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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게임의 실행 매개체가 컴퓨터에서 VR로 변환되며, 저격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혹은 그에 맞는 방법으로 진화하였다.

        

        이는 저격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정신승리를 하며 도망칠 수 있는 과거와는 다르게,

        

        이전보다도 진보한 신고 시스템과 그러한 행위를 한 즉시 직접적으로 쏟아지는 인신공격을 저격러들이 받아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저격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익명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면전에 대놓고 침을 뱉고도…즉 저격을 하고도, 뻔뻔스럽게 굴 수 있는 사람들이 간혹 존재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세간에서는, 이런 이들을 미친 사람이라 불렀다.

        

        

        

       “이야, 이거 진짜 재밌네. 이런 방식으로 방송 터뜨려본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하모니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현실의 사람 대신 아바타가 자리했다고는 하지만, 멀쩡하게 움직이는 사람의 앞에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을, 과연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방송을 해오면서 정말 수많고도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해보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체…미친 사람이기에 이럴 수 있는 건지, 저격을 하다가 이상해진 건지.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서든 간에 시간을 벌어야 했다.

        

        

        

       “방송을 터뜨린다고요? 방송 송출이 안 될 텐데, 무슨 수로 따라온….”

        

       “아아, 그걸 들었네. 그냥 그런가보다 해요, 그럼. 스트리머 아니에요? 저격 한두 번 맞아보시나? 대가리 안 돌아가요?”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쓰러졌다는 경고가 떴으니, 신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형태로 설정해둔 건가? 그저 조금씩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상황에 격발기도 꺼내지 못한 시점이었다.

        

        방송을 꺼야 되나? 채팅창의 상황은 안 봐도 뻔할 터였다. 지금 상황을 굳이 송출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니, 다른 생각은 됐다. 이 일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지가 최우선이었다.

        

        격발기를 꺼내야만 했다.

        

        

        

       “…어차피 죽일 거면, 왜 저격하는지 말이나 좀 해봐요. 왜 그러는 거예요?”

        

       “지금 그 반응 보려고요. 그리고 니 방송 보는 시청자들 좆같으라고.”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엄폐하던 벽면에 등을 기댄다. 격발기는 전투 중 눌러지지 않도록 안전클립이 채워진 채 다용도 파우치 안에 들어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는 오른쪽 허벅지에 매달려있기에 은근슬쩍 손을 집어넣어 꺼낼 수도 있었다. 그저 차분히 조여놓은 끈을 풀기만 하면 된다.

        

        

        그러려면 눈 앞의 유저의 시선을 계속해서 분산시켜야만 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적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화제를 던진다.

        

        

        

       “그쯤 하면 됐잖아요. 이미 충분히 기분 더럽거든요?”

        

       “그건 니 생각이고요. 내가 만족해야 끝나는 거예요, 이건. 아직도 머리가 안 돌아가요? 어차피 난 죽든 말든 상관없어요. 팀원이나 헌터 오기 전까지 그쪽 죽이고 도망가면 그만인데.”

        

       “….”

        

       “할 말이 많은 면상이네요. 뭐, 고소라도 하게요? 뭘로? 이런 걸로 고소해봤자 피곤해지는 건 그쪽인데? 나 돈 많아. 항소해서 질질 늘어지고, 합의금 내면 그만이야.”

        

        

        

        바코드 유저가 그 자리에 쪼그리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볼따구를 쥐어잡는다.

        

        과연 이것까지는 참기 힘든 모욕이었으나, 사실 하모니는 그 부분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은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용도 파우치의 끈이 느슨하게 풀려나간다. 팽팽하게 당겨져 그 아무것도 출입할 수 없던 공간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눈 앞의 적이 무어라 떠들든 간에, 그저 정신은 고요하다. 모든 감각과 신경이 손가락 끝에 집중되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나아갈 길이라는 듯.

        

        방송을 하면서, 더 나아가 삶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수위 높은 말들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귓전을 타고 흘러내려 사라진다.

        

        

        

       “하, 재미없네. 방송에서 애들이 뭐라 떠드는지 봤어야 하는데, 컴퓨터로는 1배속 방송밖에 안 보이니 원.”

        

       “…?”

        

       “뭘 그런 눈으로 봐요? 캠 설치해놓고 컴퓨터로 보면 되는 것도 몰라요? 대단하다, 진짜. 그러니까 이렇게 방심하다가 뒤통수 쳐맞지.”

        

        

        

        잘그락.

        

        손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파우치 안으로 집어넣는다.

        

        조금씩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적잖아 2분 이내면 출혈로 인해 사망할 것이라는 내용의 경고가 UI 위를 새빨갛게 메우는 중이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헌터는…일단 자신은 잡지 못했다. 그러면 아직 교전 중인 상황일텐데, 차라리 이때 와줬어야 하지 않나.

        

        참으로 분위기를 못 읽는 적이었다.

        

        

        점점 막바지로 향해가는 느낌이 들어간다.

        

        손놀림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아, 너무 많이 떠들었네. 슬슬 죽이고 도망가야겠다.”

        

       “…하….”

        

        

        

        히죽.

        

        그 순간 희비가 교차하고, 군홧발이 하모니의 팔을 짓밟았다.

        

        

        

       “…아으윽!”

        

       “아니, 이런 짓거리를 꾸미고 계셨어. 안에 수류탄이라도 들어있어요? 같이 폭사라도 하게?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본데, 다 티 나요. 지나가는 모지리도 알겠다.”

        

        

        

        상상 이상으로 비열한 웃음이 남자의 입가에 띄워진다.

        

        최후의 한 방이 방해받은 순간, 여태까지 그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흐르던 분노가 혈관으로 역류한다. 치솟아오르는 격노와 함께 아껴놓은 힘이 손가락을 타고 흐른다.

        

        안전클립을 풀고, 그것을 손아귀에 쥐어야만 했다.

        

        하지만 발목에 실린 힘이 폭증한다.

        

        

        

       “이, 으윽…”

        

       “아이, 안 되지. 진짜로 하게 놔둘 줄 알았나? 안 되겠네, 이젠 진짜로 죽여야겠다.”

        

        

        

        스윽.

        

        총구가 들어올려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에 다다르자, 그 순간 그녀가 보여준 감정은 그 무엇도 아닌 미소였다.

        

        적대적인 저격 유저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왜 그딴 표정으로 쳐다보시나요?”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녀의 시선 끝, 적대적 유저의 택티컬 리그 위.

        

        어디서부터 날아왔는지 모를 적색 레이저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를 겨누고 있었다.

        

        과연 유진인지 헌터인지는 모르겠으나…그녀는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과 함께,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시간을 좀, 너무 잘 끈 것 같아서요.”

        

        

        

       ───!!

        

        

        

        그리고 폭풍이 일었다.

        

        온 몸을 통째로 짓누르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날아온 헌터의 기압탄이 허공에서 폭발하여, 선 채로 자신을 겨누고 있던 적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격발의 충격파가 전방위로 퍼졌기에 하모니 역시도 피해를 입긴 했으나,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것이 크나큰 호재로 작용하여 가까스로 튕겨져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뿐만이 아니라, 후폭풍에 의해 손이 파우치에서부터 쑥 뽑혀나온다.

        

        그 끝에는 격발기가 쥐어진 상태였다.

        

        

        

       “이런 씨발, 헌터 새끼가 진짜!”

        

        

        

        벽면에 부딪혀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빠르게 회복하여 일어난 바코드가 벽면을 맞고 튕겨져 자신의 발치 언저리에 떨어진 소총을 주워들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즈음 되면 그도 알 것이었다.

        

        하모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불과 몇십 초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과 함께, 시선이 교차한다.

        

        

        

       “총, 총 어디갔어…뭐야, 너. 잠깐만. 그거, 수류탄이 아니라….”

        

       “글쎄요. 수류탄은 아니긴 한데….”

        

        

        

        그녀는 손에 지그시 힘을 주며, 악동스럽게 덧붙였다.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요?”

        

        

        

        찰캉.

        

        청량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주 짤막한 정적 동안 양쪽의 사이에서 교차하는 수많은 감정들.

        

        그리고───

        

        

        

       ───퍼버버벙!

        

       “흐아아악, 아으윽, 으아아아악!”

        

        

        

        바코드 닉네임을 한 저격 유저가 메고 있던 가방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자탄이 동반된 폭발이 터져나왔다.

        

        

        

        

        

        

        

        

        

        

        

        

       -[알림 : 적대적 요원 가방 내 클러스터 시커 마인 격발.]

        

       “…훌륭하네요.”

        

        

        

        내 말이 들릴지는 모르겠지만…아무튼, 하모니는 확실히 겉으로 보는 것보다도 훨씬 강인한 사람인 듯했다.

        

        내 격발기가 작동이 되지 않았던 것도 그렇거니와, 폴른이 예상보다도 너무 빠르게 그녀를 다운시켜서 헌터를 처리하기 전에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오랫동안 시간을 끌어주었고, 맡은 바 소임까지 훌륭하게 다해주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하모니가 다운된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의미했다.

        

        두 번째 헌터와의 교전도 어느덧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한 명이 더 남았을 뿐더러 시커 마인이 가하는 비틀거림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즉, 움직여야만 했다.

        

        그것도 지금 당장.

        

        

        

       ───달칵!

        

        

        

        바닥에 총기와 가방을 몽땅 버리고 오로지 방탄조끼만을 걸쳐입은 상태에서, 토마호크와 권총 한 자루만을 들고 하모니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둔 가방 안에는 시커 마인 두 개 뿐만이 아니라 전기충격을 가하는 반응성 유탄도 넣어놓았지만, 이 또한 시간만을 벌기 위한 것.

        

        

        순식간에 주변이 길게 늘어진다. 적어도 시속 30km 이상으로 눈이 쌓여있는 건물 옥상을 질주했다.

        

        불과 몇 초 안에 도달할 거리 앞에 최소 150cm 이상의 높이는 될 법한 턱이 보인다. 헌터가 그 위를 올라가고 있었고, 위에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변절자가 비틀댄다.

        

        속도를 줄이기에는 너무 늦었다.

        

        선택은 간단했다.

        

        

        

       “…!”

        

        

        

        그대로 점프하여 턱을 뛰어넘고, 바닥에 양 손을 대어 한 바퀴 굴러 착지함과 동시에 토마호크를 꺼내든다.

        

        손잡이를 으스러질 듯 움켜쥐고, 몸을 낮춘 자세로 이쪽을 막 돌아보는 헌터를 가격한다. 노리는 곳은 허벅지였으나, 휘두르는 순간 파공성과 함께 다리가 통째로 끊어져나갔다.

        

        허나 헌터는 신체의 통제권을 상실하고 옆으로 고꾸라지는 사이에도 즉각적으로 사격을 시도한다.

        

        간신히 총열을 잡고 비틀어 맞지 않을 수 있었고, 곧 적은 머리와 목이 분리되는 처참한 몰골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한편 이제서야 내가 도착한 걸 확인한 변절 유저가 황급히 달아나려고 하지만, 간단한 수신호를 통해 가방에 넣어놓았던 전격유탄을 격발시켰다.

        

        소름끼치는 소리와 전광이 퍼져나갔다.

        

        

        

       ───파지지지직!

        

       “흐극, 으으으윽, 아그윽…!”

        

        

        

        그 상태 그대로 바닥에 넘어진 채, 그는 허공을 쳐다보며 고장난 전동칫솔마냥 온 몸을 파르르 떨어대었다.

        

        손에 들린 토마호크를 한 바퀴 휙 돌리면서 천천히 다가간다.

        

        

        

       “이, 이게 무슨, 씨바알…!”

        

       “얼마 전 저한테 죽은 적이 있던 다섯 명한테 연락이 왔어요. 내용은 별 것 없었는데, 그 중 인상적인 말이 있었죠.”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인 하모니.

        

        아직 많이 남은 응급처치 키트를 그녀에게 사용하자, 얼마간 고통스러워보이던 표정이 삽시간에 완화되며 이카루스 기어의 자생 기능이 활성화된다.

        

        걸을 수 있게 되려면 1분 정도 걸릴 것이었다.

        

        그녀를 뒤로 하고, 꿈틀거리며 일어서려고 하는 그에게 덧붙인다.

        

        

        

       “하드코어 모드 유저한테 죽을 때는 사망 당시의 감각이 남아있게 된다는데, 원래라면 굳이 알 이유도 없는 내용이긴 해요.”

        

       “망할, 뭔 말을…지껄이는 거야…!”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스윽.

        

        발로 가슴팍을 지그시 밟아 완전히 눕힌 다음, 발을 떼고 틈새에 발등을 끼워넣은 채 스리슬쩍 밀어 얼굴이 바닥과 맞닿는 자세로 변환시킨다.

        

        말로 설명하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수도 있을 테니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는 현재 엎드린 상태였다.

        

        몸을 간단히 풀고, 방탄조끼와 헬멧 사이의 그 가느다란 틈새를 확인했다.

        

        

        

       “이제 곧 경추에 도끼날이 박히는 감각을 알게 되실 테니까요.”

        

       “무, 뭐? 지랄하지 마, 장난치는 거지?”

        

        

        

        그러나 왼발에 무게를 싣고 도끼가 휘둘러질 궤적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은 그에게 있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서 직면해야만 하는 현실로 변동한다.

        

        악에 찬 울부짖음이 맨해튼 한복판을 울렸다.

        

        

        

       “이 미친, 하지 마! 제발! 살려줘! 살려주세요, 잘못했으니까!”

        

       “다시는 보지 말도록 합시다.”

        

       “아으, 흐아아아아악───!”

        

        

        

        으직.

        

        살이 으깨지고, 척추가 박살나며 난 둔탁한 타격음이 흉한 단말마와 섞여 허공으로 번져나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화의 제목은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가방을 조심하고 뒤도 조심하고

    근데 가방은 등 뒤에 메죠?

    참으로 적절한….

    아무튼 단편 악역의 말로야 항상 그렇듯이 비슷비슷한 편이긴 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해줘야 인터넷 상에서 좀 화제가 되지 않을까요?

    아니라구예?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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