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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9

       그 후로도, 선생은 유하늘을 몇 번이나 불러 앞으로 나오게 했다.

        

       아마 어떻게든 우리들의 관종짓을 막아보겠다고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전부 악수가 되고 말았다.

        

       유하늘은 앞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아니, 따지자면 ‘자신감이 넘쳤다’라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처음에는 뻣뻣하게, 긴장한 듯 옮기던 걸음도 점점 성큼성큼 커졌고, 칠판에 답을 쓰는 속도도 빨라졌다.

        

       유하늘의 풀이는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았으니까 선생이 그냥 보내준 거겠지?

        

       아무튼, 시도 때도 없이 유하늘을 앞으로 부르는 선생의 그 행동이 악수가 되었다는 뜻은—

        

       “저, 저기, 하늘아.”

        

       나는 유하늘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그렇다. ‘얼굴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옆얼굴이 아니라 정면으로.

        

       ……우리가 앉아있는 자세는 아까 전보다 훨씬 더 자극적인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내가 유하늘 쪽으로 마주 보고 앉아…… 안겨있는 것 같은 자세였으니까.

        

       그나마 뒤에 책상이 있어서 몸을 최대한 뒤로 빼고 책상에 기대 있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유하늘이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

        

       정작 유하늘은 나에게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너가 먼저 이렇게 하자고 했잖아.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아니.

        

       그, 뭐냐.

        

       그러니까.

        

       내가 먼저 시작하자고 한 건 사실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동성 친구끼리 이런 자세까지 취하나? 장난으로라도? 설마 진짜로 나 도와주겠다고 극한의 관종자세를 생각해낸 것인가?

        

       물론, 이 자세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를 악물고 무시하던 주변 아이들의 눈이 우리에게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물론 어떻게든 안 보는 척을 하고 있긴 하지만, 몇 초에 한 번씩 이쪽으로 눈이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잘 보였다.

        

       그러니까…… 효과는 발군이긴 했다.

        

       발군이긴 했는데.

        

       이건 관종이 되겠다고 다짐한 나도 너무 쪽팔리는 자세다.

        

       막말로 입김이라도 불면 그대로 얼굴에 닿을 수도 있는 자세였으니까.

        

       “유, 유하늘!”

        

       저 앞에 있는 선생이, 다시 한번 유하늘을 부른다.

        

       “나와서 이 문제를 풀어라!”

        

       음정이 묘하게 엇나간 것이, 대놓고 당황한 목소리였다.

        

       “…….”

        

       내가 말없이 일어나서 비켜주려는데,

        

       유하늘이 그대로 벌떡 일어나버렸다.

        

       “으엫.”

        

       당연히 나는 유하늘에게 밀려서 뒤로 확 넘어갔다. 무거운 책상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십 킬로그램은 되는 몸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손을 버둥거리며 뒤로 넘어가는데, 그런 나의 허리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손이 있었다.

        

       ……유하늘이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유하늘에게 허리를 안긴 채 서 있는 자세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버둥거리던 손은 나를 붙잡으면서 내 쪽으로 슬쩍 들어온 유하늘의 어깨에 닿아 있었다.

        

       쏟아지는 빛에 정신을 차려보니, 유하늘의 얼굴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가 내쉬는 숨이, 유하늘이 내쉬는 숨과 섞였다.

        

       유하늘의 숨소리 빼고는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피를 내보냈다. 아마 내 얼굴은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해 올려보낸 피 때문에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이다.

        

       유하늘은 그런 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하늘!”

        

       멈추었던 시간은, 저 앞에 서 있는 선생에 의해서 깨졌다. 잔뜩 화가 났지만, 유하늘과 나의 행동에 대해서는 도저히 뭐라고 할 수 없는 선생이었기에, 그는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 엄한 목소리로 유하늘을 부를 뿐이었다.

        

       유하늘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나는 긴장해서 몸을 굳혔지만, 유하늘은 그저 뒤로 넘어갈 뻔한 나를 다시 당겨서 세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한 번 빙긋 웃어준 다음, 당당하게 걸어서 선생이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

        

       뭐지.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니, 졌다기보다는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체 뭘 잃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

        

       사라의 생각은 대충 알 것 같았다. 교내에서 대놓고 무시당하는 사라 자신과 유하늘이 함께 이상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절대 무시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행동했겠지. 사실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예상은 그랬다.

        

       물론 그 생각은, 유하늘이 사라의 무릎 위에 앉으면서부터 바뀌었지만.

        

       유하늘은 거의 언제나 자기 행동에 떳떳하게 행동하려고 했지만, 솔직히 이번만큼은 그렇게 떳떳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부끄러운 것도 부끄러운 것이었고, 뭐랄까, 사라의 위에 올라가 앉은 것만으로도 뭔가 굉장히 잘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아래에 깔고 있는 대상이 무려 그 사라가 아닌가. 체력도 약하고, 잘 먹지도 못하는.

        

       그런 자세로 계속 수업을 받다가, 선생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났을 때는 살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사라와 몸을 맞대고 있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조금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사라를 투명 인간 취급하더라도 사라가 그곳에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사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반 아이들, 그리고 앞에 서 있는 선생의 눈에는, 사라 위에 올라가 앉은 자기 모습이 아주 명확하게 보인다는 말이었다.

        

       분필로 칠판에 풀이를 적어넣으면서, 유하늘은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켰다. 심박수가 조금 떨어지고 나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라가 오늘 갑자기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어떻게든 개선하려고 했다면, 친구가 생긴 순간부터 부탁했으면 되었을 텐데.

        

       혹시 그동안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정말로 자신이 알려준 그 ‘친구와의 스킨십 범위’를 착각하고 있어서? 이만큼 친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니면, 사라가 유하늘과 ‘이만큼 친해졌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물론, 유하늘 입장에서야 나쁠 것은 없었다. 사라는 예쁘다.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더’ 친해지고 싶다.

        

       하지만 뭔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감에 이건 뭔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유하늘은 들고 있던 분필을 탁 내려놓았다.

        

       “그, 그래, 훌륭하다.”

        

       학원이나 과외를 다니지는 않지만, 유하늘은 언제나 예습과 복습을 철저하게 했다. 교과서 수준의 문제를 틀릴 이유가 없었다.

        

       몸을 돌려 사라가 있는 자리로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사라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본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의문에 가득 찬 순수한 표정. 무릎 위에 자신을 올려놓았던 것 치고는 꽤 평온한 표정이었다.

        

       “…….”

        

       뭔가 괘씸하다.

        

       그게 사라의 잘못은 아니었다. 사라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서 새장 속에 갇혀 있었으니까. 성적인 지식이라고 해봐야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지식이 다였을 테니, 그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 주말에 유하늘이 잘못 심어준 지식도 있었고.

        

       그러니까, 이건 사라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런 거다.

        

       만약 사라가 계속 이런 뒤틀린 거리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게 된다면?

        

       사라 자신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상대방은 완전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오해한 상대방이 그대로 자신의 오해를 행동으로 옮긴다면.

        

       “…….”

        

       유하늘은 사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날씬하다 못해 얇다고 할만한 다리. 겨울 교복을 입고 있는데도 말라 보이는 몸.

        

       분명, 누군가 힘으로 사라를 누르려고 한다면 사라는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 하리라.

        

       그래,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유하늘의 책임이었다.

        

       그러니, 사라에게 올바른 성 관념을 심어줘야 하는 것도 유하늘 자신이었다.

        

       그게 책임지는 자의 자세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유하늘은, 바로 사라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예상대로 사라는 너무나 쉽게 유하늘의 손에 끌려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그대로 사라를 잡아당긴다.

        

       “아힛?”

        

       사라는 특유의 목소리를 내면서, 다시 한번 유하늘의 품으로 끌려들어 왔다.

        

       마치 앉은 채로 공주님 안기를 하는 것 같은 자세였다.

        

       사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든다. 드디어, ‘거리감’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때, 부끄럽지?

        

       나중에 수업 끝나고, 이런 부끄러운 행동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로 알려주자.

        

       ……일단 지금은 수업 중이니까, 조용히 수업에 집중하고.

        

       그렇게, 유하늘은 수업시간 내내, 선생이 자신을 부를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을 때마다, 사라를 다른 자세로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 그때마다, 사라의 얼굴은 점점 더 붉게 익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수업이 끝났을 때는, 사라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유하늘의 품 안에서 굳어있게 된 것이다.

        

       ……이겼다.

        

       대체 뭐와 싸워서 이겼는지는 몰라도, 유하늘은 사라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도.

        

       *

        

       “…….”

        

       “…….”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나고 찾아온 쉬는 시간.

        

       선생은 스피커에서 종 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교실에서 뛰쳐나가 버렸다.

        

       교실 안은 여전히 정적 그 자체. 누가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리에 돌아가 앉았고, 유하늘도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그래, 따지고 보면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다. 유하늘과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하늘과의 관계를 이용해 먹은 것도 나였으니, 상황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전부 나에게 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중간부터 분위기를 탄 건지 어떤 건지, 유하늘은 그대로 나를 이리 앉히고 저리 앉히고 하며 거의 농락하듯이 한 것이다!

        

       무섭다, 여주인공. 과연 남자고 여자고 할 거 없이 마구 홀려버리던 주인공다웠다. 다른 누가 골라주는 선택지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고르는 선택지가 이 정도로 파괴적인 것이었나?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억제기였던 모양이다.

        

       ……설마 나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정말로 아예 친구에서 연애의 단계로 넘어가겠다고 생각한 걸까? 아까 유하늘이 내 허리를 안아 들었을 때 부터 나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 반한다고 해서 나쁜 것은 없긴 했지만.

        

       그랬다간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상하게 굴러갈 것 같은데…….

        

       그렇게 1분 정도, 책상을 빤히 바라보면서 앉아있었더니, 옆에서 뭔가 바닥을 끄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유하늘이 의자를 끌어서 내 옆으로 오고 있었다.

        

       “어땠어?”

        

       유하늘이 나에게 물어본다.

        

       아니, 어땠냐니……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부끄러웠는데.

        

       그렇다. ‘쪽팔린다’라는 것 보다는 ‘부끄러웠’다. 이 둘은 미묘하게 다른 단어다. 전자가 한밤중에도 생각나면 이불을 마구 발로 차며 각성하게 되는 감정이라면, 후자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되는 감정이었다. 물론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가 더 좋긴 했다.

        

       더 좋긴 했지만.

        

       “부끄러웠지?”

        

       유하늘이 나를 어린아이 대하듯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유하늘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거리감이라는 건 중요해. 너무 가까우면 상대방이 당혹스러워하거나, 정말 오해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라면서, 사람의 거리감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

        

       그 말을 듣고 있으니, 새빨갛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

        

       유하늘은, 내가 사람과의 거리감을 잘못 계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그렇게 행동하는 김에 아예 나에게 예시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고.

        

       “…….”

        

       유하늘의 이어지는 설명을 잠시 듣고 있던 나는, 유하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앗.”

        

       유하늘의 말이 끊어졌다. 당황해서 나를 보는 유하늘에게, 나는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핸드폰.”

        

       “어? 아, 응.”

        

       내 갑작스러운 요구에 당황하면서도, 유하늘은 선뜻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나는 검색창에 내 이름을 검색했다. 다행히 여전히 기사는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걸려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선택해, 대문짝만하게 찍힌 우리 둘의 사진을 유하늘에게 보여주었다.

        

       “…….”

        

       순간 내가 뭘 보여주는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던 유하늘은,

        

       “어어!?”

        

       깜짝 놀라서 그렇게 외쳤다.

        

       보아하니, 이 기사를 지금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

        

       그 반응을 보고,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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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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