 얼굴이 착잡해졌다. 그래도 일단 진을 만나서 상의해보는 게 좋겠지. 그라면 다른 해결 방책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 * *

         

         

       얌전히 테이블에 앉아서 프란체를 기다렸다. 에덴이랑 어떻게 대화는 잘 하고 있으려나?

         

       그러던 그때. 문이 열리며 프란체가 들어왔다. 다소 힘이 실린 빠른 걸음. 얼굴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진. 내가 생각해봤는데,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아.”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프란체는 자리에 앉아 나를 마주 보며 심호흡했다.

         

       “우리가 만들었던 계획 있지? 많이 무모한 거 같아. 소 공작님이 진행한 혼약인데 그렇게 끝내면 나중에 일어날 일이 문제야.”

         

       음.

         

       정론이다. 프란체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했고, 그로 인해 에덴이 직접 진행한 혼약이다. 그런데 과정과 결과가 그의 귀에 들어간다? 이건 프란체가 자신을 모욕했다는 생각할 거다.

         

       프라이덴 후작가의 반발도 생각해야 한다.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주도한 혼약인데 공녀가 그렇게 나온다니, 이건 프라이덴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말이다.

         

       뭐, 어디까지나 이건 최악의 상황. 미리 생각해둔 방법은 있다.

         

       고민이 끝난 나는 프란체에게 말했다.

         

       “그걸 생각해서 마련한 방법이 있습니다.”

       “뭔데?”

       “이유를 상대에게 떠넘기는 겁니다.”

         

       프란체가 눈썹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유를 상대에게 떠넘기라고?”

       “예. 서로가 모욕하는 정당한 싸움으로 만드는 겁니다.”

         

       입술을 오므리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프란체. 고민에 잠긴 듯했다. 이번에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데. 상대방이 나를 모욕하는 걸 어떻게 끌어내려고?”

       “상대방의 약점을 살살 긁는 겁니다. 아, 참고로 너무 노골적으로 하면 이유가 이쪽으로 넘어오니 조심해야 합니다.”

         

       프란체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군.

         

       “아실 프라이덴의 열등감은 무력입니다. 병사 하나 이기지 못할 정도니까요. 비록 후작령 관리에 필요한 내정을 잘한다고 해도 프라이덴은 엄연히 기사 가문입니다.”

         

       프란체가 턱을 어루만졌다.

         

       “…그러니까 그 검 실력으로 살살 긁으라는 소리지?”

         

       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예시를 들어드릴게요. 우선 대화의 시작으로, 공녀님의 취향은 검을 잘 쓰는 남자라고 말하는 겁니다.”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실 프라이덴이 처음으로 자극을 받습니다.”

         

       눈을 얕게 뜬 프란체가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다른 얘기로 빠져서 미안한데,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었니? 다른 귀족이라면 모를까, 네가 알만한 정보는 아닌 거 같은데.”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군. 여기서는 대충 지어내도록 할까.

         

       “예전에 바렌베르크 왕국과 페델리안 제국 사이에서 교류의 장이 열렸을 때 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왕족으로서 참가자들의 특징과 정보를 얻었고요.”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어째 이 세계에 와서 거짓말만 늘어놓는 거 같네.

         

       “하긴, 너는 왕국의 제1 왕자였으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다행히 잘 넘어갔다.

         

       “아무튼. 계획으로 돌아가자면, 검에 관한 얘기로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겁니다. 그럼 이 과정에서 아실 프라이덴의 심기는 계속 불편해질 거고요.”

         

       프란체가 생각에 잠겼다. 그때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쯤에서 제 얘기를 꺼내는 겁니다. 호위기사가 하나 있는데, 그가 검을 무척이나 잘 쓴다고. 그와 한번 검을 맞대는 그림을 보고 싶다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프란체가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구상이 잡혔네. 여기서 아실 프라이덴은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 너와의 대결을 피하겠지. 그럼 그걸 구실로 다시 살살 긁으라는 거 아니야?”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는 말을 이었다.

         

       “거기서 이제 프라이덴의 사람들은 기사 가문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검을 다루는 실력에 자신이 없냐고 말하는 거지.”

         

       그래, 그거야! 나도 모르게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되면 아까부터 살살 긁히던 아실 프라이덴은 결국 폭발할 거고, 대화는 점점 격해질 거야. 여기부터가 관건이네.”

         

       맞다. 아실 프라이덴을 폭발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여기서 싸움으로 번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말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걸 말하는 겁니다. 프라이덴 가문의 사람들은 전부 검을 잘 쓰는 거로 알고 있는데, 프라이덴 영식께서는 검을 못 쓰시는군요. 안타까워라.”

         

       프란체가 과연,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정말 폭발하겠네.”

       “맞습니다. 아실 프라이덴은 동정받는 걸 가장 싫어하니까요.”

       “요컨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서 하자는 거지?”

       “맞습니다.”

         

       아실 프라이덴의 자존감을 건드리고, 형제들과 비교한다. 그리고 값싼 동정을 보인다. 이건 그의 성격상 무조건 싸움을 걸어올 거다.

         

       “이제 여기서 연습했던 독설을 퍼붓는 겁니다. 그럼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혼약이 무산될 거고, 에덴 공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겁니다. 상대가 거절했는데 어쩌겠습니까.”

         

       프란체의 악명을 널리 퍼트리는 것도 무난하게 진행될 거다. 아실 프라이덴은 사교계에서 발이 넓으니 프란체에 대해 온갖 험담을 일삼으며 다니겠지.

         

       “그래. 계획도 수정되었겠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없겠네.”

       “예. 목적이 명확하시다면 난관에 부딪히는 걸 경험해 보셔야 합니다. 그에 대해서 대처하는 법도 익히셔야 하고요.”

         

       프란체의 여러 능력을 키운다. 나중에 내가 사라질 때를 대비해서 그녀가 독립할 수 있도록. 프란체가 말했다.

         

       “네가 있으니 큰 걱정은 없어. 평생 내 곁에 있어 줄 거잖니?”

         

       나는 그냥 옅은 미소만 보여주고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확답을 내리면 프란체를 기만하는 것밖에 안 되기에.

         

       결국, 언젠가는 프란체의 곁에서 떠나야 한다. 그녀와 같이 있으면서 무언가를 느낄 때마다 나는 동기화가 심해진다. 그 결과로 진 바렌베르크의 인격에 먹히기 시작할 거고.

         

       마지막에는 김공략,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다.

         

       ……두려운 건 두려운 거니까.

         

       “후우. 고민을 떨쳐내서 좋네. 불안한 마음이 싹 가셨어.”

       “다행입니다.”

       “다 네가 있어 준 덕분이야.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내 심정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는 프란체.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너는 슬퍼할까? 절망할까?

         

       아마 둘 다겠지. 나는 이미 그녀의 삶에서 큰 축을 담당하게 되었으니까.

         

       그래도 너무 슬퍼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빈자리를 금방 채웠으면 좋겠군.

         

       그 순간.

         

       [플레이어의 몰입도가 상승합니다.]

         

       [동기화가 심화합니다.]

         

       [인물 – 진 바렌베르크]

         

       [그의 기억과 인격을 일부 계승합니다.]

         

       ‘이런.’

         

       이번에도 두통이 오겠군.

         

       찌릿! 송곳으로 머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나는 앞머리 전체를 손으로 짓눌렀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이번으로 몇 번째인가. 이제는 셀 수도 없게 되었군. 다시 돌려라.」

         

       내가 내는 것이 아닌, 진짜 진 바렌베르크의 목소리.

         

       ‘하, 조심한다고 하는 걸 그새…….’

         

       평소보다 더 고요하고,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진의 인격이 들어온 건 확실하다.

         

       내가 계속 머리를 부여잡은 채 미간을 찌푸리자 프란체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 담겨있었다.

         

       “혹시 또 머리가 아프니? 정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야?”

       “큰 문제는 아닙니다. 예전부터 자주 이랬으니까요.”

       “정말 괜찮은 거 맞지?”

         

       프란체가 염려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자주 느끼는 두통이에요.”

       “괜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예. 그냥 기침이 나오는 거랑 같아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걱정이 사라진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프란체.

         

       “아프지 말렴.”

         

       그러던 그때.

         

       ―공녀님. 헬레나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렴.”

         

       문이 열리며 헬레나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니?”

       “공작님께서 부르십니다.”

         

       ……지금까지 프란체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은 공작이 직접 부른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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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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